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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동마을 무첨당
    여행스케치 2017. 11. 7. 23:53

    경주 양동마을 전통한옥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보물로 지정된 무첨당 풍경입니다.


     

    무첨당은 물봉골에 있는 가옥으로, 회재 이언적의 아버지 이번이 처음 터를 정하고 살던 집이다. 양동마을 가운데서도 서백당과 함께 풍수지리학적으로 가장 길지로 여겨지는 터에 지어져 있으며, 여강이씨 종가댁으로 사용되고 있다. 사랑 역할을 하는 무첨당은 별채의 기능을 중시하면서, 세련된 가구 기법이 돋보이는 건물이다.

    양동마을의 형국인 ‘물()’자의 가운데 줄기 정남향에 무첨당이 있으며, 무첨당 건넌방 옆을 통해 사당으로 올라가는 계단 길을 사이에 두고‘ㅁ’자형의 남동향 정침이 자리하고 있다. 사당은 별당과 정침 사이의 계단 위에 하늘이 닿은 것 같은 눈높이에 위치하고 있는데, 단청이 아름답게 채색된 삼문과 세 칸의 맞배지붕을 갖춘 건물이다. 별도의 네모난 담장도 갖추고 있다.

    무첨당의 담장은 특이하게도 둥근 모양이며, 이 둥근 담장이 정침과 무첨당을 둥글게 감싸고 있다. 이 담장선은 사당 담장의 전면과 만나 사당이 있는 곳으로 기운이 감아 올라가는 형국을 취하고 있는데, 참으로 흥미로운 전통 담장의 예가 아닐 수 없다.

    대문은 사주문의 형식으로 자동차 한 대가 다닐 만한 폭에 두 짝의 문으로 되어 있다. 사랑채는 ‘ㄱ’자형 평면이고 정침인 안채는 ‘ㅁ’자 형상을 하고 있다. 현재 무첨당은 사랑채로 사용하고 있으며, 제사가 있을 때는 제청으로도 사용한다. 무첨당은 별당으로 지었지만 여강이씨의 종택으로 집안의 대소사를 논의하거나 손님들을 대할 때 사용하는 정자형 건물로, 양반 가옥의 한 전형을 보여주는 건축 양식이다. 바깥주인이 학문을 연마하고 정신을 수양하던 장소로도 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대청마루에 앉아서 마을을 내려다보면, 비스듬히 마을로 올라오는 큰길이 보이고 정면에는 물봉동산의 대나무와 참나무 푸르른 숲이 한눈에 들어온다. 누마루의 바라지창을 열면, 담장 너머로 물봉골 안쪽의 여러 가옥들이 한눈에 들어오는 풍경을 접할 수 있다.

    건물의 규모는 정면 다섯 칸에 측면 두 칸이며, 서편으로 안방에 이어서 만든 누마루가 두 칸의 폭에 한 칸의 깊이로 되어 있고, 지형의 높낮이를 이용하여 잘 꾸며져 있다. 특히 별당 건물이던 이 건물은 요리를 하던 부엌이 없는 대신 누마루 아래에 아궁이를 만들어 사랑 아랫방을 데우고, 건넌방은 기단에 아궁이를 만들어 온돌방에 불을 지피도록 꾸몄다. 이 건물로 오르내리는 곳은 대청 중앙에 하나 놓인 섬돌을 이용하도록 되어 있다. 특이한 것은 건넌방의 끝에 눈썹지붕 형태에 반 칸 규모의 판벽으로 된 도서실을 두었는데, 마치 엄마 등에 매달려 있는 아이 같이 본채에 매달려 있는 모습이 하도 귀여워서 그 구성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무첨당은 막돌허튼층쌓기 한 기단 위에 둥근기둥과 둥글게 휜 대들보와 만나고, 보머리에는 아름다운 조각의 보아지를 받치고 있다. 기단 위에는 네모나게 몰딩을 하고 주좌가 조각된 초석으로 기둥보다 조금 넓은 초석의 주좌와 같은 모양의 원기둥이 만나게 해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기둥은 배흘림기법을 사용하여 멀리서 보아도 중간이 가늘어 보이는 착시현상을 보정하고 각진 장혀를 받친 굴도리를 사용하여 대청으로는 5량 집을, 누마루 쪽으로는 3량 집을 꾸몄다. 특히 기둥 위에 꾸며진 초익공은 매우 조각적이고 장식적인데 그리 화려하지 않고 부재간의 비율이 매우 균형미를 갖추고 있는 것으로 보아 상당히 오래된 가구 기법임을 알 수 있다. 대들보는 종보를 받치는 동자주의 첨차 장식과 마루대공의 화려한 파련대공의 조각 기법은 매우 인상적인 한옥의 멋을 느끼게 한다.

    대청마루 쪽으로 오체서실과 정면에 ‘청산세거’라는 편액이 걸려 있는 온돌방을 두었으며, 내진주에 좌우로 띠살무늬 외닫이 문을 달고, 옆으로 앞과 뒤에 한지로 바른 맹장지문을 두었다. 그 옆으로는 두 칸의 서실인 도서관을 두 칸으로 나누어 눈썹지붕 아래 광창을 예쁘게 꾸민 공간으로 구성하였다. 당연히 서고의 바닥은 바닥에서 일정 거리를 두고 마루를 두어 책을 보관하기에 적합한 환경을 맞추는 것도 잊지 않았다. 대청마루의 후벽에는 기둥사이에 두 칸의 청판을 꾸민 머름을 두고 판벽에 두 짝짜리 판문을 달고 밖으로 열리도록 하였다. 특히 장혀와 창방 사이에는 소로를 넣고 공간을 띄워 장식적이고 개방적인 분위기를 극대화하고 있다.


     

     

    한편 왼쪽으로는 지형의 단 차이를 이용하여 두 칸의 날개를 네 칸 규모의 누마루로 꾸미고, 누하주 기둥을 대고 누상주에 마루를 두는 대청을 돌출시켜 놓았다. 누하주에는 물애서옥의 온돌방에 불을 지피는 아궁이를 만들어 놓았으며 나뭇간의 역할도 하고 있다. 누마루는 계자각 난간에 하엽을 돌란대에 받치고 있는 매우 장식적인 조각기법이 사용되었으며, 사랑마당 쪽으로는 문이 없이 옆으로 바라지창을 둔 판벽으로 되어 있는데 나뭇결의 부드러운 무늬와 느낌은 웅대하면서도 차분한 분위기를 준다. 누마루의 판장문을 열고 마을을 바라다보면 물봉동산의 푸르른 나무숲과 물봉골의 다양한 나무와 꽃들이 계절을 바꾸어 가면서 변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마을 동산의 변화하는 계절을 감상하면서 휴식과 함께 호연지기를 키우기에 적당한 운치가 있다. ‘물애서옥’ 편액이 걸려 있는 온돌방과 연결되는 누마루는 대청 쪽으로는 내진주에 외닫이 띠살무늬 출입문을 두고 뒤쪽으로는 오체서실과는 다르게 격자문의 외닫이 창살문을 고정시켜 장식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있다. 특히 대청마루와 누마루는 상호 왕래가 쉽도록 한 칸 크기의 마루 널을 깔아 매우 개방적인 공간을 만들고 있다. 오체서실과 물애서옥의 벽은 불발기 분합문 들어열개 식으로 되어 있어 모든 창문을 천장의 등자쇠에 걸면 커다란 대청 공간이 만들어지는데, 이는 무첨당에 이렇게 큰 공간이 필요할 정도로 종가집으로서 손님의 왕래가 잦고, 자손 역시 번창하여 제사 때에는 많은 친척들이 모인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온돌방의 천장은 각진 네모난 천장 반자를 그대로 노출시킨 고미반자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사이사이에 한지를 발라 천장 모두를 한지로 바른 것보다 안정적인 느낌을 준다.

     

     


     


     

    무첨당은 본래 별당으로 지어진 것인데, 무첨당 사랑채에는 자해금서, 물애서옥, 오체서실, 세일헌, 청옥루, 창산세거와 같이 많은 편액들이 걸려 있다. 그 중 글씨 끝이 시원스러운 ‘좌해금서’ 편액은 대원군이 죽필()로 쓴 글씨로 유명하다. 좌해는 영남을 나타내는 의미로 영남의 대표격인 무첨당의 풍류와 학문을 높이 평가하여 하사한 편액이라고 한다. 또 ‘오체서실’은 5형제가 우애 있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을 표현한 것으로, 집안의 명예와 영광의 근본을 형제간의 우애로 생각한 부모의 따듯한 가훈이면서 기원문이다. 또한, 건넌방의 방문 위에 걸려 있는 ‘청산세거’의 편액은 자손들이 학문을 익히는 공부방으로 학문과 함께 가족과 형제들의 우애를 교육하는 마음을 전하고 있다. 이러한 문귀들은 우리 조상들이 인간의 보람 된 삶에 대한 정의를 외적인 영광보다는 내면적인 정신 수양이 인간 삶의 근본임을 그렇게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다.

    누마루의 투각 댄 계자각과 소나무는 세월이 흘러 많이 낡았지만, 풍화를 적게 받은 딱딱한 부분의 볼륨감이 풍부하게 표현되고 있다. 여기에 색감의 차이까지 더해져 그야말로 새로운 조형미와 고풍스러움이 느껴진다. 마루 귀틀의 이음부분을 마무리하는 개판인 치마널에도 선각 된 안상 무늬와 아래 부분에 조각된 안상 무늬가 있어 무첨당을 지은 주인의 정성과 도편수의 솜씨를 보여준다.

     

     


     

    무첨당 마당을 지나면 정침인 안채로 연결된다. 특히 안채의 아래채 사이에는 화단을 만들어 아름답게 꾸며 공간과 영역을 구분하고 있다. 안채의 평면 구조는 안채와 사랑채가 결구된 ‘ㄷ’자형의 본채와, 바로 전면에 ‘’자형의 행랑채가 놓여 있다. 본채와 행랑채 사이로 중문이 있고, 중문을 경계로 전체적으로는 안마당을 중심으로 튼 ‘ㅁ’자형 평면이 된다. 안채는 크고 작은 막돌을 요령 있게 허튼층쌓기 공법의 기단으로 성곽을 쌓은 것 같은 느낌을 주며, 4벌대의 기단으로 연결된 대청 전면의 계단은 계단의 좌우로 소맷돌을 꾸며 정성스럽게 만들었다.

    무첨당 쪽의 사랑채 쪽으로는 고방과 머리방이 꾸며져 있는데, 그 앞의 안마당 기단을 2단으로 만들어 화계를 꾸미고 모란꽃과 같은 부귀영화의 상징인 꽃과 많은 작은 꽃들을 심어 봄부터는 아름다운 꽃동산이 된다. 여인들과 어린이들이 거주하는 안채에서는 이와 같은 화단에서 피는 꽃과 식물들의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세월의 흐름과 계절의 변화를 느끼며 살았다. 안채는 정면 다섯 칸 측면 두 칸의 크기로, 가운데는 두 칸의 대청마루를 두고, 사랑채가 있는 서쪽으로 한 칸 반의 머리방과 두 칸의 고방을 두고 있다.

    동편으로는 두 칸 반의 방을 두었는데 후벽으로 눈썹지붕(=부섭지붕)을 내밀게 하였다. 안방 옆에 있는 부엌도 집의 규모만큼이나 크다. 동쪽의 건넌방은 부엌 사이에 대청마루를 두고 4분합 띠살무늬 문을 달아 여름에는 대청으로 사용한다.

    사랑방은 두 칸의 사랑 온돌방과 한 칸의 사랑마루를 꾸미고 있는데 무첨당이 있는 서쪽으로 문이 나 있다. 사랑은 쪽마루를 놓아 사당이나 별당으로 나가기에 편리하도록 실용성을 높이고 있다. 사랑채는 홑처마 3량 집으로 기둥 사이를 4등분한 크기의 띠살무늬 덧문을 달고 미닫이문을 꾸며 놓았다. 미닫이문은 길상자인 ‘용()’ 무늬 살대를 성글게 엮어 소박한 선비의 이미지를 표현하고 있다. 덧문을 열어젖혀 기둥에 고정하면, 기둥과 벽의 사이에 덧문이 정확히 들어가는 한옥만의 창문 크기 기법을 볼 수 있다. 그로 인해 덧문이 바람에 덜컹거리는 일이 없고 쪽마루를 다니면서 소매에 문이 걸리는 일이 없다. 이와 같이 한옥은 외형상 나무를 적당한 크기로 이어 조립한 구조물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세부적인 기법을 살펴보면 그 기능과 실용성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하나의 창문이라도 두 개 이상의 기능을 하도록 하고, 현대건물처럼 장식적인 외관에 치우치는 대신 생활의 편리를 우선으로 한다.

    행랑채는 일자형에 맞배지붕 형식으로 전면 일곱 칸 측면 한 칸의 크기다. 행랑채의 가운데는 안채 마당으로, 벽이 없는 헛간을 두어 안마당에서 가사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비가 오거나 날씨가 좋지 않을 때 마당에서 할 수 없는 일들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헛간에는 두 짝짜리 판문을 두어 바깥으로 나갈 수 있는 문을 두었다. 이 길은 사랑마당 끝에 있는 물봉골에서 올라오는 협문과 이어지는 문으로, 이 가옥에서는 비밀스런 문이다. 그리고 동쪽으로는 마룻바닥으로 꾸며진 곳간을 두어 안채에서 사용하는 생활도구나 음식물들을 저장하는 장소로 이용한다. 서쪽 끝에는 아랫방을 두고 마루를 만들어 두었다. 마루에서는 마을 어귀 쪽을 바라보게 되어 있는데 성주산이 정면으로 보이는 장소로 무첨당과 함께 안산의 기운을 받는 장소이기도 하다.

     


     

     

    불천위를 모신 사당은 별당의 오른편으로 수십 개의 계단을 올라 물봉동산의 정상 가까운 곳에 별도의 담장을 구획하여 따로 만들었다. 이 마을에서 가장 높은 지형으로 사당 앞에 서면 향단 뒷산 옆으로 마을 입구까지 보이고, 성주산이 눈앞에 펼쳐진다. 양지바르고 사방이 훤하게 트인 자리다. 일반적인 종가집에서의 제사는 대부분 사랑채 대청마루에서 지낸다. 무첨당에서도 규모가 매우 큰 누마루 대청이 사용되며, 사람이 많을 경우에는 마당에까지 서서 제사를 지내는 일도 있다고 한다.

    사당은 둥근기둥에 3문으로 되어 있으며 문은 중앙에 달아 안과 밖으로 추녀 공간을 두었다. 삼문에는 사찰에서나 봄직한 매우 화려한 단청이 되어 있다. 기둥 위에는 기둥머리초를 꾸미고 연목이나 도리에도 연화머리초를 내려 화려하고, 보의 절단면에는 태평화를 넣었다. 사당은 정면 세 칸에 측면 한 칸 반의 크기로 맞배지붕의 형식을 하고 있다. 전면에 개방형 툇칸을 두고 내부에는 불천위를 모시고 있다. 막돌허튼층으로 쌓은 기단 위에 둥글려 깎은 초석을 두고 그 위에 둥근 기둥을 세웠으며, 벽은 화방벽으로 만들고 치마모양의 방풍판을 달았다. 기둥 위는 창방과 초익공을 결구하고, 기둥 사이는 화반으로 화려하게 꾸몄다. 겹처마에 암수막새를 사용하고 단청을 칠하였다. 이렇게 화려하게 사당을 꾸미는 것은 가족의 삶과 죽음의 영속성에 대한 믿음, 조상에 대한 효심이 크게 작용한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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