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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탄허스님좋은글과 시 2013. 4. 17. 11:42
삶과 죽음 / 탄허스님
세상 사람으로 태어난 者에게 가장 重要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두말 할 것 없이 삶과 죽음일 것이다.
즉 生死 問題야말로 그 무엇보다 앞선 窮極的인 그리고 이 世上에서
몸을 담고 살아가는 동안 기필코 풀어내야 할 中心問題이다.
人間의 生死 問題를 解決하기 위하여 宗敎가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우리 佛敎에서는 生死 問題를 쉽게 말해서 이렇게 解決한다.
마음에는 生死가 없다고
부연하면 마음이란 그것이 나온 구멍이 없기 때문에 죽는 것 또한 없다.
本來 마음이 나온 곳이 없음을 確然히 갈파한 것을 도통道通 했다고 말한다.
우리 自身의 어디든 찾아보라 마음이나 구멍이 있는지
따라서 나온 구멍이 없으므로 죽는 구멍도 없다.
그러니까 도道가 철저히 깊은 사람은 이 조그만 몸뚱아리를 가지고도 얼마든지
살수가 있다. 그렇지만 어린 衆生들이 죽음을 두려워하며 千年萬年
살고 싶어 하지 道人이나 성인聖人은 굳이 오래 살려 하지 않는다.
죽는 것을 헌 옷 벗는 것이나 한가지로 生覺하고 있으므로
굳이 때묻은 옷을 오래 입으려고 하지 않는다.
오래오래 살고 싶다는 것은 뭇 衆生들의 어리석은 見解일 따름이다.
道를 通한 사람은 몸뚱아리를 그림자(影)로밖에 보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삶을 간밤에 꿈꾸고 다닌 것이나 같다고 生覺한다고 할까.
간밤에 꿈꾸고 다닌 사람이 꿈을 깨고 나면 꿈속에선 무언가
分明히 있긴 있었으나 헛것이듯 그렇게 삶을 본다.
이와 같은 것이어서 이 肉身을 굳이 오래 가지고 있으려 하지 않는다.
벗으려고 들면 香 한 대 피워 놓고 香 타기 前에 마음대로 갈(죽음) 수도 있다.
一般的으로 衆生에게는 나서 멸함(生住異滅)이 있고
몸뚱이에는 나고 죽음(生老病死)가 있으며
一年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 世界에는 일었다가 없어짐(成住壞空)이 있다.
그러나 앞서 말한 대로 道人에겐 生死가 붙지 않는다.
혹자는 그 道人도 죽는데 어찌 生死가 없 느냐고 反問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겉만을 보고 하는 소리일 따름이다.
옷 벗는 것 보고 죽는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世上 사람들은 이 옷 을 自己 몸으로 안다.
그러나 죽는다고 할 때 道人이나 聖人은 무엇을 自己 몸으로 生覺하는 것일까?
몸 밖의 몸 肉身 밖의 肉體를 支配하는 精神 좀 어렵게 말하면
時空이 끊어진 자리 그것을 自己 몸으로 안다.
時空이 끊어진 자리란 죽으나 사나 恒常 똑같은 자리
이 몸을 벗으나 안 벗으나 똑같은 자리
宇宙가 生기기 前의 時空이 끊어진 자리
生死가 붙지 않는 자리란 뜻이다.
부처란 바로 이 자리를 가르쳐주기 위해 오셨다.
이 世上의 한마당 삶이 꿈 이란 것을 가르쳐주기 위해서 온 것이다.
덥고 춥고 괴로운 온갖 經驗을 꿈속에서 했을 것이다.
꿈을 만든 이 肉身이 一點도 안되는 空間에 누워 10分도 안되는
時間의 꿈속에서 몇百年을 산다.
그러고 보면 宇宙의 主體가 宇宙의 主人이 '나 자신'이라는 事實을 알 것이다.
곧 '내'가 宇宙 를 만드는 것이다. 宇宙 속에서 '내'가 나온 것이 아니다.
世間의 어리 석은 이들은 꿈만 꿈인 줄로 안다. 現實도 꿈인 줄 모르고- - -.
다시 말하거니와 聖人이 道通 했다는 것은
이 現實을 간밤의 꿈으로 보아버린 것을 말한다.
우리는 간밤 꿈만 꿈으로 보고 現實을 現實이라고 보니까
몇百年 富貴榮華를 누리며 살고 싶다며 아등바등 執着하게 되는 것이다.
聖人의 눈엔 現實이 꿈 卽 幻像이므로 現實에 對한 執着이 없다.
그러니까 天堂 地獄을 自己 마음대로 한다.
이 程度로 말해 놓고 나서 우리의 삶이 永遠하다면 永遠하고
刹那로 보면 刹那일 수 있다고 말하면 좀 수긍이 될지 모르겠다.
요컨대 宇宙 創造主 卽 하느님 이라는 것은
宇宙가 생기기 前의 面目을 打破한 것을 하느님 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하느님이란 하늘 어느 한 구석 에 담요를 깔고 앉아 있는
어떤 實在 人物이 아니란 말도 理解가 될 것이다.
자 그럼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삶을 살아가야 할까
내 얘기의 焦點은 여기에 있다.
韓반도에 태어난 젊은이라면 3천만 5천만의 잘못을 나의 잘못으로
卽 나 하나의 잘못이 3千萬 5千萬 名에게 營響이 미친다고 生覺하고
나중에 어른이 되어 어떤 問題에 부딪히더라도 당황하지 않는
準備를 갖추며 살 일이다.
靑年은 그런 自身을 길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