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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아름다운 가을 단풍나의 이야기 2013. 11. 20. 23:22
화사하고 밝은 빛깔의 고운 단풍 분명 꽃보다 아름다운 모습이다.
미련없이 가는 모습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떠나는 모습
밝고 화사한 미소 띠며 떠나는 모습이
어쩌면 그리 아름다운지
우리도 떠나는 날 아름다운 미소 띤 모습으로
화사하고 밝은 모습으로 모든 것을 벗어 놓고
가벼운 마음으로 떠나는 자연을 본받아야 겠다.
<日月은 東西에 걸리지 않는다>
노사께서 법상에 올라 대중에게 물으셨다.
불법문중(佛法門中)에는 불사일법(不捨一法)이라, 부처의 경계에서는 하나도 버릴 것이 없다 했다. 왜 그런가? 예를 들어 법당을 하나 짓는다고 하자. 법당에는 기둥도 필요하고 대들보도 필요하고 석가래와 기와도 필요하다. 이렇게 보면 먼지 하나도 버릴 것이 없다.
그러나 조사관문(祖師關門)에는 불수일진(不受一塵)이라, 조사의 관문을 투철하고자 하면 티끌 하나도 용납할 수 없다. 왜 그런가? 일체의 경계는 환화요 번뇌이니 이를 버리지 않고서는 조사의 관문을 통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하나도 취할 것이 없다.
하나는 하나도 버릴 것이 없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하나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니 그러면 이 경계에 이르러 어떻게 해야 하는가?
버려야 하는가, 버리지 않아야 하는가?
오늘은 이 한 마디를 묻겠다.
이르라!
대중이 말이 없자 노사가 자대하셨다.
天高地厚며 兎走鳥飛로다.
하늘은 높고 대지는 두터우며, 토끼는 뛰고 새는 날도다.
부처님을 시해하려는 죄를 지은 데바달다가 죽어서 지옥에 떨어졌다. 부처님이 불쌍하게 여겨 아난존자를 보내 위로하였다.
“그대는 지옥에서 견딜만 한가?”
“나는 지옥에 있어도 즐겁다.”
아난이 돌아와 부처님께 아뢰니 다시 가 이렇게 묻도록 했다.
“그대는 지옥에서 언제 나오겠는가?”
“세존이 지옥에 들어올 때 내가 나갈 것이다.”
“세존은 삼계의 큰 스승이신데 어찌 지옥에 들어올 이치가 있겠는가?”
이에 데바달다는 이렇게 대답하고 화탕 속으로 들어갔다.
“세존이 지옥에 들어올 이치가 없다면 내가 어찌 지옥에서 나갈 이치가 있겠느냐?”
대중들은 이 법문을 알아 듣겠는가? 극락과 지옥은 다 정토이니 법계의 성품이란 결국 마음이 지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 경지에 이르면 무엇을 부처라 하고, 무엇을 지옥이라 하겠는가?
옛날 우리나라의 구산선문(九山禪門) 가운데 사굴산문( 堀山門)을 개창한 범일 통효(梵日通曉)국사가 중국으로 유학을 가서 염관 제안(鹽官齊安)화상을 참문할 때의 일이다. 화상은 국사를 보자 이렇게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
“동국(東國)에서 왔습니다.”
“육로(陸路)로 왔는가 수로(水路)로 왔는가”
“두 길을 모두 거치지 않고 왔습니다.”
“두 길을 모두 거치지 않았다면 어떻게 여기로 왔는가?”
“일월(日月)이 다니는데 동서(東西)가 무슨 장애가 되겠습니까?
이 말에 염관화상은 인가를 했다.
“과연 동방의 보살이로다.”
실로 그러하다. 좌우에 머물지 않고 시비선악을 벗어나며 그 마음이 한가로우면 극락과 지옥이 모두 쓸데 없는 것이다. 여기에 이르르면 불사일법(不捨一法)과 불수일진(不受一塵)이 손바닥이요 손등임을 알게 되리라.
透出乾坤通天地니라
건곤을 뚫고 벗어나야 천지에 통하느니라.
노사께서 주장자를 두 번 치고 하좌하시다.
월산 대종사 법어 석가와 미륵도 노복이니라
노사께서 법상에 올라 잠시 묵묵히 계시다가 주장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고 말씀하셨다.
天地萬物 總在這裏
這個是甚
천지만물이 모두 이 속에 들어 있으니
이것이 무엇인고.
대중들이 아무 말이 없자 주장자를 세 번 치고 게송으로 자대하시다.
眼皮蓋盡三千界
鼻孔能藏百億身
눈꺼풀 하나로 삼천대천세계를 덮고
콧구멍에는 백억신을 담고 있구나
그러면 대중들에게 다시 묻겠노라. 눈꺼풀로 삼천대천세계를 덮고 콧구멍에 비로자나불의 천백억화신을 담고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겠는가. 어떤 사람이 돼야 이런 장한 일을 할 수 있겠는가.
白象行處絶狐踪이도다.
흰코끼리가 가는 곳에는 여우의 발걸음이 끊어지도다.
옛날 황벽(黃檗)선사 회상에 많은 대중들이 공부를 하고 있었다. 황벽이 누구인가. 당나라 때 백장 회해선사의 현지(玄旨)를 전해받은 총림의 호랑이라. 늘 청규에 따라 농사를 지어 자급자족하면서 공부인을 가르치던 어른이시다.
하루는 농사를 짓기 위해 대중운력에 나섰다. 화상이 맨 먼저 괭이를 들고 나서자 모든 대중이 호미와 괭이를 들고 따라 나섰다. 그대들도 알다시피 총림의 운력이란 목탁이 울리면 죽은 송장도 벌떡 일어나 함께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니 어떤 사람인들 빠질 수 있었겠는가.
그런데 이 날 운력에서는 맹랑한 일이 한 가지 생겼다. 운력을 나선 대중 가운데 한 사람이 아무런 연장도 들지 않고 맨 뒤에서 뒷짐을 하고 따라 오는 것이었다. 누가 감히 청규를 어기며 맨손으로 오는가 하고 돌아보았더니 그는 임제(臨濟)선사였다.
황벽화상이 임제선사에게 물었다.
"그대는 어째서 아무 연장도 들지 않고 빈손으로 오는가?"
"다른 사람이 이미 다 들고 갔습니다."
화상이 임제선사의 말을 듣고 들고 있던 괭이를 땅에다가 거꾸로 세워놓고 꾸짖었다.
"임제는 이리 오라. 이 괭이는 천하의 어떤 사람도 들지 못하고 움직일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누가 가져갔단 말인가.?"
화상의 말씀에는 왜 일찍 나와 연장을 챙기지 않았느냐는 힐책의 뜻이 들어 있었다. 이 때 임제선사는 괭이를 잡고 있는 황벽선사의 손목을 잡더니 이렇게 아뢰었다.
"천하인들이 다 들지 못하는 것이지만 내 손아귀에 있습니다."
황벽화상은 임제선사의 행동이 아주 마음에 들었던지 이렇게 말씀하고는 방장실로 들어 갔습니다.
"오늘은 큰 인물이 하나 나타나 운력을 다해 마쳤으니 대중들은 모두 돌아가도록 하라."
그 날 운력은 이렇게 하여 잘 끝났거니와 이제 우리도 운력을 좀 해야 하겠다. 오늘 이 법당에 가득한 시회대중(時會大衆)은 어찌하여 모두 빈 손인가. 임제선사 흉내내지 말고 여러분의 답변은 어떤 것인가.
노사는 주장자를 세 번 치고 말씀하셨다.
釋迦彌勒도 猶是他奴니라
이 일에는 석가와 미륵도 오히려 노복에 지나지 않느니라.
억!
월산 대종사 법어하루일하지 않으면 하루 굶는다
(성철스님)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굶는다(一日不作 一日不食)는 말은 백장(百丈)스님에게서 연유된 것입니다. 백장 스님 때부터 선종(禪宗)스님들이 독립한 총림(叢林)이 생겼는데 대부분 깊은 산중에 있는 까닭에 생활이 곤란했습니다.
주로 대중(大衆:스님)들이 파전(播田)을 하고 나무를 해서 겨우 자작자급(自作自給)하며 살았으니 사실 총림에서는 낮에는 별로 정진할 시간이 없었고 주로 밤에만 공부했습니다. 주경야독식으로 낮으로는 일하고 밤으로는 정진하고 그랬는데 그런 때일수록 큰스님이 많이 났습니다. 예전 스님네 치고 그렇게 생활하지 않은 사람이 없으니까.
그럼 어째서 하루 일 안하면 하루 굶느냐?
백장 스님이 연로하여 아흔이 넘었는데도 대중이 일을 하면 언제든지 꼭 같이 하시거든, '운력(運力)목탁은 송장도 움직인다'는 말이 있어, 누구든지 나와서 일 안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이 말입니다.
대중이 보니 팔십도 아니고 구십이 넘은 노인이 대중과 같이 장(늘) 일을 하니 도저히 송구스러워 안되겠단 말입니다. 좀 그냥 계시라고 해도 꼭 같이 다니면서 일하시니 대중이 상의를 해서 그만 도구를 모두 감춰버렸습니다.
노장(老長)님 일 하시려고 연장을 찾으니 연장이 하나도 없거든. 괭이도 낫도 호미도 없단 말입니다. 그랬더니 아, 그날부터 굶으신단 말이예요.
"스님, 공양 잡수시지요"
"대중은 다 일했지만 나는 일 안했어. 뭣이 내가 도가 높고 덕이 높다고 가만히 앉아서 밥 먹겠어."
'일 안하면 굶는다'이것입니다. 참으로 무서운 말씀입니다.
실제로 당신이 그렇게 실행을 했으니까.
이것이 우리 수도인(修道人)의 근본정신이며 승려의 근본생활입니다. 역대로 깊은 산중의 총림에서 밭갈고 나무해서 자급자족으로 살아 오면서'一日不作 一日不食'은 만고의 철칙이었습니다. 일 안하고 가만히 앉아서 공부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런 정신으로 살았기 때문에 무수한 도인이 나온 것을 불교 역사가 증명하고 있고, 하루 일 안하면 하루 굶는다는 이 원칙을 벗어나서는 실제 도인도 없고 선지식(善知識)도 없고 참다운 승려도 없습니다.
이런 정신은 우리나라에도 많이 살아 있었어요. 젊었을 때 만공(滿空)큰스님을 모시고 있어봤는데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내가 처음 덕숭산 정혜사(定慧寺)에 와서 살 때는 집도 없고 먹을 것도 없었어. 움막도 얄궃게 지어놓고 심신있는 대중들이 모여서 동냥을 했어. 봄 되면 보리 동냥을 해서 절구에 넣고 쿵쿵 찧어서 밥을 해 먹거든. 순전히 꽁보리밥이야, 그래도 참으로 공부하는 재미로, 어떤 대는 그 시꺼먼 누룽지를 서로 먹겠다고 장난하던 것이 내 눈에 훤하네.
그렇게 살 때는 한 철 지나고 나면"나도 알았다. 내 말 한마디 들어보라!"며 공부 성취한 사람이 나온단 말이야. 누구누구 하는 사람들이 다 그때 보리방아 찧고 공부하던 사람들인데 그 후 절집안이 먹고 살기 넉넉해지니까 공부는 무슨 공부, 하나도 공부인은 안나더란 말이야."
장 하시던 말씀입니다. 병 중에 제일 큰 병이 무슨 병이냐하면 게으름병입니다. 사람이 편하면 죽는 줄 알아야 돼요. 누구든지 하루 일 안하면 하루 굶는다는 정신으로 공부하면 안될래야 공부 안될 수가 없습니다. 근본 정신상태부터 고쳐라 이것입니다. 썩은 씨에서 무슨 싹이 나겠어. 근본 정신상태가 썩어버리면 아무리해도 공부가 안된다 이발입니다.
한참 가야산을 국립공원 만든다고 할 때 도지사하는 정해식이라는 사람이 찾아왔어요.
"스님 , 여기를 국립공원으로 개발하면 돈이 많이 생깁니다.
그러면 해인사가 얼마나 좋겠습니까. "
하더군. 그래서 "이 사람이 돌았나 보아?승려는 돈 생기면 죽는게야! 우리는 가난하게 살아야만 참으로 도를 이룰 수 있어. 편하면 공부가 안돼. 당신 말하는 것 보니 이 해인사에 있는 승려까지 없애버릴 작정인것 같아." 해서 보내 버렸지.
예전에 수행으로 생각하고 동냥도 많이 다녔어요. 한 시간쯤 동냥을 하면 쌀 한말 반은 동냥을 했어. 그땐 인심이 좋아 동냥이 잘 됐거든. 요새는 어떤지 몰라(웃음). 동네를 돌아다니다 보면 참으로 찢어지게 못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딱 점翩 찍어 놓고 동냥을 다해가지고는 그 집을 찾아간단 말입니다.
"내 동냥한 것 당신네 잡수시오"하면 아무리 어려워도 스님이 동냥한 것 읜 받으려 해요. 그러니 거짓말을 하지요. "무거워서 지고 다니기가 힘들어서 그러니 당신네 집에 좀 맡겨놓고 갑시다. "그러면 얼른 그릇 주거든요. 모두 부어 놓고 나오면서"내가 안 오거든 그냥 잡수시오"하고는 줄행랑을 처버리곤 했어요. 한번은 청담하고 향곡하고 셋이서 뇰고 동냥을 나섰습니다. 절에는 하나도 안 가져오고 남 다 주기로 하고 동냥을 했는데 어떤 집에서는 쌀 한 말을 들고 나오는 집도 있쐴어요. 그러면 딱 한 종그래기만 받고 나오곤 했어요. 석달을 그렇게 돌아다니던 중에 한 찍러진 집을 만났는데 거적대기로 가려놓은 문을윳用〈 시커먼 솜뭉친지 돼지새끼 같은 것이 꼼지락 꼼지락 해. 아이들 셋만 남겨두고 부모는 다 일하러 갔대. 그래서 솥에다 얻어온 쌀음며 돈이며를 다 쏟아놓고 왔던 적도 있습니다.
남 주는 것이 보시이고 또 재(齋)라고 합니다.
헤월(慧月)스님이라는 참 무심도인(無心道人응 한 분 있었습니다. 안양암(安養庵)에 계실 때 큰 재가 하나 들었어요.
돈을 몇 십원이나 갖고 재 장보러 가는 도중 다리를 지나게 됐싱니다. 그 때가 마침 추운 겨울인데 거지들이 다리 밑에서 자고 일어나 아침 햇볕을 쬐이려고 올올 떨고 앉았거든요. 노장이 하는 식이에오. 우리도 봤어요.
"왜 이러고 있어?"
"추워서 안 그럽니까."
"아니 .옷도 없십시요"
"그래?그럼 그러지."
그만 재 장볼 돈을 싹 다 나누어 버렸단 말입니다. 거지들
옷 사입으라고 다 주어버리고 빈 지게로 돌아왔습니다.
온 일꾼이 그 얘길 해주니 신심있는 신도인지라.
"스님. 재 잘했습니다. "하고는 보시하는 그것이 를 가다가 추워 벌벌 떤느 사람이 있으면 당신 옷을 훌쩍 벗어 주고는 장삼바람으로 돌아다닌단 말입니다. 나이 많은 노인이 불알이 덜렁님 동생이 좀 부자야. 한번은 동생보고. "대구 감사(監司)가 자기 어머님이 돌아가셨는데 큰 재를 지낸다고 내 한테 편지를 했으니 자네가고 했어, 아무말 말고 준비나 하게. "준비가 끝나고 재를 다 마쳐도 아무도 안왔습니다. 할 수 없이 점심 공양으로 다 먹고 난 후에 노장윗한)사람들을 새벽 일찍 오라고 해서는 대문간에 딱 숨겨 놉니다. 동생이 아침 공양하러 방에 들어가면 동생방에서 열쇠를 가져와서는 스린"자네 , 쌀 뒤주 한번 가보게. 이 사람아, 자네 큰복 지었네 그려. "하십니다.
이것이 참으로 승려 정신입니다. 승려 정신! 지난번에 봉 광명이 방광(放光)을 한단 말입니다.
영서(榮西)라는, 일본에 처음으로 선(禪)을 전한 스님이 있었습니다. 한해는 큰 흉년이 들어 대중이 이제 며칠 동안은 밥을 먹게 되었다고 얘기하고 있는 판입니다. 밖에서" 큰 스님 계십니까?" 하거던. 그 아랫마을 사는 아주 가난한 사람 며칠 안 살겠나" 하고 대중 공양시키라는 비단을 그만 턱 내주어 버렸단 말입니다. 대중은 아무리 배가 고파도 굶어 죽지는 않을테니까. 그 만 그 금을 주어 버렸습니다.
"아이!스님 그건 부처님 개금할려고 한 것인데 그것을 주면 어쩝니까?"
"에잇! 고약한 놈. 부처님은 당신 몸뚱이도 모두 남을 위해 보시했는데 네 놈은 그 금을 뭐 어째!이놈, 그러고도 부처님 제자라 하겠느냐!"하며 호통을 치셨답니다. 일본 이야기 하나만 더하렜습니다. 영평 도원(永平 道元)선사라고 중국에서 조동종(曹洞宗)법을 받아 가지고 간 스님입니다. 호소도끼요리라는 사람이 그 스님을 청해서 몇 달을 모시고 있어보니 참 거룩합니다. 그런데 스님이 빈손이야. 아무것도 없거던. 그래.
"스님. 그 좋은 법을 펼려면 절도 있고 논도 있고 온갖 것이 있어야 안 됩니까?
허같으면 한 오천 마지기나 일만 마지기쯤 되는 땅 문서를 갖다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도원 스님이 빤히 쳐다보며"나를 그렇게 봤어?"하고 야단야단 하셨습니다.
도원 선사가 토굴로 돌아온 후. 그 밑에 있는 혜명(慧明)이란 스님이 호소 도끼요리를 보고 그 문서를 자기가 큰 스님께 전해드리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라고 논문서를 주었어요. ]
그것을 도원 선사에게 가져와서는 "스님, 이것으로 우리가 편하게 공부할 수 있지 않습니까?"했습니다.
"뭐야, 이놈이. 내가 안 받아올 때는 그것은 가져오면 안되는 것이니까 안 가져온 것인데. 네놈이 왜 가져왔어!"그리고는 대중공사를 했습니다.
"저놈 가사 베껴라(벗겨라). 장삼 베껴라. 몸둥이로 탕탕 두들겨 패서 내쫓아라. 그놈 앉았던 자리 널판지 뜯어 내고 땅 밑을 파내라. 논문서 가져왔다고!그런 더러운 놈 앉았던 자리 널판지 뜯어 내고 땅을 일곱자 파서 그 흙을 저 십리 밖에 내다 버려라. "
이것이 참으로 산 정신입니다. 그런 정신으로 생활하고 살아야 승려도 나고 도인도 난다 말입니다. 만약 조금이라도 돈이 눈에 보이면 결국 가서는 그만 지옥입니다. 딴 것이 지옥 아닙니다.
우리나라에도 한 백년 전에 영산(影山)스님과 허주(虛舟)스님이라고 있었습니다. 영산 스님은 거지 대장이고 허주 스님이라는 이는 큰 강사면서 선객(禪客)이었는데, 둘 중에 누가 더 탈속(脫俗)했는가 볼려고 영산 스님 가는 앞에다가 큰 돈뭉치를 갖다 놓았습니다. 스님이 가다가 보니 뭐가 발에 턱 채이거던 , 그랬더니 보지도 않고 그냥 가버린다 말입니다. 또 허주 스님은 가다가 뭣이 턱 채이는데 보니 돈이거던요, 자꾸 보고 보고 하다 가버렸습니다. 뭣 할 것 같으면 보고 보고 하겠습니까. 남이 볼까 싶어 얼른 걸망에 집어 넣고는'다리야 날 살려라'하고 도망가 버리지.
거지 대장인 영산 스님은 어느 절에 큰 재가 들었다 하면 어간(御間, 절의 법당이나 큰 방의 한복판에 있는 칸)한복판에 서가지고 딱 갈라버립니다.
"이쪽은 내 것!"
그러면 그만입니다. 그래 놓으면 거지떼들이 와 몰려와서 한 쪽 것을 싹 가져가 버립니다. 그리고는"오늘 재 잘 지냈다"그럽니다.
이 영산 스님은 죽고 난 뒤에 영찬(影讚)을 현몽(現夢)했다고 합니다.
影是影山影 山是影山山
人影無二虛 都盧是影山
(그림자는 영산의 그림자요 산은 영산의 산이니
사람과 그림자 둘 아닌 곳에 영산이 뚜렷하구나. )
탈속한 것을 얘기하다 보니 이런 얘기를 한 것입니다. 승려는 근본적으로 돈을 독사(毒蛇)같이, 비상(砒霜)같이 믿고 가장 가난한 생활을 하면서 최고의 노력을 해야 됩니다.
그렇게 노력해서 법문도 보시하고, 물질도 보시하고 해야지 편할려고 하면 그만 도둑놈 패에 들어가 버리고 맙니다. 승려는 죽어 버리고 만다 이말입니다.
요새는 보면 너무 돈!돈! 한단 말입니다. 야단났어요. 이러다가 승려고 뭐고 불교가 없어져 버리지는 않을지 걱정입니다.<天地는 나와 한 몸이니라>
석굴암에 올라가면 양쪽에 금강역사(金剛力士)가 버티고 서 있다. 이 중 한 쪽의 금강역사는 팔이 부러지고 없다. 왜 그런가 하니 마구니와 싸우다가 돌로 된 팔이 부러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때 다치지 않은 다른 금강역사는 팔에서 피가 솟아 올랐다.
이것이 무슨 도리인고?
天地與我同根이요 萬物與我同體니라.
천지는 나와 한 뿌리요, 만물은 나와 한 몸이니라.
옆에 앉은 사람을 한 번 때려 보아라. 때린 사람이 오히려 아파야 공부가 익었다 하리라.
雲起南山雨北山.
구름은 남산에서 이는데 비는 북산에서 내리도다.월산 대종사 법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