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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주 함월산 기림사
    사찰 풍경 2015. 6. 2. 20:14

    2015년 5월 31일 경주 왕의 길을 걸으면서  지나게 되는 함월산 기림사 풍경입니다.

    처름 가본 기림사 사찰이 매우 크고 기림사의 자랑 삼천불전 건물은 웅대한 느낌으로 다가오고

    보물로 지정된 대적광전의 고색 찬연한 건물도 매우 큰 느낌이 들었습니다.

     

    보물로 지정된 대적광전(보물833호)

     

    대적광전은 기림사의 본전으로 신라 선덕여왕때 처음 지어졌으며 그 뒤 8차례나 다시 지어졌다. 1997년 해체공사 때 종도리에서 4종의 묵서가 발견되었다.  

    이 묵서에 의하면 1629년에 제5차중수가 있었고, 1755년에 개조중수가 있었고, 1785년에 6차 중창이 있었으며, 1978년에 제7차 중수가 있었다.

    최근 1997년에는 정부의 문화재 수리비용으로 제8차 완전 해체 수리가 이루어졌다. 건물은 정면 5칸 , 측면 3칸의 규모이며 배흘림 기둥의 다포식 단층 맞배지붕이 단정하다. 겉모습은 본전 건물다운 웅장함을 갖추었으며, 내부는 넓고 화려하여 장엄한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다. 전면에는 모두 화려한 꽃창살 문을 달았는데 색이 바래 화려한 꽃창살 조각의 느낌이 포근히 전해진다.

    넓은 전각 안은 장엄한 맞배식 건물의 특성이 그대로 드러나며, 단청이 퇴색하여 느낌이 더 고색 창연하다.

    대적광전(大寂光展)은 주불이 비로자나불을 모신 전각이다. 적(寂)은 번뇌를 멸한 고요한 진리의 세계, 니르바나의 세계를 말하며, 광(光)은 그 세계에서 나오는 참된 지혜가 온 우주를 찬란히 비춘다는 것을 말한다

     

    삼천불전

     

     석가모니 부처님이 생전에 제자들과 함께 수행했던 승원 중에서 첫 손에 꼽히는 것이 기원정사

    와 죽림 정사이다. 특히 기원정사는 깨달음을 얻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23번의 하안거를 보내신 곳이다.

    그 기원정사의 숲을 기림(祇林)이라 하니 경주 함월산 기림사는 그런 연유에서 붙인 이름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의 본산인 불국사의 말사이다.

    643년(선덕여왕 12) 천축국(天竺國) 승려 광유(光有)가 창건, 임정사(林井寺)라고 하다가 원효(元曉)가 확장, 중수하고 기림사로 개칭하였다. 1863년(철종 14) 본사(本寺)와 요사(寮舍) 113칸이 불타 없어졌다. 당시 지방관이던 송정화(宋廷和)의 혜시(惠施)로 중건한 것이 현 건물이다. 다행히 《경상도영주제명기(慶尙道營主題名記)》 《동도역세제자기(東都歷世諸子記)》 《부호장선생안(府戶長先生案)》 등의 중요한 문적(文籍)과 근세조선 역대 왕의 어필(御筆) 등이 병화(兵火)를 입지 않고 보관되어 있다.

    이 밖에 목탑지(木塔址), 3층석탑, 오백나한상(지방유형문화재 214) 등이 있고, 보물로 대적광전(大寂光殿:보물 833), 건칠보살좌상(乾漆菩薩坐像:보물 415), 삼신불(三神佛:보물 958), 복장유물(보물 959) 등이 있다.

     

    약사전

     

     

     

    삼천불전

    1817년(순조17년)에 초의선사가 기림사 근방에서 나는 옥돌로 천불을 조성해 모셨다가 1818년(순조18년)에 해남 대둔사로 이운을 해서 대둔사 천불전에 모셨다. 현재의 건물은 최근(1990년경)에 지어진 전각으로 정면 7칸 측면 3칸 108평의 거대한 크기이다. 안에는 삼천불이 모셔져 있다. 이는 항상 어디에서나 부처님이 계신다는 사상에서 유래된 것으로 과거 천불, 현재 천불, 미래 천불의 의미를 담고 있다.

     

     

     

     

     

     

     

     

    삼천불전

     

     

    창건 설화

    먼 옛날 범마라국 임정사에 오십 년간 수도하면서 천안통과 숙명통 그리고 타심통을 얻은 도인 광유성인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스님은 제자들을 모아놓고 자신의 전생이야기를 했으니 "내가 전생의 부처님의 제자로 공부를 하고 있을 때에, 파사익 왕의 세 시녀는 늘 꿀물과 우유로 부처님과 제자들을 공양 올렸다.

    제자들 중에는 인물이 출중한 스님이 한 분 계셨는데, 시녀들은 부처님 다음으로 공양하다가 그만 공경이 사랑으로 변해 시기하고 질투하게 되었다. 스님은 여인들의 유혹을 제도하려 하였으나 여의치 않자 산 속으로 들어 가 버리셨다.

    그러나 스님은 아름답고 상냥한 세 여인을 잊지 못해 번민하다가 결국 도를 이루지 못한 채 입적하고 말았다. 나는 그때 그 스님의 도반으로서 먼저 도를 이루는 사람이 제도키로 약속을 했었다.

    내 이제 금생에 인연이 얼마 남지 않았으므로 도반인 그 스님과 세 시녀를 제도하려 하니 나와 숙세로부터 인연이 있는 이들을 누가 이곳으로 안내하겠느냐?"

    그때 승열 스님이 말했다.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스승이시여!"

    "오 장하구나, 너는 아라한과를 얻었으니 능히 할 수 있으리라.

    그 스님은 금생의'수다라'라는 대국의 왕이고 왕후와 후궁은 전생의 시녀이니라."

    "그럼 한 명의 시녀는 어디에 있습니까?"

    "이제 곧 왕의 아들로 태어나 스스로 여기로 올 것이니라.

    수다라 왕국은 아직도 불법이전해지지 않았으므로 세명을 한번에 모셔오기 어려울 테니 , 먼저 후궁인 월해부인을 인도토록 하여라"

    승열 스님이 수다라국에 도착했을 때 ,왕은 마침 500궁녀를 데리고 강가를 거닐다가 숲속에서 잠이 들었다.

    산책을 즐기던 궁녀들은 좌선에 든 스님을 발견하고는 이상한 모습에 의아한 눈길을 주고받다가 가까이 다가와서 물었다.

    "어디서 오신 누구신지요?"

    "나는 범마라국 임정사에서 온 승려입니다."

    스님은 궁녀에게 스님은 무엇을 하는 사람이며 불법이 무엇인지를 설명해주었다.

    이때 잠에서 깨어 이를 목격한 왕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소리쳤다.

    "너는 누군데 나의 궁녀를 꼬이느냐? "

    왕은 승렬 스님의 목에 칼을 대고는 인생의 참 진리가 무언지 알려주겠다며 불개미 집을 헐어서 스님의 몸에 풀어놓았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불개미는 스님의 몸을 물지 않고 모두 흩어져버렸다.

    이것을 본 왕은 크게 놀라면서 예사로운 분이 아닌 줄 알고 스님을 궁중으로 정중히 모셨다.

    승열 스님은 1년간 궁중에 살면서 왕과 왕비 그리고 후궁들을 교화하였으며 수다라 왕국의 최초의 절 범승사를 세웠다.

    그리고는 며칠 후 승열 스님은 왕에게 말했다.

    "이제 그만 임정사로 돌아가야겠습니다."

    왕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스님은 떠날 차비를 하면서 월해부인을 모시러 온 뜻을 밝혔다.

    왕은 보내기 아쉬웠으나 월해부인이 선뜻 나서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 후 월해부인은 광유성인의 제자가 되어 물긷고 차를 다리며 열심히 정진하였다.

    어느 날 광유스님은 승열 비구에게 다시 수다라국에 가서 왕과 왕비를 모셔오도록했다.

    승열 스님이 수다라국에 도착하니 , 왕과 왕비는 물론 지난번에 귀의한 십여명의 제자와 신도 및 백성들까지 영접하였다.

    "월해부인은 대왕이 오셔서 함께 공부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왕이 도착하기도 전에 도를 얻고 사바의 인연을 마칠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왕은 기가 막힌 듯 슬피 탄식했다.

    "오, 참으로 세상은 허망하군요. 대왕이시여! 이 세상에서 참으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선지식이시여, 저를 깨우쳐 주소서!"

    "그것은 일체를 소유할 수도 버릴 수도 없는 자신을 아는 일이지요."

    승열스님은 자상한 설법과 함께 왕의 전생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왕은 참회하면서 왕비인 원앙부인과 함께 광유성인에게 가서 공부하기로 결심하고 왕위를 태자에게 물려 준 뒤 임정사로 향해 길을 떠났다.

    만삭의 몸으로 길을 떠난 원앙부인은 중도에서 지칠대로 지쳐 더 이상 걸을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부인 힘을 내구려. 나와 함께 도를 이루자고 하지 않았소."

    "대왕이시여! 저는 전생에 숙업인 듯 하옵니다. 저를 여기서 종으로 팔아 그 대가를 임정사 부처님께 올려 다음 생에 다시 공부하도록 빌어주십시오. 저의 마지막 소원입니다 ."왕은 눈물을 흘리며 죽림국의 한 부자에게 만삭이 된 부인을 팔았다.

    "대왕이시여! 아기를 나으면 이름을 무엇이라고 지을까요?"

    "아들이거든 안락국이라 하고 딸을 나으면 아량이라 하여주오."

    가슴이 터질 듯 아프고 슬픈 마음으로 부인과 작별한 왕은 광유성인의 제자가 되어 차 시봉을 하면서 세속 일을 잊고 정진에 몰두하였다. 그렇게 7년이 되던 어느 날, 임정사로 한 남자아이가 아버지를 찾아왔다. 그는 원앙부인이 낳은 태자 안락국이었으니 바로 전생의 한 시녀이기도 하다. 반갑게 상봉한 부자는 공부하며 함께 지냈다. 수다라 왕이 도를 얻어 열반에 들자 광유스님이 안락국에게 전생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안락국아! 너는 인연 있는 곳을 찿아 가서 중생을 교화하고 제도하거라. 그 인연지는 여기서 이백오십만리 떨어진 해동국으로 그곳에는 문수보살이 부처님의 부촉을 받고 계신 곳이다. 가서는 거북이가 물 마시는 형상을 하고 있는 산을 찾거라. 동해바다의 기운을 들여 마시는 용이 사는 연못이 있고, 탑의 형상을 갖춘 남쪽 돌산에는 '옥정'이라는 우물이 있으니 그 물을 먹으면서 수도하거라. 북쪽에는 설산을 닮은 돌 빛이 흰 산이 있으니 그 산 굴 속에 부처님을 조성하여 모시거라."

    그리하여 해동 계림국에 도착한 안락국은 명당을 찾아 조그만 암자를 세워, 이름을 칭하되 '임정사'라 하였다. 절이 창건된지 백오십년 후 신라의 '원효대사'가 절을 확장하고 ,이름을 부처님 당시의 최초의 절인 '기원정사'의 이름을 따서 현재의 '기림사'라 개명하였다.

     

     

     

     

    관음전

     

    삼천불전 부처님

     

    옥돌로 조성된 삼천불전 부처님

     

     

     

     

    보물로 지정된 소조 대적광전 비로자나 부처님

     

    가운데 비로자나불 왼쪽에 노사나불 오른쪽에 석가모니불을 모셔 삼신불(三身佛)을 이루는데, 흙으로 빚은 이 세 불상은 손의 위치와 자세만 다를 뿐 표정과 모양이 거의 같고 옷 주름까지도 비슷하다. 상체는 장대하나 무릎은 빈약하게 느껴지며, 네모난 얼굴은 강인한 표정이 엿보인다. 적절한 두께로 주름을 세겨넣은 옷자락 표현이 장대한 몸체에 잘 어울리는데, 왼쪽 무릎 위로 접어 올린 옷자락이 비로자나불만 살짝 한 겹 더 접혔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다만 삼존불일 경우에는 좌우 부처들이 두 손을 서로 대칭되게 한쪽씩 드는 것이 보통이나 이 노사나불과 석가모니불은 둘 다 오른손을 들고있는 것이 색다르다.

    1740년에 간행된 [기림사 사적]에서는 대적광전 내부에 흙으로 만든 삼세여래상을 봉안하였으며, 이 때의 증사가 은점산인이라고 밝히고 있다.

    삼신불의 교리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

    법신불(法身佛)

    비로자나불,순수하고 차별상이 없는 영원불멸의 진리를 형상화한 부처님이다. 일체의 존재는 그것의 나타남이다.

    보신불(報身佛)

    노사나불, 과거의 수행에 의한 공덕, 모든 미덕을 구비한 이상적인 인격으로서의 부처님이다. 과거 세상에 모든 만행 선근공덕의 보답으로 갖추어지는 부처님의 모습이다.

    화신불(化身佛)

    중생을 교화 구제하려고 부처님 자신이 중생의 모습으로 변화하여 나타난 것을 말한다. 현세에 인간의 모습으로 출현하신 석가모니 부처님이 바로 천백억 화신불이다.

    삼신불(三身佛)은 세 부처님이 따로 존재한다는 뜻이 아니라 한 부처님의 세 가지 관점을 묘사한 것이다. 형상을 여윈 진리에서의 법신불과 만행공덕의 측면인 보신불과 실제 역사 속에서 이 모든 것을 구현하시고 중생을 구제하신 교화의 관점인 화신불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보물로 지정된 대적광전 노사나불

     

    보물로 지정된 대적광전 석가모니불

     

     

    약사전

     

     

    응진전

     

    오백나한상을 모신 건물로 전면 5칸, 측면 2칸 겹처마 맞배지붕이다. 장대석 1단의 얇은 기단 위에 화강석 주초를 놓고 전 후면에는 두리기둥을, 측면에는 각진기둥을 세웠는데 후면의 기둥은 1개를 제외하고는 모두 동바리를 하였다. 공포는 내외 2출목이다. 내부 살미의 형태는 주심포에다 교두점 차단과 양봉이 주간포에는 교두점 차단과 삼분도 요두(要頭)를 각각 얹었다. 가구는 5량가이며 대량과 종량위에는 파련대공을 세웠다. 천장은 빗반자를 치고 단청을 하였는데 천장 전체가 빗반자로 된 경우는 드물다. 바닥은 우물 마루를 깔았으며 문비 구성은 전면 각칸에 이분합(二分合)교살문을 달았다. 이러한 형태를 볼 때 관룡사 대웅전의 모양과 흡사한 조선중기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2002년 4월 개분불사를 하는 중에 오백나한 복장에서 조성당시에 씌여진 것으로 보이는 발원문이 나왔다. 여기에 보면 조성년도가 옹정7년(擁正七年)이다 서기로는 1729년이고 우리나라 연호로는 영조5년이다. 불상조각에 참여하신 분은 금산사 스님 4분과 본사스님 3분이다.

    오백아라한은 정확히 526분의 성자이다. 부처님 당시의 제자들 중에 가장 뛰어난 10대 제자, 16성중(聖衆)과 500성중(聖衆)이다. 모든 번뇌를 끊고 열반에 들어간 최고 단계에 있는 사람이다. 아라한에 관한 설명은 다음의 법구경에 나온 게송으로 알 수 있다

     

     

    약사전

     

    정면 3칸의 맞배지붕의 건물이다.

    약사전은 동방 만월 세계에서 중생 교화를 맡고 계신 약사 여래불을 모신 전각이다. 사람의 병을 고치고 , 번민에서 구제하시는 부처님으로 약사유리광여래불(藥師琉璃光如來佛),대의왕불(大醫王佛)이라고 한다. 보살로서 수행하고 있을 때에 12대원(大願)을 발했다고 한다.

    중생의 병을 제거하며, 모든 감각기관을 완비시켜 해탈로 인도하는 능력이 있다. 일광(日光)보살, 월광(月光)보살을 각각 좌우 협시(脇侍)로서 약사삼존(藥師三尊)으로 삼으며, 권속에는 호법신(護法身)으로서의 12신장을 모신다.

     

    약사전 부처님

     

    응진전

     

    응진전 부처님

     

     

    범종루

    2층의 누각 형태로 지어졌으며 1층은 종무소로 사용되고 있다.

    범종루는 북, 종, 운판(雲版),목어(木魚)등 사물(四物)을 두는 곳이다.

    북은 걸어 다니는 축생을 위해 두드린다.

    종은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을 위해 친다. 아침 예불시에는 28번, 저녁 예불시에는 33번을 친다 이 종소리를 들으면 지옥 옥졸들이 지옥 중생을 괴롭히다가 잠깐 쉰다고 한다. 목어는 물고기 모양으로 나무의 속을 파서 만들었으며 물 속에 사는 중생들을 위하여 두드린다.  운판은 청동이나 철로 만든 구름 모양의 넓은 판인데 ,날아다니는 중생들이 이 소리를 듣고 해탈하라고 친다.

     

     

     

     

     

    기림사 삼층 석탑

    대적광전과 진남루 사이 서쪽에 오백나한전이 있고 바로 그 앞에 높이 3m 쯤 되는 아담한 3층석탑이서 있다. 감은사 탑과 같은 돌인 안산암(安山岩)으로만들었는데, 2중의 기단 위에 3층으로 몸체 돌과 지붕돌을 쌓았고 그 위에 노반, 복발, 앙화까지 남아 있다.

    아랫기단은 낮은데, 한 면에 3개씩의 기둥모양이 새겨져있고 , 위 기단은 높은데 각 면마다 기둥 셋이 새겨져있다. 몸체 돌에는 층마다 모서리 기둥을 새겼는데, 아래는 굵게, 위는 좁게 나타내는 엔타시스(배흘림) 양식이다. 처마 끝은 4단으로 돼있다. 크기도 작지만 , 기단의 기둥수, 처마 받침의 단수가 줄어들어 ,통일 신라의 일반형이이면서 ,시대 말기 것으로 보인다. 석탑 동쪽의 보리수밑에는 목탑(木塔)터가 남아 있다.

    언젠가 목탑이 소실되고 난 뒤 재건하지 못하고 ,대신 자그마한 석탑을 세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관음전 관세음 보살

     

    천수 천안 관세음보살님을 모신 전각이다. 천개의 손과 천개의 눈과 열 한 개의 얼굴을 하고 있다. 천(千)은 광대무변(廣大無邊)의 뜻을 나타낸다. 수없이 많은 중생의 고통소리를 보아야 하므로 그렇게 많은 눈이 필요하고, 수많은 중생을 손을 내밀어 구제해야 하므로 그렇게 많은 손이 필요하다는 것을 상징한다.

    열 한 개의 얼굴을 한 십일면(十一面)관세음보살은 아수라도에 있는 것을 구제하는 보살이다

    맨 위의 불면(佛面)은 불과(佛果)를 표현한 것이고, 전후좌우 십면은 보살이 수행하는 계위(階位)인 10지(地)를 나타낸다. 이것은 중생의 11품류의 무명번뇌를 끊고 불과를 얻은 뜻을 상징한다

     

     

     

     

     

    삼성각

     

    명부전

     

    명부전

    정면 3칸 맞배지붕의 건물로 안에는 지장보살과 시왕상을 모셨다.

    지장보살은 도리천에서 석가여래의 부촉을 받고 매일 아침 선정에 들어 중생의 근기를 관찰한다. 석존이 입멸 후부터 미륵불이 출현 할 때까지 몸을 6도에 나타내어 천상에서 지옥까지 일체중생을 교화하는 대자대비한 보살이다. 석장을 짚은 사문의 모습의 형상을 하고 계시며 지옥에 있는 모든 중생을 다 구제하고 나서 부처가 되겠다는 거대한 서원을 세운 대비대원(大悲大願)보살이다. 좌우로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이 협시(協侍)하고 있다.

    명부시왕은 죽은 자의 영혼이 가는 명계(冥界)를 다스리는 열 분의 왕이다. 시왕은 진광대왕(秦廣大王), 초강대왕(初江大王),송재대왕(宋宰大王), 오관대왕(五官大王), 염라대왕(閻羅大王), 변성대왕(變成大王), 태산대왕(泰山大王), 평등대왕(平等大王), 도시대왕(都市大王), 오도전륜대왕(五道轉輪大王)이다.

     

     

    삼성각

    명부전 구역에 있는 건물로 정면 3칸의 맞배지붕을 하였다.

    삼성각은 나반존자(독성,獨聖), 칠성(七星)과 산신(山神) 세분을 한꺼번에 모셔 놓은 전각이다.

    나반존자는 남인도 천태산에서 홀로 선정을 닦아 십이연기(十二緣起)를 깨달은 성자이다. 칠성은 본디 중국에서 유입된 도교신앙의 신으로 한국에 들어와 토착화되었다. 처음에는 약사 신앙과 결합되었다가 조선중기 이후 수명신의 본디 모습이 강조되었다. 산신은 주로 호랑이와 같이 있으며 산을 주재하는 신이다. 불교에 들어와서 호법신중(護法神衆)의 하나로 흡수되었다.

     

     

     

     

     

     

     

    기림사에 있는 5종류의 샘물이다.

     

     명안수(明眼水)

    이 물을 마시면 눈이 밝아진다 고한다.

     장군수(將軍水)

    나한전 삼층석탑 아래에 뭍혀있다.이 물을 마시면 천하무적의 장군이 된다고 하는데 ,혹시 반역자가 생길까봐 우물 위에다 석탑을 세웠다한다. 지금도 고요한 밤탑 밑에 귀를 귀울리면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화정수(華井水)

    마실수록 마음이 편안해지고, 대중들이 이물을 마시며 정진하면 서로 화합한다고 한다.

     감로수(甘露水)

    북암에 있는 감로수는 물빛이 우유빛이지만 일단 바가지로 뜨면 무색으로 , 이 물로 차를 끓이면 최고로 맛있는 차가 된다고 한다.

     오탁수(嗚啄水)

    동편 산마루에 있는 오탁수는 물맛이 하도 좋아 까마귀가 쪼아먹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감로수와 화정수만이 마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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