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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통영의 연화도 아름다운 해안 절경 용머리 해안을 간직한 아름다운 섬 연화도 입니다.
연화도 정상에 세워진 아미타불 입상이 불교의 성지임을 나타내는 듯 합니다.
운무속의 아미타불상이 신비로운 모습입니다.
섬을 가득 채운 수행의 자취
연화도에는 사찰 한 곳과 암자 하나, 그리고 아미타대불과 해수관음상 등 석불 두 개, 오층석탑 하나가 있다. 크지 않은 섬에 사찰과 암자, 그리고 석불과 탑이 모두 들어선 것은 유례가 없다. 이것들은 모두 근래에 지어졌다. 마을 뒤편 절집 연화사는 1998년에 창건됐고, 그 절집에 딸린 암자 보덕암과 석불은 2004년에 지어졌다. 절집과 암자는 모두 쌍계사 조실과 조계종 총무원장 등을 두루 지낸 고산스님의 손으로 창건된 것이다. 이렇듯 작은 섬에 사찰과 암자를 모두 들인 까닭은 무엇일까.
그 연유는 500년 전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 초기 연산군의 불교탄압이 극에 달했을 무렵, 서울 삼각산에 실리암이란 암자에서 수도하던 이가 이곳 외딴 섬 연화도로 도망쳐왔다. 연화도인이라 불렸던 그는 섬에서 몸 더럽힘없이 수행하며 향기롭게 살다가 입적했다. 마을 주민들은 도인의 유언에 따라 시신을 수장했는데 그 자리에서 연꽃이 피어올랐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연화도인이 입적한 지 70여 년 뒤 사명대사가 연화도로 찾아들어 수행에 정진한다. 사명대사를 따라 비구니가 된 여동생 채운, 그리고 출가 전 사명대사의 처 보월과 연인 보련도 이곳 섬까지 찾아들어왔다. 섬 사람들은 훗날 섬을 찾아든 사명대사가 연화도인의 환생이라 믿었다. 사명대사의 연화도 행은 공식적으로는 확인된 바 없지만, 이곳 섬 주민의 구전뿐만 아니라 1974년에 발간된 전남 순천의 마을기록에도 연화도에 얽힌 도인과 사명대사의 이야기가 등장하니 그게 마냥 근거없는 이야기만은 아니리라.
연화봉 정상 바로 아래에는 연화도인과 사명대사가 수행했다는 토굴이 복원돼 있다. 하지만 군대 벙커를 연상케 하는 복원된 토굴은 가짜다. 본래 토굴은 연화봉 반대편 쪽에 있다. 토굴은 굴이라기보다는 암벽의 오목한 자리인데 여기다가 섬 사람들이 성황당을 짓고는 연화도인이 불상 대신으로 삼았다는 매끄러운 둥근 돌을 모셔두었다. 성황당 옆에는 서툰 솜씨로 ‘富(부) 吉(길) 財(재)’란 글이 새겨진 돌판이 누워있다. 연화도인이 자신을 받아준 섬사람들을 위해 손가락으로 바위에 썼다는 글이다. 사찰측에서 암자를 지으면서 본래 자리에 토굴을 복원하고자 했는데, 신령스러운 토굴의 훼손을 우려한 마을 주민들의 반대로 엉뚱하게 반대편 능선에 복원된 토굴을 세워놓은 것이다.정상아래에 있는 연화도인 상
연화도에서 수행을 했다고 전하는 사명대사 상입니다.
연화도 보덕암의 해수관음상
연화도 보덕암
연화도 5층 석탑
스님들의 수행처 출입이 통제된 바닷가 암자
연화도 연화사 전경
쌍계사 조실 고산스님이 창건했다고 하는 연화사 석탑이 쌍계사의 석탑을 보는 듯하다.
낙가산 연화사 정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