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정혜사지 십삼층 석탑
    사찰 풍경 2017. 11. 7. 00:12

    경주시 안강읍에 있는 국보 제 40호 독특한 형태의 정혜사지 13층 석탑 모습입니다.


    정혜사지 13층 석탑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정혜사지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탑.

    개설

    안강읍에서 서북쪽으로 약 10㎞ 되는 옥산서원()을 지나 옥산리의 독락당()에서 북쪽 700m쯤 되는 곳에 우뚝 서 있다. 정혜사지 일대의 경작지에는 기왓장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데 과거 정혜사의 중심을 이루었던 사역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13층석탑은 각 부의 양식과 조성수법에서 오직 하나 밖에 없는 특이한 유례를 보이고 있어 크게 주목된다. 1962년에 국보 제40호로 지정되었다.

    역사적 변천

    이 석탑은 1922년경 일본인들에 의하여 수리된 것이라 하는데 보수공사의 내용은 알려지지 않고, 다만 탑신부 위층의 3층이 떨어져 있던 것을 제자리에 올려놓았으며 기단을 시멘트로 굳혀 놓았다는 것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 기단부를 시멘트로 고착시킨 것도 그 뒤 파손되어서 큼직한 잡석으로 기단을 구축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내용

    높이 5.9m인 이 석탑은 전체 부재를 화강암으로 조성하였다. 기단은 단층 토축()으로서 예스런 모습을 보이고 있으나 이것이 과연 어느 정도로 원상을 갖추고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토대()의 상면 중앙에는 1단의 석축이 마련되고 그 위에 4매석으로 구성된 높직한 2단의 방형 굄이 설치되었으며 그 위에 13층의 탑신을 받고 있는데, 이 2단의 굄돌은 곧 기단부 갑석 상면의 굄대 수법으로서 현재는 지대석과도 같은 구실을 하고 있다.

    즉, 이 받침석은 4매의 판석()을 네 귀에 1매씩 놓아 결구하였으므로 신라석탑의 기단부 갑석의 조성수법과 동일한데, 높고 낮은 2단의 각형받침을 조출()한 것은 상층기단 갑석 위에 놓아 그 위에 탑신부를 받는 받침대로 마련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현재는 이 석탑에 기단부가 없으니 이 2단의 받침석이 지대석 또는 탑신굄석의 구실을 하고 있다.

    탑신은 13층의 탑신석()과 옥개석()으로 건립되었는데, 특히 초층의 탑신과 옥개가 큰 규모로 조성되고 그 위의 2층부터는 아주 작아져서 2층 이상이 부가물() 같은 감을 주고 있음이 특징적이다.

    초층탑신은 네 귀에 큼직한 방형의 석주를 우주(: 모서리기둥)로 세우고 그 안에 양측으로 우주에 붙여서 역시 1석씩으로 된 작은 방주()를 세웠으며 그 위에 인방(), 아래에 하방()을 걸쳤는데, 그 사이의 공간은 내부가 막혀 있고 이러한 시설은 4면에 모두 같은 방법으로 설치되어 있다.

    초층옥개석은 옥석()과 그 하면의 받침 부재가 별석()으로 구성되었는데 옥석은 8석, 받침부는 4매의 층급()받침으로 결구되었다. 받침은 3단이며 통식()인 각형으로 규모가 큰 옥개석을 따라서 자연히 큼직하게 마련되었으며, 옥개석 하면에는 낙수홈[]이 없다.

    처마는 신라석탑의 특징을 따라 직선을 이루었으며 네 귀의 전각()에 경쾌한 반전이 있고, 낙수면()은 평박하며 4 우동(: 옥개석의 귀마루)에는 합각머리[: 합각 박공이 용마루에서 서로 맞닿는 부분]가 예리하게 표현되었다.

    초층옥개석 위에는 1매의 판석으로 된 1단의 굄돌을 놓아 그 위로 2층 이상의 탑신을 받고 있는데, 이 굄 판석은 곧 거대한 초층부와 구별하려는 의도인 것 같으며, 이것으로써 상부와 하부의 연결이 더욱 짜임새가 있는 것으로 느껴진다.

    2층 이상의 탑신은 각 탑신과 옥개석이 급격히 위축되어서 마치 초층부에 부가된 상륜부()같이 보인다. 이들은 각층의 탑신·옥개가 1석으로 조성되었는바, 각 탑신은 더욱 낮고 작아 옥개석 정면()에 마련한 탑신받침과 구별하기 힘들 정도이다.

    각 층 옥개석 하면의 받침은 3단씩으로 초층의 받침수와 같고 옥개석 각 부의 양식도 동일하여 하면에는 낙수홈이 없고, 처마는 직선으로서 평박한 낙수면과 네 귀 전각의 반전 등과도 잘 조화되어 전체적으로 경쾌한 형태를 보이고 있다.

    상륜부는 현재 노반[: 탑의 최상부 옥개석 위에 놓아 복발·앙화·상륜 등을 받치는 장식] 1석이 남아 있을 뿐인데 그 모양은 일반적인 형식이다.

    특징

    이 석탑은 탑신의 층위()에 있어 보기 드문 13층을 이루었을 뿐만 아니라, 초층에 비하여 2층 이상의 탑신부가 일반적인 체감의 비례를 무시하고 줄어든 점 등이 특이하다. 그리고 초층탑신 4면에 감형()을 개설한 것과 아울러 기단부의 축조에 있어서도 일반적인 양식에서 벗어난 특수한 구조를 보이고 있다.

    이 석탑의 각 부 양식과 조성수법을 검토하여 그 건조연대를 추정해보면, 우선 초층부는 목조탑파()를 모방한 듯한 예스런 세부()를 지니고 있는 점도 엿보이나, 각 옥개석 하면의 층급받침이 3단으로 약화()된 것은 역시 시대가 뒤로 내려옴을 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의의와 평가

    현재 옛 절터의 원위치에 원형을 잘 간직한 채 보존되어 있는 이 석탑은 13층이라는 층수와 더불어 기단부와 초층탑신의 양식, 탑신과 옥개석이 한 개의 돌로 조성되는 등 통일신라의 독특한 양식을 보이는 특수형 석탑이다.



     

    어떤 사람이 게으르다가도 스스로 마음을 거두어 잡으면

    구름 걷혀 나타나는 달과 같이 세간을 밝게 비추리라.

    (잡아함경)

     

    겸허하게 지내고 스스로를 낮추며 만족을 알고

    은헤를 생각하며 때때로 법을 듣는 것

    이것이 최상의 좋은 일이다.

    (숫타니파타)


     

     

    깨어 있음!
    "순간의 깨어 있음은 우리에게 아무 결과도 가져다주지 못한다.


    다만 지금 여기에서의 깨어 있음만을 줄 뿐!


    그것이면 충분하지 않은가."



    지금 이 순간에 깨어서 다만 존재해 보라.


    지금 여기에서 깨어 있으라.


    그러나 지금 여기에서 깨어 있으면 또 다른 무언가를 발견하리라고 여기지는 마라.


    깨어 있음이라는 수행을 통해 진리를 발견하리라는 망상을 피우지는 마라.


    지금 여기에서 깨어 있음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가져다주지 않는다.


    다만 지금 여기에 존재함을 가져다줄 뿐!


    그것이면 충분하지 않은가?


    그것이 바로 우리가 그토록 찾던 진리요, 근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바로 지금 이 순간 내 앞에 이렇게 평범하게 다 드러나 있는 지금 이것 외에 또 다른 진리는 없다.


    지금 이대로, 지금 여기, 지금 이것, 지금 이 자리, 바로 이것이 진리의 전부다.


    그렇기에 지금 여기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는 없고, 수행할 필요도 없다.


    언제나 우리는 도착해 있기 때문이다.


    그저 이렇게 깨어 있으면 될 뿐.

     법상스님의 신간 <365일 눈부신 하루를 시작하는 한마디>중에서 - 조계종출판사

     

    은혜를 알면 큰 자비의 뿌리를 내고 선업의 첫문을 열며

    사람의 사랑과 공경을 받고 그 명성이 멀리 퍼지며

    죽어서 천상에 나고 마침내 불도를 이룰 것이다.

    그러나 은혜를 모르는 자는 축생보다 못하니라.

    (법원주림)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 _ 몸은 병들어도 마음은 병들어서는 안 된다

    | 상윳따 니까야: 22 칸다 상윳따 1 |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은 박가 사람들이 사는 곳인 숭수마라기라의 베사깔라 숲의 사슴동산에 계셨다.

    그때 나꿀라삐따 장자가 부처님께 와서 인사를 드리고 이렇게 말씀드렸다.

    “부처님, 저는 노령이고 생의 마지막 단계에 이른 늙은이입니다.

    육신의 병은 항상 저를 괴롭힙니다. 그래서 내 마음을 풍요롭게 해주시는 부처님이나 비구들을 거의 친견할 수도 없습니다.

    부처님, 제가 오랫동안 이익과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저에게 활기와 안락함을 주십시오.”

    이에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장자여, 정말 그렇습니다. 그대의 육신은 쇠약하고 그대에게 고통을 주고 있습니다.

    이런 육신을 끌고 다니는 사람이 잠깐 동안의 건강을 건강하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러므로 장자여, 그대는 ‘나의 몸이 병들어도 나의 마음은 병들지 않으리라.’고 이와 같이 자신을 단련하여야 합니다.”

    나꿀라삐따 장자는 기쁘게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나서 사리뿟따 존자에게 갔다. 사리뿟따 존자는 말하였다.

    “장자여, 그대의 감관은 고요합니다. 그대의 안색은 깨끗하고 밝습니다. 오늘 부처님 앞에서 가르침을 들었습니까?”

    “그렇구말구요, 존자님, 바로 방금 부처님의 감로와 같은 훌륭하신 가르침으로 축성되었습니다.”

    “어떤 훌륭한 말씀으로 부처님은 축성하셨습니까?”

    이에 장자는 부처님과의 대화내용을 말하니 사리뿟따 존자는 이렇게 말하였다.

    “장자여, 무엇이 몸과 마음이 병드는 것이고, 무엇이 몸은 병들어도 마음은 병들지 않는 것인지 부처님께 여쭈어 보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사리뿟따 존자로부터 그 뜻을 들으려고 이렇게 멀리서 왔습니다.

    존자님이 그 뜻을 선명하게 해 주신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장자여, 무엇이 몸도 병들고 마음도 병드는 것입니까?

    가르침을 모르는 범부들은 ‘물질은 나의 것이다.’ 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물질이 항상하지 않고 변하는 본성 때문에 물질이 변하고 바꾸어지면, 그때 슬픔과, 괴로움, 한탄, 절망이 일어납니다.

    이것이 몸도 마음도 병드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몸은 병들어도 마음은 병들지 않는 것입니까?

    가르침을 잘 배운 훌륭한 제자들은 ‘물질은 나의 것이다.’ 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그는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물질이 항상하지 않고 변하는 본성 때문에 물질이 변하고 바뀌어져도 슬픔과, 괴로움, 한탄, 절망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것이 몸은 병들어도 마음은 병들지 않는 것입니다.”

    일아 스님의 <한 권으로 읽는 빠알리 경전> 중에서


     

     

    자신의 죄와 업장이 산과 바다처럼 많다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만 하고

    이 죄와 업장을 몸과 마음을 다해 참회하여 없애야 할 것임을 잘 알아야 하느니라.

    (계초심학인문)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흙탕물에 더렵혀지지 않는 연꽃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숫타니파타)

     

    삼천대천세계에 가득찬 칠보로 보시한 공덕보다

    금강경 사구게 만이라도 남을 위해 설해준 공덕이 더 수승하다

    (금강경)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받드는 이가 있으면

    설사 커다란 불속에 떨어졌다 할지라도

     불이 그사람을 태우지 못한다.

    (법화경)


     

    부처님이 설한 법을 마음으로 환히 깨닫고

    마음을 관찰하여 스스로 귀의하면

    그 깨끗함은 물보다 맑으리라.

    (법집요송경)

     

    공성이 불성이다!
    부처님(Buddha)은 깨달은 사람을 의미한다.


    부처님께서 깨달은 것은 일체법이 연기한다는 사실, 즉 일체법은 연기하기 때문에 자성(自性)이 없는 공성이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공성은 부처님의 본성, 즉 불성(佛性)이다.


    이러한 인식에서 대승불교에서는 “모든 중생은 불성을 가지고 있다(一切衆生 悉有佛性)”고 주장했다.


    오취온(五取蘊)은 중생들이 자아로 취하고 있는 것들이다.


    여래도 중생과 같이 오온의 모습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여래는 모습에 대한 관념에 머물지 않기 때문에 오취온을 자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중생들이 자아로 생각하고 있는 오취온도 공성이고, 여래가 자아로 생각하지 않는 오취온도 공성이다.


    따라서 여래의 자성과 중생의 자성은 다 같이 자성이 없는[無自性] 공성이다.


    그러므로 모든 중생은 부처님과 동일한 본성, 즉 불성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중표 교수의 신간 <니까야로 읽는 반야심경>중에서 - 도서출판 불광

     

    불자여 작은 선이라도 복이 되지 않는다고 업신여기지 마라.

    물방울이 큰 그릇을 채우는 법이다.

    (자비도량참법)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 _ 여덟가지 바른길(八正道 : 가장 중요한 불교윤리의 가르침)

    | 상윳따 니까야: 45 막가 상윳따 8 | 
     
    ○ 여덟가지 바른길(八正道 : 가장 중요한 불교윤리의 가르침)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은 사왓티의 기원정사에 계셨다.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이와 같이 가르치셨다.

    “그대들에게 ‘여덟가지 거룩한 길’에 대하여 그것을 분석해 보이겠다.

    무엇이 여덟가지의 거룩한 길인가?

    그것은 바른 견해, 바른 생각, 바른 말, 바른 행동, 바른 생활수단, 바른 정진, 바른 마음챙김, 바른 집중이다.

    ① 무엇이 바른 견해인가? 괴로움에 대하여 알고, 괴로움의 근원을 알고, 괴로움의 소멸을 알고,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하여 아는 것이다.

    ② 무엇이 바른 생각인가? 악을 행하지 않으려는 생각, 남을 해치지 않으려는 생각을 말한다.

    ③ 무엇이 바른 말인가? 거짓말하지 않고, 이간질하지 않고, 악담하지 않고, 잡담[쓸데없는 말]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④ 무엇이 바른 행동인가?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지 않고, 주지 않는 것을 갖지 않고, 삿된 음행을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⑤ 무엇이 바른 생활수단인가? 잘못된 방법으로 생계를 유지하지 않고, 바른 방법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

    ⑥ 무엇이 바른 정진인가? 악한 생각이 장차 일어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여 분투노력하며, 악한 생각을 버리도록 최선을 다하여 분투노력하며, 선한 생각을 일으키도록 최선을 다하여 분투노력하며, 선한 생각을 더욱 성장하도록 최선을 다하여 분투노력하는 것이다.

    ⑦ 무엇이 바른 마음챙김인가? 열성적으로 분명하게 알아차리고, 세상에 대한 탐욕과 낙담을 버리고, [무상하고, 불완전하고, 고정된 실체가 없으며, 더러운 것으로 가득 찬] 몸을 몸으로 있는 그대로 관찰하며, 느낌을 느낌으로 있는 그대로 관찰하며, 마음을 마음으로 있는 그대로 관찰하며, 담마를 담마로 있는 그대로 관찰하며 머문다.

    ⑧ 무엇이 바른 집중인가? 감각적 쾌락과 바람직하지 못한 모든 것에서 벗어나, 사유와 숙고가 있으며 홀로 명상함에서 오는 환희와 기쁨이 있는 첫 번째 선정에 머문다. 사유와 숙고를 멈추고 안으로의 평온함과 마음의 집중됨이 있으며, 사유와 숙고가 없이 삼매에서 오는 환희와 기쁨이 있는 두 번째 선정에 머문다. 환희가 사라진 후 평정한 마음과 분명한 알아차림과 육신의 행복을 느끼며 머문다. 거룩한 이들이 말하는 ‘평정과 마음챙김에 머무는 사람은 행복하게 머문다.’고 하는 세 번째 선정에 머문다. 고통도 쾌락도 버리고 전에 있던 행복도 불행도 버리고, 괴로움도 즐거움도 없고 평정에 의하여 도달한 마음챙김의 순수함이 있는 네 번째 선정에 머문다.

    일아 스님의 <한 권으로 읽는 빠알리 경전> 중에서














    '사찰 풍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불국사  (0) 2017.11.21
    불국사 풍경  (0) 2017.11.21
    창녕 관룡산 관룡사  (0) 2017.11.01
    창녕 관룡사 용선대  (0) 2017.10.31
    칠갑산 장곡사  (0) 2017.10.30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