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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포늪가의 작은 연못 풍경입니다.
물위에 떠있는 물풀이 아름다운 풍경
작은 배가 떠있는 작은 연못
운치있는 풍경입니다.
물위에 피어 있는 물풀잎이 싱그럽고 아름답다.
명 상 (11) / 법정스님
여러가지 얽힌 일들로 인해
죽끓듯이 팔딱이는 그 생각의 흐름을
면밀히 주시하는 것이 명상이다
그것을 지켜보는 동안은
이러쿵 저러쿵 판단하지 않는다
흘러가는 강물을 강둑 위에서
묵묵히 바라보듯이 지켜볼 뿐이다
명상은 소리없는 음악과 같다
관찰자가 사라진 커다란 침묵이다
연속성이 없어 지난 세월이 끼어들 수 없다.
제7 석가모니 부처님의 게송
第七 釋迦牟尼佛法本法無法
無法法亦法
今付無法時
法法何曾法
법이란 본래 법이 없는 법법 없는 법 또한 법이니
없는 그 법을 전하는 때에
법법이 언제 법인 적이 있던가
【강의】 일곱 번째는 우리가 받드는 석가모니불의 법문입니다.선법, 악법, 불법, 아수라법, 유교법 등 삼라만상 일체 형상 있는 것뿐만 아니라 있고 없고, 옳고 그르고 하는 모든 것이 다 법에 들어갑니다.
법이라 할 때 그 법은 무엇을 근거로 건립한 것인지 근본을 찾아보면 역시 없는 것입니다. 법 없는 것으로 법을 삼아 놓았다는 말이지요.
나라에 헌법이 있듯이 불교인에게는 250계법, 48보살계법 등이 있는데, 이런 법은 본래 자체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없는 데서 근본이 되어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다 사람이 만들어낸 것이므로 허환한 데서 생긴 것이지요. 선이니, 악이니 하는 것도 본래 정해져 있던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건 선이라고 하자, 이건 악이라고 하자, 복이라고 하자, 죄라고 하자 이렇게 해서 된 것입니다.
본래 없는 데서 만들어 놓았다 해서 법이 아닌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법 없는 법 또한 법이라.” 하였습니다. 선도 없다, 악도 없다, 죄도 없다, 복도 없다 하는 것 또한 법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법을 배우는 사람들인데, 있는 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없는 법을 배웁니다. 그러므로 『금강경』에서 “무유정법명아뇩다라삼먁삼보리(無有定法名阿耨多羅三藐三菩提)”라고 하였습니다.
최상의 바른 깨달음이라는 것이 꼭 이래야 한다고 정해진 바는 없다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마음법이 본래 그런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마음을 알기 위해 참선을 합니다. 마음에서 일체 모든 것이 생겼으니, 마음을 알면 일체법을 알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마음법이라는 것은 본래 정해진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마음은 애초부터 둥글다거나 길다거나 검다거나 악하다거나 선하다거나 이런 식으로 고정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금강경』에 “법상(法相)도 버려야 하거늘 하물며 비법상(非法相)이랴.” 하였습니다. 법을 배우는 우리들에게 어째서 법을 버리라고 하느냐 하면 버릴 줄을 알아야 참으로 깨끗한 것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고인이 말씀하시기를, “도를 배우려면 먼저 가난을 배워야 하니 가난한 뒤에라야 도와 가까워진다.”고 하였습니다. 가난하려면 있는 것을 다 버려야지 뭐 하나라도 붙어 있으면 철저히 가난한 사람은 못 됩니다.
전부 다 내버리면 어떻게 살아가느냐고 공포심이 생길 테지만 전부 버려야 참 나를 얻기 때문에 버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법이 없다고 하면 그것 또한 법이 되니, 있다 없다 하는 것을 다 놓아 버려야 진짜 버리는 것이 됩니다.
이제 법 없는 것을 전해줄 때 법법이 언제 법인 적이 있었던가 하였습니다. 법이 없다면서 없는 법을 어떻게 전해준다는 것인지, 상식적으로 보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하겠지요.
하다못해 이런 주장자 하나라도 있어야 전해주는 것인데, 아무 법도 없는데 무엇을 어떻게 전해준다는 말입니까? 이제 없는 그 법을 전해주려니까 법이니 법 아니니 하는 모든 법들이 일찍이 법이라 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석가모니불까지 해서 과거 칠불의 게송을 마치고 이제 조사들의 게송을 하겠습니다.
- 동명 스님의 <깨달음의 비결> 중에서들불의 빛은 어둠이 아니면 나타날 수 없으니
빛과 어둠은 따로 자성이 없어 둘이 아니다.
(정법경)
참는 덕은 계를 가지거나 고행하는 것보다 오히려 나은 것이니
능히 참을 줄 아는 사람이라야 위대한 힘을 가진 성자라 할 수 있다.
(불유교경)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방편으로 열반을 나타내지만
실제는 내가 죽지 않고 항상 여기서 법을 설한다.
(법화경)
무상정각을 이루면 부처님 성품을 볼 수 있고
부처님 성품을 보면 무상정각을 이룬다.
(법화경)
진리를 믿어 미혹되지 않으면 있는 곳마다 항상 편안할 것이다.
부처님의 말씀은 지극히 정성스러워서 끝내 사람을 속이지 않는다.
(아난분별경)
선남자여 일체 여래의 묘한 원각의 마음은 본래 보리와 열반이 없으며
또한 성불과 성불하지 못함이 없으며 윤회와 윤회가 아닌 것도 없느니라.
(원각경)
바닷속에 있는 모든 중생들의 형상과 색깔이
추하고 더러우며 혹은 크고 혹은 작은 것을 보라
모두 자기 마음으로 가지가지 망상과 몸과 말과 뜻으로
악업을 지은 까닭에 이와같이 업에 따라
각각 자기의 보를 받게 된 것이다.
그대는 이제 그것을 알고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인과를 알아서 선업을 짓게 하라.
(방등경)
썩은 진흙 물에서 연꽃이 피어날 수 있듯이
삿된 업을 지은 중생도 불법의 씨앗을 틔울 수 있다.
(정법경)
무엇이 가장 소중한 가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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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또 수보리야, 이 법은 평등하여 높고 낮음이 없어서, 더 이상 위가 없고, 모두에게 평등하며, 바른 깨달음(無上正等正覺)이라 이름 하느니라. (고정된) 나라는 생각이 없고, (고정된) 남이라는 생각이 없으며, (고정된) 우리라는 생각이 없고, (고정된) 영원한 존재라는 생각이 없이, 일체의 선법(善法)을 닦으면, 곧 무상정등정각(깨달음)을 얻으리라. 수보리야, 여래께서 말씀하시는 선법이라는 것은 (고정된)선법이 아니니라. 이름이 선법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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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스스로가 삶에 있어서 ‘무엇이 제일 중요한 가치인가?’, ‘무엇을 위해 이것을 하는가?’, ‘무엇을 위해 돈을 버는가?’, ‘무엇을 위해 승진을 하려고 하는가?’, ‘무엇을 위해 절에 다니는가?’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 사람인가?’ 하는 것을 늘 생각하고, 나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그래서 ‘나’라고 하는 존재가 무엇이고,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사람답고 가치 있는 삶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진실에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생각들을 하지 못하고, 그저 앞만 보고 달리다 보면, 훗날 귀한 가치를 놓치고 달려온 인생, 후회하는 인생이 되기 쉽습니다.
하루를 살더라도 ‘삶의 참된 가치는 무엇인가’에 늘 깨어 있어야 하고, 그 종착역은 늘 사람이어야 하고, 생명이어야 합니다. 내 생명도 생명이고, 바로 내 옆에 있는 사람의 생명도, ‘나만큼이나 귀한 생명’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행복하게 존재하고자 하는 모든 생명의 가치에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 자리에서, 그 생명을 위한 자비도 나오고, 지혜도 나옵니다. 내 주변에 있는 작은 풀꽃 하나에서부터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명의 가치가 언제나 가장 소중하다는 생각을 늘 하시기 바랍니다."
- 제23 정심행선분(【淨心行善分) - 온 천지가 나다. 맑은 마음으로 좋은 일을 하라(222~223쪽) 중에서
- 일감 스님의 신간 <금강경을 읽는 즐거움> 중에서'풍경사진'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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