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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연
    좋은글과 시 2013. 4. 17. 12:12

     

     

     

    시장길에서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요

    남녀가 어울려 부부의 연을 맺는 것은

    오백생의 좋은 인연을 맺었기 때문이니라.

    [인과초경]

     

    인연은 끝없는 파동입니다/


    쌍계사 큰스님을 모시고 문중 스님들과 함께 베트남 하롱베이와 캄보디아 앙코르와트로 성지순례를 갔을 때 일입니다. 은은한 안개 속에 삼천여 개의 섬이 떠 있는 하롱베이는 몽환적 분위기를 자아냈습니다. 거목들이 사원을 뒤덮고 있는 앙코르와트 또한 명성에 걸맞은 압도적인 규모를 자랑하고 있었지요. 볼만한 풍광들이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감명 받았던 것은 베트남 가이드에게 들은 라이 따이한에 관한 스토리였습니다.

    라이 따이한이란 한국남자와 베트남 여성에게서 태어난 혼혈아를 일컫는 말입니다. 월남전 당시 적지 않은 라이 따이한들이 생겨나게 되었지요. 베트남 국내에서 라이 따이한에 대한 시선은 곱지 않다고 합니다. 외세의 침략을 수없이 겪고 살아온 베트남 사람들은 외국인에 대한 경계심을 가지고 있으며, 외국인들과 베트남 여성 사이에서 낳은 아이들에게도 배타적인 태도를 취했습니다. 심지어 라이 따이한은 출생신고조차도 할 수 없었습니다. 교육 받을 기회도 차단된 그들은 결국 사회의 빈민층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습니다.

    월남전 당시 파견 근무를 하면서 베트남 여인과 결혼을 하고 아이까지 낳아서 키운 대기업직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전쟁이 끝나고 서둘러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면서 결혼생활도 끝나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꼭 데리고 가겠다는 다짐만을 남기고 차일피일 시간이 흘렀습니다. 시간이 지나며 아내와의 연락도 두절되고 행방이 묘연해졌습니다. 아무리 수소문을 해봐도 연락이 닿지 않았고, 당시에는 베트남에 입국 자체가 불가능 했던지라 결국 속절없이 세월만 흘러가게 되었습니다.

    다시 한국과 베트남이 수교를 맺게 되었을 때 바로 달려가 찾아보았지만 영 찾을 수가 없더랍니다. 할 수 없이 가까운 지인에게 신신당부를 하고 기다리다 보니 20여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는 대기업의 부회장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을 찾았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황급히 찾아가 보니 아들은 남부의 고무 농장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아들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찾아간 농장의 조건은 너무나 열악했습니다. 돼지우리 같은 처소에 마치 노예처럼 생활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또한 가까스로 만난 아들은 냉담한 얼굴로 자신에게는 외국인 아버지가 없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그러나 분명 그의 핏줄이었습니다.

    그는 아들의 처소에서 사흘간 같이 생활하며 아들을 설득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 밤을 지새우며, "이제 내일이면 나는 가야한다. 언제라도 마음이 돌아서면 연락을 다오."라는 말을 하고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눈을 뜨니 아들이 자고 있는 자신의 얼굴을 애틋하게 쳐다보고 있었다고 합니다. 결국 부자는 눈물을 쏟으며 뜨거운 포옹을 나누었고, 그는 아들에게서 엄마가 비참하게 살다가 얼마 전에 죽었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왜 이제야 데리러 왔느냐는 아들의 말에 그는 어떠한 답변도 할 수 없었답니다.

    그날로 농장 주인에게 350만원을 주고 아들을 빼내어 지인에게 맡겼다고 합니다. 아들은 낮에는 학교에 다니고 밤에는 봉제 공장에서 일하며 7년 만에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졸업식 날, 아버지는 아들에게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다 해주겠다며 소원을 말해 보라고 했습니다. 그 때 아들의 답변은 의외였습니다. 고작 재봉틀 두 대였던 것입니다. 아버지가 선물한 재봉틀 두 대를 밑천으로 열심히 일한 아들은 이후 봉제 공장을 설립하고, 직원들을 두게 되었습니다. 그 직원들의 대부분은 자신과 같은 처지의 라이 따이한들이었습니다. 아들은 직원이 필요할 때마다 라이 따이한을 고용하여 일과 공부를 병행하도록 배려했습니다. 아버지는 자신의 생일날, 350여명의 직원들이 축하의 절을 올리는 것을 보고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이러한 내용이 지역 신문에 실리게 되고, 점차 여론화되면서 라이 따이한들도 출생신고를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인연의 파동은 이처럼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수십 년 전에 맺은 부부의 인연과 베트남의 출생신고 체계는 언뜻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이나, 인연의 끈을 끝까지 놓지 않은 한 사람의 노력이 라이 따이한의 권리를 살려 준 것이지요. 또한 절망적인 나날 속에서도 살아있었던 아들이 아버지의 은덕으로 독립할 수 있게 되고, 자신과 같은 처지의 라이  따이한을 위해 노력한 것이 일파만파로 영향을 미친 것입니다..



    저 큰 바다도 결국 한 방울의 물이 모인 것이고, 저 높은 산도 한 덩어리의 흙이 모인 것입니다.

    < 선가귀감>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물거품 같은 이 몸은 다할 날이 있지만 진실한 행동은 헛되지 않는다."

    오늘 만나는 모든 인연을 중히 여기시고 진실하게 대하세요. 매일 선한 인연의 집을 지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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