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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설악산 오세암
    사찰 풍경 2014. 7. 14. 22:51

    2014년 7월 12일 설악산 봉정암에서 오세암 가는 길.거리상으로는 4km에 불과하지만 공룡능선과 나란히 달리는 내설악의 깊고 깊은 원시림의 숲속을 지나

    오르고 내리고를 몇번이나 반복하는 힘든 여정 이었습니다.몇번의 고개를 넘고 넘어 오세암이 가까와오니 오세암에서의 관세음보살 염불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고

    오세암에 다왔다는 안도감에 반가움이 앞섭니다.봉정암에서 오세암 가는 길 원시의 숲속 길 숲의 향기가 마음을 안정시키고 사색에 잠기게 하는 운치 있는 길이었습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에 속하는 백담사(百潭寺)의 부속 암자이다.

    역사적 변천

    643년(선덕여왕 12)에 창건하여 관음암(觀音庵)이라 하였으며, 1548년(명종 3)에 보우(普雨)가 중건하였다. 이 암자를 오세암이라고 한 것은 1643년(인조 21)에 설정(雪淨)이 중건한 다음부터이며, 유명한 관음영험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설정은 고아가 된 형님의 아들을 이 절에 데려다 키우고 있었는데, 하루는 월동 준비 관계로 양양의 물치 장터로 떠나게 되었다. 이틀 동안 혼자 있을 네 살짜리 조카를 위해서 며칠 먹을 밥을 지어 놓고는, “이 밥을 먹고 저 어머니(법당 안의 관세음보살상)를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하고 부르면 잘 보살펴 주실 것이다.”고 하는 말을 남기고 절을 떠났다.

    장을 본 뒤 신흥사까지 왔는데 밤새 폭설이 내려 키가 넘도록 눈이 쌓였으므로 혼자 속을 태우다가 이듬해 3월에 겨우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런데 법당 안에서 목탁소리가 은은히 들려 달려가 보니, 죽은 줄만 알았던 아이가 목탁을 치면서 가늘게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있었고, 방 안은 훈훈한 기운과 함께 향기가 감돌고 있었다.

    아이는 관세음보살이 밥을 주고 같이 자고 놀아 주었다고 하였다. 다섯 살의 동자가 관세음보살의 신력으로 살아난 것을 후세에 길이 전하기 위하여 관음암을 오세암으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그 뒤 1888년(고종 25) 백하화상(白下和尙)이 중건하였다. 당시 법당을 2층으로 짓고 박달나무로 기둥을 세웠는데, 매끄럽기가 부드러운 명주옷으로 문질러도 결이 일어나지 않을 정도였다고 한다.

    내용

    이 절은 수선도량(修禪道場)인 동시에 유명한 기도도량으로 손꼽힌다. 아늑한 맛으로는 설악산 내 사찰들 중에서 제일이며, 많은 고승들이 주석했던 곳이기도 하다.

    김시습(金時習)이 승려가 된 뒤 머물렀던 곳이고, 조선 중기 불교의 부흥을 꾀하다 순교한 보우가 수도하였으며, 근대의 고승이자 시인이요 독립운동가였던 한용운(韓龍雲)이 머물렀던 곳이다. 특히, 김시습과 한용운이 이곳에 머물면서 『십현담(十玄談)』의 주석서를 쓴 것은 매우 유명하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법당과 승방ㆍ객사, 새로 지은 산신각이 있고, 옛 절터가 근처에 있어 석물(石物) 등이 남아 있다. 이곳에서 약 2㎞ 떨어진 곳에는 마등령이 있다.

     

     

     

     

     

     

     

     

     

    전설의 동자를 모신 동자전입니다.

    오세암에 얽힌 전설 


    오세암은 644년, 신라 선덕여왕 13년, 자장율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관음보살의 진신을 친견한 자장 율사가 절을 창건하고 관음보살이 언제나 상주하는 도량임을 알리기 위해 절 이름을 관음암(觀音庵)이라 부르니 오늘날 오세암이 시작된 것이고 합니다. 그런데 이 관음암이 오세암으로 바뀐 것은 1643년(인조 21)에 설정(雪淨)스님이 중건한 다음부터라고 합니다. 절 이름이 관음암에서 오세암으로 바뀐 배경에는 정말 전설같은 이야기가 전해 지는데 5세 동자에 얽힌 유명한 관음영험설화가 있으며 중창과 깊은 연관이 있다고 전합니다.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관음암에서 수행 중이던 설정스님은 형님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고아가 된 조카를 암자로 데려와 기르게 되었다는 것입다. 이 아이의 나이가 5살 되던 해 겨울이 막 시작되는 10월 하순 어느 날,  스님은 산사의 월동 준비를 위하여 양양의 물치 장터를 다녀 올 작정을 하고 암자를 나설 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그 옛날 길이 좋지 않았던 때라 오세암에서 양양의 물치 장터까지는 빠른 걸음으로 다녀와도 족히 이틀은 걸리는 먼 길이였던 모양입니다. 그 이틀 동안 혼자 있을 다섯 살 짜리 조카를 위하여 스님은 그 기간 동안 아이가 먹을 만큼 밥을 짖고 반찬을 만들어 놓았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스님은 아이를 불러 무릎에 앉히고, 법당 안의 관음보살을 가리키면서 "내가 다녀오는 동안 이 밥을 먹고 있으면서 저분을 어머니처럼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이라 불르라"고 일러 주면서 "그러면 저 분이 너를 보살펴 줄 것이다"라고 말을 했다고 합니다. 


    5살의 어린 조카에게 이렇게 신신당부를 한 후 설정스님은 관음암을 내려와 물치 장에 들려 겨우살이를 위하여 이 것 저것을 구입한 후 신흥사에 들려 하루를 묵게 되었다고 합니다. 스님은 다음날 조카가 기다리고 있을 관음암으로 돌아가려 일찍 아침 잠에서 깨었으나 밤사이에 폭설로 엄청나게 쌓인 눈 때문에 도저히 암자로 돌아갈 수 없었을 지경에 이르고 말았읍니다. 스님은 어쩔 수 없이 그곳에서 머물 수 밖에 없게 되었지요. 스님의 마음을 알지 못하는 야속한 눈은 그 뒤에도 그치지 않고 계속 쌓여만 갔읍니다. 눈에 생기는 발자국의 깊이가 깊어질수록 혼자 있는 조카에 대한 걱정으로 스님의 애간장은 점점 녹아 내릴 듯 간절하다 못해 시커멓게 타들어 갔읍니다. 잠도 제대로 잘 수 없고, 먹는 것도 제대로 먹을 수 없었지만 워낙 많이 쌓인 눈 때문에 꼼짝없이 갖히고 마는 어쩔 수는 상황에 놀이고 말았읍니다. '엄동설한 폭설에 혼자 남겨둔 조카가 어떻게 됐을까'하는 걱정으로 지낼 수 밖에 없었읍니다. 다만 스님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부처님께 조카의 무사를 서원하는 기도를 열심히 드리는 것이 전부였을 뿐이였지요.


    이렇게 고통스런 몇 며칠을 보내다 도저히 안되겠다는 생각에 억지로라도 관음암으로 돌아 가려고 문밖을 나서니 사중의 모든 스님들이 앞을 가로 막았읍니다. '이런 폭설에 길을 나서면 죽을 게 뻔한데 왜 가려고 하느냐'며 적극 만류하여 결국 스님은 눈길이 트일 때까지 신흥사에 머물 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그 사이에도 무정한 시간은 흐르는 물처럼 흘러 어느덧 봄이 오고 눈이 녹아 산길이 트이게 되었읍니다. 서둘러 바랑을 챙긴 스님은 뜀박질을 하듯 달려 암자에 들어섰읍니다. 그런데 암자에 들어서니 죽었을 것이라 생각하였던 아이가 목탁을 치면서 가늘게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있었고,  방안은 훈훈한 기운과 함께 향기가 감돌고 있었읍니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조카가 살아있다는 반가움에 스님은 어쩔 줄 몰라기쁨에 취하여 "어찌된 것이냐"고 물으니 조카는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 어머니가 언제나 찾아와서 밥도 주고 재워도 주고 같이 놀아도 주었어요'라고 대답"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자 갑자기 환한 흰 옷을 걸친 여인이 관음봉으로부터 내려와 동자의 머리를 만지면서 성불의 기별을 주고는 한 마리 푸른 새로 변하여 창공으로 날아가 버렸다고 합니다. 놀란 스님은 마음을 가다듬고 부처님 전에 큰 절을 올리고 조카를 안아 보려 하자 품에 안기지도 않은 채 조카는 그대로 사그라져 승천을 하였다 합니다.


    나중에 살펴보니 법당 경상에 놓여 있던 책장이 스님이 집을 비운 딱 그만큼의 날짜만큼 찢겨져 나가 있었다네요. 부처님의 신통력으로 종이 한 장으로 그날 하루를 지내게 되었음을 짐작케 했나 봅니다. 그동안에 일어났던 모든 일들을 알게 된 설정 스님은 다섯 살 어린 조카가 맑고 밝은 마음으로 삼촌인 스님이 시키는 대로 무념무상의 '관세음보살'을 계속하자 관음보살이 감응하고 그 가피로 영생불멸의 길로 접어든 것을 알게 되었지요. 


     비록 5살 밖에 안된 동자였지만 그 순진 무구한 마음이 동자를 성불케 하였으며 이 도량에 관음보살의 영험이 있음을 길이 전하기 위하여 관음암을 중건하고, 절 이름을 오세암으로 고쳐 불렀다고 전합니다.


     

     

     

     

     

     

     

     

    오세암 전각에는 모두 다람쥐가 사는 모양이다.

    스님이 예불을 보는 시간에도 다람쥐들이 왔다 갔다 한다.

    예불 볼 때는 조용히 해야 하는데 경망스럽게 분주하게 움직인다.

    이놈들 분주한 거야 천성이 그러니까 할 수 없는 거고, 만물이 불성을 가지고 있다는데, 절에서 사는 다람쥐는 부처님을 가까이 모시고 있으니 중생보다 더 깊은 불심을 가지고 있는 지도 모른다.

    시무외전(施無畏殿) 전각에 참배를 하려고 하니까 이곳에서도 다람쥐가 먼저 마중을 한다.

    재집 인양 부처님 무릎에도 기어 올라가고 스님만 앉도록 된 좌복에도 턱하니 올라가 앉고, 목탁 위에서도 논다.

    참배를 마취고 다람쥐들과 사진도 찍고 한참을 놀았다.

    사시 예불을 마치고 점심 공양을 했다.

    봉정암 공양과 마찬가지로 밥과 미역국에 오이 무침이다.

    봉정암 미역국보다 오세암 미역국이 먹기가 좀 나은 이유는 된장을 풀어서 미역국을 끓이니까 한결 먹을 만 했다.

    밥에 오이 무침 몇 조각을 놓고 미역국을 부어서 말아먹었는데 역시 맞은 일품이다.

    밥을 맞잇게 먹는 표정을 보고 옆에 사람이 절밥 체질이군요.’ 하면서 농을 한다.

     

     

     

     

     

     

     

     

     

     

     

     

    봉정암에서 오세암 가는 길 원시의 울창한 숲이 향기를 풍기며 가는 길손의 마음을 안정시키고 자연에 심취하게 하는 아름다운 숲길입니다.

     

     

     

    거대한 전나무가 보는이를 감동케하는 고목이 군데 군데 있어 원시의 숲을 느끼기에 충분한 아름다운 길입니다.

     

     

     

     

     

     

     

     

    오세암 가는 길의 가야동 계곡 풍경입니다.

     

     

     

    봉정암을 출발하면 보게 되는 오세암 가는 길의 용아장성 풍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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