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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인사 풍경
    사찰 풍경 2013. 12. 20. 23:27

    2013년 12월 14일 찾은 가야산 해인사 풍경입니다.

     

     

     

     

     

     

     

     

     

     

     

    조주선사께서 해제 때 만행을 하다가 어떤 암자에서 문을 두드리며 말하였습니다.
    “누구 있는가? 누구 있는가?”
    암주가 문을 열면서 즉시 주먹을 내미니 선사가 말하였습니다.
    “물이 얕아서 배를 댈 수가 없구나.”
    그리고는 바로 그 암자를 떠났습니다.
    또 다른 암자에 가서 문을 두드렸습니다.
    “누구 있는가? 누구 있는가?”
    이 암주도 역시 주먹을 내밀거늘 선사가 말하였습니다.
    “잡을 줄도 알고 놓을 줄도 알며, 죽일 줄도 알고 살릴 줄도 아는구나.”
    그리고 그 암주에게 절을 한 후 선사는 바로 그 암자를 떠났습니다.

    조주선사께서 두 암주에게 ‘있느냐?’고 물었고 암주 모두는 주먹을 내밀었습니다. ‘암주가 있느냐’는 말은 문안의 인사말이 아니라 본래모습인 주인공을 상실하지 않고 자유자재한 경지에서 살고 있는가 하고 묻는 말입니다. 두 암주가 주먹을 드러낸 것은 불법의 경지에 대한 자기의 안목을 드러내 보인 것 입니다. 그런데 두 사람의 암주가 똑같이 주먹을 쥔 손을 내밀었는데, 조주선사께서는 한 쪽은 인정하고 다른 한쪽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 까닭이 무엇입니까? 똑같은 질문에 똑같은 대답을 하였는데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된 것입니까?

    만약 해제납자들이 두 암주의 우열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아직 참선수행의 안목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만약 두 암주가 우열 없이 동등하다고 할지라도 그 역시 참선수행의 안목이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화두에 대하여 꼭 들어맞는 올바른 한마디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곧바로 조주선사의 자유자재한 법문을 체득하여 지혜의 작용을 일으키기도 하고 번뇌 망념을 떨쳐버릴 수 있는 대자유를 얻을 것입니다.

    금일 해제대중은 한 철 동안 지은 살림살이로 여기에 대하여 분명한 한 마디를 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만약 한철살림살이로 제대로 된 한마디를 할 수 없는 납자라면 만행길에 이 화두도 함께 걸망 속에 짊어지고서 같이 다녀야 할 것입니다.

    불조명맥(佛祖命脈)이요

    열성겸추(列聖鉗鎚)로다

    환두이성(換斗移星)이요

    경천위지(經天緯地)로다.

    불조의 명맥이요
    많은 선지식들의 쇠망치질이로다
    북두가 옮겨가고 별자리마저 바뀌니
    하늘을 거머쥐고 땅을 주름잡는구나.

    -2005년 하안거 해제법문-

     

     

     

     

    조계종정·해인총림 방장 법전 스님 -

    백운영리소가가白雲影裏笑呵呵하니
    양수지래부여타兩手持來付與他로다
    약시금모사자자若是金毛獅子子인데
    삼천리외견요와三千里外見訛하리라
    흰구름 그림자 속에서 깔깔대고 웃으니
    두 손으로 들고 와서 그대에게 전해 주었네.
    만약 황금털을 가진 사자새끼라면
    삼천리 밖에서도 어려운 곳을 알아차리리라.

    금우金牛 화상은 항상 공양 때가 되면
    밥을 들고서 큰방 앞에 가서 춤을 추고 깔깔 웃으며 말했습니다.
    “납자들이여! 밥을 먹으러 오라.”
    뒷날 어떤 납자가 장경혜릉長慶慧稜 선사에게 와서 물었습니다.
    “고인이 말한 ‘납자들이여! 밥을 먹으러 오라’고 한 뜻이 무엇입니까?”

    “마치 재齋를 마친 후에 경하慶賀하며 축원하는 것과 같느니라.”

    나중에 그 납자가 또 대광거회大光居誨 스님에게 물었습니다.
    “장경이 재齋를 마친 후에 경하하며 축원하는 것과 같다고 한 뜻이 무엇입니까?”
    그러자 대광 스님이 춤을 추었습니다.
    그러자 그 납자가 대광 스님에게 절을 하였습니다.
    “너는 무엇을 보았기에 나에게 절을 하는가?”
    이에 그 납자가 춤을 추었습니다.
    그러자 대광 스님이 말했습니다.
    “이 앵무새같이 흉내나 내는 멍청한 놈아!”

    아침에는 죽을 먹고 한낮에는 밥을 먹는 것이 우리의 살림살이입니다.
    이는 해제이건 결제이건 봄이건 가을이건 변함없는 선가의 일상생활이기도 합니다.
    조사선祖師禪의 생명은 일상성입니다.
    그래서 늘 마조馬祖 선사는 ‘평상심平常心이 도道’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고인들은 공양을 앞에 두고서도,
    또 함께 먹으면서도 서로의 기봉機鋒을 겨룰 때는 한 치의 양보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 금우 스님이었기에 같은 마조회상에서 공부하고 있던 방 거사龐居士에게도 한소리를 합니다.

    금우 스님이 밥을 나누는 진지進旨를 하면서 방 거사에게 물었습니다,
    “마음에 경계를 일으켜 밥 받는 것을 이미 유마 거사가 꾸짖었다.
    가섭 존자가 부자를 버리고 가난한 집만 복을 짓게 해주려고
    골라서 탁발을 다닌 이 이치를 벗어난 거사는 만족스러운가?”
    “그것을 꾸짖은 유마가 어찌 본분종사가 아니겠는가?”
    이에 선사가 물었습니다.
    “그 일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그러자 거사가 말했습니다.
    “밥이 입가에까지 왔다가 다시 남에게 빼앗겼도다.”
    이에 금우 스님이 얼른 진지進旨를 계속하였습니다. 그러자 방 거사가 말했습니다.
    “한 마디도 필요치 않구나.”

    반야의 보검을 종횡으로 휘두르니 그 칼날 앞에 언어가 끊어지고, 밝은 거울을 높이 걸어두니
    언구言句 속에서 비로인毘盧印이 나옵니다. 평온하고 고요한 경지에서 옷 입고 밥 먹으니,신통력 부리는 곳에 무엇 때문에 머물겠습니까? 이런 이치를 분명히 알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만약 이 이치를 제대로 밝히지 못한다면 그때마다 삼십방망이를 맞아야 할 것입니다.

    단하천연丹霞天然 선사가 어떤 납자에게 물었습니다.
    “어디서 오는가?”
    “산 밑에서 옵니다.”
    “밥을 먹었는가?”
    “먹었습니다.”
    “그대에게 밥을 준 이가 안목眼目이 있던가?”
    이에 그만 그 납자는 말문이 막혀 대꾸하지 못했습니다.

    설봉雪峰 스님이 동산洞山 선사 회상에서 별좌소임을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동산 스님이 물었습니다.
    “별좌는 무슨 도리를 얻었길래 날마다 죽과 밥을 먹는 시간이 똑같은가?”
    “별을 보고 달을 봅니다.”
    “그렇다면 갑자기 날이 흐리고 비가 오면 어찌 하는가?”
    이에 그만 설봉 스님은 말이 막혀 버렸습니다.

    본래 거울(古鏡)은 언어 이전이기 때문에 조금도 조작이 필요치 않다고 하였습니다.
    참공부인이라면 평소에도 격외格外에서 자유자재自由自在해야만
    본분종사本分宗師라고 할 수 있을 것이며, 언어에 의거한다면 허물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흉내만을 내다가는 이렇게 눈 밝은 선지식의 점검에 걸려들기 마련입니다.

    석제石梯 화상이 어느 날 시자가 발우를 들고 공양간에 오는 것을 보고는 불렀습니다.
    “어디를 가는가?”
    “공양하러 갑니다.”
    “내가 어찌 공양하러 가는 줄을 모르겠는가?”
    “그 밖에 무슨 말씀을 해야 합니까?”
    “나는 그대에게 본분사를 물었을 뿐이니라.”
    “본분사라도 역시 공양간에 가서 밥을 먹는 일입니다.”
    이에 선사가 말했습니다.
    “과연 나의 시자답도다.”

    조주종심趙州從 선사에게 어떤 납자가 물었습니다.
    “제가 총림에서 첫철입니다. 스님께서는 잘 가르쳐 주십시오.”
    “죽을 먹었는가?”
    “먹었습니다.”
    “그러면 바루를 씻어라.”
    이에 그 스님은 그 자리에서 활연히 깨쳤습니다.

    밥만 축내는 납자가 아니라 공부하는 납자임을 눈 밝은 이는 알아봅니다.
    ‘금우반통金牛飯桶’ 공안의 주인공 금우 선사는 마조 선사의 법을 이은 대선지식입니다.
    그는 점심 때가 되기만 하면 공양통을 들고서 승당 앞에서 춤을 추고서 껄껄대며 말하였습니다.
    “납자들이여! 밥을 먹어라.”
    이같은 소리를 하루이틀도 아니고 줄곧 20년 동안 하였던 것입니다.
    언제나 공양 때가 되면 항상 종을 치고 목탁을 두드리는 것도 밥 때를 알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그 시간에 공양통을 들고 와서 숱한 재주를 피우고 있는 것이겠습니까?
    금우 스님이 미친 것입니까? 아니면 법문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이렇게 해서 도대체 무엇을 하려고 한 것입니까?
    이에 대하여 장경 스님은 ‘마치 재齋를 마친 후에 경하慶賀하며 축원하는 것과 같다’고 하였고,
    대광 스님은 그 말을 듣고서 춤을 추었습니다.
    그렇다면 장경과 대광이 고인의 뜻을 제대로 함께 밝힌 것입니까?

    금우 스님이 손수 밥을 짓고 춤을 추면서
    사람들에게 밥을 먹으러 오라고 한 뜻이 참으로 무엇인지 알겠습니까?
    이번 철의 결제대중은 정진할 때는 말할 것도 없고 발우를 펴고 공양을 하면서도
    늘상 이 화두를 놓치지 말고 항상 참구하시기 바랍니다.

    대이공양도승당待伊供養到僧堂하야
    늑하삼권막교량肋下三拳莫較量이어다
    보청무시제박수普請舞時齊拍手하니
    불연과립막승당不然顆粒莫承當이리라
    밥을 들고 큰방 앞에 이르렀을 때
    옆구리를 세 번 때려 분별치 못하도록 하라.
    여럿이 춤출 때 모두가 손뼉을 쳐라
    그렇지 않으면 낟알 한 톨도 얻어먹지 못하리라.□

    2547(2003) (음)10.15 동안거 결제일

     

     

     

     

     

    진정한 말후일구(末後一句)는 무엇인가

                   

                              

    올올저두탁발귀 兀兀低頭托鉢歸하니

    방관쟁면소희희 傍觀爭免笑嘻嘻리오

    조지불요명종고 早知不要鳴鐘鼓인데

    일등교이차인기 一等敎伊且忍饑하라


    혼자서 고개 숙여 발우를 든 채 돌아가니

    곁에서 보는 이가 어찌 비웃음을 참으랴.

    일찍이 종과 북을 두드릴 일이 없을 줄 알았다면

    그에게 배고픔을 참도록 하는 것이 제일일세.


    덕산스님이 어느 날 공양이 늦어지자 손수 발우를 들고서 법당 앞에 이르렀습니다.

    그러자 공양주 소임을 살고 있던 설봉스님은 이 광경을 보고서 말했습니다.

    “저 늙은이가 종도 치지 않고 북도 두드리지 않았는데 발우를 들고서 도대체 어디로 가는 거야?”

    그 말을 들은 덕산스님은 머리를 푹 숙이고서 곧장 방장실로 되돌아갔습니다.

    설봉스님과 함께 살던 암두스님은 이 일을 전해 듣고서 또 한마디를 보태는 것이였습니다.

    “보잘 것 없는 덕산이 말 후구末後句도 모르는구나.”

    그러자 덕산스님은 그 말을 듣고서 암두스님을 불러 물었습니다.

    “그대가 노승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냐?”

    그러자 암두스님은 은밀히 자신의 뜻을 덕산스님에게 열어 보였습니다.

    이튿날 덕산스님은 법상에 올라 법문을 하는데 그 전의 법문과는 확연히 달랐습니다. 그러자 암두가 큰방 앞에서 손뼉을 치고 크게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저 노장이 이제 겨우 말 후구를 알게 되었구나. 이 이후로는 천하 사람들이 그를 어떻게 할 수 없으리라. 그러나 다만 삼년뿐이로다.”  


    예로부터 ‘조사祖師중의 조사’라고 한다면 임제와 덕산 두 선사를 거론함은 재론의 여지가 없는, 종문의 구성원 모두가 인정하는 대선지식이기도 합니다. 사실 이 두 선사는 실로 천고千古의 안목眼目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 중 덕산 선사 밑에서 두 사람의 큰 인물이 나왔으니 바로 암두와 설봉이라고 할 것입니다. 이 세 사람이 주고받은 높고 깊은 법문인 ‘덕산탁발화德山托鉢話’의 주인공들입니다.


    이 공안은 얼마나 어려운지 중국의 천하총림에서도 논란이 분분했던 법문입니다. 이는 어지간한 선지식은 동문서답을 하기 마련인 참으로 만만찮은 화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덕산탁발화는 천하가 인정하는 명안종사明眼宗師라야 거량을 했지 소견이 얕은 이들은 감히 입조차 대지 못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해동에도 신라 말 도의국사의 구산선문 이래 선종이 뿌리 내린지 천 수백 년이 지났지만 근세이전까지는 이 법문을 대중에게 내보인 이가 그리 흔하지 않았습니다. 근세에 와서 성철노사 향곡선사가 대중에게 거량하신 것을 이 산승이 말석에 앉아서 들은 바 있습니다. 그러니 이 법문이 얼마나 고준한 것인가 하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것입니다.


    이 공안은 설봉의 한마디에 덕산이 고개를 숙이고 얼른 방장실로 되돌아갔다고 한 부분도 참구해야 할 대목입니다. 암두가 은밀히 그 뜻을 사뢰었다고 하는데 도대체 무엇을 말씀드렸는지 그것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또 덕산이 가만히 물러갔다고 하였는데, 가히 서로 만나 아무 것도 드러내지 않았지만 그런 속에서도 서로 알아차린 것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덕산이 다음날 상당하여 내린 법문이 그 이전 것과는 다르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말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는 잘못으로서 잘못을 보태는 격이라고 할 것입니다. 암두가 승당 앞까지 내려와서 손뼉을 치고 크게 웃으면서 이르되, “저 노장이 말 후구를 알아서 다행이다. 뒷날 천하 사람이 아무도 그를 대적하지 못하리라”고 한 것은 결코 후학들을 덮어 누르는 말로 생각하지는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다만 삼년뿐이로다”라고 했는데  과연 그의 말대로 3년 후에 덕산스님은 입적했습니다.


    삼년 전이라면 덕산은 81세요, 설봉은 41세이며 암두는 35세가 됩니다. 설봉과 암두의 사제지간에서 일어난 선문답은 제일 우직한 설봉에게 불법의 궁극적인 깨달음을 이루도록 제시한 한마디의 법문, 최종적인 불법의 말후일구를 깨닫게 하기 위한 덕산과 암두의 방편적 대화로도 볼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암두는 뒷날 설봉을 회고하면서 “설봉은 나와 함께 똑같은 경지에서 살았지만, 나와 똑같이 죽지는 않았다. 안타까운 것은 그가 말 후구를 말하지 못했다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설봉은 암두보다도 6살 위이지만 깨달음은 암두의 제시提示로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설봉이 깨닫게 된 기연을 ‘오산성도鰲山成道’라고 합니다.

    덕산 입적 후에 설봉 암두 흠산欽山 셋이서 행각할 때 일입니다. 호남성 예주 오산진에서 악천후로 인하여 길이 끊어지면서 어느 민가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흠산과 암두는 잠을 자고 있었지만 설봉은 한결같이 철야 좌선수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보고 있던  암두가 한 마디씩 던져가며 설봉의 공부경지를 점검하곤 했습니다. 어느 날 암두가 말했습니다.

    “자네는 ‘종문입자 불시가진從門入者 不是家珍’ 즉 문으로 들어온 것은 참된 집안의 보물이 될 수 없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는가. 만약 불법을 크게 드날리려고 한다면 지금까지 배운 모든 불법을 하나하나 모두 자기 것으로 만들지 않으면 안 돼.”

    설봉은 이 말에 크게 깨닫고는 암두에게 절을 올렸습니다.  


    설봉은 구도행각을 통하여 많은 선지식을 참문한 납자로서도 유명합니다. 일찍이 세 번이나 투자산 대동선사를 참방하였고 아홉 번이나 동산양개화상을 참문하면서 수행했다고 합니다. 이를 흔히 삼도투자 구지동산三到投子 九至洞山이라고 뒷사람들은 말합니다. 뒷날 덕산문하에서 수학하여 결국 덕산의 법을 잇게 됩니다. 덕산의 문하에서 설봉은 공양주로서 항상 주걱을 가지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묵묵히 해우소 등 후미지거나 궂은 곳의 청소를 하면서 덕과 복을 쌓아가는 수행자이기도 했습니다.


    덕산탁발德山托鉢 공안에는 4가지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첫째, 덕산선사가 제자 설봉스님의 말 한 마디에 고개를 푹 숙이고 방장실로 되돌아간 부분입니다.

    정말로 대답할 능력이 없었는지, 아니면 또 다른 깊은 뜻이 있는 것입니까?       

    둘째, 덕산선사가 과연 말 후구를 몰랐다고 할 수 있는가 하는 부분입니다.

    말 후구를 모르고서 어떻게 당대의 대선지식이 될 수 있었던가 하는 의문입니다.

    셋째, 암두스님이 은밀히 자신의 견처를 내보였다고 하는데 도대체 무슨 말을 한 것입니까?

    넷째, 덕산스님이 암두스님의 가르침에 의하여 말 후구를 알았다는 부분입니다.

    그렇다면 제자인 암두스님이 스승인 덕산스님보다 안목이 더 나았다는 것입니까?


    따라서 이 공안은 이렇게 말하거나 저렇게 말하거나 무슨 말을 하건 상관없이 독약과 같아서 상신실명喪身失命할 것이니 부질없는 알음알이로 소견을 달아 조사의 참뜻을 묻어버려서는 안될 것입니다. 사량분별인 유심有心경계는 고사하고 허통공적虛通空寂한 무심無心의 깊은 곳에서도 그 참뜻을 알아차리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오직 최후의 굳센 관문을 쳐부수고 확철히 크게 깨쳐야만 비로소 고인의 입각처立脚處를 제대로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이 공안을 제대로 바로 알기만 한다면 모든 부처님과 조사의 일체공안을 일시에 다 타파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출격장부가 되어 금강보검을 높이 들고서 천하를 종횡무진縱橫無盡하며 살활자재殺活自在할 것이니 이 어찌 통쾌한 일이 아니라고 하겠습니까?


    결제대중들이여!

    산승의 견처로 점검해보니 최초의 일구를 안다면 최후의 일구도 알게 됩니다. 하지만 최후의 일구나 최초의 일구 모두 궁극적인 일구 즉 말 후구는 아닙니다.  이 공안을 제방에서 흔히들 여러 가지로 논해왔지만 다른 부분에 대해선 일체 묻지 않겠습니다.  덕산 삼부자가 주고받은 그 말 후구가 과연 무엇입니까? 어떤 것이 참으로 그 말 후구인가 하는 것을 이번 하안거 결제 한철동안 잘 참구해 보시기 바랍니다.

     

    작각월중계 斫却月中桂하니

    청광전갱다 淸光轉更多로다

    호리구병적 狐狸俱屛迹하고

    사자분금모 獅子奮金毛로다


    달 속의 계수나무 베어내니

    밝은 빛이 더욱 많아짐이로다.

    여우와 살쾡이는 자취를 감추고

    사자는 황금털을 뽐내는구나

     

     

     

     

     

    사입총림혜乍入叢林兮여
    걸개입로乞箇入路로다
    언계수성혜偃溪水聲兮여
    고금독로古今獨露로다
    겨우 총림에 들어왔음이여!
    들어갈 길을 가르쳐달라고 했네.
    여울진 계곡의 물소리여!
    고금에 홀로 드러났도다.

    현사玄沙 선사에게 경청鏡淸 스님이 물었습니다.
    “제가 총림에 갓 들어왔으니 스님께서는 들어갈 길을 제시해 주십시오.”
    “개울의 물소리를 들었는가?”
    “들었습니다.”
    “그리로 들어가거라.”

    현사사비玄沙師備 선사와 경청도부鏡淸道 선사는
    설봉의존雪峰義存 스님의 법을 이었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서로 사형사제지간이 됩니다.
    사비 스님은 어려서 남대강南臺江 위에서 고기를 잡다가
    철이 들 무렵 갑자기 배를 버리고 부용산芙蓉山으로 출가하였습니다.
    늘 짚신을 신었고 납의를 입고서 부용산 한 곳에서만 머물면서 참선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그를 보고서 설봉 스님은 ‘두타頭陀’라고 불렀습니다.
    어느 날 이렇게 물었습니다.
    “어째서 두루 제방을 참방하지 않는가?”
    “달마는 동쪽으로 오지 않았고 2조는 서쪽으로 가지 않았습니다.”
    이에 설봉 선사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사비 스님은 현사 땅에서 법을 펴기 시작했는데
    대중이 서로 이어서 찾아오니 드디어 총림을 이루었던 것입니다.
    경청도부 선사도 그 때 총림대중의 일원이었습니다.

    총림은 풀과 나무가 빽빽하게 자라 어지럽지 않게 서로 붙들어 주는 곳입니다.
    많은 대중이 모여 서로 탁마하면서 정진하는 곳입니다.
    그리고 총림은 능히 모든 이로 하여금 지혜를 나오게 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제방의 모든 결제하는 곳은 총림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조주趙州 스님 회상의 총림대중도 이와 비슷한 질문을 합니다.
    조주 선사에게 어떤 납자가 물었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총림에 들어왔으니 스님께서는 지시해 주십시오.”
    “죽을 먹었는가?”
    “먹었습니다.”
    “바루를 씻어라.”
    이에 그 납자는 크게 깨치게 되었습니다.

    또 한 스님이 조주 선사에게 물었습니다.
    “저는 요즈음에사 총림에 들어와서 잘 모르니 스님께서 가르쳐 주십시오.”
    “총림에 들어오지 않았으면 더욱 모르겠지.”

    조주 스님의 제자 항주杭州 다복多福 선사 역시 총림에 대하여 한마디 해 놓은 게 있습니다.
    다복多福 화상에게 어떤 납자가 물었습니다.
    “어떤 것이 다복 화상의 총림입니까?”
    “한두 그루는 삐딱하나니라.”
    “못 알아듣겠습니다.”
     
       “서너 줄기는 굽었느니라.”

    총림은 용사龍蛇가 혼잡한 곳입니다.
    대중들이 만약 성인은 좋아하면서 범부를 미워한다면
    생사의 바다에서 부침浮沈하게 될 것입니다.
    혹여 총림의 대중이 분주하게 옆사람들에게 배워서 얻으려 한다면
    아승지겁을 지나더라도 생사의 바다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아무 일 없이 총림의 좌복 위에서
    두 다리 꼬고 앉아 있는 편이 나을 것입니다.

    총림에 갓 들어온 경청 스님이 현사 스님에게 들어갈 길을 물으니
    도리어 ‘개울의 물소리를 들었는가’하고 묻습니다.
    ‘들었다’고 하니 ‘그리로 들어가거라’고 합니다.
    과연 들어갈 수 있다면 마음대로 사방 팔방으로 통하겠지만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차라리 총림을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총림에서 석달 전에 결제를 하여 오늘 해제를 하게 되었습니다.
    해제를 하니 산중총림에서 세상총림으로 만행을 떠납니다.
     
     그래서 시방세계가 모두 총림인 것입니다.
    어느 곳이든지 총림 아닌 곳이 없습니다.
    해제는 세상의 총림에서 다시 결제를 하는 것입니다.

    납자기문혜衲子旣聞兮여
    가거가호可車可로다
    종자리입혜從者裏入兮여
    하착하오何錯何誤리요.
    납자가 이미 들었다 함이여!
    수레 소리 같고 두레박 소리 같도다.
    그리로 들어가라 함이여!
    무엇이 틀렸고 무엇이 잘못이랴.□

     

    불기 2547(2003)년 1월 15일(음) 동안거 해제일에

    해인사 방장 법전스님 법문

     

     

     

     

     

     

     

     

     

     

     

     

     

    해인사는 신라 의상대사의 법손인 순응(順應), 이정(利貞) 두 스님이 신라 제40대 애장왕 3년(802) 10월16일 왕과 왕후의 도움으로 창건 되었다.

    해인사에 관한 종합적인 문헌으로 「가야산 해인사고적(伽倻山海印寺古籍)」이 있는데, 이는 해인사의 연기(緣起), 실화(失火)와 중창의 역사, 대장경의 인경(印經)에 관한 여러 사적과 문헌들을 모아 고종 11년(1874)년에 판각한 것이다. 이「가야산해인사고적」에 수록된 문헌가운데 똑같은 이름의 「가야산해인사고적」(고려 태조 26년에 이루어진 것)과 신라 최치원(崔致遠)이 지은 「신라가야산해인사선안주원벽기(新羅伽倻山海印寺善安住院璧記)」의 두 기록은 해인사의 창건에 대하여 비교적 소상하게 전해주고 있다.


    해인사 창건의 참뜻해인이라는 낱말에 응집되어 있다.
    해인이라는 말은 화엄경의 해인삼매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인삼매는 일심법계의 세계를 가르키는 말이며 부처님 정각의 세계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곧 있는 그대로의 세계, 진실된 지혜의 눈으로 바라본 세계, 객관적인 사상의 세계이니 바로 영원한 진리의 세계이다. 해인삼매는 또한 오염됨이 없는 청정무구한 우리의 본디 마음을 나타내는 말이며, 우리의 마음이 명경지수의 경지에 이르러 맑고 투명해서 있는 그대로의 세계가 그대로 비치는 세계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러한 모습을, 한 없이 깊고 넓으며 아무런 걸림 없는 바다에 비유되어 거친 파도 곧, 우리들 마음의 번뇌망상이 비로소 멈출때 우주의 갖가지 참된 모습이 그대로 물속에 비치는 경지를 해인삼매라 하였다. 이러한 여실한 세계가 바로 부처님의 깨달음의 모습이요, 중생의 본 모습이니 이것이 곧 해인삼매의 가르침인 것이다.

    청정도량 해인사, 이곳은 우리들 마음의 고향이다. 그래서 황량한 대지를 방황하는 현대의 이방인들을 다정한 고향의 손짓으로 부르고 있다. 팔만대장경, 높은 탑, 자연의 그윽함이 있다고 그런 것이 아니다. 해인삼매의 한 생각, 맑은 마음 그 거룩한 도량이 바로 해인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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