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스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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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영남루 법흥상원놀이 공연여행스케치 2020. 12. 25. 13:12
밀양 법흥상원놀이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16호. 상원행사의 역사는 유구하여 고대로 소급된다. 농경민족인 우리 나라 세시풍속은 1년 중 가장 많은 달이 음력 정월이고, 가장 많은 날이 대보름이다. 상원은 정월행사를 마무리하고 이후로는 새해 농사 준비에 들어가는 마무리라 할 수 있다. 법흥리에는 밀성 송씨가 입주한 지가 약 350년이라는 세보(世譜)가 있거니와 마을의 당산에 관한 전설이 있다. 수령이 500년 가량 되는 당산나무에서 곡성이 들려오고 마을에서는 재액(災厄)이 자주 일어나고 있었다. 이곳을 지나던 도승(道僧)의 지시대로 당목에 짝을 지어주고 당사(堂祠)를 만들어 법고(法鼓)를 안치하고 대보름날 동제를 모시자 태평해졌다는 것이다. 놀이의 내용은 앞마당인 용왕제에 이어 지신밟기와 신랑 다루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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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영남루 밀양 백중놀이 공연여행스케치 2020. 12. 25. 12:58
밀양백중놀이 중요무형문화재 제68호. 머슴들이 7월 보름경 진(辰)에 해당하는 날(용날)을 택하여 지주(地主)들이 마련해준 술과 음식으로 하루를 즐겁게 노는 데서 연유한 두레굿이다. 이러한 놀이는 두레먹기·호미씻기[洗鋤遊 : 세서연]·호미걸이라는 명칭으로 중부이남지방의 농촌에서 흔히 볼 수가 있다. 밀양에서는 이날을 흔히 ‘머슴 날’이라고 하며, 이날의 놀이를 ‘꼼배기참 놀이’라 부르기도 한다. ‘꼼배기참’이란 밀양 지방의 사투리로 밀을 통째로 갈아 팥을 박아 찐 떡과 밀에다 콩을 섞어 볶은 것, 그 밖에 술과 안주를 준비하여 머슴들에게 점심·저녁으로 주는 음식을 말한다. 이 ‘꼼배기참’은 자주 얻어먹을 수 없는 귀한 음식으로 머슴 날에는 반드시 이 음식이 나오게 되어 있으므로 ‘꼼배기참’을 먹으면서 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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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영남루 밀양 아리랑 공연여행스케치 2020. 12. 25. 12:24
밀양아리랑 정의 경상도 지역의 대표적인 아리랑. 개관 우리나라 3대 아리랑으로 널리 알려진 아리랑으로, 경상도를 대표하는 가창유희요이다. 세마치장단의 씩씩하고 경쾌한 리듬을 가진 환조(歡調)의 가락으로 통속적인 색채가 강하여 현재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통속 아리랑이다. 내용 은 경상도 지역의 대표적인 통속민요로서 가창유희요로 널리 알려져 있다. 밀양 지역민들은 지역 전설인 과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인식하는데 이는 ‘아랑’이 ‘아리랑’과 언어적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과, 사설 속에 과 관련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는 측면이 강조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음계는 라·도·레·미·솔로 구성되는 5음계 선율을 가지고 ‘라’로 시작해서 ‘라’로 끝나는 경기 민요와 매우 유사한 선율 형태를 가지고 있기에 최근 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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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영남루 밀양 농악 공연여행스케치 2020. 12. 25. 12:16
농악 농촌에서 농부들이 두레를 짜서 일을 할 때 연행하는 음악. 개설 넓은 의미로는 꽹과리·징·장구·북과 같은 타악기를 치며, 행진·의식·노동·판놀음 등을 벌이는 음악을 두루 가리키는 말이다. 굿·매구·풍장·금고(金鼓)·취군 등으로도 불린다. 굿은 흔히 무당이 노래와 춤을 벌이며 소망을 신에게 비는 의식을 가리키지만, 농악을 가리키기도 한다. 농악 치는 것을 ‘굿한다’고 하며, 또 당산굿·샘굿·성주굿과 같이 굿패들이 농악을 치며 벌이는 민간신앙의식을 가리키고, 길굿·삼채굿과 같이 농악가락을 가리키며, 오방진굿·도둑재비굿과 같이 농악대들이 판놀음으로 벌이는 판굿의 놀음을 가리키기도 한다. 풍장은 두레풍장·장풍장·배치기풍장과 같이 풍악으로 벌이는 고장(북장단)이라는 뜻이다. 금고는 징·꽹과리와 같은 쇠붙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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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영남루여행스케치 2020. 12. 25. 12:12
밀양 영남루 정의 경상남도 밀양시에 있는 조선시대 밀양도호부 객사의 누정. 누각·조경건축물. 보물. 내용 보물 제147호. 정면 5칸, 측면 4칸의 익공식(翼工式) 겹처마 팔작지붕건물. 조선시대 밀양도호부의 객사 부속건물로, 손님을 접대하거나 주변 경치를 보면서 휴식을 취하던 건물이다. 처음 지어진 것은 고려시대로, 그뒤 여러 차례의 소실과 재건을 거듭하였다. 원래 그 자리에는 신라시대에 세워진 영남사(嶺南寺)라는 절이 있고 절의 종각으로 금벽루(金壁樓)라는 작은 누각이 있었는데, 고려시대에 절은 없어지고 누각만 남아 있었던 것을 1365년(공민왕 14) 누각을 새로 짓고 절의 이름을 따서 영남루라 하였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1460년(세조 6)에 중수하면서 규모를 크게 넓혔으며, 선조 때 소실되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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