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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리산 법계사
    사찰 풍경 2019. 2. 3. 22:33

    지리산 천왕봉 아래에 자리한 천년고찰 지리산 법계사 입니다.

    지리산 천왕봉 아래 하늘과 인접한 곳에 자리한 지리산 법계사

    멀리 남해 바다를 굽어보며

    지리산 최고봉 천왕봉 아래 양지 바른 곳에 자리한

    연기조사가 창건한 천년고찰 지리산 법계사 입니다.


    지리산 법계사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절로 신라 진흥왕 5년(544) 연기조사가 창건하였다. 고려 우왕 6년(1380) 이성계에게 패한 왜군에 의해 불탔고, 1405년 선사 정심()이 중창했다. 1908년 일본군에 의해 불탔고,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또다시 불탄 채 방치되었다가 1981년 법당과 산신각, 칠성각 등이 재건되면서 겨우 절다운 모습을 갖추었다.

    경내 산신각 앞에 보물 제473호로 지정된 고려 초기의 삼층석탑이 있어 눈길을 끈다. 높이 3.6m의 커다란 바위 위에 높이 2.5m 되는 삼층석탑이 올라선 것인데, 독특하게도 상하층기단을 모두 생략한 채 자연암석을 기단으로 삼고 있다. 자연암석 덕에 탑 자체는 높지 않으나 전체적으로 매우 높아 보인다. 각 몸돌에는 우주를 모각한 것 외에 별 장식이 없다. 중후한 지붕돌은 아랫면에 3단의 받침을 모각하고 윗면에는 옥신을 받치기 위한 굄이 1단 모각되었으며 낙수면은 경사가 심하다. 상륜부에는 포탄 모양의 석재가 얹혀 있는데, 이는 뒤에 보수하면서 얹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법계사 삼층석탑

    지리산 천왕봉 동쪽 중턱에 자리잡은 법계사는 신라 진흥왕 5년(544)에 연기조사가 세운 절이라 전한다. 해발 1400m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사찰이다. 한국전쟁 당시의 화재로 토굴만으로 명맥을 이어오다가 최근에 법당을 지으면서 사찰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법당 왼쪽에 위치한 이 탑은 바위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모습이다. 탑신부의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만들었으며, 몸돌 각 모서리에는 기둥을 넓게 새겼다. 각 층의 지붕돌은 두터운 편이며, 지붕돌 밑면의 받침은 3단이다. 탑의 머리장식 부분에는 포탄 모양의 돌이 얹혀있는데, 나중에 보충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처럼 바위를 기단()으로 이용한 탑은 신라 이후로 유행하였는데, 이 탑처럼 아래 기단부를 간략하게 처리한 경우는 드물다. 양식이 간략화되고 투박한 느낌을 주고 있어서 전형적인 신라석탑 양식에서 벗어난 고려시대의 석탑으로 추정된다.




    지리산 산신을 모신 지리산 법계사 여 산신상입니다.


    지리산 성모 이야기

    정의

    지리산의 여성 산신에 대한 신화.

    역사

    지리산은 고대로부터 산신 신앙의 중심지로서 자리 잡아 왔다. 신라 때에는 산신에게 제사지내던 삼산오악() 중 하나였고, 노고단()이란 지명 역시 지리산 산신에 대한 성대한 제사의식이 지속적으로 거행되었다는 것을 알려 준다. 현재도 지리산 성모는 ‘산신 할머니’, ‘천왕 할매’ 등으로 불리며 마을이나 개인의 대소사가 있을 때에 치성의 대상이 되고 있다.

    줄거리

    지리산 천왕봉에는 마고라고 하는 성모천왕이 살고 있었다. 하루는 성모천왕이 산을 내려다보는데 ‘법우’라는 도행()이 높은 화상이 도를 닦고 있었다. 성모천왕은 ‘내가 저 사람과 부부의 연을 맺어 하늘의 뜻을 펼치리라.’ 하고 마음을 먹고 산꼭대기에서 소변을 보았다. 법우화상이 홀연히 보니 산골짜기에 비가 내리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물이 불어 큰 시냇물이 흘러 내려오는 것이었다. ‘어디서 이렇게 큰 물줄기가 생겼을까?’ 궁금해 하며 천왕봉 꼭대기로 올라간 법우화상은 키가 크고 힘이 센 여인을 발견하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성모천왕은 “내가 인간 세계에 귀양을 내려와 있었는데, 그대와 인연을 맺고자 물의 술법을 이용하였다.”라고 하였다. 둘은 드디어 부부가 되어 딸 여덟을 낳았고, 이들에게 무업()을 가르쳐서 조선 팔도에 보냈다. 지금 팔도의 무당들은 이들의 후손이다.

    분석

    지리산성모는 ‘성모천왕’, ‘마고’, ‘마야고’ 등으로 불리며, 그 다양한 명칭만큼 시대에 따라 많은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이승휴의 『제왕운기()』에는 신모가 고려 태조의 어머니 위숙왕후라고 했다. 이는 김종직의 『두류산록(錄)』에도 언급되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오랜 기간 동안 널리 구연되었던 신화였음을 알 수 있다. 『두류산록』에는 이 외에도 신모가 석가의 어머니인 마야부인이라는 이야기를 승려들에게 들었다고 하는데, ‘마고’, ‘마야고’라고 불리는 신모의 명칭에 기인한 전승이라 보인다. 현재 보편적으로 전승되는 <지리산성모 이야기>는 이능화의 『조선무속고()』에 기재된 신모와 법우화상 사이에서 태어난 딸들이 팔도 무당의 시조가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이는 지리산에 있는 백무동()이라는 지명이 상징하듯 무당이 많이 거주하기도 하였고, 타지의 무당들도 지리산을 ‘큰 산’으로 섬기며 치성과 참배를 하는 대상이 되면서 유포된 이야기인 듯하다.

    의의

    지리산성모는 고대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산신으로 숭앙되며 다양한 유형의 전승을 형성해 왔다. 이러한 전승들 속에서 지리산성모는 ‘마고’라는 거인 창조신의 면모를 보이고 있으며, 고려 태조 왕건의 어머니라며 고려 건국신화에 차용되었던 흔적도 발견된다. 또한 법우화상과 혼인하여 팔도 무당이 되게 하였다는 전승은 무속과 불교가 융합된 민간신앙의 층위를 보여 주는 한편, 지금껏 현지인들에 의해 전승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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