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지리산 실상사(칠암자중 7번째)
    사찰 풍경 2015. 5. 30. 15:19

    2015년 5월 25일 지리산 칠암자 순례 코스중 마지막 코스인 실상사 풍경입니다.

    지리산 삼정산 도솔암-영원사-상무주암-문수암-삼불사-약수암-실상사 칠암자 순례 코스중 마지막에 찾은 실상사 풍경입니다.

     

    실상사 천왕문에서 본 실상사 보광전

     

    칠암자 순례의 마지막 사찰 실상사 보인다.

     

    남을 때리는 일은 자신을 때리는 일이다.

    원수와 원수는 서로 만나니 남을 바방하는 일은 바로 스스로를 비방하는 일이요

    남에게 성내는 일은 자신에게 성내는 일이다.

    (법집요송경)

     

     

    만약 물이 항상 있다면 우물이 무슨 소용이 있으랴

    만약 욕심이 전혀 없다면 무엇을 바라고 무엇을 구하리

    (소부경전)

     

    욕심과 번뇌를 여읜 이는 부처님과 다를 바가 없다.

    (제법집요경)

     

    중생의 목숨을 해치지 않고 남에게 음식을 베풀면

    이 두가지 인연으로 그 수명은 길어진다네.

    (금강명최승왕경)

     

    보시는 큰 부의 문이 되며 그 공덕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문수사리정률경)

     

     

    혀를 놀려 거짓말하지 말고

    말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말라.

    (불반니원경)

     

     

    은사스님과의 인연
    "제가 법정 스님을 만난 인연은 이렇습니다.

    저는 출가 전 스님 책을 만났고, 이 인연은 송광사로의 출가로 이어져 행자생활을 하며 스님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출가하면 행자생활을 하는데, 당시 행자생활이란 훈련소같이 혹독한 1년 과정으로 군대에 다녀온 저에겐 군대보다 더 엄하고 힘든 과정이었습니다.

    시퍼런 억새풀 같은 법정 스님의 모습은 누구도 범접하지 못할 정도로 엄했습니다.

    스님께서는 평소 수행을 하시면서 세 가지 원칙을 세우셨는데, '첫째는 상좌를 두지 않는다. 둘째, 주지 소임을 맡지 않는다. 셋째, 두루마기를 입지 않는다'였습니다.

    스님은 상좌(제자)를 두지 않으셔서 행자들이 불일암에 계시는 스님께 우편물을 배달해드리고, 도량 청소를 해드리는 등 3개월 단위로 돌아가며 시봉을 했습니다.

    그러다 제 차례가 되었고, 설렘과 긴장감으로 우편물을 전해드리고 청소와 심부름을 거들어드리는 일을 시작한 지 3개월이 다 되는 날이었습니다.

    법정 스님께 "오늘은 스님 시봉이 끝나는 날입니다. 내일부터 올라오지 못합니다"라고 말씀드렸더니 "행자님! 그동안 수고 많았습니다. 원주스님께 말씀드릴 테니 계속 올라오십시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날부터 저는 더욱더 긴장하면서, 그러나 신나게 스님의 시봉을 계속했습니다.

    하루에 많게는 아홉 번, 평균 두 번 이상을 송광사 큰절에서 불일암까지 오르내리는 시봉은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서툰 지게질로 지고 가던 커다란 물통을 산 아래로 굴러 떨어뜨려 다시 지고 올라가면 왜 이렇게 늦었느냐는 호통도 들으며 시봉을 했습니다.

    그렇게 1년 넘는 행자생활을 마치고 은사스님을 정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상좌를 두지 않겠다는 법정 스님의 원칙이 있기에 스님의 허락을 받아야 할 순간이 오자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태까지 여러 행자들이 스님 시봉은 했지만 법정 스님은 상좌를 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만약 스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허락하실 때까지 계를 받지 않고 행자생활을 해야겠다는 각오로 스님께 삼배를 올리고는 "스님, 저를 제자로 받아주십시오." 했습니다.

    그러자 예상 밖에도 스님은 주저 없이 차 한잔을 주시며 "그동안 고생 많았다. 오늘부터 너의 법명은 '덕조德祖'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동안의 원칙을 깨고 저를 상좌로 받아주신 것입니다.

    그날의 그 기쁨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습니다. 천하를 다 얻은 것 같은 마음! 당신의 원칙을 깨고 상좌로 받아주셨다는 감사함에 온 정성을 다 해서 스님을 모시리라 다짐했습니다.

    큰절로 내려와 법정 스님께서 나를 상좌로 허락해주셨다고 말하니 모두 그 말이 사실이냐고 믿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법정 스님을 은사스님으로 사미계를 받으러 가니 종단 스님들께서도 사실이냐고 물었습니다.

    이렇듯 모든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며 은사스님과 지대한 인연을 맺었습니다.

    출가 전 부모님과의 인연이 필연이라면, 출가 후 수행자로 다시 태어나 만나는 새로운 부모님인 스승과의 인연은 시절인연입니다.

    스승의 은혜란 가히 말할 수 없고 보답하기 어렵다는 말이 있듯이, 무소유의 표상이신 은사스님의 그림자에 누가 될까 노심초사하며 시퍼런 칼날 위를 걷는 마음입니다.

    더욱이 이제는 가시고 계시지 않으니 더 어렵고 조심스럽습니다.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혹여 스님께 누가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습니다.

    은사스님께서는 수행자는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늘 말씀하셨기에 지금 나 자신이 수행자답게 살고 있는지 돌아봅니다. 30년 넘게 스님의 그림자를 밟지 않으려고 노심초사하며 살아왔습니다.

    어느 날 제 글이 《맑고 향기롭게》 소식지에 실린 것을 스님께서 보시곤 “덕조! 글 잘 쓰네. 계속 글을 좀 쓰지.” 하셨는데, 그때 저는 스님이 계시는 동안은 내 글을 책으로 묶지 않으리라 다짐했습니다.

    스님께 누가 될까 염려했기 때문입니다.

    돌이켜보면 행자시절부터 입적하실 때까지 스님께선 언제나 저에게 각별하셨습니다.

    불일암에 계실 때 간혹 시장에 가시면 문방구에 들러 문구류를 사와 건네주셨고, 해외에 나가시면 꼭 엽서를 보내주시고 선물을 빼놓으신 적이 없는 자상한 분이셨습니다.

    하지만 엄격하실 때는 또 얼마나 매서우신지 한여름에 얼음이 얼 정도로 무서웠습니다.

    언젠가 속가 친구의 아내가 세상을 떠나서 조문을 하고 왔더니 “어디 다녀왔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속가의 친구 조문을 다녀왔습니다”라고 말씀을 드리자 “출가한 중이 왜 속가와 인연을 맺느냐? 속가와 인연을 계속 맺고 살려면 당장 승복을 벗고 나가라”고 불호령을 내려서 얼마나 참회했는지 모릅니다.

    스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결제 중이라고 가시지 않았습니다.

    저는 무서워하는 사람이 없는데 스님 앞에만 서면 늘 옴짝달싹 못하는 사자 앞에 어린 양이었습니다.

    스님은 저에게 하늘이셨고 큰 산이셨습니다. 스님의 말씀은 저에겐 절대 진리였고 수행의 표상이었습니다.

    인연은 소중합니다. 비록 만나지 못하더라도 인연은 사라지지 않고 영원합니다. 우리 모두 좋은 인연을 만들어야 합니다.

    스쳐가는 인연이 무수히 많지만 그중 의미 있는 만남은 생에 전환점을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만난 인연은 모두 소중합니다. 지금 내가 맺고 있는 인연에 감사하십시오. 우리는 감사함 속에 더욱 행복해질 것입니다."
    - 송광사 승가대학장 덕조스님의 신간 <마음꽃을 줍다> 중에서

    몸과 입과 뜻으로 행하는 것 중 계행과 보시만이 가장 높거늘

    너희는 무엇을 뜻하고 생각했기에 착한 일을 하지 않느냐.

    (불설분별선악소기경)

     

     

    마치 어떤 이가 촛불을 들면 모든 빛깔을 보게 되는 것처럼 법을 듣고 나면

    선악이 귀결되는 바를 모조리 알게 된다.

    (출요경)

     

    석가모니 부처님의 수명은 영원하다고 생각하라.

    육신은  비록 이 세상에서 거두지만 법신은 항상 여기에 있으리라

    (잡아함경)

     

     

    부처님이 나오시어 온세상 비추심은

    온갖 근심과 괴로움 없애주기 위해서라네

    사람의 세상에 태어나기 어렵고 태어나도 오래 살기 또한 어렵네

    부처님 계신 세상 만나기도 어렵지만

    부처님 법 듣기는 더욱 어렵네.

    (법구경)

     

     

    부처님을 받들어 섬기며 정성으로 예배하면 얼굴이 단정해지고 음성이 맑고 청아해지며

    부귀하게 되고 좋은 집안에 태어나며 목숨을 마치면 천상에 태어나느니라.

    (증일아함경)

     

    실상사와 일직선 상에 있다고 하는 지리산 천왕봉이 멀리 보인다.

    천왕봉 너머 일본의 후지산이 또한 실상사와 일직선 상에 있다고 한다.

     

    시방세계 천상천하

    제가아는 모든 성현

    그가운데 석가모니

    부처님이 으뜸이어

    당당하고 높으신분

    하늘인간 스승되니

    그러므로 절을하고

    찬탄하며 귀의하리

    (치문)

     

    실상사에서 보이는 지리산 천왕봉

     

    철조 약사 여래불

     

    정말로 아는 것이 없으면 교만해진다.

    (잡보장경)

     

     

    삶은 매 순간이 눈부시다!


    "하루하루가 눈부신 오늘이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며 살고 있는 바로 지금 이 순간 속에 그토록 원하던 '그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지금 있는 모습 그대로 모든 것은 완전하게 갖추어져 있다. 지금 이 자리야말로 모든 보물이 명백하게 드러나 있는 순간이다.

    이렇게 평범한 말로 표현하고 있지만, 어떻게 이 장엄한 사실을 말 몇 마디로 다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당신의 삶이 어떤 진실을 담고 있는지, 울고 웃던 모든 삶 그 자체가 얼마나 빛나는 순간인지, 심지어 역경이라고 여겨왔던 순간조차도 깊이 바라보면 얼마나 눈부신 깨어남의 과정인지를 과연 우리는 상상이라도 할 수 있을까?

    그렇다! 우리 앞에 놓여 있는 매 순간이 그 자체로 기적이며, 경이로움이고, 무한한 사랑이며, 동시에 아무것도 아닌 텅 빈 일상 그 자체다.

    이토록 평범한 우리 모두의 각자 자기다운 삶, 그것을 빼고 달리 깨달음을 구할 필요가 있을까?

    이 평범한 하루를 빼고 놀라운 눈부신 하루를 다시 또 찾지 말라.

    무언가를 구하고 원하며 찾고 있다는 것은, 곧 지금 이 순간을 원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우리가 그토록 구하고 원하며 찾아다니던 그 모든 것이 바로 지금 이 자리에, 눈부시게 빛나는 오늘 속에 다 담겨 있다면 어떨까?

    그토록 찾아다녔지만 결국에 찾고 보면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음이 드러날 뿐이다.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일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삶은 단순하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오늘을 눈부시고 아름답게 살아 내면 그뿐이다.

    그러나 우리 안에는 이 눈부신 오늘을 왜곡시켜 근심, 걱정, 우울로 뒤바꾸는 신기한 버튼이 장착되어 있는 듯하다.

    바로 그 왜곡의 버튼을 어떻게 하면 누르지 않고, 원래 있던 그대로의 본래적인 눈부신 날들을 보낼 수 있는지에 대한 지혜로운 삶의 기술을 이 책 속에 담고자 했다.

    물론 이 눈부시고도 장엄한 진실은 아무리 장황하고 화려한 언설로 수백수천 권의 책에 써서 담는다고 할지라도 결코 다 담아 낼 수는 없다.

    이 진실은 말이라는 제한된 틀 속에는 담길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무 말도 안 할 수도 없다.

    어쩔 수 없이 언어라는 방편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이것이 이 짧은 글들 속에 말 아닌 말을 풀어 놓을 이유가 되어 주었다.

    이 글들은 짧고 단순하지만 이 언어 속에는 결코 짧지 않은 진실의 울림과 강력한 변화의 파동들이 공명하고 있다고 믿는다.

    이 책 속의 문자 너머의 의미에까지 여러분의 시선이 가 닿을 수 있다면, 왜곡의 버튼을 완전히 꺼 버린 채 하루하루가 눈부신 오늘로 바뀌는 놀라운 깨어남이 시작될지도 모른다.
    당신의 오늘은 어떤가?
    사실은 하루하루가 날마다 눈부신 오늘일 수밖에 없다. 만약 아직 그렇지 않은 분이 계시다면, 이 짧은 글들이 작은 위로가 되어 날마다 눈부신 오늘로 변화될 수 있기를 발원해 본다."


    불이사 목소산방에서

    법 상

    믿고 즐거워 하는 마음내어 오욕락을 탐하지 않으며

    곧 신심의 힘을 성취할 것이니

    이것을 견고한 맏음이라 한다.

    (광박엄정불퇴전륜경)

     

    마음을 잘 절제하고 게으름 없이 노력하며 주의 깊은 마음 관찰 수행을 통해

    자기 자신을 의지처로 삼는 지혜로운 이는

    홍수로도 휩쓸리지 않는 섬을 쌓은 것과 같다.

    (법구경)

     

     

    만약 법을 듣기를 좋아하여 싫증을 내지 않으면

    불가사의한 법을 깨닫게 되리라.

    (화엄경)

     

     

    부처님을 생각하는 사람은 사람들 가운데 연꽃 같은 존재임을 알라

    (관무량수불경)

     

    억울함을 당해서 밝히려고 하지 마라.

    억울함을 밝히면 원망하는 마음을 돕게 되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억울함을 당하는 것으로

    수행하는 문을 삼아라 하셨느니라.

    (보왕삼매론0

     

     

    언제나 보시하기를 즐기고 견고히 맑은 계행을 지니며

    모든 중생을 불쌍히 여기면 온갖 소원이 이루어지리

    (제법집요경)

     

     

    은혜를 모르는 사람은 축생보다 못하다.

    (대지도론)

     

    극락전

    불국기행!


    "키츄 사원을 들르지 않았더라면 후회했을 것이다.

    키츄 사원의 오래된 불상을 봤기 때문이 아니라 사원 입구에서 마니차를 돌리고 있는 82세의 '도르제(Dolje)' 노인을 만났기 때문이다.

    도르제는 신성한 불구(佛具)인 '금강저'라는 뜻이 있는데 티베트나 부탄에서 흔한 이름이다.

    노인은 내게 어떤 고승보다도 사람의 향기를 주었던 것이다.

    이가 많이 빠진 노인은 잇몸을 드러내며 말했다.

    "나는 늙어서 일을 안 시키니 좋아요. 사원 앞에서 날마다 마니차를 돌릴 수 있으니 좋아요. 머지않아 죽으면 파드마 삼바바 님을 만나 천상에서 살 수 있으니 좋아요."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날마다 좋은 날을 보내는 이처럼 행복한 사람이 또 있을까? 노인은 생로병사의 괴로움을 벗어나버린 생불 같은 모습이다.

    나만의 생각은 아니었을 것이다. 일행 모두가 환희심을 냈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말끝마다 '좋아요'를 반복하는 노인의 소박한 얘기는 어떤 선사의 법문보다도 울림이 컸다.

    노인의 말은 내가 부탄 여행에서 받은 가장 큰 선물이 되었다.

    사원 추녀 밑에서 마을 노인들이 석양볕을 쬐며 휴대용 마니차를 하나씩 든 채 느긋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부탄의 경우라면 노인들을 위해 나라 예산으로 양로원 같은 시설을 만들 필요가 없는 것 같다.

    사원이 노인들의 복지 시설 역할을 전부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마을 노인들은 날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사원에서 밥 먹고 기도하며 논다고 한다.

    예산 때문에 노인 복지를 걱정하는 우리나라 현실을 떠올려보니 정말로 부럽다.

    극락이 하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지구의 땅 위에도 있는 것 같다.

    나라 전체가 사원 같은 느낌의 부탄 땅이 바로 극락세계인 것이다."





     

    깨끗한 마음을 가지면 지헤가 생길 것이요

    마음에 지혜가 생기면 곧 깨달음이 생길 것이다.

    (불반니원경)

     

     

    이 세상에 고통 받는 중생들이 끝없이 많으니 내 부처되어

    마지막 한 생명까지 기어이 건지리라

    (불본행집경)

     

     

    온갖 형상을 그릴 때에 좋고  추한 것이 화공을 따르듯이

    착하고 착하지 못한 업의 인연은 모두가 마음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네

    (제법집요경)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마라.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쉽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병고로써 양약을 삼으라 하셨느니라.

    (보왕삼매론)

     

     

    어떤 일이든 때가 있는 법

    때가 채 이르기도 전에 애를 쓰면 도리어 화를 당한다.

    (백유경)

     

     

     

    눈 깜짝할 새
    "세상을 잠시 휴가 나온 기분으로 살면 어떨까?

    그런 기분으로 산다고 해서 누가 뭐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난 그렇게 산다.
    평생 휴가받은 기분으로.

    그렇다고 긴 휴가도 아니다. 눈 깜짝할 새다.

    인생을 잠시 휴가 나온 기분으로 살면 어디를 가도 마음이 설레고 누구를 만나도 잘 해주고 싶다.

    순간순간 낯선 휴가지에서 만난 사람이기에 늘 새롭고 설렌다."



























     

    달빛이 여름에는 시원하지만

    겨울에는 추위의 괴로움을 더해 주듯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다 고정된 모습이 없다네

    (불소행찬)

     

     

    우리에게 필요한 건 냉철한 머리가 아니라 따뜻한 가슴입니다.

    따뜻한 가슴으로 이웃에게 끈없는 관심을 갖고

    그들의 일을 거들고 보살피는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박학한 지식보다 소중하지요.

    하나의 개체인 나 자신이 전체로 우주로 확대될 수 있어요.

    그리고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법정스님)

     

    최인호:스님 제가 글을 연재한(샘터)의 슬로건이 늘 새롭게 늘 똑같이 입니다.

    그런데 무엇을 새롭게 무엇을 똑같이 해야 할까요?

     

    법정:늘 새 물이 솟아야 샘의 구실을 하는 것이지

    고여 있으면 그건 웅덩이지 샘이 아닙니다.

    그러나 자꾸 퍼내야 하지요.

    퍼내야 깨끗한 지하수가

    새로운 물이 흘러나오게 되는 거지요.

     

     

    우리는 죽음에 대해 별로 생각하지 않고 준비도 안하는데

    그런 상태에서의 죽음은 느닷없는 피살과 같아요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하면 할수록 우리의 인생은 깊어진다고 봅니다.

    (법정)

     

     

    사람은 때로 외로울 수 있어야 합니다.

    외로움을 모르면 사람이 무디어져요.

    하지만 외로움에 갇혀 있으면 침체되지요.

    외로움은 옆구리로 스쳐 지나가는

    마른 바람 같은 것이라고 할까요

    그런 바람을 쏘이면 사람이 맑아 집니다.

    (법정)

     

     

     

    용서라는 말에는 어딘지 수직적인 냄새가 나요.

    비슷비슷한 허물을 지니고 살아가는 중생끼리 누가 누구를 용서할수 있겠어요.

    용서라기보다는 서로가 감싸주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관용 정신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개인적인 갈등이나 집단적인 대립도 이 관용 정신에 의해서 극복될 수 있습니다.

    관용은 모성적인 사랑의 극치라고 할 수 있어요.

    (법정)

     

     

     

     

     

     

    [개설]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金山寺)의 말사이다.

    [역사적 변천]

    828년(흥덕왕 3)에 홍척(洪陟)이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실상산문(實相山門)을 개산(開山)하면서 창건하였다. 홍척은 도의(道義, 道儀)와 함께 당나라에 들어가 선법(禪法)을 깨우친 뒤 귀국하였다. 그 후 도의는 장흥 가지산에 들어가서 보림사(寶林寺)를 세웠고, 홍척은 이 절을 세운 뒤 선종(禪宗)을 전파하였는데, 풍수지리설에 의거하여 볼 때 이곳에 절을 세우지 않으면 우리나라의 정기가 일본으로 건너간다고 하여 이 절을 건립하였다고 한다. 그 뒤 2대조 수철(秀澈)을 거쳐 3대조 편운(片雲)에 이르러서 절을 크게 중창하고 선풍을 더욱 떨치게 되었다.

    그러나 1468년(세조 14)에 화재로 모두 불타버린 후 200년 동안 폐허로 남아 있었고, 승려들은 백장암(百丈庵)에 기거하면서 그 명맥을 이어왔다. 그 뒤 1679년(숙종 5)에 벽암(碧巖)이 삼창(三創)하였고, 1684년 계오(戒悟)가 현재의 극락전(極樂殿)인 부도전(浮屠殿)을 지었다. 1690년에 침허(枕虛)를 중심으로 300여 명의 수도승들이 조정에 절의 중창을 상소하여 1700년(숙종 26)에 36동의 건물을 세웠다. 또한 1821년에는 의암(義巖)이 다시 중건하였으나 1882년(고종 19)함양 출신 양재묵(楊載默)과 산청 출신 민동혁(閔東赫)에 의해 사찰건물들이 불타 없어지는 수난을 겪었으며, 1884년에 월송(月松) 등이 중건하였다. 1903년(광무 7) 익준(益俊)이 승당을 지었으며, 1932년 칠성각을 세웠다.

    특히 불상에는 보화(寶貨)가 많이 들어 있다 하여 일찍이 도굴꾼들에 의해 훼손된 적이 있었다. 그 불상의 복장(腹藏)에는 효령대군(孝寧大君)의 원문(願文)과 사경(寫經) 및 인경(印經)이 수백 권이나 들어 있었고, 고려판 화엄경소(高麗板華嚴經疏) 등 보기 드문 서적도 몇 가지 있었다고 한다. 그 중 일부는 도난당하였고, 나머지는 건물과 함께 불타 버렸다고 한다. 1986년 요사로 사용 중인 선리수도원(禪理修道院)을 건립하였고, 1989년 천왕문을 세웠다. 1991년 범종각을 짓고, 1996년 화엄학림(華嚴學林) 강당과 학사를 건립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황]

    현존하는 당우로는 보광전(普光殿)을 비롯하여 약사전·명부전·칠성각·선리수도원·누각·천왕문·화엄학림강당과 학사,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에 극락전과 부속 건물이 있다. 당우 가운데 보광전 안에는 조선시대에 조성된 비로자나불좌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베트남에서 이운해 왔다는 종이로 만든 보살입상이 있고, 범종이 걸려 있다. 종은 1694년(숙종 20)에 만든 것으로 종을 치는 자리에 일본의 지도 비슷한 무늬가 있다. 이것을 치면 일본이 망한다는 소문이 떠돌아서 일제 말기에는 주지가 문초를 당하기도 하였다.

    이 절에 소장된 중요문화재로는 백장암삼층석탑(국보 제10호)을 비롯하여, 실상사수철화상능가보월탑(實相寺秀澈和尙楞伽寶月塔, 보물 제33호), 실상사수철화상능가보월탑비(보물 제34호), 실상사석등(보물 제35호), 실상사부도(보물 제36호), 실상사삼층석탑(보물 제37호) 2기가 있다. 그리고 실상사증각대사응료탑(實相寺證覺大師凝寥塔, 보물 제38호), 실상사증각대사응료탑비(보물 제39호), 백장암석등(보물 제40호), 실상사철제여래좌상(보물 제41호), 백장암청동은입사향로(百丈庵靑銅銀入絲香爐, 보물 제420호), 실상사약수암목조탱화(實相寺藥水庵木彫幀畵, 보물 제421호) 등이 있다. 또한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45호로 지정된 극락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로서 1832년에 의암이 중건하면서 부도전에서 극락전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내부에는 지불(紙佛)인 아미타여래좌상과 1985년에 조성한 아미타후불탱이 봉안되어 있다.

    이 중 실상사삼층석탑은 상륜부가 원형 그대로 남아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걸작품으로 불국사 석가탑의 상륜부를 복원할 때 이 탑을 본떠 복원하기도 하였다. 1980년 2월 2일 도굴꾼에 의하여 크게 파손된 것을 문화재관리국의 기술진들이 원형대로 복원하였다. 또한 약사전에 봉안되어 있는 철제여래좌상(보물 제41호)은 수철이 4,000근의 철을 들여 주조한 통일신라시대의 걸작품이다. 이 불상은 현재 지리산 최고봉인 천황봉과 일직선상에 있는데, 우리나라의 정기를 일본으로 보내지 않겠다는 호국적 이념에서 이곳에 안치했다고 한다.

    이 밖에도 절에는 실상사위전개량성책(實相寺位田改量成冊,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88호)이 있으며, 절 입구에는 상원주장군(上元周將軍, 중요민속자료 제15호)을 비롯한 석장승들이 남아 있어 장승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가 된다. 절 일원이 사적 제309호로 지정되어 있다.

    실상사는 1998년에 문을 연 귀농학교로도 유명하다. 당시 주지스님이었던 도법스님이 만든 학교로서 1997년 우리나라에 IMF로 인해 실직자가 된 사람들 가운데 농촌으로 돌아와 정착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역할을 하였다. 이곳에서는 모든 작물을 유기농으로 재배하는 등 생태환경운동의 한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현재 인드라망생명공동체라는 이름으로 지리산 실상사를 중심으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