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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부처님/성철스님좋은글과 시 2013. 4. 17. 15:05
당신은 부처님 33
9. 성철 스님의 인불사상
3, 온 세계는 본래 부처로 충만해 있다
<물속에서 물을 찾는다>
사탄이여! 어서 오십시오. 나는 당신을 존경하며 예배합니다.
당신은 본래로 거룩한 부처입니다.
사탄과 부처란 허망한 거짓 이름일 뿐, 본 모습은 추호도 다름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당신을 미워하고 싫어하지만 그것은 당신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부처인 줄 알 때에 착한 생각, 악한 생각, 미운 마음, 고운 마음 모두 사라지고
거룩한 부처의 모습만 뚜렷이 보게 됩니다.
그리하여 악마와 성인을 다 같이 부처로 스승으로 부모로 섬기게 됩니다.
여기에서는 모든 대립과 갈등은 다 없어지고 이 세계는 본래로 가장 안락하고 행복한
세계임을 알게 됩니다.
일체의 불행과 불안은 본래 없으니 오로지 우리의 생각에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나아갈 가장 근본적인 길은 거룩한 부처인 당신의 본 모습을 바로 보는
것입니다. 당신을 부처로 바로 볼 때에 온 세계는 본래 부처로 충만해 있음을
알게 됩니다.
더러운 뻘밭 속에서 아름다운 연꽃이 가득 피어 있으니 참으로 장관입니다.
아! 이 얼마나 거룩한 진리입니까.
이 진리를 두고 어디에서 따로 진리를 구하겠습니까.
이 밖에서 진리를 찾으면 물속에서 물을 찾는 것과 같습니다.
당신을 부처로 바로 볼 때 인생의 모든 문제는 근본적으로 해결됩니다.
선과 악으로 모든 것을 상대할 때 거기에서 지옥이 불타게 됩니다.
선·악의 대립이 사라지고 선·악이 융화 상통할 때에 시방세계에 가득히 피어 있는
연꽃을 바라보게 됩니다.
연꽃마다 부처요, 극락세계 아님이 없으니 이는 사탄의 거룩한 본 모습을 바로 볼
때입니다. 울긋불긋 아름다운 꽃동산에 앉아서 무엇을 그다지도 슬퍼하는가.
벌 나비춤을 추니 함께 같이 노래하며 춤을 추세.
<성철 스님, 1987년 부처님 오신 날 봉축법어>
당신은 부처님 31 /9. 성철 스님의 인불사상 /
1, 천지는 한 뿌리, 만물은 한 몸
성철(性徹, 1912~1993) 스님은 대한민국의 대표선사며 우리 시대의 부처로 추앙받는
국민선사다. 피나는 좌선과 아울러 우리 역사상 가장 다양한 책을 많이 읽은
선지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달마 대사나 조주 스님도 팔만장경이나 조사어록은 읽었다. 그러나 세계문학전집을
읽지는 않았다. 국민선사 성철 스님은 세계문학전집을 읽었다.
임제 스님도 팔만장경과 조사어록은 읽었다. 그러나 영목대졸의 선어록이나
우정백수의 불교전서나 나카무라의 불교론은 읽지 못했다.
그러나 성철 스님은 그것을 다 읽은 선사다.
그뿐만 아니라 성철 스님은 노장학과 공맹학은 물론이며 캐논보고서도 읽었고
심령과학서나 연령소급 최면술에 관한 학술지도 읽었다. 온갖 물리학 서적들과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칼 구스타브 융이나 프로이트의 심리학도 다 읽었다.
또한 소크라테스와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과 칸트, 니체까지 다 읽었다.
그래서 진정한 국민선사가 되었다.
그러므로 이 시대에 불교를 가장 잘 아는 분, 철학과 인생학을 가장 잘 아는 분이라
할 수 있다. 아마도 과거의 그 어떤 사람보다도 더 잘 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성철 스님이 내린 결론이다. 스님은 1986년도 부처님 오신 날 ‘천지는 한 뿌리’
라고 제목을 지은 봉축법어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교도소에서 살아가는 거룩한 부처님들, 오늘은 당신네의 생신이니 축하합니다.
술집에서 웃음 파는 엄숙한 부처님들, 오늘은 당신네의 생신이니 축하합니다.
밤하늘에 반짝이는 수없는 부처님들, 오늘은 당신네의 생신이니 축하합니다.
꽃밭에서 활짝 웃는 아름다운 부처님들, 오늘은 당신네의 생신이니 축하합니다.
구름이 되어 둥둥 떠 있는 변화무상한 부처님들, 오늘은 당신네의 생신이니 축하합니다.
물속에서 헤엄치는 귀여운 부처님들, 허공을 훨훨 나는 활발한 부처님들,
교회에서 찬송하는 경건한 부처님들, 법당에서 염불하는 청수한 부처님들,
오늘은 당신네의 생신이니 축하합니다.
넓고 넓은 들판에서 흙을 파는 부처님들, 우렁찬 공장에서 땀 흘리는 부처님들,
자욱한 먼지 속을 오고 가는 부처님들,오늘은 당신네의 생신이니 축하합니다.
눈을 떠도 부처님! 눈을 감아도 부처님!
광활한 이 우주에 부처님을 피하려 하여도 피할 곳이 없으니
상하 사방을 두루두루 절하며 당신네의 생신을 축하합니다.
천지는 한 뿌리요, 만물은 한 몸이라. 일체가 부처님이요, 부처님이 일체이니
모두가 평등하며 낱낱이 장엄합니다.
이러한 부처님의 세계는 모든 고뇌를 초월하여 지극한 행복을 누리며 곳곳이
불가사의한 해탈도량이니 신기하고도 신기합니다.
입은 옷은 각각 달라 천차만별이지만 변함없는 부처님의 모습은 한결같습니다.
자비의 미소를 항상 머금고 천둥보다 더 큰 소리로 끊임없이 설법하시며
우주에 꽉 차 계시는 모든 부처님들, 나날이 좋을시고, 당신네의 생신이시니
영원에서 영원이 다하도록 서로 존중하며 서로 축하합시다."
당신은 부처님 20 /6. 마조 스님의 인불사상 /
1,무엇 때문에 밖을 향해서 구하는가
마조(馬祖, 709∼788) 스님은 불교 역사에서 깨달음을 성취한 제자들을 가장 많이
배출한 분이다. 대주(大珠) 화상이라는 스님이 마조 스님을 찾아가서 인사를 드리니
마조 스님이 물었다.
“그대는 어디에서 오는가?”
“예, 월주 대운사라는 곳에서 왔습니다.”
“여기에 와서 무엇을 하고자 하는가?”
“여기에 와서 불법을 구하고자 합니다.”
“자기 자신의 보물창고는 돌아보지도 않고 집을 버리고 쓸데없이 와서
무엇을 하자는 것인가?”
“이곳에는 아무 것도 없는데 무슨 불법을 구하자는 것인가?”
대주 스님이 드디어 예배를 올리고 물었다.
“무엇이 저의 집의 보물창고입니까?”
“지금 나에게 질문을 하는 그것이 곧 그대의 보물창고이다. 거기에는 모든 것이 다
갖추어져 있어서 아무 것도 부족한 것이 없다. 그래서 쓰고 싶으면 마음대로 쓸 수
있는데 무엇 때문에 밖을 향해서 구하는가?”
대주 화상이 그 말을 듣자마자 곧바로 본래의 마음을 스스로 알았다.
이 이야기는 선가(禪家)에서 대단히 많이 애송된다. 불교가 이 얼마나 간단명료한가?
이 얼마나 쉬운가? 그렇다. 불법은 이렇게 쉽고 간단명료하다.
복잡하고 어려우면 그것은 십중팔구 가짜 불교다.
“지금 나에게 질문하는 그것이 그대가 찾는 불법이며, 그대의 보물창고라네.
그것밖에 달리 없네.”
그렇다. 궁금하면 물을 줄 아는 그것이 곧 진짜 불법이다. 누가 부르면 대답할 줄 알고,
상대방이 말하면 들을 줄 알고, 추우면 추운 줄 알고, 더우면 더운 줄 알고, 웃을 줄도
알고, 울 줄도 아는 그것이 곧 불법이며 보물창고다.
참으로 신기하고 미묘 불가사의하지 않은가? 그 곳에 모든 것이 다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것을 세상에서 가장 고급 용어를 빌어 ‘부처님’ 또는 ‘하나님’이라고 한다.
당신은 부처님 15 /4. 달마 스님의 인불사상 /
1 청정한 지혜는 미묘하고 원만하다
불교사에서 달마(達磨, ?~528) 스님보다 더 유명한 분이 있을까?
그는 인도의 향지국왕의 셋째 왕자였다. 양나라 보통 8년 정미(서기 527년)년 9월
21일에 중국에 건너와서 중국 선불교의 초조(初祖)가 되어 불교를 완성의 단계로
이끌어 올린 분이다.
그가 광주에 오자 광주 자사 소앙(蕭昻)이 주인의 예를 갖추어서 영접하고 나서
표를 올려 무제에게 알렸다. 무제가 그 보고를 받고 사신을 보내어 조서를 가지고
달마 대사를 맞이하여 10월 1일에 지금의 남경인 금릉에 도착하였다.
양무제가 물었다.
“짐이 왕위에 오른 이후로 절을 짓고 경전을 쓰고 스님들을 양성한 일을 가히 다
기록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데 어떤 공덕이 있습니까?”
달마 대사가 말하였다.
“아무런 공덕이 없습니다.”
“어찌하여 공덕이 없습니까?”
“이러한 것은 다만 인간으로나 천상에 태어날 수 있는 작은 과보이며 모두가
빠져나가 버리는[漏] 원인일 뿐입니다. 마치 그림자가 형체를 따르는 것과 같아서
비록 잠깐 있으나 실다운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참다운 공덕입니까?”
“청정한 지혜는 미묘하고 원만하여 그 자체가 스스로 공적하니 이와 같은 공덕은
세상의 일로는 구할 수 없습니다.”
양무제가 또 물었다.
“어떤 것이 성스러운 진리로서 제일가는 도리입니까?”
달마 대사가 말하였다.
“넓고 텅 비어 성스러움이란 없습니다.”
“짐을 마주하고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모릅니다.”
양무제가 그 뜻을 알지 못하였다. 달마 대사가 갈대 잎 하나로 장강을 건너 위나라에
이르러 숭산 소림사에 머무시면서 얼굴은 벽을 향해 앉아서 종일토록 침묵하였다.
사람들이 그를 알지 못하고 ‘벽만 보고 있는 바라문’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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