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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평 하늘 길
    여행스케치 2016. 10. 3. 19:11

    경북 봉화의 오지

    간이역 양원역에서 승부역까지

    낙동강변 따라 걷는 길 세평 하늘길

    오지의 낙동강변따라 영동선 철길이 뚤리고

    철길따라 강변 따라 걷는 길

    맑고 맑은 낙동강 물길 따라 걷는 길

    세평 하늘 길입니다.


    올바른 사람과 함께 노닐고 일하며 올바른 사람의 법을 이해하면

    그는 훌륭하고 악하지 않다고 하느니라.

    (잡아함경)


    구걸하는 사람을 보고 얼굴을 찡그리면

    동시에 지옥의 문이 열린다.

    (불설보살본행경)


    자기의 본성을 깨치라! - 성운대사.


    자기의 본성을 깨치라!
      

    견성(見性)이란 곧 자기의 본성을 깨달아 부처가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견성으로 신심이 두터워지는 것이 가장 가치가 높습니다.

    옛날 푸젠성 푸롱산에 계시던 영훈 선사가 어느 날 귀종 선사를 찾아가 물었습니다.

    "선사께 가르침을 청하건대 어떠한 것이 부처입니까?"

    "말해줄 수 없네, 말해줘봤자 믿지 않을 테니!"

    영훈 선사가 다시 물었습니다.

    "선사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제가 어찌 안 믿겠습니까? 말씀해 주십시오."

    그러자 귀종 선사의 대답이 실로 엉뚱했습니다.

    "그렇다면 말해주지, 바로 네가 부처야!"

    영훈 선사는 이 말을 듣고 단박에 깨달았다고 합니다. 만약 지금 제가 "여러분이 모두 부처입니다!" 하면 여러분은 믿겠습니까?

    아마 여러분도 '내가 보기엔 아닌데…' 하고 의아해 할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자기가 부처라는 것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일찍이 귀종 선사가 "눈에 티끌이 들어가 있으면 헛것이 어지럽게 떨어지고 모든 상을 여의면 곧 모든 부처님을 보게 된다"고 말했듯이 우리가 자성(自性)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우리 모두 자기가 부처라는 것을 인식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단지 너와 나, 옳고 그름, 좋고 나쁜 것, 괴롭고 즐거운 것 등의 분별로 따지니, 마치 색깔 있는 안경을 쓰고 사물을 보는 것처럼 세상 본래의 모습을 잘못 알며 자기의 본성마저도 인식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황벽희운(黃檗希運,?~850) 선사가 당 선종(宣宗)의 출가 시절에 나눈 문답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부처에 집착하여 구하지도 말고

    법에 집착하여 구하지도 말고

    승가에 집착하여 구하지도 말라

    不著佛求 不著法求 不著衆求 


    신앙은 자신 밖에 있는 세상사로 인해서 눈이 어두워져 자기의 본성을 잊어버릴 수 없는 것으로 불법승(佛法僧) 삼보(三寶)는 우리의 자성 가운데에 본래 갖춰져 있는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볼 때 불법승 삼보는 신앙의 과정에서 하나의 보조적인 인연으로 결국은 자기를 믿어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자신을 의지하고 법에 의지하며 다른 것에 의지하지 말라"하셨습니다.

    '사람마다 모두 불성이 있다.'는 이치를 터득할 수 있다면 신심을 반드시 두텁게 할 수 있습니다.
    성운대사 <보통중생 보통부처> 중에서 - 모과나무

    게으름은 더러움에 이르는 길이요

    정진은 께끗함에 이르는 길이다.

    방일은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 길이요.

    한결같은 마음은 고요에 이르는 길이다.

    (불설문수사리정률경)


    어떤 이론이 사람들의 지지를 받는다고 해서 무조건 따르지 말고

    어떤 가르침이 남들의 비난을 받는다고 해서 무조건 배척하지 말며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사람이 주장했다고 해서 검증되지 않은 말에 현혹되지 말라.

    (증아함경)



    믿음을 내고 의심을 품지 말아라.

    믿음이 곧 부처님 자체이므로 꼭 해탈을 얻게 하리라.

    (대승밀엄경)


    만약 법을 듣기를 좋아하여 싫증을 내지 않으면

    불가사의한 법을 깨닫게 되리라.

    (화엄경)



    사람이 사는 것은 한세상뿐이지만

    불경은 무수한 세월에 걸쳐 사람들을 제도하여 

    열반의 도를 얻게 한다.

    (불반니원경)



    보배의 마음인 보리심을 얻기 위하여 

    나는 여래께 지극한 정성으로 공양을  받들어 올립니다.

    그리고 맑고 깨끗한 보배인 정법과 공덕의 바다인

    불자들에게도 공양을 바칩니다.

    (입보리행론)



    드넓은 바닷물이라도 쉬지 않고  퍼낸다면 언젠가 그 밑바닥을 보게 될 것이다.

    하물며 지극한 마음으로 구도의 길을 간다면 무엇인들 이루지 못하겠는가.

    (대아미타경)



    만약 모든 고뇌에서 벗어나고자 한다면

    만족할 줄 알아라.

    넉넉함을 아는 것은 부유하고 즐거우며 평온하다.

    (유교경)



    비움, 아름다운 채움 - 성전스님.

    비움, 아름다운 채움  

    조주 선사는 당신을 찾아와 도를 묻는 사람들에게 차나 마시라고 했다.

    차나 마시라는 조주의 답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었을까. 조주의 답은 마시는 차가 아니라 비워진 찻잔에 의미가 있다는 것은 아닐까.

    도에 집착하는 그 마음을 비우면 도는 스스로 찾아온다는 것이 조주 답의 의미라는 생각이 든다.

    풀잎이 예뻐 보이는 순간, 나는 산실에 서서 조주의 차를 마시고 그 비워진 잔을 보았던 것이다. 그 비워진 잔에 담지 못할 것이 무엇이겠는가.

    나는 고정관념이라는 찻물을 비우고 버려졌던 풀잎의 아름다움을 담았다. 이것은 내가 얻은 작은 깨달음이었다.

    자신을 비운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것은 새로운 기쁨에 눈뜨게 하기 때문이다. 비우지 않으면 새로워질 수 없고 또한 즐거움을 만날 수도 없다.

    날마다 새날을 만나는 사람은 언제나 자신을 비운 사람이다. 마음속에 자리한 탐욕을 비우면 그 자리에 자비가 채워지고, 분노를 비우면 그 자리에는 사랑이 찾아온다.

    배고프면 밥 먹고 졸리면 자는 것이 마음을 비운 사람들이 살아가는 자세다. 더 이상 구해야 할 무엇이 없다. 이미 그는 텅 빈 충만으로 가득한 사람이니까. 그 삶은 마치 해가 지고 달이 뜨는 것처럼 자연스럽다. 깨달음이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소식을 그는 한때의 잠과 한때의 허기에서도 만나는 것이다.

    비움은 아름다운 채움이다. 마음을 비우면 더이상 구할 바가 없어진다. 마음속의 탐욕을 비워 보자. 그 자리에 자비가 채워질 것이다.

    사는 것이 괴롭다면 그 자리의 분노를 비워 보자. 그러면 사랑이 채워지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사념이 가득해 혼란스럽다면 그 사념을 비워 보라. 그러면 그 자리에는 고요한 평화가 채워질 것이다.


    성전스님의 <비움, 아름다운 채움> 중에서


    마음이 사람을 따르게 할지언정 사람이 마음을 따르게 하지 말라.

    마음은 사람을 하늘도 되게하며 축생도 되게 하기 때문이다.

    (불반니항경)



    위대한 열반

    /부처님 사리의 분배와 탑을 세움/

     디가 니까야: 16 마하빠리닙바나 경 6:23-6:27 |


    꾸시나라의 말라족들은 부처님의 사리를 수습하여 회당에 모시고 칠 일 동안 향을 사르고, 꽃을 장식하고, 음악을 연주하고, 찬가를 하면서 존경과 공정의 예를 올렸다.

    그때 마가다의 아자따삿뚜왕은 부처님께서 꾸시나라에서 열반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서 꾸시나라의 말라족에게 사신을 보내어 이렇게 전하였다.

    "부처님은 왕족이었고 나도 왕족이오. 그러므로 나는 부처님의 사리의 일부를 받을 자격이 있소. 나는 거대한 사리탑을 세워 예배하려 하오."

    웨살리의 릿차위족도, 까삘라왓투의 가쌰족도, 알라깝빠의 불리족도, 라마가마의 꼴리야족도, 웨타디빠의 브라흐민도, 빠와의 말라족도 모두 똑같이 사신을 보내 부처님 사리의 일부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하면서 탑을 세우고 예배하려 하니 사리를 나누어 주기를 요청하였다. 이런 요청을 듣고 꾸시나라의 말라족들은 운집한 군중들에게 말하였다. "부처님은 우리 땅에서 열반하셨소. 우리는 부처님의 사리를 나누어 줄 수 없소."

    이때 브라흐민 도나가 군중들에게 말하였다.

    "여러분, 내 말 좀 들어보십시오. 인내는 부처님의 가르침이었습니다. 인간 중에 가장 훌륭한 분이셨던 부처님의 사리를 나누는 문제를 놓고 분쟁을 한다는 것은 전혀 옳지 않습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 일치하여 화합합시다. 기쁜 마음으로 동의하여 사리를 여덟 등분으로 나누도록 합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지혜의 눈을 가지신 부처님께 존경과 봉헌을 하게 합시다. 그래서 여기저기 모든 지역에 탑을 세웁시다."

    그래서 브라흐민 도나는 사리를 여덟 등분으로 나눈 후 대중들에게 말하였다.

    "여러분, 이 사리를 분배할 때 담았던 단지를 저에게 주십시오. 저도 탑을 세워 예배드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단지는 브라흐민 도나에게 주어졌다. 그런데 삡팔리 숲의 모리야족도 사리를 나누어 주기를 요청해 왔다. 그러나 이미 사리를 다 분배하였기 때문에 모리야족은 다비장의 숯을 가져갔다.

    그래서 마가다의 아자따삿뚜왕은 라자가하에 거대한 부처님의 사리탑을 세우고 예배하였다. 릿차위족은 웨살리에, 사꺄족은 까삘라왓투에, 불리족은 알라깝빠에, 꼴리야족은 라마가마에 브라흐민은 웨타디빠에, 빠와에 사는 말라족은 빠와에, 꾸시나라에 사는 말라족은 꾸시나라에 각각 탑을 세웠고, 브라흐민 도나는 단지를 넣은 탑을, 모리야족은 삡팔리 숲에 숯을 넣고 탑을 세웠다.

    이렇게 하여 열 개의 탑이 세워졌는데 여덟 개의 탑은 부처님의 사리를 넣은 탑이고, 아홉 번째 탑은 단지를 넣은 탑이고, 열 번째 탑은 숯을 넣은 탑이 되었다. 이것이 바로 예전에 있었던 일이다.

     
    일아 스님의 <한 권으로 읽는 빠알리 경전> 중에서


    오늘의 나는 지난날 내 행동의 결과이니

    나는 내 행동의 상속자이다.

    (아함경)



    다른 사람이 곧 나요.

    내가 곧 남이라고 생각하여 

    나 아닌 남에게 상처를 주어서는 안된다.

    (아함경)



    자애롭게 생명을 보살피고 보호하며 

    생명을 해치지 않고 가엾이 여기는 것이 불교다.

    (불설문수사리현보장경)



    은헤를 베풀라 부드럽게 말을 건네라.

    이롭게 행동하라.행동을 함께하라.

    그러면 대중들은 그대의 편이 되리라.

    (증아함경)



    가난하여 보시할 재물이 없을 때에는 

    남이 보시하는 것을 보고 기쁜 마음을 내라

    남의 선행을 보고 기뻐하는 마음을 일으키는 것은

    보시하는 것과 같은 공덕이 된다.

    (인과경)



    지혜로운 사람은 생각이 민첩하여 하나를 들으면 만을 알고

    장래 일을 미리 예측하며 순간순간의 행동이나 판단에 막힘이 없다.

    (출요경)


    불교 공부는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 <믿는 마음> 중에서.

    불교 공부는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매일 아침 나를 내려놓고 나를 비워내는 백팔배를 시작했다.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참회의 절은 놓치지 않았다. 

    절을 하면서 내가 화가 많은 사람임을 알았다. 나와 조금만 맞지 않아도 참지 못하고 벌컥 화를 내는 모습이 보였다.

    절을 하며 참회하고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해 놓고는 또 참지 못해 화를 내고 언성을 높이고 반복하는 나를 멈출 수가 없었다. 그래도 참회의 절을 하면 화내는 일이 줄어들고 상대에게 참회하는 마음이 있어 차츰 고치려고 노력하는 내가 보였다.

    예전엔 화를 내도 화내는 줄도 몰랐다. 지금은 화란 놈이 올라오기 시작하면 발 밑서부터 스멀스멀 화의 조짐이 몸을 통해 신호를 보내 알아차리기는 한다. 하지만 알아차리기는 해도 멈추는 것은 안 되고 있다. 그래도 꾸준히 노력할 것이다.

    불교대학에 입학했다. 입학하여 하루도 빠짐없이 공부를 했다. 몇 달 안 되어 담당자 소임을 맡았다. 담당자 봉사를 하면서 내 꼬라지와 내 수준을 파악할 수 있었다. 좋은 말과 칭찬받는 걸 좋아하고 내 마음에 맞지 않는 도반과 언쟁을 하고 나의 능력 이상 애쓰면서 좋은 말과 칭찬이 따르지 않으면 서운해했다.

    인연 지어지는 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강한 집착을 보이며 움켜쥐려는 마음과 바라보는 인내심이 부족하여 성급한 마음으로 도반에게 상처가 되는 일도 경험했다. 스스로 실망하여 주저앉아 '나는 안 되는구나' 자책하며 힘들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다시 일어나 참회의 절을 했다.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올 2월에 불교대학 2년 과정을 무사히 마쳤다. 부처님 제자됨이 자랑스럽고 어떠한 삶을 살아가더라도 나는 행복할 권리가 있으며 남의 불행 위에 나의 행복을 쌓는 일은 없어야 하고 수행과 보시 봉사를 통해 함께 살고 함께 나누는 삶을 지향하게 되었다.

    대한불교 조계종 세 번째 신행수기 <믿는 마음> 중에서 - 모과나무


    작은 명예와 이익을 구하다가 도리어 큰 손실을 보게 되나니.

    제 몸을 위하여 예의를 돌아보지 않으면 현재에는 허명을 얻고

    미래에는 괴로움의 갚음을 받는다.

    (백유경)


    위대한 열반

    /부처님 육신을 위한 마지막 예식/

     
    | 디가 니까야: 16 마하빠리닙바나 경 6:10-6:22 |


    부처님께서 열반하시자 욕망에서 벗어나지 못한 비구들은 팔을 내저으며 울고 털썩 주저앉아 이리저리 뒹굴면서 슬퍼하였다.

    "세존께서는 너무나 빨리 열반에 드시는구나. 선서께서는 너무 빨리 열반하시는구나. 지혜의 눈이 너무 빨리 세상에서 사라지는구나!"

    그러나 욕망에서 벗어난 비구들은 마음챙김과 선명한 깨어있음으로 슬픔을 참아내었다. 그리고 말하였다.

    "모든 형성된 것들은 무상하다. 그러니 이 무상한 것들이 어떻게 영원하기를 바라겠는가?"

    아난다 존자는 꾸시나라의 말라족에게 부처님의 열반을 알렸다. 그들은 열반의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고 슬픔에 압도되어 어떤 사람은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울고, 팔을 내저으면서 울고, 이리저리 뒹굴면서 슬퍼하였다.

    "세존께서는 너무나 빨리 열반에 드시는구나. 선서께서는 너무 빨리 열반하시는구나. 지혜의 눈이 너무 빨리 세상에서 사라지는구나!"

    그들은 향과 화환과 여러 가지의 악기와 천을 준비하여 살라 숲의 부처님 육신을 모신 곳으로 갔다. 그리고 향을 사르고, 꽃을 장식하고, 예를 올리고, 춤과 노래, 악기를 연주하고 찬가를 하면서 부처님의 존체에 공경을 표하면서 그날을 보냈다. 그리고 차양을 치고 둥근 천막을 쳤다.

    이렇게 6일이 지난 후 7일째에 말라족들은 준비한 천으로 전륜성왕의 장례식대로 여래의 육신을 감쌌다. 그들은 도시의 동쪽에 있는 말라족 사당인 마꾸따반다나에 온갖 종류의 향나무로 화장용 장작더미를 쌓고 부처님의 존체를 그 위에 올려놓았다.

    그때 마하 깟사빠 존자는 500여 명의 많은 무리의 비구들과 함께 빠와로부터 꾸시나라로 가는 큰길을 따라가고 있었다. 가다가 그는 길을 비켜서 어떤 나무 아래 앉았다. 그때 꾸시나라에서 오는 어떤(나체 고행자) 아지와까는 만다라와 꽃을 들고 빠와로 가고 있었다.

    마하 깟사빠 존자는 그를 보고 이렇게 물었다.

    "벗이여, 그대는 우리 스승님을 아십니까?"

    "예, 나는 그분을 압니다, 고따마 사문이 열반하신 지 칠 일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만다라와 꽃을 그곳에서 가지고 오는 길입니다."

    이 소리를 듣고 욕망을 초월하지 못한 어떤 비구들은 땅에 쓰러져 팔을 내저으며, 이리 저리 뒹굴면서 "너무 빨리 세존께서 열반하셨다. 너무 빨리 선서께서 열반하셨다. 너무 빨리 지혜의 눈이 세상에서 사라졌구나!"라고 비통해 하였다. 그러나 욕망에서 벗어난 비구들은 마음챙김과 선명한 깨어있음으로 슬픔을 참아내었다. 그리고 말하기를, "모든 형성된 것을은 무상하다. 그러니 이 무상한 것들이 어떻게 영원하기를 바라겠는가?" 하였다.마하 깟사빠 존자와 500명의 비구들은 서둘러서 말라족의 마꾸따반다나 사당에 있는 세존의 화장용 장작더미에 도착하였다. 마하 깟사빠 존자는 가사를 어깨에 걸치고 두 손을 합장하고 장작더미를 오른쪽으로 세 번 돌고, 부처님의 발에 머리를 대어 마지막 인사를 올렸다. 함께 온 500명의 비구들도 또한 가사를 어깨에 걸치고 두 손을 합장하고 장작더미를 오른쪽으로 세 번 돌고, 부처님의 발에 머리를 대어 마지막 인사를 올렸다. 함께 온 500명의 비구들도 또한 가사를 어깨에 걸치고 두 손을 합장하고 장작더미를 오른쪽으로 세 번 돌고, 부처님의 발에 머리를 대어 마지막 인사를 올렸다.

     
    일아 스님의 <한 권으로 읽는 빠알리 경전> 중에서



    근거없는 비방에는 침묵하라.

    나쁜 소문은 마음에 담지 말라.

    (잡아함경)



    보리심은 알맞은 비가 되나니

    번뇌의 티끌을 다 제거하기 때문이다.

    (화엄경)



    경을 듣고 마음으로 따라 기뻐하며 사경하여 지니고

    공경히 염송하면 무량한 복덕을 받는다.

    (출생무량문지경)



    모든 욕망을 버리고 욕심을 이겨 생사의 끝을 알고 평안에 돌아가

    맑고 시원하기가 호수처럼 완전한 사람은 공양을 받을 만합니다.

    (숫타니파타)


    고뇌하는 사람들 가운데 있으면서

    고뇌에서 벗어나 즐겁게 살자

    (법구경)



    여래는 중생의 성품을 잘 알아 거기에 알맞은 법을 설한다.

    탐욕이 많은 이에게는 베풀기를 권장하고

    생활에 규범이 없는 이에게는 계율을 지키도록 권장한다.

    (화엄경)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을 때! - 프랑크 베르츠바흐.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을 때!  


    심리학자들은 고통스러울 정도의 의기소침함이 2주 이상 지속되거나 재차 반복되는 것을 우울증이라고 본다.

    우울증은 식욕부진과 불면증, 끊임없는 자기비하와 고독감, 집중력 상실, 불안감, 성욕 상실 등 일련의 다른 괴로움들을 동반한다. 또한 평소에는 좋아하던 일들에서 더 이상 기쁨을 느끼지 못하며, 자신의 미래를 암담하게 전망한다.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생긴다면 무조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우울증은 삶을 심각하게 제한하며, 일을 할 수 없게 되거나 심지어 죽음에 이르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잘 치료할 수 있는 방법들이 있다.

    그 병은 주위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우울증을 앓는 사람과 교류하는 사람들도 쉽지 않은 시간을 보내게 된다. 이 경우에는 직관적 판단에 따라 도움을 주겠다고 하는 일들이 실수일 가능성도 크다.

    예컨대 단순히 긍정적인 쪽으로 유도하는 것만으로는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의 기분을 밝게 만들 수 없으며, 동정하는 것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환자와 가족들은 신속하게 전문가의 조언을 구해야 한다.

    친구들에게 조언을 얻거나 책을 찾아 읽는 것만으로는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없다.


    프랑크 베르츠바흐의 <무엇이 삶을 예술로 만드는가> 중에서 - 불광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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