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수사(雲水寺)는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가야국 때 창건되었다고 하지만 이를 뒷받침해 줄 만한 사료나 유적이 남아 있지 않다. 조선 정조 때 제작된 『여지도서(輿地圖書)』에 따르면 범어사(梵魚寺)와 함께 부산을 대표하는 사찰로 불릴 만큼 큰 도량이었다고 한다.
활동 사항
산이 높고 물이 깊다고 하여 운수사라는 절 이름이 지어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창건 이래로 많은 선승들의 수행 장소로, 또는 기도의 장소로 자리매김하였고 최근에는 부산 시민들이 정신적 의지처로 많이 찾고 있다.
특히 동체대비(同體大悲) 사상의 실현을 위해 화명 종합 사회 복지관을 건립하여 각종 복지와 문화 사업에 앞장서고 있을 뿐 아니라 신도들의 자질을 높이기 위해 불교 대학을 건립하여 함께 배우고 함께 실천하는 불교 대중화 운동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최근에는 어려운 이웃들과 아름다운 인연을 만들기 위한 각종 후원회를 설립하여 사부 대중 모두가 사회의 그늘진 곳을 찾아 따뜻한 정을 나누고 있다.
현황(조직,시설 현황 포함)
운수사 가람의 중심에 있는 대웅전은 사찰의 주전각이다. 정면 세 칸, 측면 세 칸 규모인 대웅전은 조선 중기 이후에 세워졌는데 규모가 크지 않은 건물이지만 사찰의 주 불전으로서의 장엄과 격식을 갖춘 건물이다. 부산 지역에 남아 있는 불전 가운데 가장 오래된 불전 중의 하나이며 잘 정제되고 뛰어난 기법을 보여 주는 목조 건물이다. 내부에는 17세기 초반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석가모니 삼존불이 봉안되어 있다. 안뜰 좌우에는 선방과 공양간이 있고, 그 옆으로 용왕각과 삼성각이 있다.
한편 10년이 넘는 불사 끝에 2006년 완공된 대웅보전은 경내 중심지보다 더 큰 규모의 상단 공간에 정면 7칸, 측면 4칸의 규모로 지어졌는데 내부에는 석가모니불상, 약사불상, 아미타불상, 관음보살상, 지장보살상 등 다섯 존상이 봉안되어 있다.
조선 시대에 간행된 『동래부지(東萊府誌)』에서는 운수사에서 들리는 해 질 무렵의 종소리를 뜻하는 운수모종(雲水暮鐘)을 사상의 8경 중 하나로 꼽았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동래성을 함락하기 위해 우회하던 왜군이 운수사를 침범하는 과정에서 종이 사라졌다. 1974년에 범종각과 종을 다시 세웠으나 태풍으로 종각이 유실되면서 종만 대웅전으로 옮겨졌다. 운수사와 사상구청, 부산광역시 등이 범종각을 건립하여 운수사 범종 소리를 되살리기로 하여 범종각 공사에 들어갔으며 2012년 현재 완공을 앞두고 있다.
관련 문화재
운수사에는 부산광역시 보물 제1896호로 지정된 운수사 대웅전(雲水寺大雄殿)과 부산광역시 유형 문화재 제92호로 지정된 운수사 대웅전 석조 여래 삼존 좌상(雲水寺大雄殿石造如來三尊坐像)이 있다.
운수사 대웅전 석조여래삼존좌상의 재질은 조선후기 영남 지역에서 다수 사용되었던 불석(제오라이트)으로, 조선시대에 성행한 목조, 소조 불상과는 다른 이 지역 불상 재료의 특징으로 판단된다.
절대연대는 알 수 없지만 이 삼존불상의 양식을 통해서 17세기 불상 양식을 계승한 가운데 18세기의 도식적이고 평판적인 특징들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렇게 판단된 조성 년대는 운수사에 현존하는 <중수목판기(重修木板記)>의 내용과도 다소 부합되는 사실이어서 더욱 신빙성을 더하고 있다.
삼존불 중 좌협시보살상은 여래형 착의를 한 우협시와는 달리 보살상의 전통적 착의법인 천의를 걸치고 있으며, 팔찌와 같은 형태의 장신구를 양팔에도 착용하고 있는 점에서 조선후기의 다른 여래삼존상과는 구별된다.
운수사 대웅전 석조여래삼존좌상은 불상의 재료와 착의법, 목조로 만들어진 보살상의 보관, 그리고 보살상의 독특한 수인 및 삼존불의 개성적인 얼굴 등에서 조선후기 조각승의 개인 양식 혹은 지역성이 잘 드러난 작품으로 평가되며, 부산·경남 지역에서 현존하는 17~18세기 불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문화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