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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산 통도사 풍경
    사찰 풍경 2019. 2. 19. 00:24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불보 사찰 통도사 풍경입니다.

    고풍스런 풍경이 섬세하고 아름다운 한국의 전통 건축미가 절로 느껴지는 통도사 풍경입니다.


    금강계단

    영축총림 통도사는 646년(신라 선덕여왕 15)에 자장율사(慈藏律師)에 의해 창건되었다. 통도사에는 석가모니부처님의 정골(頂骨)과 지절(指節), 치아사리(齒牙舍利), 금란가사(金?袈裟)가 봉안되어 있어 불지종가(佛之宗家)이자 국내에서 가장 큰 가람으로서 국지대찰(國之大刹)의 사격(寺格)을 지닌 사찰이라 할 수 있다. 『통도사사리가사사적약록(通度寺舍利袈裟事蹟略錄)』에 보면 원래 통도사가 위치하고 있는 이곳은 아름다운 연못이 있었는데 연못을 메운 후 그곳에 금강계단을 쌓고 통도사를 창건하였다고 한다.

    또한 창건주인 자장율사에 대한 기록인 『삼국유사(三國遺事)』 「자장정률(慈藏定律)」조의 기록에 의하면 스님이 643년(선덕여왕 12) 당나라에서 귀국할 때 가지고 온 불사리(佛舍利), 금란가사 대장경 400여 함을 봉안하고 창건하였다고 한다. 창건 당시의가람은 자장율사가 쌓은 금강계단을 중심으로 몇 동의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 뒤 고려시대인 1085년(고려 선종 2) 통도사의 경내임을 나타낸 사지석표(四至石標), 즉 국장생석표(國長生石標)를 세울 만큼 사세가 확장되었음을 알 수 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1235년(고종 22)에 상장군(上將軍) 김리생(金利生)과 시랑(侍郞) 유석(庾碩)이 고종의 명을 받아 낙동강 동쪽을 지휘하던 차에 절에 와서 계단의 석종을 들어내고 석함 속의 사리를 예경했다고 한다. 이때 돌함 속에 있는 유리통 하나가 금이 가서 유석이 마침 가지고 있던 수정통을 기부하여 거기에 사리를 보관했다고 하는데, 이 기록은 문헌상으로 볼 때 사리에 손을 댄 최초의 예로 보인다.

    계단(戒壇)이란 계(戒)를 수여하는 의식이 행해지는 장소로 석가모니 당시 누지보살(樓至菩薩)이 비구들의 수계의식을 집행할 것을 청하자 석가모니가 허락하여 기원 정사의 동남쪽에 단(壇)을 세우게 한 데서 비롯되었다.통도사 창건의 근본정신은 바로 부처님의 사리를 봉안한 금강계단에 있다. 통도사가 신라의 계율근본도량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도 바로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진 금강계단에서 계를 받는 것이 곧 부처님으로부터 직접 계를 받는 것과 동일한 의미를 갖기 때문이었다.

    본래 통도사의 절터는 큰 연못이 있었고, 그 연못에는 아홉 마리 용이 살았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자장율사는 이들 용을 교화하여 여덟 마리를 승천(昇天)하게 하고 그 연못을 메워 금강계단을 쌓아 통도사를 창건하였다고 한다.

    창건 이후 금강계단은 그 안에 안치된 사리를 친견하고자 열망하는 많은 사람들의 참배가 이어졌다. 이러한 사실은 사리의 영험담과 함께 많은 기록을 남기고 있다. 특히 고려시대에 이르러 왕실과 사신들이 여러 차례에 걸쳐 사리를 친견하였을 뿐만 아니라, 몽고의 황실에서도 금강계단을 참배하는 등 참배객이 끊이지 않는 성(聖) 스러운 장소로 여겨져 왔다.

    고려 말에서 조신시대에 걸쳐 왜구들에 의한 사리 약탈기도가 여러 차례 자행되었는데 이때는 개성 송림사 · 서울 흥천사 · 금강산 등지로 옮겨 다니며 난을 피하는 등 사리를 보호하기 위한 승려들의 목숨을 건 노력이 이어졌다.

    현존하는 금강계단은 창건 이후 수차례 걸쳐 중수되었기 때문에 창건 당시의 정확한 구조는 알 수 없다. 다만『삼국유사(三國遺事)』의 전후소장사리(前後所將舍利)에 2층으로 위층가운데는 마치 가마솥을 엎어 놓은 것과 같다는 기록을 통해 그 형태가 현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현재 계단의 모습은 2중 사각기단 위에 종 모양의 부도(浮屠)가 놓인 석조계단의 일반적인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계단의 사방에는 불좌상(佛座像)을 비롯하여 천인상(天人像), 신장상(神將像) 등 다양한 조각이 새겨져 있는데 이들은 고려와 조선시대의 중수 과정에서 새롭게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금강계단 주변에 는 층계의 소맷돌에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금강역사상(金剛力士像)이 있다.




    대방광전 주련

    楊柳梢頭甘露灑 양류초두감로쇄  ,버드나무 초순에 감로를 뿌리고

  • 連華香裏碧波寒 연화향리벽파한  ,연꽃 향기 속에 푸른 파도가 서늘하네
  • 七寶池中標玉子 칠보지중표옥자,  칠보 연못에 옥자[표주박]를 띄우고
  • 九龍口裡浴金仙 구룡구리욕금선,  아홉 용이 입으로 金仙을 목욕시키는데
  • 大聖元來無執着 대성원래무집착,  대성은 원래 집착이 없다네.

  • 금강계단.




     봉발탑

    보물 제 471호

    봉발탑은 용화전 앞에 서있는 것으로 무슨 용도인지는 알 수 없으나, 석가세존의 옷과 밥그릇을 미륵보살이 이어받을 것을 상징한 조형물인 것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명칭을 탑이라고 한 것은 문제가 있어, 유물의 성격상 ‘석조발우(石造鉢盂)’라고 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본다. 기본형태는 받침부분 위에 뚜껑 있는 큰 밥그릇을 얹은 듯한 희귀한 모습이다. 받침부분의 돌은 아래ㆍ가운데ㆍ윗부분으로 구성되며 장고를 세워 놓은 듯한 모양이다. 받침돌 위에는 뚜껑과 높은 굽 받침이 있는 그릇 모양의 석조물이 있다. 만들어진 연대는 연꽃조각과 받침부분의 기둥양식으로 보아 고려시대로 추정되지만, 받침부분과 그릇 모양의 조각물과는 품격의 차이가 느껴지므로 동시대의 작품인지 의문을 갖게 한다. 전체 높이는 약 230cm이고, 현재 보물 제471호로 지정되어 있다. 약 2미터 높이의 발우(鉢盂)모양의 석조봉발(石造奉鉢)인데, 이를 봉발탑(보물 제471호)이라고 하며 이는 탑이 아니고 발우이다.

    이 석조물은 지대석(地臺石) 위에 하대석(下臺石)을 놓고 그 위에 부등형(不等形) 8각 간석(竿石)을 세우고 간석 위에 상대석(上臺石)을 놓았으며 그 위에 뚜껑을 갖춘 발(鉢)을 올려놓았다. 얼핏 보기에는 석등(石燈)과 같은 형식을 취하고 있으나 석등의 화사석(火舍石) 위치에 발이 놓여 있어 특이하다. 이 석조 봉발은 “석가모니의 발우(鉢盂)를 미래세(未來世)에 출현하실 미륵불에게 드리기 위해 부처님의 상수제자(上首弟子)인 가섭존자(伽葉尊者)가 발우와 함께 가사(袈裟)를 가지고 인도의 계족산(鷄足山)에서 멸진정(滅盡定)에 들어 기다리고 있다”는 불경의 내용에서 유래된 것으로 본다.

    이와 같이 석조 발우는 꼭 같지는 않지만 보은(報恩)의 법주사(法主寺)경내의 희견보살상(喜見菩薩像)이 머리에 이고 있는 석조발과 같은 형식이 아닌가 생각된다. 법주사의 봉발도 원래는 용화전 앞에 놓여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삼십칠 조도품탑(三十七 助道品塔)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수행하는 37가지의 방법을 말합니다. 즉 4염처(念處), 4정근(正勤), 4여의족(如意足), 5근(根), 5역(力), 7각지(覺支), 8정도(正道) 등을 모두 합한 것입니다. 37보리도법(菩提道法)이라고도 하는데, 이러한 수행 방법을 통해서 깨달음을 성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념처(四念處)

    사념처는 사념주(四念住)라고도 한다. 염(念)이라는 말은 대부분 망념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지만 여기서는 청정한 마음에 의거해서 나타나는 생각이기 때문에 정념(正念)을 의미한다. 사념처는 수행하는 방법에 대한 덕목이다.

    사념처에 대한 경전의 말씀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한때 부처는 <우루벨라>촌 <나이란자라>강 곁에 있는 보리수 밑에 계셨는데, 부처되신지 오래지 않으셨다. 그 때 세존은 홀로 고요히 선정 속에 들어 계시다 이렇게 생각하셨다.
    일승(一乘)의 도가 있어서 능히 뭇 삶들을 깨끗이 하고 온갖 근심과 슬픔을 제도하고 고통과 번뇌를 없애 진여(眞如)의 법을 얻게 하나니 이른바 네 가지 곳을 생각함[四念處]이다. 네 가지 살필 곳이란 무엇일까. 몸이 살피어 생각할 곳이요, 느낌[受] ? 마음[心] ? 법[法] 등이 살피어 생각할 곳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네 곳 생각하기를 즐겨하지 않으면 성스러운 법을 즐겨하지 않는 것이요, 성스러운 법을 즐겨하지 않으면 감로법을 즐겨하지 않는 것이요, 감로법을 즐겨하지 않으면 태어남 ? 늙음 ? 병 ?죽음과 근심 ? 슬픔 ? 괴로움 ? 번민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만일 네 곳 생각하기를 즐겨 닦으면 성스러운 법을 즐겨 닦는 것이요, 성스러운 법을 즐겨 닦으면 감로법을 즐겨 하는 것이요, 감로법을 즐겨하면 태어남 ? 늙음 ? 병 ? 죽음과 근심 ? 슬픔 ? 괴로움 ? 번민을 벗어나게 될 것이다.

    사념처 각 지분의 개념
    ① 신념처(身念處)
    수행을 함에 있어서 자신의 몸을 잘 관찰하라는 뜻이다. 내 몸이 탐욕을 일으키는 근원처가 되기 때문에 몸을 잘 관찰하여 탐욕이 일어나지 않도록 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몸을 탐욕을 일으키는 원인으로 보는 것은 부정관(不淨觀)에 의한 수행법이다.
    ② 수념처(受念處)
    마음의 감수성에 해당하는 수심소(受心所)는 우리가 하나하나의 대상을 받아들일 때 고통스럽게 받아들이기도 하고(苦受), 즐겁게(樂受 )또는 기쁘게(喜受), 근심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憂受). 또 하나는 고락이나 희수가 아닌 평등한 마음으로 평온하게 받아들이는 사수(捨受)가 있다. 우리의 우매한 마음은 진리를 망각하고 모든 것을 다 괴로움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우리가 마주치는 대상을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의 마음 작용이다. 이와 같은 원리를 관하여 괴로움이 생기게 되는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 수행이다.
    ③ 심념처(心念處)
    내 마음이 물질을 집착한 것이기 때문에 집착의 원인은 내 마음에 있다고 본 것이다. 그렇게 집착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를 알게 되면 집착하는 마음을 제거할 수 있다.
    ④ 법념처(法念處)
    대상과 자아의 실체가 없고 내 소유도 없다고 관하는 관법무아[觀法無我] 존재 자체를 실체화시키는 생각을 끊게 하는 것. 법(法)은 자주(自主)하거나 자재(自在)한 성품이 없으므로 무아라고 관하는 것. 제법의 실상이 공함을 자각할 때 제법실상의 체성을 보게 된다.
    사정단(四正斷)

    4정근이라고도 하며 모든 악을 끊고 선(善)을 키우기 위해서 정진하는 것입니다.

    사정단에 대한 경전의 말씀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한 때에 붇다는 <수라바스티>국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장자의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수행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내 가지 바른 끊음이 있으니 첫째는 끊을 것을 끊음[斷斷]이요, 둘째는 몸가짐을 잘 가져 끊음[律儀斷]이요, 셋째는 생각을 지키어 끊음[隨護斷]이요, 넷째는 닦아 끊음[修斷]이다.
    끊을 것을 끊음이란 무엇인가. 수행자가 이미 일어난 악한 법을 끊으려는 마음을 내어 방편으로 꾸준히 힘써 거두어들이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악한 법은 일어나지 않게 하려는 마음을 내어 방편으로 힘써 거두어들이며, 아직 생기지 않은 착한 법은 일어나게 하려는 마음을 내어 방편으로 힘써 거두어들이고, 이미 생긴 착한 법은 더욱 닦아 익히려는 마음을 내어 방편으로 꾸준히 힘써 거두어들이면 이것을 끊을 것을 끊음이라 한다.
    무엇이 몸가짐을 잘 가져 끊음인가. 만일 수행자가 눈을 잘 단속하여 은밀히 조복하고 나아가고, 이와 같이 귀, 코, 혀, 몸, 뜻을 은밀히 조복하여 나아가면 이것을 몸가짐을 잘 가져 끊음이라 한다. 무엇이 생각을 지키어 끊음인가. 수행자가 여러 진실한 삼매를 잘 지키는 것이니 사람이 죽으면 그 몸이 파랗게 썩는다는 생각, 문드러진다는 생각 등 부정관(不淨觀)을 닦아 익히 물러가거나 사라지지 않게 하면 이것을 생각을 지키어 끊음이라 한다.무엇이 닦아 끊음인가. 만일 수행자가 네 가지 곳 생각함[四念處]을 닦으면 이것을 닦아 끊음이라 한다.

    사정단 각 지분의 개념
    ①단 단(斷 斷)
    일어나는 악법을 끊고 또 끊는 것. 끊을 것을 끊음. 이미 생긴 악을 끊기 위해서 힘쓰는 것입니다.
    ②율의단(律儀斷)
    계율을 견지하고 위의를 신수(愼守)하여 악이 일어나지 못하게 함. 몸가짐을 잘 가져 끊음. 아직 생기지 않은 악을 끊기 위하여 힘쓰는 것입니다.
    ③수호단(隨護斷)
    무루(無漏)의 정도(正道)를 따라 수호하여 악법이 일어나지 못하게 함. 생각을 지키어 끊음. 아직 나타나지 않은 선을 나타내기 위하여 힘쓰는 것입니다. 즉 부처님의 정도(正道)를 보호하여 악법(惡法)이 일어나지 않게 하여 선이 생기도록 힘쓰는 것을 말합니다.
    ④수 단(修 斷)
    능히 닦음으로 정도를 지으며 그것을 생장하도록 하여 모든 악을 단제(斷除)함 . 닦아 끊음. 사념처관을 하여 닦아 끊음. 이미 생긴 선을 잘 키우는 것을 말합니다.
    사여의족(四如意足)

    4신족(神足)이라고도 한다. 노력하지 않아도 수행이 뜻과 같이 잘되는 것을 말합니다.

    사여의족에 대한 경전의 말씀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한 때에 붇다는 <코삼비>국 <고시카라마> 동산에 계시었고 존자 아난다도 거기 있었다. 그 때 어떤 바라문이 존자 아난다에게 나아가 인사한 뒤 한쪽에 앉아 아난다에게 물었다.
    존자여 무엇 때문에 사문 고오타마 밑에서 범행(梵行)을 닦습니까?
    탐욕과 애착을 끊기 위해서입니다.
    존자 아난다님, 무엇을 의지해서 탐욕과 애착을 끊을 수 있습니까?
    바라문이여, 하고자 함[欲]을 의지해 탐욕과 애착을 끊습니다.
    존자 아난다님, 그렇다면 그 하고자 함은 끝이 없는 것이 아닙니까?
    바라문이여, 그것은 끝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존자 아난다님, 어떻게 해서 끝이 없는 것이 아닙니까? 바라문이여, 비유로써 내가 물어볼 테니 마음 먹은 대로 대답해 보시오. 바라문이여, 그대는 어떤 하고자 함이 있어서 이 정사(精舍)에 온 것이 아닙니까 ?
    그렇습니다. 아난다님.
    그렇다면 바라문이여, 이미 정사에 왔으니 그 하고자 함은 쉬지 않았습니까 ?
    그렇습니다. 존자 아난다님.
    정사에 오기 위해 노력하고 준비하고 계획해서 결국 이 정사에 이르렀으니까 그 계획 등을 쉰 것입니다. 존자 아난다는 그 바라문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바라문이여, 여래 등정각께서 알고 보시는 것도 이와 같으니 여래는 네 가지 여의족[四如意足]을 말씀하시어 일승의 도로써 중생을 깨끗이 하고 괴로움을 없애주며 근심과 슬픔을 끊어줍니다. 그 넷이란 하고자 함[欲]으로 선정을 얻어 번뇌를 끊고 성취하는 여의족과, 힘써 나아감[精進],마음[心]의 휴식, 사유[思惟]의 휴식으로 선정을 얻어 번뇌를 끊고 성취하는 여의족입니다. 이와 같이 성스러운 제자는 하고자 함으로 선정을 닦아 여의족을 얻음으로써 떠남과 욕심 없음과 벗어남과 없어짐으로 그 하고자 함도 또한 쉽니다. 또한 힘써 나아감, 마음의 휴식, 사유의 휴식으로 선정을 닦아 여의족을 얻음으로써 평등[捨]을 향하고 마침내는 힘써 나아간다는 생각과 선정을 닦는다는 그 사유까지 쉽니다. 바라문이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것이 곧 끝이 아닙니까? 바라문은 말하였다.
    존자 아난다님, 그것은 곧 끝이요, 끝 아님이 아닙니다.
    그 때 바라문은 존자 아난다의 말을 듣고 기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갔다.

    사여의족 각 지분의 개념
    ①욕여의족(欲如意足)
    수승한 선정을 얻으려고 간절하게 원하는 것. 도심(求道心)이 강렬하여 하고자 하는 대로 수행이 잘 되는 것입니다.
    ②염여의족(念如意足)
    정념(正念)이 한결같이 지속되는 것입니다.
    ③진여의족(進如意足)
    쉬지 않고 한결같이 나아가는 것 , 정진여의족 정진신족(精進神足)이란 정진이 저절로 잘 되는 것입니다.
    ④사유여의족(思惟如意足)
    사유하여 저 이치의 마음에 해태하여 흩어지지 아니하는 것. 선정(禪定)이 한결같이 잘 진행되는 것입니다.
    오근(五根)

    불법 가운데 도의 뿌리를 깊이 내려 세속법에 흔들리지 않도록 하는 수행법을 말합니다.

    오근에 대한 경전의 말씀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한 때에 붇다는 <슈라바스티>국 <제타> 숲 <외로운 이 돕는 장자의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수행자들에계 말씀하셨다. 우리를 동요 없는 자기 확신의 땅에 이르게 하는 다섯가지 근본[五根]이 있다.
    그것은 곧 믿음[信根], 정진[精進根], 살펴 생각함[念根], 선정[定根], 지혜[慧根]다. 어떤 것이 믿음인가. 성인의 예지는 여래에 대해 믿는 마음을 일으키되, 그 근본이 견고하여 모든 하늘, 악마, 바라문과 세간법으로는 무너뜨릴 수없는 것이니 이것을 믿음이라 한다. 이른바 네 가지 곳 생각함이다. 어떤 것이 선정인가. 네 가지 선정의 실천이다. 어떤 것이 지혜인가. 이른바 네가지 거룩한 진리이다.
    이 여러가지 공덕은 다 지혜를 그 으뜸으로 하나니 마치 집을 마룻대를 으뜸으로 하는것과 같다.붇다께서 이 가르침을 말씀하시자 여러 수행자들은 붇다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오근 각 지분의 개념
    ① 신근(信根)
    불법승 삼보와 고집멸도 사성제의 이치를 관하는 것. 삼보와 사제를 믿는 것. 삼보와 사제법의 진리야 말로 나를 완벽한 행복으로 인도한다는 확고한 믿음, 신념이 도법에 굳게 뿌리를 내리는 것입니다.
    ② 진근(進根)
    용맹하게 선법(善法)을 닦는 것, 정진근. 의심이나 갈등없이 번뇌와 망상없이 노력하게 하는 마음 정진근(精進根)이란 정진함에 있어서 물러섬이 없는 것입니다.
    ③ 염근(念根)
    대경(對境)을 마음에 머물러 두고 있지 않는 작용. 정법을 억념(憶念)하는 것. 경계의 끄달림을 끊고 오로지 념념상속(念念相續) 하는 것. 불법을 항상 생각하는 데 뿌리를 내리는 것입니다.
    ④ 정근(定根)
    마음을 일경(一境)에 주지(住止)시켜 흩어지지 않게 하는 것. 선근공덕 발생의 근원밖으로 경계에 매이지 않고 안으로 어지럽지 않은 것. 선정에 뿌리를 내리는 것입니다.
    ⑤ 혜근(慧根)
    진리를 생각하는 것. 진리를 깨닫게 하는 수승한 능력. 제법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되는 것. 불법의 진리를 여실히 아는 바른 지혜에 뿌리를 내리는 것입니다.
    오력(五力)

    열반을 증득하기 위한 수행 방법으로서 뛰어난 작용을 하는 다섯 가지 힘을 말합니다.

    오력에 대한 경전의 말씀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한 때에 붇다는<슈라바스티>국 <제타> 숲 <외로운 이 돕는 장자의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수행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우리를 진리 안에 굳건히 세워두는 다섯가지 힘이 있다. 그것은 곧 믿음의 힘, 정진의 힘, 생각의 힘, 지헤의 힘이다. 믿음의 힘이란 네 가지 무너지지 않는 깨끗한 믿음[四不壞淨]이요, 정진의 힘이란 네가지 곳 생각함[四念處]이요, 선정의 힘이란 네가지 선정[四禪]이며, 지혜의 힘이란 네가지 거룩한 진리[四聖諦]임을 알아야 한다.” 
    붇다께서 이 가르침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붇다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오력 각 지분의 개념
    ① 신력(信力)
    신근을 증장시켜 사신(邪信)을 파하는 것. 불법을 믿고 다른 것을 믿지 않는 것
    ②진력(進力)
    진근을 증장시켜 해태(懈怠)를 파하는 것. 선법을 짓고 악을 폐하기에 부지런한 것
    ③ 염근(念根)
    염근을 증장시켜 사념(邪念)을 파하는 것. 사상을 바로 갖고 삿된 생각을 버리는 것
    ④ 정근(定根)
    정근을 증장시켜 난상(亂想)을 파하는 것. 선정을 닦아 어지러운 생각을 없애는 것
    ⑤ 혜근(慧根)
    혜근을 증장시켜 제혹(諸惑)을 파하는 것. 지혜를 닦아 사성제를 깨닫는 것
    칠각분(七覺分)

    깨달음으로 이끌어 주며, 깨달음에 도움이 되는 일곱 가지의 수행 방법을 말합니다. 범어로는 bdjjhanga (보장가)로 불려지며, 7각분, 7보리분법 으로 한역되기도 한다. 7각지는 지혜의 요소라고도 표현되며 깨달음을 얻기 위해 유용한 7가지 상황으로 마음의 상태에 따라 존재를 관찰함에 있어서의 주의, 방법을 7가지로 정리한 것이다.

    칠각분에 대한 경전의 말씀

    이와같이 내가 들었다.
    한 때에 붇다는<슈라바스티>국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장자의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수행자들에계 말씀하셨다.
    일곱가지 깨달음에 이르는 길[七覺支]을 닦아야 한다. 어떤 것이 일곱인가. 곧 바른 생각[念覺分]과 나아가서는 버림[捨覺分]이다. 만일 수행자가 바른 생각[念]을 닦으면 멀리 떠남과 욕심 없음과 번뇌 사라짐에 의햐여 열반으로 나아가게 된다. 이와감이 존재를 바르게 가림[擇法], 힘써 나아감[精進], 기뻐함[喜], 쉼[倚], 선정[定]을 닦으면 떠남과 욕심 없음과 번뇌 사라짐에 의하여 열반으로 나아가게 된다.
    붇다께서 이 가르침을 말씀하시자 여러 제자들은 그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칠각분 각 지분의 개념
    ① 택법각분(擇法覺分)
    택법이란 간택, 분별하는 지혜를 의미한다. 수행자가 가르침 가운데에서 진실된 것을 선택하고 거짓된 것을 버리는 것으로 선택하는 항상 반야도리에 비추어 보아야 한다. 공부를 해나갈 때에도 부질없이 상대유한적인 문제로 의심하면 참다운 반야지혜가 되지 못한다. 또한 어떤 법이 자기한테 맞는가 간택하는 것이다 자기의 성질, 원래품성을 잘 헤아려서 택법을 하도록 해야 한다.
    ② 정진각분(精進覺分)
    진근을 증장시켜 해태(懈怠)택법을 잘한 뒤에는 그것을 끝까지 밀고 나갈 수 있는 정진력이 있어야한다. 굳은 신념과 무서운 의지력을 가지고 부지런히 애쓰는 것이 또한 깨달음의 조건이다.를 파하는 것. 선법을 짓고 악을 폐하기에 부지런한 것
    ③ 희각분(喜覺分)
    염근을 증장시켜 진실의 가르침을 실행하여 얻어지는 기쁨이다. 마음에 좋은 법을 얻어서 깨달음으로 가면 기쁨이 있다. 기쁨을 느끼면 수행에 진전이 있게 된다. 이 때에는 얻는 법에 확신이 생기고, 자기가 걸어가는 길에 자신이 생기게 된다. 이때의 기쁨은 상대적이고 세속적인 기쁨이 아니고 삼매에서 얻어진 기쁨이기 때문에 절대적인 기쁨이다.사념(邪念)을 파하는 것. 사상을 바로 갖고 삿된 생각을 버리는 것
    ④ 제각분(除覺分)
    거칠고 무거운 번뇌를 제거하므로 몸도 마음도 가벼워지고 편안하게 되는 것이다. 몸과 마음에서 긴장, 불안, 초조가 사라지고 몸이 가벼워지고 마음은 더욱더 맑아지고 적적해진 상태이다. 이런 상태를 경험하면 이에 마음을 두어 관찰하면서 그것을 계속 지속시키려고 노력해야한다. 또한 마음과 몸이 평안하게 되고 마음이 가라앉으면 삼매의 세계로 들어가서 깨달음을 얻게 된다.
    ⑤ 사각분(捨覺分)
    우리의 마음에 괴로움을 주는 일은 물론이거니와 즐거움을 주는 대상도 마음을 움직여 공부에 장애가 되므로 내려놓아야 한다. 무엇이 좀 안되면 그것 생각하느라고 공부가 안되고 또 잘되면 잘되었다고 생각하느라 공부 못하니 어떠한 일도 법성자리에서는 중요한 일이 아니므로 공부할 때는 다 내려놓아야 한다.
    ⑥ 정각분(定覺分)
    모든 일에 마음이 집중되어 그것과 하나가 되면 망상이 들어올 틈이 없어져서 외부의 자극도 받지 않고, 안으로는 망상도 일어나지 않게 되니, 이때 고요하고 순일한 상태에 다다르게 된다. 이와 같은 삼매 의 깊은 체험은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깨달음이 솟아나는 샘이다.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수행인은 반드시 이러한 세계를 경험해야 한다. 이런 경지에 도달하면 번뇌와 망상이 끊어지고,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이 지혜와 자비로움 그 자체로 나타나고, 과거의 망상이 깨달음으로 바뀐다. 그러나 이 단계에서 깨달음을 다시 관찰하는 힘을 얻어야한다. 이 단계가 수행의 마지막이 아니라 참수행의 시작이다.
    ⑦ 염각분(念覺分)
    한결같은 생각으로 깨달음의 길을 가는 것이다. 마음은 있다가도 없어지고, 없다가도 생기는 법이니, 일어난 마음이 한결같은 삼학의 길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마음을 관찰하여 한결같이 머물러야한다. 그러면 마음을 일으키기도 하고 더욱 증진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팔정도(八正道)

    멸성제(滅聖諦)를 성취하는 수행 방법을 말합니다. 정견(正見) 즉 바른 견해, 정사(正思) 즉 바른 사유, 정정진(正精進) 즉 바른 노력, 정념(正念) 즉 바른 명심, 정어(正語) 즉 바른 말, 정업(正業) 즉 바른 행위, 정명(正命) 즉 바른 생활, 정정(正定) 즉 바른 명상 등 여덟 가지는 열반으로 이끌어 주는 최선의 길입니다.

    팔정도에 대한 경전의 말씀

    이와같이 내가 들었다.
    한 때에 붇다는 <슈라바스티>국 <제타> 숲 <외로운 이 돕는 장자의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수행자들에계 말씀하셨다.
    “삿됨과 바름이 있느니 자세히 잘듣고 잘 생각하여야 한다. 이제 너희들을 위해 설명하겠다. 어떤 것이 삿됨인가. 삿된 견해와 나아가서는 삿된 선정이다. 어떤 것이 바름인가. 바른 견해와 나아가서는 바른 선정이다.
    그 가운데 바른 견해란 무엇인가. 자기 자립성을 가지고 있되[不斷] 관계를 통해 변해가는[不常] 현실에 대한 바른 견해란 타인에 대한 보시가 있고 여래의 교설과 제(諦)가 있고 선한 행위 악한 행위와 그 행위의 과보가 있고, 이 세상과 다른 세상이 있고 부모가 있고 중생의 태어남[生]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유위인과에 대한 정견). 그리고 (현실법은 연기된 것이므로 자성이 없는 것이니) 현실의 질곡속에 묶임이 없이 아라한이 열반으로 잘 향하고 잘 이르러, 이 세상과 다른 세상에서 존재의 실상을 스스로 알고 깨치는 것이다.
    그는 존재의 실상을 바르게 깨침으로써 나의 태어남[生]은 이미 다하고[我生已盡] 깨끗한 행은 이미 정립되고[梵行已立] 해야 할 일을 빠뜨림 없이 모두 마쳐[所作已作]이 다음의 집착된 생존을 다시는 받지 않음[不受後有]을 스스로 알게 되는 것이다.
    어떤 것이 바른 사유인가. 탐욕을 벗어난 뜻, 성냄이 없는 뜻, 남을 해치지 않는 뜻이다. 어떤 것이 바른 말인가. 거짓말,두 말,나쁜 말,번지르르하게 꾸미는 말을 떠남이다.
    어떤 것이 바른 행위인가. 살생과 도둑질과 사음을 떠남이다.
    어떤 것이 바른 생활인가. 의복, 음식, 잠자리, 의약품을 구해 쓰고, 법답지 않게 구하지 않음이다.
    어떤 것이 바른 방편인가. 해내고자 하는 열망[欲]과 정진(精進)의 방편이니 번뇌를 떠나며, 부지런하고 조심하여 항상 물러섬이 없이 실천해 나가는 것이다.
    어떤 것이 바른 생각인가. 존재의 실상을 그대로 따르는 생각이나 헛되고 망녕되이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어떤 것이 바른 선정인가. 마음을 어지럽지 않은데 머물러 두고 굳게 거두어 가져, 고요히 삼매(三昧)에 든 한 마음[一心]이다. 
    붇다께서 이 가르침을 말씀하시자 여러 수행자들은 그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팔정도 각 지분의 개념
    ① 정견(正見)
    정견은 ‘바로 봄’을 뜻한다. 곧 올바른 견해이다. 이 정견은 유무(有無)의 편견을 벗어난 정중(正中)의 견해이다. 곧 사(邪)와 정(正)을 분별하는 견해이고 바른 견해로 편견없이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 여실지견(如實知見)이라고도 한다. 바로 보는 것이 바른 삶의 시작이다. 즉 사제(四諦), 십이연기, 삼법인의 진리를 바로 보는 것을 가리킨다. 이러한 진리의 통찰과 함께 참된 깨달음으로 우주와 인생에 대한 바른 사고 방식을 수립하는 것이다.
    ② 정사유(正思惟)
    정사유는 올바른 생각이다. 다시 말하면 자신의 입장을 바르게 생각하는 것을 말하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고 이치에 맞게 생각하는 것이다. 또한 ‘바르게 사유한다. 바르게 마음 먹는다’는 뜻으로 ‘생각 할 바’와 ‘생각 안할 바’를 바르게 잘 분간하는 것이다.
    ③ 정업(正業)
    올바른 행위, 살생이나 도둑질 따위의 악한 행위를 하지 않고 선한 행위를 하는 행동이고 바른 생각과 바른 이치에 맞는 행동을 하는 것이다. 이것도 역시 ‘바른 견해’의 적극적 실천인 것이다.
    ④ 정어(正語)
    올바른 말, 곧 온갖 망령된 허망한 말[妄語], 삿된 말[邪語] 등을 하지 않는 말이 정어이다. 올바른 생각에 의해 하는 말이고 항상 바른 생각과 바른 말을 하여 구업을 짓지 말고 상대방을 존중하는 부드러운 말을 해야 한다. 이는 ‘진실되고 올바른 언어생활’을 말한다. 즉 거짓말, 꾸며대는 말, 서로 이간시키는 말, 남을 성나게 하는 말 등을 하지 않는 것으로 ‘바른 견해’의 적극적 실천이다.
    ⑤ 정명(正命)
    올바른 생활 수단’을 말하는 것으로 바른 견해에 입각한 전체적인 생활에 있어 바른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실천하는 것이다. 이는 곧 정당한 방법으로 의식주(衣食住)를 구하는 것으로 남과 나를 다같이 이롭게 하는 바른 직업을 갖는 것도 그 뜻의 하나이다.
    ⑥ 정정진(正精進)
    올바른 노력, 한 마음으로 노력해 나가는 것을 뜻한다. 이는 곧 노력으로 인하여 아직 발생하지 않은 악을 일어나지 못하게 하며, 일어나지 아니한 선을 발생하게 하는 일이며, 옳은 일에는 물러섬이 없이 밀고 나가는 정열과 용기를 뜻하기도 한다. 이는 바로 불자의 구도 자세라 할 수 있다.
    ⑦ 정념(正念)
    올바른 정신과 생각, 사념(邪念)을 버리고 항상 향상을 위하여 정신을 집중시키는 것을 말하며, 바른 생각을 말한다. 또한 ‘바르게 기억 하는 것’으로 생각할 바에 따라 잊지 않는 것이다. 참된 진리를 항상 명심하고 기억하여 다른 잡념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은 정사유와 함께 내면적인 마음의 기초를 확고하게 다지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그 마음 속에 정견(正見)이 가득 차고 항상하도록 하는 것이다.
    ⑧ 정정(正定)
    ‘바르게 집중(集中)한다’는 말로서, 마음을 한 곳에 모으는 것인데 ‘삼매(三昧)’라는 음역어(音譯語)를 통해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수행법이다. 이는 정념이 더욱 깊어진 상태로서, 정념의 성취로 몸과 마음의 조화가 이루어지고, 지극히 잘 조화되고 통일된 마음에 온갖 번뇌와 어지 러운 대상이 모두 쉬게 되면서 마치 가을 하늘에 지혜의 달이 뚜렷이 빛


    해장보각(海藏寶閣)

    이 건물의 창건은 영조 3년(1727)이고 그 후 고종 4년(1900)에 고산대사(古山大師)가 중수하였다. 자장율사의 진영을 봉안한 해장보각은 정면 3칸, 특면 2칸의 맞배집으로 앞쪽에 툇간을 달은 형식을 취하고 있어 내부 앞쪽에 내진(內陣 : 안두리)기둥이 배치 되어 있다.

    이 전각을 해장보각이라고 한 것은 불경의 보관처를 용궁(龍宮)에 두기도 하고 또 대 장경(大藏經)진리의 내용이 바다 속의 수많은 보배에 비유되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 다. 즉 용궁보각(龍宮寶閣)에서 유래된 것으로 짐작된다. 따라서 자장스님의 진영을 봉안한 전각을 해장보각(海藏寶閣)이라고 한 것은 『삼국유사』에 이미 기록된 바와 같 이 자장스님이 중국으로부터 가지고 온 대장경을 통도사에 봉안하였다는 사실에 기인 한 것으로 보인다. 즉 “정관(貞觀) 17년(643)에는 자장율사가 삼장(三藏 : 經藏, 律藏, 論藏) 400여 상자를 싣고 돌아와서 통도사가 국내 최초의 대장경 봉안하였다.”『삼국 유사』전후소장사리조)고 한 내용은 이미 삼국시대에 통도사가 국내 최초의 대장경 봉 안(奉安) 사찰이 되었음을 뜻하는 것이며, 나아가 이 대장경이 다른 사람 아닌 창건주 (創建主) 자장율사에 의하여 봉안되었던 사실을 감안하여 그 전각에 들어오는 문을 개산조당이라 하였고, 전각 자체를 해장보각이라고 한 것으로 생각된다


    해장보각 자장율사진영(海藏寶閣慈藏律師眞影)

    해장보각 자장율사진영(海藏寶閣慈藏律師眞影)

    해장보각에 봉안되었던 통도사의 개산조開山祖인 자장율사의 진영이다. 좌팔분면左八分面의 의자상이나 가부좌한 자세이며, 왼손에는 불자拂子를 잡고 오른손으로는 불자의 술을 만지고 있는 모습이다. 배경은 크게 2단 구성을 보여 준다. 상단은 짙은 녹색이고 하단은 돗자리를 묘사하고 있는데, 백색이 어서 강한 색채대비를 준다. 이 진영의 봉안처인 개산조당開山祖堂이 1727년(영조 3)에 건립되었으나, 진영의 조성연대는 1804년이므로 이 진영에 앞서는 자장율사의 진영이 봉안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홍색 가사와 녹색 장삼이 강렬한 색채대비를 보여주나, 같은 농염의 채색을 반복해 사용하고 있고, 음영이 표현된 필선은 힘이 빠져 조성연대가 조선후기임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안면顔面에서 풍기는 인상은 고승의 위엄을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화사畵師는 성인成仁과 계한戒閑비구이다











    주련 : 해장보각(海藏寶閣)

    • 寶藏聚玉函軸 보장취옥함축, 보배스런 경을 모아 옥함에 보관했네.
    • 集西域譯東土 집서역역동토, 서역에서 모아 동토에서 번역했네.
    • 鬼神護龍天欽 귀신호룡천흠, 귀신이 보호하고 천룡이 흠모하니
    • 標月指渡海筏 표월지도해벌, 마음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요 고해를 건너는 땟목이네.




    응진전


    조선(1677년), 경남 유형문화재 제196호

    응진전은 대웅전 서남쪽 동향한 불전으로 1677년(숙종 3)에 지섬대사(智暹大師)가 창건하였다 전한다. 현존의 건물은 원래의 것인지 확실하지 않으나 조선 중기 이후 여러 차례 중수된 것으로 보인다. 건물의 형식은 정면 3칸, 특면 3칸의 주심포식(柱心包式) 맞배집으로 비교적 간결하지만 지대석(地帶石), 면석(面石), 갑석(甲石)을 갖춘 고식의 기단 위에 동향(東向)하여 있다.

    공포(?包)는 기둥 위에만 짜여져 주심포식을 취하고 있고, 제공(諸貢)은 쇠서를 갖춘 다포식(多包式)의 모양을 하여 절충식의 양식을 나타내고 있다. 주심포 형식으로 된 공포는 다포식을 많이 수용한 절충식이다. 현재 응진전에 봉안된 나한도는 근현대 불화사로 유명한 고산당 축연을 비롯한 화승들이 함께 그린 불화로 유명하다. 그리고 외벽의 달마도 또한 명작이다.

    불당 내부에는 중앙에 석가여래와 좌우에 미륵보살과 제화갈라(提華褐羅)가 동쪽으로 향하여 봉안되었고 그 주변에는 16나한상과 범천 및 제석천왕상을 좌우에 모셔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불과 함께 16제자상을 봉안한 셈이다. 곧 미륵보살은 석가여래의 일생보처(一生補處 : 다음생에 성불하여 부처님이 될 보살)이고 제화갈라보살은 과거불이기 때문이다. 응진전은 나한전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나한이 범어(梵語)의 아라하트(Arahat)를 한자로 음사(音寫)한 것으로서 그 뜻은 중생의 공양에 응할 만한 수행이 있다는 뜻인 ‘응공(應供)’ 또는 진리에 응하여 남을 깨우친다는 뜻에서 ‘응진(應眞)’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부처님을 항상 추종하던 상수제자(上首弟子)는 1,250인으로 불경(佛經)에 기록되어 있지만 이들 가운데 중요한 위치에 있는 제자가 16나한이다. 그러므로 16나한을 봉안한 법당을 나한전(羅漢殿), 응진전(應眞殿), 또는 십육성전(十六聖殿)이라고도 하나 모두 같은 의미이다. 물론 부처님의 가장 대표적인 제자를 더 줄여서 말할 때는 십대제자를 들기도 하지만 나한전에 봉안되는 제자상은 십육나한(十六羅漢)이 보편적이다. 대체로 나한은 삼승(三乘), 즉 성문(聲聞), 연각(緣覺), 보살(菩薩) 가운데서 부처님으로부터 고(苦), 집(集), 멸(滅), 도(道) 사제의 법문(法門)을 듣고 진리를 깨친 분이다. 연각이 12인연의 도리를 스스로 깨쳐 독각이란 칭호를 듣는 데 비하여, 부처님의 진리의 법문을 듣고서 깨친 것이 다르다. 다시 말하면 보살승(菩薩乘)이 중생구제의 서원을 지닌 이타행을 본업(本業)으로 하는 대승임에 비하여, 성문승(聲聞乘)과 연각승(緣覺乘)은 자기(自己)의 수행이나 구원이 위주되는 자리(自利)를 근본으로 하므로 이를 소승(小乘)이라 말하게 된다. 그러나 아라한(阿羅漢) 역시 부처님의 사제법문(四諦法門)을 듣고 정신수행(精進修行)하여 아집(我執)과 번뇌를 끊어 생사(生死)를 초탈(超脫)한 성자(聖者)이다. 이들 16나한(羅漢)은 영산회상(靈山會上)에서 부처님의 유촉을 받고 영원히 이 세사에 계시면서 중생의 복전(福田)이 되어 불법(佛法)을 옹호하는 불제자(佛弟子)로 신앙된다.

    응진전 편액

    有山有水承龍虎 유산유수승용호,  산수간에 용호를 타고

  • 無是無非伴竹松 무시무비반죽송,  시비장단 없으니 송죽을 벗하네.
  • 曾昔靈山蒙授記 중석령산몽수기,  일찍이 영산회상에 수기를 받은 분들이
  • 而今會坐一堂中 이금회좌일당중,  지금 한 집안에 모여 있네.

  • 통도사 대웅전에는 다른 사찰과 달리 동서남북 사면에 모두 편액(扁額)이 걸려있고, 또 각각 주련이 달려있는데, 사천왕문을 통해 들어가면 관음전 쪽에 ‘대웅전(大雄殿)’이라는 편액이 걸려있다. 편액이란 널판지나 종이 또는 비단 등에 글씨나 그림을 그린 것으로 대부분 가로로 길쭉하여 횡액(橫額)이라고 하는데, 보통은 현판(懸板)이라고도 부른다. 편(扁)은 서(署)의 뜻으로 문호 위에 제목을 붙인다는 말이며, 액(額)은 이마 또는 형태를 뜻하는 말로, 건물 정면의 문과 처마 사이에 붙여서 건물에 관련된 사항을 알려 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중국 진(秦)나라 때 건물 명칭을 표시한 것을 서서(署書)라고 한 것이 편액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고,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쓰기 시작하여, 조선시대에는 사찰 건물은 물론 도성과 문루, 궁궐 전각, 지방관아와 향교, 서원 등 일반주택에까지 붙여졌다.

    대웅전 편액의 글씨는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1820~1898)의 글씨로 알려져 있다. 통도사에는 유독 흥선대원군 즉 석파(石坡)의 글씨가 많이 있는데, 일주문(一柱門)의 편액인‘靈鷲山 通度寺’의 글씨와 원통방 편액과 ‘금강계단’의 글씨 등이 모두 흥선대원군의 글씨라 한다.

    다음으로 주련(柱聯)을 살펴보면, 우선 글씨는 천보구하(天輔九河)스님의 글씨이다. 통도사의 많은 주련들이 구하스님의 선필(禪筆)로 쓰여져 있다. 주련의 내용을 살펴보자면, 주련의 문장은 모두 다섯 구절로 이루어졌다. 앞의 네 구절은 칠언절구의 한시(漢詩) 형식으로, 중국 송(宋)나라 때의 대문호로서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인 소동파(蘇東坡1036-1101) 거사(居士)의 누이 동생인 소소매(蘇小妹)가 지었다고 알려져 있는데, 불교의식문 중의 하나인 관음예문(觀音禮文)에 실려 있다.

    관음예문은 중국과 우리나라에 전승되어온 의례문(儀禮文)으로 관음신앙을 중심으로 여러 불보살님에 대한 귀의, 예경, 찬탄, 발원의 글이 한데 어우러진 법문집인데, 이중 법신(法身)·보신(報身)·화신(化身)의 삼신불을 찬탄하는 문장 중 화신불을 찬탄하는 구절에 나와 있다.

    그리고 마지막 다섯 번째 구절은 앞의 내용과는 별 관계없이 기둥의 수에 맞추기 위한 것으로 보이는데, 출처는 금강경오가해 선현기청분(善現起請分) 중 종경장(宗鏡章)에 나오는 글이다. ‘마음을 어떻게 항복 받아야 하겠습니까?’하는 수보리의 질문에 부처님께서 답하시는 대목에서 종경스님이 글을 단 것이다.

    주련의 내용은 관음예문에 나와 있는 화신불(化身佛)을 찬탄하는 아름다운 문장이다.

    至心歸命禮 兜率陀天上 象駕日輪 摩竭提國中 龍蟠覺樹 敎談三百餘會 度脫衆生 住世七十九年 利樂郡品 應物隨形化 阿羅縛左那 裟婆一代敎主 千百億化身 釋迦牟尼佛 月磨銀漢轉成圓 素面舒光照大千 連臂山山空捉影 孤輪本不落靑天

    중생에게 천백억 화신 나퉈 보이신 석가모니 거룩한 부처님께
    목숨바쳐 지심으로 절하옵나니 부처님은 도솔천 하늘 위에서
    눈부신 햇빛 속에 코끼리 타고 마야부인 태속에 드시었으며
    룸비니 꽃동산에 태어나실 땐 아홉 용이 맑은 물로 목욕시키고
    마가다국 보리의 나무 아래서 위없고 바른 깨침 이루시었네

    삼백여회 진리를 연설하시사 고통받는 많은 중생 건져 내시고
    칠십구년 이 세간에 머무르시사 중생에 이익주고 기쁨 주시니
    천백억 화신 석가모니 부처님께선 중생의 서로 다른 모습을 따라
    그에 맞는 여러 모습 나타내시네

    은하수에 달이 갈려 둥글어지니 흰 얼굴 빛을 펴서 온누리 비치네
    원숭이들 서로 서로 팔을 이어서 공연히 물 속의 달을 건지려 하지만
    홀로 밝은 저 달은 원래로부터 하늘에서 떨어지지 아니하였네.


    대웅전


    조선(1644년), 국보 제290호 통도사 대웅전은 상로전의 주건물(主建物)이다. 대웅전의 평면은 정면 3칸, 측면 5칸의 규모로 되어 모두 15칸 건물이며, 특이한 것은 두 개의 건물을 복합시킨 평면형이라 건물내부의 기둥배치가 다른 건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예이다.
    현재의 건물은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44년(인조 22)에 중건하였지만 건물의 기단은 신라시대의 것으로 보이며, 내부에 불상을 모시지 않아 통도사 대웅전은 참배의 기능만을 갖고 있는 건물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불상을 모시지 않은 대신 불단 뒤편으로 부처님 진신사리가 봉안된 금강계단이 위치하는 구조를 보여준다. 불당 내부에는 동서방향으로 길게 불단만이 있고, 그 앞쪽 중앙에 설법상(設法床)이 있어 대덕승려가 설법할 때 사용한다.

    지붕은 팔작지붕의 복합형인 정(丁)자 형인데 정면과 양측면에 박공(朴工) 부분이 보이게 하여 특이하며 기와 가운데에는 철제(철제)기와도 올려져 있어 보통 건물이 아니었음을 짐작케 한다. 지붕 정상에는 청동제(靑銅製) 보주(寶珠)가 있는데 직경 약 70㎝에 달하는 이 보주의 윗부분에는 다시 높이 50㎝ 가량의 길다란 철주(鐵柱)를 설치해 놓았다. 이를 가리켜 통칭 찰간대(刹竿臺)라 하며 이는 대찰 또는 부처님의 연궁(蓮宮)을 뜻하는 상징물이다. 즉 불탑에서와 마찬가지로 불천(佛天)의 하강(下降)을 나타내는 조형물(造形物)이다. 그리고 지붕의 막새기와 상부에는 도자기 연봉장식이 있어 불사리 계단의 보궁 장엄에 온갖 정성을 쏟았음을 알 수 있다. 정확한 조성연대는 알수 없으나 대웅전 중건 당시의 유물로 짐작된다.

    이 대웅전에는 건물의 4면에 편액을 걸었는데 동쪽이 대웅전(大雄殿), 서쪽이 대방광전(大方廣殿), 남쪽이 금강계단(金剛戒壇), 북쪽을 적멸보궁(寂滅寶宮)이라고 하며, 조선 중기 불당 건축의 특수형으로 불당연구 및 목조건축의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주목받고 있다.

    대웅전의 내부 천정은 우물천정으로 이룩되었으며 이들은 목단, 국화문 등을 조각한 위에 단청(丹靑)하여 매우 화려하고 장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같은 목조조각은 전면 불단의 초자(草子)에도 매우 화려하게 나타났는데, 이는 곧 조선시대 목조 공예의 진수를 나타내고 있다.

    건물의 크기는 남북이 15.8m, 동서가 10.1m이며 동쪽 대웅전 현판 아래 두 장의 꽃살문 역시 조각이 우아하다. 연화문, 옥단문, 국화문 등을 새겨 문살을 장식하였다. 건물의 네 귀퉁이에는 버팀기둥, 즉 우주를 놓아 추녀의 하중을 지탱하도록 하였으며 외양(外樣) 역시 조화를 잘 이룬 뛰어난 목조물이다.

    대웅전 주련

    月磨銀漢轉成圓 월마은한전성원,  아룸다운 저 달이여, 은하수를 돌고 돌아 둥글어 졌는가

  • 素面舒光照大千 소면서광조대천,  하얀 얼굴의 잔잔한 빛이 온누리를 비추네
  • 連비 山山空捉影 연비산산공착영,  원숭이들 달을 맞대며 부질없이 못 속의 달을 건지려 하나
  • 孤輪本不落靑天 고륜본불락청천,  높이 뜬 저 달은 본래부터 푸른 하늘에서 떨어진 일 없다네
  • 默契菩提大道心 묵계보리대도심,  묵묵히 깨달음의 대도심에 계합하네

  • 금강계단 주련

    初說有空人盡執 초설유공인진집,  처음에 공을 설하니 모두 집착하더니

  • 後非空有衆階捐 후비공유중계연,  뒤엔 공이 아니라 하니 모두 버리내
  • 龍宮滿藏醫方義 용궁만장의방의,  용궁에 가득한 경율론 의사의 처방과
  • 鶴樹終談理未玄 학수종담이미현,, 학수에서 마지막 설법도 현묘한 이치는 아니로다







  • 佛之宗刹(좌) 불지종가,  절의 종가집이요

  • 國之大刹(우) 국지대찰, 나라안의 큰절이네


  • 異姓同居必須和睦(좌) 이성동거필수화목,  각 성들끼리 모여 사니 화목해야 하고

  • 方袍圓頂常要淸規(우) 방포원정상요청규,  가사 입고 삭발했으니 규율을 따라야 하네.
  • *方袍 : 각진 두루마기 –가사
    *圓頂 : 둥근머리 –삭발한 머리

  • 일주문


    조선(1770)

    일주문은 절에 들어오는 첫 번째 문으로 기둥의 배열이 한 줄로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일주문의 초창은 고려 충렬왕 31년(1305)이며 현 건물은 영조 46년(1770) 두섬대사(斗暹大師)가 중건한 것이다. 일주문의 ‘일주(一柱)’란 이러한 기둥 배열의 뜻도 있겠지만, 본래의 의미는 『법화경(法華經)』신앙에서 유래되는 것으로 짐작된다. 즉 『법화경』의 대의가 ‘회삼귀일(會三歸一)’, 다시 말하면 부처가 될 수 있는 방편인 성문행(聲聞行- 불법을 열심히 공부하는 것)·독각행(獨覺行- 열심히 참선수행하는 것)·보살행(菩薩行)를 통해 일승(一乘) 의 경지 즉 부처가 되는 궁극적인 방법을 상징한다. 따라서 반드시 일주문은 ‘일주삼칸(一柱三間)’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러므로 통도사의 일주문(一柱門) 역시 전면 3칸뿐이며 측면은 없다.

    “영축산통도사(靈鷲山通度寺)”란 편액은 흥선대원군의 필적으로 유명하다. 주련(柱聯)에는 ‘국지대찰(國之大刹), 불지종가(佛之宗家)’란 해강(海岡) 김규진(金圭鎭)의 글씨가 있다.














    영각

    이 건물은 역대(歷代) 주지(住持) 및 큰스님들의 진영(眞影)을 봉안한 건물로 정면 8 칸 측면 3칸의 긴 장방형(長方形) 평면(平面)으로 된 팔작집이다. 초창연대는 분명치 않으며 현재의 건물은 1704년(숙종 30)에 지었다고 전한다. 처음에는 영자전(影子殿) 이라 불리다가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영각 편액

    偶尋樵者問山名 우심초자문산명,  우연히 나무하는 아이를 만나 산 이름을 물으니

  • 上方月曉聞僧語 상방월효문승어,  한밤중에 봉우리에 경쇠 소리가 있네.
  • 野鶴巢邊松最老 야학소변송최노,  하늘에는 달이 밝고 스님들 말씀이 들리고
  • 願得遠公知姓字 원득원공지성자,  아래로는 수풀이 성글고 지나가는 객이 보인다.
  • 半夜中峯有磬聲 반야중봉유경성,  들의 학은 가장 늙은 소나무에 둥지를 틀고
  • 下界林疎見客行 하계임소견객행,  독룡이 숨은 곳에 물이 맑음에 치우치고
  • 毒龍潛處水便靑 독룡잠처수편청,  원컨데 원공의 성자를 알고자해서
  • 焚香洗鉢過餘生 분향세발과여생,  향 사르고 발우 씻고 남은 생을 보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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