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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삼릉가는 길에 거치게 되는 신라 7대 왕 일성왕릉 입니다.
경상북도 경주시 탑동에 있는 신라 제7대 일성왕(일성이사금, 재위 134∼154)의 능.
개설
1969년 8월 27일에 사적 제173호로 지정되었다. 지정면적은 3만 4,618㎡이다. 무덤의 지름은 15m, 높이는 5.3m이다. 일성왕의 성은 박씨이며, 신라 제3대 유리왕(유리이사금)의 맏아들이다. 일지갈문왕(日知葛文王)의 아들이라는 설도 있다. 왕비는 지소례왕(支所禮王)의 딸 박씨이다.
일성왕은 134년에 즉위하여 154년에 승하하였으며 20년간 재위하면서 농토를 늘리고 제방을 수리하여 농업을 권장하고 민간에서 금·은·옥의 사용을 막아 검소한 생활을 장려하였다.
내용
왕릉은 경주 남산 서쪽의 약간 경사진 지형을 이용하여 마련하였고 외부모습은 흙으로 덮은 원형봉토분(圓形封土墳)이다. 밑둘레에는 자연석을 일단 돌려 무덤의 보호석 및 봉토의 흙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하였으나 다른 특징은 없다. 정식 발굴조사가 이뤄지지 않아 무덤의 내부구조는 알려지지 않았다.
한편 왕릉 앞의 표석은 1871년(고종 8)에 세웠으며, 상석(床石)은 “신라기원이천십년계사동월일손참봉익현근존(新羅紀元二千十年癸巳冬月日孫參奉益鉉謹尊)”이라는 내용으로 보아 1953년에 설치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또한 무덤 앞의 2단 축대는 경내를 보호하기 위하여 최근에 마련된 것이다.
의의와 평가
일성왕릉의 위치는『삼국사기』등에서 확인되지 않으며, 지금의 왕릉은 1370(영조 6)에 박씨 일족이 비정한 것이라 한다. 이 왕릉은 경애왕의 장지(葬地)인 해목령(蟹目嶺)과 가깝다는 점에서 경애왕릉으로 비정되기도 하고,『삼국유사』왕력(王曆)의 내용을 근거로 하여 효공왕릉으로 보는 견해도 제기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