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차돈의 순교 사찰로 알려진 경주 소금강산 백률사에 있던 불상을 경주 국립박물관으로 이전해 전시하고 있는 국보입니다.
경주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 慶州栢栗寺金銅藥師如來立像 ] 경상북도 경주시 동천동 금강산에 위치한 신라의 명찰 백률사에 봉안되었던 불상이다. 사람의 크기와 같은 크기이며, 인체 비례를 따르고 있다. 현존하는 통일신라 최대의 금동불상으로 조성 연대는 800년을 전후한 시기로 추정된다. 통일신라, 800년 전후 추정, 높이 177㎝, 국보 제28호.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국립중앙박물관).유형유물시대고대/남북국/통일신라성격불상소장처경상북도 경주시 일정로 186(인왕동) 국립경주박물관수량1점재질금동크기(높이, 길이, 두께, 너비)높이 177㎝소유자백률사관리자국립경주박물관문화재 지정번호국보 제28호문화재 지정일1962년 12월 20일목차정의개설내용의의와 평가정의통일신라시대의 불상.개설국보 제28호. 높이 177㎝.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원래는 경상북도 경주시 동천동 금강산(金剛山) 중턱에 위치한 신라의 명찰인 백률사에 봉안되었던 불상으로, 1930년에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옮겨 전시하고 있다. 등신대(等身大)의 이 금동불상은 중후한 인상을 풍기는 통일신라시대 최대의 금동불상이다.내용머리는 신체에 비해서 크지 않은 편으로 인체 비례에 가깝다. 얼굴은 사각형에 가까운 원형이다. 그리고 긴 눈썹, 가는 눈, 오뚝한 코, 작은 입 그리고 늘어진 뺨의 살, 턱에 묘사된 군살 등 비교적 우아한 용모를 하고 있다. 하지만 긴장과 탄력성이 줄어드는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얼굴은 8세기 중엽경의 이상적 불안(佛顔)에서 진전된 것으로, 불상의 편년 설정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 준다.신체는 하체로 내려갈수록 중후해지며 옷자락들도 묵중해지고 있다. 이것은 불쑥 나온 아랫배, 뒤로 젖혀진 상체와 함께 이 불상의 양식적 특징을 잘 보여 준다. 우람한 체구를 과시하고 있지만 어깨는 약간 빈약하게 처리되었다. 가슴은 비교적 넓고 양감(量感) 없이 밋밋한 편이다. 어깨의 굴곡은 밀착된 불의(佛衣) 위로 잘 드러나 있다. 이러한 굴곡은 허리에서도 나타난다.대의(大衣)는 아래로 내려갈수록 두터워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리의 표현은 비교적 잘 드러나도록 처리되어 있다. 두 손은 보수된 것이어서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오른손은 들어 시무외인(施無畏印)을 하고 왼손은 가슴 부근에서 평행으로 두면서 약호(藥壺)를 살짝 들게 한 것 같다. 두 발은 하체의 체구처럼 우람하고 당당한 모양이다. 발가락과 발톱의 표현은 비교적 세세한 편이다.통견(通肩)의 불의는 가슴에서 U자형으로 트여 있다. 옷주름은 비교적 간략하지만 U자형의 옷주름이 하체에 성글게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하나씩 엇갈리면서 중심이 끊어지는 독특한 모양으로 처리되어 있다. 함안 방어산 마애약사여래삼존입상(보물 제159호)불과 비슷한 것이다.두 팔에서 내려진 옷자락과 발 위에 묘사된 옷자락은 묵중하여 중후하게 보인다. 말하자면 이 불상의 선묘 특징은 단순하면서도 중후한 묘법으로, 형태적 특징과 함께 이 불상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의의와 평가이 불상의 우람한 신체는 얼굴의 특징과 함께 801년에 조성된 함안 방어산 마애약사여래삼존입상과 상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점은 불의와 불의의 선묘적(線描的) 특징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조성 연대는 800년을 전후한 시기로 추정된다. 참고문헌「신라하대 불교조각의 연구(1): 방어산 및 실상사 약사여래거상을 중심으로」(문명대, 『역사학보』73, 역사학회,[네이버 지식백과] 경주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 [慶州栢栗寺金銅藥師如來立像]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