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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보사찰 통도사 풍경
    사찰 풍경 2014. 8. 4. 23:17

    2014년 8월 2일 찾은 불보사찰 통도사 풍경입니다.

    태풍이 올라오고 있다고 하는 날씨 흐린 날씨에 찾은 통도사

    입구에는 붉은 백일홍 꽃이 활짝피어 찾는 이를 환한 미소로 반기고 있었습니다.

    무더운 여름 날씨의 통도사 법회가 열리고 있는 모습이 편안한 느낌입니다.

    고풍스런 통도사 건물 보면 볼수록 한국의 아름다운 건축미에 매혹되게 합니다.

     

    삼국유사』제3권 탑상(塔像) 제4 전후소장사리조(前後所將舍利條)에 의하면 “선덕왕때인 정관(貞觀) 12년 계묘년(癸卯 643)에 자장율사스님께서 당에서 모시고 온 부처님의 두골(佛頭骨), 부처님의 치아(佛齒)등 사리(佛舍利) 100립과 부처님이 입으시던 비라금점가사(緋羅金點袈裟) 한 벌이 있었는데 그 사리를 3분하여 일부분은 황룡사탑(皇龍寺塔)에 두고 일부분은 태화사탑(太和寺塔)에, 일부분은 가사(袈裟)와 함께 통도사 계단에 두었으며”라고 하였다. 계단은 2층으로 상층(上層) 가운데에 범종 모양을 하고 있는 석개(石蓋)를 안치하였다.

     

     


    이 내용은 곧 통도사의 불사리 금강계단과 함께 부처님의 친착가사(親着袈裟) 봉안 사실을 전해주는 중요한 기록이다. 본래 금강계단이 축조되기 이전 통도사는 큰 못이었다. 창건주 자장스님께서는 못을 메워 금강계단을 설치하고 통도사를 창건하셨다.

    자장스님께서 당나라 종남산(終南山) 운제사(雲除寺) 문수보살상 앞에서 기도를 드리고 있을 때의 일이다. 문수보살은 승려로 화하여 가사 한 벌과 진신사리 1백 알, 불두골(佛頭骨), 손가락뼈(指節), 염주, 경전 등등을 주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이것들은 내 스승 석가여래께서 친히 입으셨던 가사이고 또 이 사리들은 부처님의 진신사리이며, 이 뼈는 부처님의 머리와 손가락 뼈이다. 그대는 말세(末世)에 계율을 지키는 사문(沙門)이므로 내가 이것을 그대에게 주노라. 그대의 나라 남쪽 축서산(鷲栖山 : 영축산의 옛이름) 기슭에 독룡(毒龍)이 거처하는 신지(神池)가 있는데, 거기에 사는 용들이 독해(毒害)를 품어서 비바람을 일으켜 곡식을 상하게 하고 백성들을 괴롭히고 있다. 그러니 그대가 그 용이 사는 연못에 금강계단을 설치하고 이 불사리와 가사를 봉안하면 삼재(三災 : 물, 바람, 불의 재앙)를 면하게 되어 만대에 이르도록 멸하지 않고 불법이 오랫동안 머물러 천룡(天龍)이 그곳을 옹호하게 되리라.”

    신라 대국통 자장스님께서는 귀국하여 선덕여왕과 함께 축서산을 찾아서 독룡들이 산다는 못에 이르러 용들을 위해 설법을 하셨다. 그런 뒤 스님께서는 못을 메우고 그 위에 계단을 설치 하셨다.

     

    상의 기록을 통하여 통도사가 창건되기 이전의 그 땅은 매우 큰 연못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경내 상로전 구룡지와 하로전 못의 수면을 보면 고인 물이 아니라 흐르는 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전(俗傳)에 의하면 스님에게 항복한 독룡은 모두 아홉 마리였는데, 그 가운데서 다섯 마리는 오룡동(五龍洞)으로, 세 마리는 삼동곡(三洞谷)으로 갔으나 오직 한 마리의 눈먼 용만은 굳이 그곳에 남아 터를 지키겠다고 굳게 맹세하였으므로 스님은 그 용의 청을 들어 연못 한 귀퉁이를 메우지 않고 남겨 머물도록 했다고 한다. 그곳이 지금의 구룡지인데 불과 네댓 평의 넓이에 지나지 않으며 깊이 또한 한 길도 채 안 되는 조그마한 타원형의 연못이지만 아무리 심한 가뭄이 와도 전혀 수량이 줄어들지 않는다.

     

    사리는 불자가 존중하는 신앙(信仰)의 대상이다. 이 사리는 옛적부터 계(戒), 정(定), 혜(慧)의 삼학(三學)을 성취(成就)했을 때 나타나는 결정체라고 한다.

    『통도사 사적기(通度寺 事蹟記)』「사리영이편(舍利靈異篇)」에 보면 사리의 영이함에 관한 많은 이야기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첫째는 사부대중(四部大衆) 가운데 어느 누구든지 사리(舍利)를 첨례(瞻禮)하고 공양할 때에는 먼저 다섯 가지 법신(法身)의 향기가 산내에 드높아 내원(內院)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이 이상한 향기를 맡고 감탄하는 일이다.


    둘째는 인연의 유무를 따라서 사리가 나타나기도 하고 나타나지 않기도 하고 빛나면서 수정통(水晶筒) 가운데 붙어서 나오지 아니하며 혹은 절반만 있고 절반은 없으며 혹은 크기도 하고 작기도 하며 때로는 순금색(純金色)이거나 또 순옥색(純玉色)이며 절반은 금이며 절반은 옥이며 또 크고 작음과 숨고 나타남이 같지 아니한 것이다.

    셋째는 사람들이 첨례할 때 맑은 하늘에서 갑자기 비가 내리기도 하며 우천(雨天)이 홀연히 개기도 하며 검은 구름이 깔리고 우레 소리를 내며 폭풍이 갑자기 비를 내려 수목(樹木)을 쓰러뜨리기도 하여 그 길흉(吉凶)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넷째는 사람들이 첨례하기 위하여 동구(洞口)로 들어올 때면 계단 석종(石鍾) 위에서 먼저 오색광명(五色光明)이 크게 천지(天地)를 비춰 훤히 산과 골짜기를 밝히는 것이다.

    다섯째는 사람들이 첨례(瞻禮)하여 향과 초를 태워 여러 가지로 공양하고 부지런히 정진(精進)하면 계단(戒壇)의 반상에 변신사리(變身舍利)가 모래알처럼 무수히 나타나는 것이다.

    여섯째는 사리를 첨례하려는 사람이 몸과 마음이 부정(不淨)하여 하심(下心)하지 못하고 원문(院門)을 소란스럽게 하면 일원중(一院中)에 먼저 비위를 상하는 고약한 냄새가 나서 그 사람이 곧 광란(狂亂)하여 땅에 쓰러져 귀신의 말을 지껄이다가 결국 미치게 되는 것이다.

    일곱째는 금강계단 석종 부도의 여의주석 반석 아래 움푹 파인 곳에 항상 물이 가득 차 있고 그 가운데 한 쌍의 푸른 달팽이가 매양 붙어 있는데 석종을 들 때 사람이 보면 사방으로 흩어져 간 곳을 알지 못하다가는, 사람이 없어지면 잠깐 사이에 들어와서 전과 같이 있는 것이 사시(四時)에 끊어지지 아니하고 죽지 아니하여 항상 붙어 있으면서 나타나기도 하고 나타나지 않기도 하는 것이다.

    여덟째는 금강계단 위로는 모든 날 짐승이 그 가운데를 날아가지 아니하고 또 그 위에 오줌과 똥을 주지 않는 것이다.

    이와 같이 여덟 가지의 사리에 대한 신령(神靈)스러움과 길흉변동(吉凶變動)이 사리영이편(舍利靈異篇)에 기록(記錄)되고 있다.

    통도사에서는 이런 사적기(事蹟記) 기록 못지않게 지금도 간혹 사리탑 계단에서는 밤중에 광명이 뻗어 올라 대낮처럼 밝아 대중이 깨어나서 첨례하는 일이 있으며 그럴 때면 멀리 양산(梁山)에서는 통도사에 화재가 생겼다고 야단들이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상노전(上爐殿)의 스님들이 혹시 예불시간에 일어나지 못하면 종소리와 목탁소리가 들리게 되니 이는 불사리를 봉안한 적멸보궁(寂滅寶宮)만이 갖는 특별한 영이(靈異)라 하겠다.

     

     

     

     

    해동의 이름난 명승지, 영축산 통도사는 신라 제27대 선덕여왕 15년(646)에 대국통 자장스님에 의하여 창건된 국내 제일 대가람(大伽藍)이다. 영축산이란 부처님 당시 마가다국 왕사성의 동쪽에 있던 산의 이름이다. 이 산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법화경(法華經)』을 설한 곳으로 유명하며 수행자와 독수리들이 많이 모여 살고 있었기 때문에 영축산이라 불렸다. 그래서 이 산의 모양이 불법을 직접 설하신 인도 영축산과 통한다(此山之形 通於印度靈鷲山形) 해서 통도사라 한다.

    또한 “승려가 되려는 사람은 모두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금강계단에서 계를 받아야 한다(爲僧者通而度之)”는 의미에서 통도사라 한다. 이는 통도사의 근본정신을 말한다. 인간과 하늘의 스승이 되고자 출가하려는 자들은 부처님께서 행하시고 손수 실천하신 언행을 통도사 금강계단에서 익히고 배워야만 승려가 된다는 의미이다. 곧, 한국 불교 계율의 중심지로서 모든 승려들은 이곳에서 계(戒)를 받아서 산문(山門)에 들어서라 하였다.

     
     

    그리고 “모든 진리를 회통하여 중생을 제도한다(萬通法度衆生)”는 의미의 통도(通度)는 모든 방편을 동원하여 중생들을 행복하게 하고자 하셨던 부처님의 자비사상을 잘 표현한 이름이다. 보살과 수행자들의 존재 이유는 자기만의 깨달음을 구하는 데 있지 않다. 깨달음을 향하여 진리의 세계로 나가는 동시에 고통 받는 중생들과 함께하는 대비(大悲)의 마음이 있어야 함을 표현한 것이다.

    통도사의 탑 · 석등을 위시한 무수한 문화재들 그리고 천혜의 자연과 입지조건 등등. 그리고 그 속에서 불법을 꽃피운 위대한 고승들과 수행자들, 어느 하나 불보살님의 가피력과 창건주이신 신라의 대국통 자장스님의 혜안에 의하지 않은 것이 없는 소중한 불연(佛緣)의 이름이다.

     

     

     

     

     

     

     

     

     

    신라의 대국통 자장스님께서는 당나라에 건너가 수도를 하고 부처님의 숭고한 가르침을 세상에 널리 전파하고자 부처님의 가사와 사리 그리고 대장경의 일부분을 받들고 신라로 돌아왔다. 그리하여 사리를 모실 절을 세우기로 하고 문수보살께 절을 세우기에 적당한 곳을 물었다. 그랬더니 어느 날 밤 꿈에 훌륭하게 차려입은 동자가 나타나서 부처님 모실 곳을 일러주었다.

    "동국에 부처님을 모시도록 하라.”

    자장스님께서는 동국이 신라를 가리키는 것은 분명하나, 신라의 어느 곳이 좋을지 몰랐다. 그래서 나무로 오리를 만들어 동쪽으로 날려 보냈더니 얼마 후 오리는 한 송이 칡꽃을 물고 돌아왔다. 스님께서는 칡꽃이 피어있는 곳에 절을 세우라는 것이 부처님의 뜻임을 깨닫고 흰 눈이 쌓여 있는 한 겨울에 칡꽃을 찾아 나섰다. 며칠을 찾아다니던 어느 날 양산에서 좀 더 들어가는 영축산에 이르러 보니 큰못이 있었다. 그 못 주변에 신기하게도 두 송이의 칡꽃이 피어있었다. 자장스님께서 인근의 경치를 살펴보니 송림이 울창하고 산봉우리들이 열을 지어 둘러쳐져 있었으며 검푸른 못물은 마치 고요히 잠들어 있는 듯했다. 스님은 세상에서 이렇게 고요하고 아름다운 곳은 다시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그 곳에 절을 세우니 그 절이 통도사이다.

     

     

     

     

     

     

     

     

     

     

     

     

     

     

    금강계단은 연못을 메우고 건립한 통도사의 대웅전 바로 뒤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통도사 창건의 근본정신을 간직하고 있는 최상의 성지(聖地)이며 가람배치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금강계단의 금강이라는 말은 금강석(金剛石), 곧 다이아몬드를 의미한다. 어떤 물건이라도 금강석을 깨뜨릴 수 없지만 금강석은 모든 것을 깨뜨릴 수 있다. 그래서 불경(佛經)에서는 이러한 금강석의 강인한 특징을 반야(般若)의 지혜를 표시하는 은유로 써왔다.

     


     

    곧 반야의 지혜로 모든 번뇌, 망상과 미혹의 뿌리를 끊어 버리므로 그 반야의 지혜가 금강석과 같다는 말이다. 반야의 지혜는 계(戒), 정(定), 혜(慧) 삼학(三學)을 완성함으로써 성취된다. 이 삼학 가운데서 가장 기본이 되는 바탕은 부처님의 행동을 닮아가는 연습인 계율의 실천에 있다. 계율이 기본적으로 몸에 배지 않고서는 아무리 훌륭한 일을 한다 해도 그것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그리고 계율이란 그릇과 같아서 자칫 잘못하면 깨질 우려가 항상 있다. 그래서 계의 그릇은 금강과 같이 견고하게 보존해야 하는 것이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는 삼학의 결정체이며 반야의 화현(化現)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금강과 같이 견고함으로 그 사리를 모신 계단은 금강계단이라 한다.

    자장스님은 당나라에 유학하기 이전부터 철저히 계율을 몸소 실천한 수행자였다. ‘계를 지키고 하루를 살지언정 파계를 하고 백년을 살지 않겠다.’는 그의 철저한 계율의 정신은 문수보살로부터 사리와 가사를 받은 사실로 나타났고 이 불신(佛身)이 통도사에 안치됨으로써 통도사는 계율의 근본도량이 된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귀의함에 있어서 첫째 요건은 계율을 실천하는 데 있다. 그래서 승속(僧俗)을 막론하고 불문(佛門)에 들어서기 위해서 비구는 250가지 계율인 구족계(具足戒)를 받아야 하고 재가신도는 오계(五戒)를 받아야 참다운 불자(佛子)로서의 일보를 걷게 되는 것이다. 비단 출가자뿐만 아니라 불자들의 일상생활에는 항상 계율을 지키는 자세가 기본적으로 정립되어야 한다. 그래서 승려는 승려대로 청정한 모습으로 사회의 귀감이 되어야 하며 재가신도는 그 나름대로 철저한 윤리의식 속에 이 사회를 정토로 일구어 나가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계율이 단순한 금계(禁戒)에 머무르지 않고 모든 중생들에게 이익을 주겠다는 보살계(菩薩戒)로 확산될 때 대승불교의 참된 이상(理想)이 이 땅에 펼쳐질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신라의 대국통 자장스님께서 이 땅에 금강계단을 설치한 참된 의미이다.

    그래서 통도사 금강계단에서 계를 받는 일은, 부처님에게서 직접 계를 받는 것과 동일한 의미를 지니므로 통도사의 금강계단은 오늘날 까지도 승려들의 유일한 정통을 잇는 수계(受戒)의 장소로 인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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