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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벽방산 안정사
    사찰 풍경 2016. 4. 17. 20:49

     

     

     

     

     

    은봉성석(隱鳳聖石)을 넘어뜨리는 미래불을 기다리며


    벽방산(碧芳山)을 바라보고 원효스님은 “의발(衣鉢)을 간직한 채 내세불(來世佛) 미륵을 기다리는 벽발산(碧鉢山)은 참으로 마땅한 절 터였으리라”라며 안정사를 창건하였습니다.

    사람들은 벽방산의 바위들을 보고 석가모니부처님 십대 제자 중 한 사람인 가섭존자(迦葉尊者)가 벽발(碧鉢·스님들의 밥그릇)을 받쳐 들고 있는 모습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또 용화사가 있는 미륵산과 마주한 벽발산은 석가모니부처님이 가섭존자를 통해 미륵불에게 의발을 전하는 모양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산내암자인 가섭암이 창건된 것도  모든 이야기를 담기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해인사보다 200년 앞서 창건된 안정사는 이같은 이야기를 살펴보면 앞으로 우리들을 교화하여 부처님나라로 인도할 선지식을 기다리는 수행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다리는 수행공간이 아니라 수행을 통해 훌륭한 고승이 출현하여 우리들을 구제한다는 바람이 담은 사찰이라고 봅니다.

    미래불을 기다리는 마음은 산내암자인 은봉암 성석(隱鳳聖石)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옛날 이곳에는 자연석 세 개가 있었는데, 첫 번째 것이 넘어지면서 해월선사가 나타나고, 두 번째 자연석이 쓰러지면서 종렬선사가 도를 통하였다고 합니다. 그 뒤 이 돌들을 성석이라고 불렀는데, 그 중 한 개만 남아 도인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앞으로 우리들을 구제할 선지식인 미래불은 은봉암에서 출현한다는 믿음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의 안정사는 우리들에게 기다림을 가질 수 있게끔 하는 그 무엇이 없습니다. 쇄락해 가는 산사의 모습이 너무나도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부처님이 설하신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하기보다, 부처님이 수행한 공간을 가지고 우리들은 다투고 있기 때문입니다.


    관람포인트

    1) 소나무를 지키라고 영조대왕 하사한 3개 금송패와 궤, 관인이 있습니다. 주지스님에게 이야기를 잘하면 구경할 수 있습니다. 3개의 패에는 각각 다른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2) 금송패를 담고 한양에서 천리 길을 달려온 가마와 외통으로 만든 북도 있습니다.

    3) 서른 척이 넘는 괘불이 크기도 하지만 기도영험도 대단하다고 합니다.

    4) 제1경 만리창벽(萬里蒼壁), 제2경 옥지응암(玉池鷹岩), 제3경 은봉성석(隱鳳聖石), 제4경 인암망월(印岩望月), 제5경 가섭모종(迦葉暮鐘), 제6경 의상선대(義湘禪臺), 제7경 계족약수(鷄足藥水), 제8경 한산무송(寒山舞松) 이 연출하는 벽방 8경의 참 맛을 하나하나 찾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5) 성철스님이 수도했던 토굴인 천제굴이 안정사 앞 골짜기에 있습니다. 성철스님의 3천배가 처음시작한 곳이 바로 안정사 은봉암입니다.

     

    자연환경


    춤추는 소나무 숲에 찾아낸 벽방 8경


    통영 벽방산 안정사를 감싸고 있는 소나무가 펼치는 절경을 보고 옛 선조들은 한산무송(寒山舞松) 즉 소나무들이 춤을 춘다고 표현하였습니다. 얼마나 많은 소나무들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기에 소나무들이 춤을 추고 있다고 했을까. 직접 가서 확인하지 않고서는 더 이상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벽방 8경 중 한산무송을 8경으로 선택했습니다.

    벽방산 안정사를 상징하고 대표하는 것은 소나무 입니다. 소나무를 중심으로 모든 것이 어우러져있습니다. 안정사 골짜기는 소나무 숲입니다. 벽방산으로 오르는 모든 길이 소나무 숲입니다. 소나무숲길을 통해야만 나머지 7경을 찾을 수 있습니다. 7경 또한 소나무와 함께 그 운치를 자아내고 있습니다.

    소나무 숲을 따라 오르면 5경인 가섭모종(迦葉暮鐘)의 주인공인 가섭암을 만납니다. 세월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여 옛 정취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가파른 산길을 오르면 의상스님이 천공을 받으면 좌선했다는 제6경 의상선대(義湘禪臺)가 우리들에게 자리를 비켜줍니다. 의상암을 지나면 암봉입니다. 돌기둥으로 이루어진 암봉의 모습이 앞에 있는 천개산에서 바라보면 매 같다 하여 2경인 옥지응암(玉池鷹岩)이라고 합니다. 산으로 오를수록 소나무들은 적어지고 그 자리를 활엽수림이 대신하고 있습니다.

    암봉에서 능선을 따라 가는 길에는 진달래나무가 많아 5월에는 붉은 꽃들이 우리들에게 홍조를 띄웁니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남해바다의 불국세계가 한려수도라는 이름에 걸맞게 아름다운 자태를 자아내며 한 폭의 수채화로 펼쳐집니다. 정상에서 안정치 방향으로 하산하다보면 웅장하게 솟구친 바위가 장관입니다. 제1경 만리창벽(萬里蒼壁)이 펼쳐진 병풍바위입니다. 바위아래 시누대밭이 푸르름을 과시하고 있지만, 이 곳은 원래 만리암자터 입니다.

    다시 천개산으로 오르면 성철스님 수행했던 천제굴이 있는 은봉암입니다. 천개산에서 바라보는 벽방산의 바위들은 석가모니부처님 십대 제자 중 한 사람인 가섭존자(迦葉尊者)가 벽발(碧鉢·바리때)을 받쳐 들고 있는 모습 같으며, 소나무들이 주위에 호위하거나 장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불가에서는 벽발산(碧鉢山)이라고 부릅니다. 절벽밑 수목이 울창한 곳에 자리한 은봉암에는 제3경인 은봉성석(隱鳳聖石)과 7경인 계족약수(鷄足藥水)가 있습니다. 7m 높이의 칼 같이 날렵한 바위가 극락보전 지붕과 맞대어 있는 성석에는 전설이 담겨있습니다. 


    전설/금송패

     

    옛날부터 안정사 주지스님은 안정리 동회(洞會)에 참석해왔다. 지금부터 100여년전, 안정리의 한 세도가가 동회에서 당시의 주지 한송 스님에게 솔숲의 일부를 양도하라고 압력을 넣었다. 주지는 거절 의사를 밝히고, 그 이후 더 이상 동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안정사는 그 당시 인근 5개면에 걸쳐 100만평의 솔숲을 소유하고 있었다. 주지 한송스님은 승적을 갖기 전에는 과거에 급제하였지만 당쟁을 피해 안정사로 피신 왔다가 승려가 된 분이었다.

    한송스님이 마침 주지가 되었을 때, 동문수학을 했던 이한종 거사가 고성 군수로 부임하게 되었다. 고성 군수는 마을의 세도가가 안정사의 솔숲을 넘본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이장을 벌했다. 그러나 마을 이장은 장독(杖毒)으로 죽었고, 이를 빌미로 세도가는 이장의 부친을 부추겨 소나무에 대한 송사를 시작했다.

    이 송사를 위해서 주지는 다시 상투를 질러 상경했고, 8년에 걸 친 소나무 송사는 마침내 안정사의 승소로 끝나게 되었다. 고종 이 안정사의 새 주지에게 인수(印綬), 궤 등과 함께 금송패 3개를 하사하였다. 반면에 안정리 세도가의 1000섬 자산은 송사로 거덜났다. 왕실이 내린 금송패와 인수를 호송하게 된 역졸들과 주지 의 행차는 한양에서 안정사에 이르기까지 신기한 구경거리였다.

    그 후 안정사의 소나무 숲을 도벌하는 사람은 반상을 가리지 않 고 누구나 절에서 직접 벌할 수 있게 되었다. 도벌꾼에 대한 체 벌을 집행하고자 사찰 내에 수명장수신(壽命長壽神)을 봉안한 칠 성각(七星閣)에 고종의 사진과 함께 나라에서 하사한 인수와 금송패를 전시하여 소나무와 관련된 모든 송사를 관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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