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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이 있으면 즐거우나 복이 없으면 괴롭다.
금생에서나 내생에서나 복을 닦아야 안락할 수 있다.
(증일아함경)
바른 생각을 가지고 마음을 지켜나가면
모든 악이 침범해 들어오지 못한다.
(불본행경)
그대가 여래의 진실한 공덕을 찬탄하였으니
태어나는 곳 어디에서나 늘 나를 만나보게 되리라.
(승만경)
사랑하는 마음을 닦는 이는 탐욕을 끊게되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닦는 이는 노여움을 끊게 되며
남을 기쁘게 하는 마음을 닦는 이는 괴로움을 끊게 되고
자기를 버리는 마음을 닦는 이는
탐욕과 성냄 차별하는 마음을 끊게 된다.
이 네가지 마음은 온갖 착한 일의 근본이 된다.
(증일아함경)
진리를 보는 자는 마치 횃불을 들고 캄캄한 방에 들어가면
그 어두움은 곧 없어지고 밝음이 나타나는 것과 같이.
도를 닦아 진리를 보면 무명은 곧 없어지고
지혜의 밝음만 영원히 남는 것과 같다.
(사십이장경)
선을 행하면 이세상에서나 다음 세상에서나 모두 기뻐한다.
기쁜 일로 스스로를 돕고 또한 그 복을 받아 기쁨 가득하네.
(법구경)
처음으로 가르침의 바퀴를 굴리시다: 중도와 네 가지 거룩한 진리(사성제)/
| 상윳따 니까야: 56 삿짜 상윳따 11, 율장 마하왁가 1편 6:17-37 |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은 바라나시의 이시빠따나의 사슴동산에 계셨다. 부처님은 다섯 명의 비구들에게 이렇게 가르치셨다."비구들이여, 출가 수행자는 두 가지 극단을 피하여야 한다. 무엇이 두 가지인가?
[첫 번째는] 감각적인 쾌락에 몰두하는 것으로 이것은 저열하고, 천박하고, 하찮고, 유익함이 없으며,
[두 번째는] 지나친 고행에 몰두하는 것으로 이것은 고통스럽고, 저열하고, 유익함이 없는 것이다. 여래는 이 두 가지 극단에 치우침이 없이 중도를 깨달았다. 중도는 통찰력을 주며, 지혜를 주며, 평화를 주며, 깨달음으로 이끌고, 열반으로 이끈다.
깨달음으로 이끄는 여래가 깨달은 중도란 무엇인가? 중도는 바로 여덟 가지 바른 길(팔정도)이다. 여덟 가지 바른 길은 '바른 견해, 바른 생각, 바른 말, 바른 행동, 바른 생활수단, 바른 정진, 바른 마음챙김, 바른 집중'이다. 이것이 여래가 깨달은 중도로서 통찰력을 주며, 지혜를 주며, 평화를 주며, 깨달음으로 이끌고, 열반으로 이끈다.
괴로움의 거룩한 진리는 이와 같다: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은 괴로움이며,
싫은 것과 만나는 것도 괴로움이며,
좋아하는 것과 헤어지는 것도 괴로움이며,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도 괴로움이며,
한 마디로 말하자면,
집착의 대상이 되는 '다섯 가지 무더기'가 괴로움이다.
괴로움의 근원의 거룩한 진리는 이와 같아:갈애는 쾌락과 욕망을 수반하며
여기저기서 쾌락을 찾아 헤매고 윤회로 이끈다.
갈애하는 감각적 쾌락에 대한 갈애,
다시 태어남에 대한 갈애,
다시 태어나지 않겠다는 갈애가 있다.
괴로움의 소멸의 거룩한 진리는 이와 같다:갈애를 남김없이 사라지게 하고 소멸하고,
포기하고 버려서 더 이상 갈애에 집착하지 않고
갈애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괴로움의 소멸에로 이르는 길의 거룩한 진리는 이와 같다:그 길은 바로 여덟 가지 바른 길이다.
그것은 바른 견해, 바른 생각, 바른 말, 바른 행동,
바른 생활수단, 바른 정진, 바른 마음챙김, 바른 집중이다.
괴로움의 거룩한 진리, 괴로움의 근원의 거룩한 진리, 괴로움의 소멸의 거룩한 진리, 괴로움의 소멸에로 이르는 길의 거룩한 진리는 일찍이 어느 누구도 말한 적도 없고 들어본 적도 없다. 그런데 나에게 이 들어본 적도 없는 진리를 알았다는 통찰력이 일어났고 지혜가 생기고 앎이 생기고 빛이 생겼다.이와 같이 나는 신과 악마와 범천과 수행자와 브라흐민과 모든 신과 인간의 세계에서 최상의 온전한 깨달음을 얻었다. '나는 흔들림 없는 해탈을 얻었다.' '이것은 나의 마지막 탄생이다.' '윤회하는 일은 이제는 없다.'라는 지혜와 통찰력이 생겼다."
이와 같이 부처님께서 말씀하시자 다섯 명의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에 기뻐하였다.
이러한 가르침을 듣고 꼰단냐 비구는 티끌 없는 진리의 눈이 열렸다. '무엇이든지 생긴 것은 모두 소멸한다.'는 진리를 깨달았다. 그때 부처님은 이렇게 감탄의 말씀을 하셨다.
"참으로 꼰단냐는 알아들었다. 참으로 꼰단냐는 깨달았다."
이로 해서 꼰단냐 비구는 안냐-꼰단냐(깨달은 꼰단냐)로 불리게 되었다.
부처님은 이와 같이 바라나시의 이시빠따나의 사슴동산에서 이 세상에서 그 어느 누구도 다시 굴릴 수 없는 위없는 법륜을 굴리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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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아 스님의 <한 권으로 읽는 빠알리 경전> 중에서
틱낫한 스님의 깨어 있는 마음으로 깊이 듣기!
"지구별이 나를 낳았고이 삶이 끝나면
다시 우리를 받아주리라는 것,
그리고 나를 다른 형태로
다시금 환생시키리라는 것을 알면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마음속으로 자비,이해, 사랑을 생각할 때
그 생각 속에는 이미 몸과 마음과
세상을 치유할 힘이 있습니다."
"그저 여기 있기 위해 좌선합니다.아름다운 세상이 바로 내 안에 있음을,
내 위, 아래, 주변에도 있음을
알아차리려고 좌선을 합니다.
그렇게 않아 있을 수 있다면
행복은 현실이 됩니다."
"해와 별들은 당신 안에 있듯제 몸 안에도 모두 있습니다.
당신은 저의 밖에 계시지 않고,
저는 당신 밖에 있지 않습니다."
- 틱낫한 스님이 말하는 지구, 평화, 행복 《깨어 있는 마음으로 깊이 듣기》 중에서
부처님 도 깨닫는 건 어렵지 않아
오직 하나 간택만을 꺼릴 뿐이니
미워하고 사랑하는 마음 없으면
걸림 없이 확 트여서 명백하리라.
(신심명)
세상살이에 곤란 없기를 바라지 마라.
세상살이에 곤란이 없으면 업신여기는 마음과
사치한 마음이 생기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슴하시되.
근심과 곤란으로써 세상을 살아가라 하셨느니라.
(보왕삼매론)
자기의 얻음을 불평하고 남의 얻음을 부러워 하면
마음의 안정을 얻을 수 없다.
(법구경)
여러 중생들의 고통을 제거해 주는 것을 대자라 하고
한량없는 즐거움을 주는 것을 대비라고 한다.
(열반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