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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주 양동 마을 관가정 풍경
    풍경사진 2017. 9. 3. 23:56

    경주 양동 마을 관가정 풍경입니다.

    양반가의 전통 한옥의 형태를 보여주고 있는 관가정

    베롱나무 꽃이 피니 더욱더 조화로운 풍경으로

    전통한옥의 아름다움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관가정은 조선의 자연과 유교철학에 부합하여 지은 걸작이다. 관가정은 사계절이 뚜렷한 자연환경과 잘 적응된 자연친화적인 한옥이다. 조선의 자연은 전 국토의 70퍼센트가 산으로 구성되어 있고, 여름과 겨울의 온도 차이가 심하면 40~50도를 오르내린다. 집짓는 나무가 여름에는 습기를 먹어 늘어나고 겨울에는 건조하여 줄어들어 나무에 못질을 하면 나무가 갈라져 견딜 수 없다. 이런 이유로 쇠못 하나 쓰지 않고 짜맞춤 기법으로 완성하는 목조건축이 바로 한옥이다. 소나무는 일찍이 주변에서 구하기 쉽고 하중에 잘 견디며 무늬가 아름다워 널리 사랑받아 왔다. 겨울철 차가운 북서풍을 막는 방한으로 온돌이 발달하였고, 여름의 고온다습한 장마를 피하여 대청이 경영되었다.

    조선 태종 때부터 시행된 내외법으로 남녀의 거주공간이 확연히 구별되었다. 한 집 울타리 안에서도 남자들은 사랑채에서 글 공부와 손님 맞이를 하였고 부인은 내당에서 안살림과 자녀 교육을 도맡아 하였다.

    우재는 관가정 2칸 누마루에서 여름을 나고 2칸 온돌에서 겨울 손님을 문객하였다. 마당에는 향나무·배롱나무·회화나무를 심어 품위 있는 정원을 두고 후원에는 온갖 꽃나무를 심어 꽃천지를 만들었다. 새로 쌓은 담장 안으로 베어버린 향나무와 회화나무 밑둥이 썰렁하지만 나무가 서 있는 그 모습 마음속으로 그려본다. 굽고 뒤틀리며 용트림하는 향나무의 자태에서 선비의 기상을 읽고 회화나무 그늘에서 여름 매미 울음의 시원함을 즐길 것이다. 관가정 사랑 누마루에 있는 지름 83센티미터의 원기둥을 어루만지다가 문득 앞산 너머 파란 가을 하늘을 올려다본다. 가을 바람에 은행나무잎이 춤춘다.

    경주를 다녀온 다음 날 아침 마당에 나오니 추규화()가 소담하게 피었다. 여름내 닭 발톱같이 뻗은 이파리가 보기 좋더니 8월이 갈 무렵부터 한두 송이 피던 꽃이 이젠 마음먹고 보란 듯이 피어난다. 목화꽃같이 수줍게 피어나는 추규화는 아침에 피어 저녁에 진다. 선비 같은 우아함에 옛 문인들의 사랑을 한껏 받았다. 맨드라미도 가을빛에 붉게 익어가고 국화도 송이마다 노란 속을 보이고 있다. 추규화 위로 꽃사과나무 가지마다 사과가 빨갛고 파랗게 색이 섞여 가지마다 여리게 매달려 있다. 좋은 가을이다.

     

     

    사대부의 호연지기

    관가정은 정자가 아니다. 관가정은 우재 손중돈의 사가()이다. 사랑채 누마루에 관가정이라는 당호를 붙여 집 전체를 관가정이라 부른다. 단정한 ㅁ자형 종가로, 후원 곁에 사당을 두고 안채는 대청을 중심으로 기둥의 높이를 달리하여 내당의 위계를 세웠다. 관가정 안채 6칸 대청마루에 동해에서 떠오르는 아침 햇살이 마루 깊숙이 들어올 때 사각기둥과 사각마당, 높낮이가 다른 기와지붕의 음영이 빚어내는 조화는 일품이다. 마당의 넓이가 가로 4.8미터, 세로 6미터로 작지만 후원을 향해 난 대청판문을 열어두면 자연이 마당 가운데로 들어오고, 형산강 시원한 바람이 네모반듯하게 뚫린 하늘지붕에서 집안으로 불어 들어와 후원 떡갈나무 숲으로 흩어진다. 여름에 매미 소리에 백부채라도 들고 마당에 물이라도 끼얹으면 더위는 절로 지나갈 듯하다.

    안채 대청마루 어간 댓돌에는 작은 배 모양의 구멍이 하나 뚫려 있다. 구멍의 크기는 가로 18센티미터, 세로 7센티미터로 두꺼운 마루송판을 끌로 따내어 파낸 자국이 선명하다. 사용한 흔적이 역력하여 구멍 주위가 반질반질 닳아 있다. 나무의 연대로 보아 이 집을 처음 지을 때 당시에 뚫어놓은 듯한데 도무지 용도를 알 길이 없어 궁금하다. 그저 막연한 추측이 내당마님의 이동식 화장실이 아니었을까 싶다. 요강이 있기는 하지만 마루 위에 두는 게 보기에 좋지 않아 댓돌 부근 마루 아래 손이 닿을 만한 곳에 요강을 두고 마루 위에서 작은 볼일을 보는 일종의 실내화장실이 아닐까 추측만 무성하다. 어느 해 여름 상주 대산루 우복종가의 사랑 누마루 위에 이와 비슷한 타원형 구멍을 보고 그 용도에 대하여 같이 답사 갔던 《문헌과 해석》 학자들과 갑론을박 장님 코끼리 더듬기식 토론을 한 적이 있다. 그때도 결론 없이 지났는데, 다시 관가정 내당 대청마루 구멍을 보니 의문이 확신으로 변한다.

    관가정 사랑 누마루에 올라 동남 간에 일망무제로 트인 형산강 너른 뜰을 바라본다. 사대부 호연지기가 새롭다. 양동마을 건너 반듯한 삼각형의 산봉우리 하나가 새롭다. 한참을 바라보았다. 볼수록 따듯하다. 풍수에서 문필봉이라 귀하게 여겼던 전형적인 산형이다. 추석날 보름달이 저 봉우리 위로 둥두렷하게 떠오르고 교교한 달빛이 양동 앞 너른 경주평야에 내리면 주인의 심사는 어떠했을까? 주안상이라도 내어 오래만에 식구들과 앉아 지난여름의 이야기를 나누노라면, 어느새 밤이 깊고 달은 중천에 솟아 온 세상을 환히 비출 것이다. 임술년 추칠월 기망() 동파 소식의 「적벽부」에 나오는 밝은 달이 아니어도 관가정 언덕 위로 떠오른 보름달 또한 세상을 환히 비추겠지.

     

    관가정은 손소의 둘째아들 우재 손중돈이 분가하면서 1480년대 지은 한옥()이다. 양동마을 입구 버스정류장 종점 앞 허름한 구멍가게를 지나 왼편으로 반달 논을 끼고 오르면 오른쪽에 향단이 위엄을 갖추고 규모를 자랑하듯 버티고 있고, 왼편으로 작은 고샅을 오르고 두어 채 초가를 지나 언덕에 이르면 관가정이 비로소 보인다. 언덕받이에 수령이 200~300년은 족히 됨 직한 은행나무 한 쌍이 말없이 가문의 이력을 보여주고 있다. 고목의 아름다움은 풍만하게 잘생긴 것이 아니라 둥치와 가지가 비바람에 비틀리고 꺾였지만 든든한 뿌리와 굳건한 기둥에 말할 수 없이 서려 있는 세월의 무게에 있다. 나이가 최고의 미감인 셈이다.

    관가정은 이제 많이 쇠락하여 그 옛날의 아름다운 자태가 사라졌지만, 그래도 오늘까지 빛을 잃지 않는 것은 은행나무뿐만 아니라 그 옆의 회화나무도 마찬가지다. 은행나무는 공자가 제자를 가르칠 때 은행나무 아래에서 가르쳐 유교의 상징목으로 성균관과 향교 및 서원에 심어졌고, 회화나무는 꽃이 과거급 제자의 어사화로 쓰여서 과거에 등용되는 선비의 꿈을 상징하는 선비나무로 잘 알려져 있다. 아마도 우재가 분가할 때 아버지 손소가 아들의 입신양명을 기원하며 심지 않았을까? 추측만 해도 아름다운 부정()이 느껴진다.

    나는 은행나무 아래에서 잠시 가을 바람을 쐬고 발아래 양동초등학교에서 아이들 뛰노는 모습을 보았다. 가을이 너른 경주 평야에 한창이다. 저 초등학교 운동장에 추석 다음 날 만국기가 펄럭이며 가을운동회로 아이들 함성이 온 양동마을을 울리겠지. 생각하다가 발길을 돌려 관가정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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