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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롱나무꽃이 핀 서출지 풍경여행스케치 2015. 8. 3. 23:50
배롱나무 꽃이 아름답게 핀 경주 남 산 서출지 풍경입니다.
2015년 8월2일에 본 경주 남산의 서출지 풍경 배롱나무 꽃이 아름답게 피고
연꽃이 핀 서출지 풍경 아름다운 한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풍경입니다.
누구나 생명을 죽이지 아니하면 번뇌를 여의는 열가지 법을 얻는다.
첫째는 모든 중생에게 평화를 베푼다.
둘째는 항상 중생에게 큰 자비심을 낸다.
셋째는 일체 나쁜 성질의 습기를 끊는다.
넷째는 몸에 항상 병고가 없고 나쁜 습기를 끊는다.
다섯째는 수명이 길고 나쁜 습기를 끊는다.
여섯째는 항상 신장의 수호를 받고 나쁜 습기를 끊는다.
일곱째는 항상 악한 꿈이 없어서 잠이 깨면 유쾌하다.
여덟째는 원한이 없어져 원결이 풀린다.
아홉째는 악도에 떨어질 두려움이 없다.
열째 목숨을 마치면 천상에 나게 된다.
이것을 보리로 다시 회향하면 성불할 때까지
마음에 따라 수명을 자재로 할 수 있다.
(방등경)
수행하는 자는 마음을 굳게 지니고 뜻을 세워
좋은 인연을 만나면 가차없이 밀고 나가는
인내와 용기와 결단력이 필요한 것이다.
(현우경)
신기하고 신기하여라.
어찌하여 이 모든 중생들이 여래의 지혜를 모두 갖추고 있는가?
그런데 어리석고 미혹하여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구나.
(화엄경)
올 때 한물건도 가져오지 않았고
갈 때 또한 빈손으로 간다.
아무리 많아도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하고
오직 지은 업만 따라갈 뿐이다.
(자경문)
착하도다 스승의 가르침을 따라 착한 생각을 내어라
가르침과 스승을 받들고 마땅히 일심으로 공양하라.
(보리행경)
중생이 생사를 벗어나고 모든 윤회를 면하고자 한다면
먼저 탐욕을 끊고 갈애를 없애야 하느니라.
(원각경)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고 그냥 죽고만 싶어요!
"저는 왜 살아야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어요.이제 중학생인데 공부에 대한 압박감이 장난이 아니고, 부모님 잔소리도 듣기 싫어요.
공부를 못하는 게 아니에요. 언제나 전교 10등 안에는 들어요. 그런데도 성적이 조금만 떨어지면 부모님 잔소리가 정말 심해요.
부모님은 제 기분이나 고민은 생각지도 않고, 오로지 제가 공부기계가 되기를 바라는 것 같아요.
옛날부터 집안의 기대도 장난이 아니었어요. 부모님도 그렇고 친척들도 다 명문대를 나왔거든요.
그래선지 저한테도 명문대에 들어가야 한다고 벌써부터 강요하고, 어쩌다 등수가 하나만 떨어져도 제가 다 미안해질 정도로 집안 분위기가 심각해집니다.
마치 너 같은 애는 죽어야 된다고 말하는 것 같아요. 얼마 전까지는 저도 성적이 인생의 모든 것이라 믿었는데, 이제는 점점 지칩니다.
이렇게 살 바에는 차라리 그냥 죽어버리고 싶어요."
때로는 마음의 강물이 흐르는 소리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세요.
“어쩌면 그건 본인의 문제가 아니라 부모님의 문제인 것 같아요. 이제 중학생밖에 안 된 자식에게 그렇게 심한 압박감을 준다는 것은 잔소리이기 이전에 부모의 욕심이거든요.
언제 한번 부모님을 모시고 제게 와요. 다시는 부모님이 학생에게 공부하라고 잔소리하지 못하게 바꾸어놓을게요.
그래도 오늘 이렇게 고민을 물어왔으니 답변을 해야겠죠. 고대 그리스의 유명한 철학자인 에픽테토스에 관한 이야기예요.
에픽테토스는 태어나면서부터 노예였어요. 어머니가 노예였기 때문이에요. 노예 생활에 길들여졌는지 아무리 화가 난 상황에서도 에픽테토스는 좀처럼 화를 내지 않았어요.
하루는 주인이 에픽테토스를 골려주려고 팔을 잡아 비틀었어요. 에픽테토스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어요. “주인님! 그렇게 계속 비틀면 제 팔이 부러집니다.” 주인은 심술이 나 더욱 세게 에픽테토스의 팔을 비틀었어요.
그래도 에픽테토스는 두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주인에게 더 이상 팔을 비틀지 말라며 웃었어요. 화를 참지 못한 주인은 더더욱 세차게 에픽테토스의 팔을 비틀었어요.
그때 뚝 하고 에픽테토스의 팔이 부러졌어요. 그 순간 에픽테토스가 웃으며 다시 말했어요.
“그것 보세요, 주인님. 계속 비틀면 제 팔이 부러진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 말을 들은 주인은 에픽테토스 앞에 납작 엎드렸어요. 그런 뒤 용서를 빌고 에픽테토스의 제자가 되었어요.
재미있죠. 그러나 제가 정말로 말하고 싶은 건 이게 아니에요. 그의 제자가 된 사람들이 훗날 에픽테토스의 말을 모아 책을 만들었어요.그 책이 바로 『에픽테토스』예요. 『에픽테토스』에 다음과 같은 어록이 나와요.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 있다.
할 수 있는 일은 제 마음을 바꾸는 일이요, 할 수 없는 일은 남의 마음을 바꾸는 일이다.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요, 할 수 없는 일을 하려고 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젊은 날, 팔이 부러진 에픽테토스의 이야기와 함께 이 어록을 읽으면서 저는 많은 눈물을 흘렸어요.
나라면 과연 그 상황에 처했을 때 어땠을까? 더 이상 팔을 비틀지 말라고 주인에게 화를 냈을까? 아니면 맞받아서 주인의 팔을 비틀었을까?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저는 에픽테토스의 이 어록을 마음속에 되새기며 고비를 헤쳐왔어요.
남을 바꾸는 일보다는 저를 바꾸는 일이 훨씬 쉬웠고, 할 수 없는 일을 하려는 것보다는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훨씬 쉬웠기 때문이에요.
에픽테토스의 이 어록은 지금도 제 수행 지침서가 되고 있어요. 어쩌면 이 어록 하나만 제대로 실천하고 살아도 살아 있는 부처가 될 수 있을지 몰라요.
세상의 모든 고통과 전쟁은 이해하기보다는 이해받고 싶어서, 사랑하기보다는 사랑받고 싶어서 생겨나요. 부처님께서 마음이 곧 부처라고 한 것도 그 때문이에요. 사실 괴로움과 즐거움은 마음 하나 차이이거든요.
어느 날, 지옥과 극락을 모두 다녀온 사내에게 사람들이 물었어요. “이보게. 지옥과 극락이 어떻게 다르던가?”사내가 대답했어요. “별 차이가 없습디다. 극락에 사는 사람들도 똑같이 맛있는 음식을 차려 밥을 먹고, 지옥에 사는 사람들도 극락에 사는 사람들과 똑같이 맛있는 음식을 차려 놓고 밥을 먹더군요.”
사람들이 다시 물었어요. “그래도 다른 점이 있지 않았겠는가? 모두 똑같다면 어떻게 극락이 있고 지옥이 있다고 할 수 있겠나?”
잠시 생각에 잠긴 사내가 입을 열었어요. “딱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더군요. 두 곳 모두 다섯 자나 되는 숟가락과 젓가락을 사용해 밥을 먹는데 극락 사람들은 서로를 먹여주고, 지옥 사람들은 서로 제 입으로만 넣으려고 안간힘을 쓰더군요.”
지옥과 극락의 차이는 백지 한 장 차이도 안 돼요. 사람의 마음도 마찬가지예요. 지금 학생의 마음은 분노가 꽉 짓눌려서 폭발하기 일보직전이에요. 그게 터지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몰라요. 학생의 말처럼 극단적인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어요.
문제는 학생이 아무리 절규해도 부모님이 몰라준다는 거예요. 위험 신호를 자꾸 보내는데도 못 본 척 먼 산만 바라보고 있는 거죠.
하지만 부모님을 나무랄 순 없어요. 부모는 부모로서 생각이 있고, 욕심도 있기 때문이에요. 에픽테토스의 어록처럼 부모님의 마음을 학생이 바꿀 순 없어요.
오히려 학생의 마음을 바꾸는 것이 더 편하고 쉬워요. 그러기 위해서 먼저 해야 할 일은 학생의 마음에 가득 찬 분노를 정화하는 일이에요.
명상은 분노를 정화하는 데 좋아요. 명상 자체가 해방의 길이기 때문이죠.
그중에서도 권하고 싶은 것은 마음챙김 명상이에요. 마음챙김은 자각(自覺)을 말해요. 순간순간 자기 마음을 알아차리는 거예요.
지금 현재 이 순간을 판단하지 않고 주의를 기울일 때 순간순간 생겨나는 ‘그 무엇’을 알아차리는 거죠.
마음의 강물은 참 묘해요. 의도적으로 자신이 챙기고 있지 않으면 생각이라는 번뇌가 마음을 홍수처럼 점령해버려요.
그러나 의도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챙기고 있으면 한없이 잔잔하고 고요해져요. 연습만 꾸준히 하면 우리 마음을 얼마든지 그렇게 만들 수 있어요.
마음챙김 명상 가운데서도 초보자가 제일 하기 쉬운 호흡 마음챙김 명상을 하면 좋겠어요.
그럼 이제 저와 함께 호흡 마음챙김 명상을 한번 해볼까요? 먼저 몸의 긴장을 푼 채 등받이가 곧은 의자나 방바닥에 놓인 방석 위에 앉아 등을 곧게 펴고 머리는 반듯하게 앉으면 돼요.
누워서 해도 되지만 잠들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한 앉아서 하는 것이 좋아요. 의자에 앉는다면 등받이에 등이 닿거나 발을 꼬지 않도록 하고, 방석에 앉는다면 방석 뒤쪽을 3분의 1 정도 접어서 자연스럽게 허리가 쭉 펴질 수 있도록 엉덩이 부분을 약간 높여주는 것이 좋아요.
눈은 감거나 반쯤 뜨세요. 처음 할 때는 콧잔등을 바라본다고 생각하고 눈을 살포시 감아보세요. 명상 도중 졸음이 오면 바로 눈을 뜨고요. 명상하는 동안은 다른 것에 방해받지 않도록 스마트폰은 물론이고 컴퓨터, 텔레비전을 모두 꺼놓아야 해요.
그런 상태에서 이제 호흡 마음챙김 명상에 들어가면 돼요. 호흡 마음챙김 명상의 핵심은 마음을 고요히 한 채 오직 호흡만 바라보고 알아차리는 거예요. 호흡을 할 때마다 몸 안으로 들어오고 나가는 숨의 느낌에 집중하세요.
공기가 들어오고 나가는 콧구멍과 콧구멍 끝이나 들숨과 날숨에 따라 가라앉고 일어나는 배에 집중한 채 그 느낌을 지속적으로 알아차리세요.
처음엔 어지러운 생각 때문에 호흡에 대한 알아차림을 지속하기 힘들 수도 있어요. 그러나 실망하지 않아도 돼요. 누구나 다 그러니까.
대신 생각이 다른 데 가 있을 때마다 즉시 호흡으로 되돌아와 콧구멍이나 배의 느낌을 계속 느끼고 알아차리면 돼요.
나는 내가 아니에요. 그러나 나는 ‘나’예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는 심정으로 학생이 다음의 이야기 속에 나오는 ‘산닭’이 되길 바랄게요."
인도의 한 지방에 있는 넓고 울창한 숲속에서 벌어진 일이어요.숲 속에는 수많은 짐승들이 대대로 번식하며 살고 있었어요.
어느 날, 숲에 큰불이 났어요. 날짐승, 들짐승들은 자식을 데리고 날거나 뛰면서 달아나기 바빴어요.
하지만 어떤 산닭 한 마리가 도망갈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강과 숲 사이를 끊임없이 날아다니며 날개에 물을 묻혀 그 물로 불을 끄고 있었어요. 천제석이 이 광경을 보고 물었어요.
“산닭아, 너는 지금 뭘 하고 있는 거냐?”
“불을 끄고 있어요.”
“바보짓 그만하거라. 네 힘으로 어찌 저 사나운 불길을 잡을 수 있겠느냐. 타 죽지 않고 살아나온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여겨라.”
하지만 산닭은 그렇지 않다며 말했어요.
“이 숲은 나를 키워준 곳이에요. 수많은 친구와 친척, 그리고 그 집의 아이들이 이 숲을 믿고 살아왔어요.
그런데 저에게 힘이 남아 있는데 어떻게 모른 척해요. 나만 살겠다고 구경하고 있을 수만은 없어요. 어떻게 해서든지 불을 꺼야 해요.”
“그러면 네 작은 힘으로 언제쯤 돼야 불을 끌 수 있겠느냐?”
“죽을 때까지요.”
주저하지 않고 산닭은 대답했어요.
- 승한 스님의 신간 <네 마음을 들어줘> 중에서
계율의 바닷물은 게으르지 않기 때문에 불어나는 일이 없고
공덕을 갖추었기 때문에 줄어드는 일이 없느니라.
(현우경)
악한 사람이 어진 사람을 해치는 것은 마치 하늘 우러러 침을 뱉는 것과 같다.
어진 이는 해칠수 없는 것이요
화는 반드시 자기를 멸망시킨다.
(사십이장경)
몸을 절제하고 말을 삼가고 그 마음을 거두고 성냄을 버려라.
도의 길을 가는 데에는 인욕이 가장 으뜸이니라.
(법구경)
석가모니불은 왕사성을 나와 부다가야 근처의 도량에 앉아 아뇩다라샴막삼보리를 얻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선남자들아 내가 성불한 지는 한량없고 가없는 백천만억 나유타 겁이니라.
(법화경)
사리불아 내가 성불한 뒤로 가지가지 인연과 가지가지 비유로 널리 가르침을 폈으며
무수한 방편으로 중생들을 제도하여 모든 집착에서 떠나도록 하였으니
그것은 여래가 방편과 지견으로 바라밀을 이미 다 구족한 까닭이니라.
(법화경)
중생은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면서도 오히려 고통의 원인들을 향해 달려가고
행복을 바라면서도 무지하기 때문에 행복의 원인들을 원수처럼 물리치나이다.
(입보리행론)
사람의 마음을 덮어 어리석게 하는 것은
애착과 탐욕이다.
(사십이장경)
평온한가요?
"지금 마음이 평온한가요?불편한 마음은 어디서 올까요?
관계에서 불편한 마음이 온다면 내려놓으세요.
나로 말미암아 마음이 불편하다면 미안하다 말하세요.
한 걸음 떨어져서 보면 편안해집니다.
넓은 바다를 생각하세요.
나는 강물에 불과합니다."
- 송광사 승가대학장 덕조스님의 신간 <마음꽃을 줍다> 중에서널리 일체 중생을 돌아보니 한 사람도 빠짐없이 부처님의 지혜덕상을 갖췄건만
다만 망상과 집착으로 인해서 증득지 못할 뿐이다.
(화엄경)
의 심과 두려움 및 가지가지 장애가 있는 자는
응당 일체의 시간과 처소에서 언제나 부지런히
나의 명호를 외우며 생각해야 한다.
(점찰선악업보경)
이 마음을 놓아 버리면 모든 착한 일을 잃어버리게 하지만
그곳을 한곳에 모아 두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
(불유교경)
성내고 해치려는 생각을 없애고 늘 사랑하는 마음을 간직하라
연민하는 마음으로서 중생을 돌아보고 자비로운 생각으로 눈물을 흘리라.
(현우경)
항상 무상의 불길이 모든 세상을 불사르고 있음을 생각해서
빨리 자기를 구제할 것이요.부디 잠자지 말라.
(불유교경)
천억의 삼세제불을 공양하는 것은 한명의 생각 없고 머무름이 없고 닦음 없고
증함이 없는 사람을 공양하는 것보다 못하느니라.
(사십이장경)
도를 사랑하여 악을 버리고 선을 즐겨하면
다시 하늘이나 인간에 나타난다.
(원각경)
복덕이 충만한 사람!
"복과 지혜는 모든 사람이 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를 다 갖추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현실에서 갈구하는 모든 것이 원만하게 이루어지는 힘이 곧 복덕이고, 견해가 바르고 어리석지 않아 세상사에 걸림 없이 통찰하는 힘을 지혜라고 부른다. 이러한 복덕과 지혜를 모두 갖춘 분이 바로 부처님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두 가지 모두 구족하신 어른’이라는 뜻의 ‘양족존(兩足尊)’이라고 존칭하는 것이다.아무리 지혜나 재주가 뛰어나더라도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적 어려움이 있다면 그 지혜와 재주를 발휘할 기회를 갖지 못한다. 반대로 복덕이 있는 사람은 비록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복덕의 힘으로 무난히 뜻을 이루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데 일반적인 관념으로 복을 추구하는 것은 세속적인 일이며, 세속적인 것은 유루(有漏)의 법이니 불교를 배우는 사람은 무루(無漏)의 법인 지혜를 닦는 것이 더욱 뛰어나다고 여긴다.
『금강경』에서 경전 한 구절을 말해주는 공덕은 이 세상 가득히 보물로 보시하는 것보다 낫다고 하였다. 이것은 경전을 듣고 지혜가 밝아지면 깨달음을 얻게 되는 까닭에서 기인한다. 불교는 지혜와 자비의 종교이니 당연히 복덕보다는 지혜가 우선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그러나 물질의 세계에 거처하는 우리 범부중생들에게는 아무래도 몸이 안락하고 일이 뜻대로 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보살행을 닦는 사람이 사랑[慈], 연민[悲], 기뻐함[喜], 보시[捨] 이 네 가지 한량없이 베푸는 마음을 실천해야 한다. 고통스런 이웃을 위한 현실적인 참여인 동시에 자신의 복덕도 함께 증장된다. 실천할 수 없는 이상(理想)이 높은 것은 교만심만 기르게 되지만, 복덕은 쌓을수록 자신과 타인에게 실제적인 이익이 있다.
부처님께서는 지혜보다 우선하는 것이 복덕이라고 하셨다. 청빈과 지혜를 주장하시는 부처님께서 복덕이라는 세속에 가까운 가치를 더 중요하다고 하신 것은 좀 의외인 듯하지만, 매우 현실적인 선택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수승한 지혜를 깨닫게 하는 불법도 복이 없으면 만나기 어렵다.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은 후 다섯 수행자를 교화하기 위해 녹야원으로 가던 도중, 외도를 만나 법을 설하지만 그는 부처님을 따르지 않고 가버렸다. 깨달을 수 있는 인연이 왔지만 복이 없어 그대로 흘려보낸 것이다. 부처님이 탄생하신 후 부처님의 관상을 본 히말라야의 성자는 자신이 복이 없어 부처님의 법문을 들을 수 없음을 한탄하면서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세속의 삶에서도 어느 나라에 태어나서 어떠한 환경과 어떤 부류의 사람 사이에 사는가도 모두 복덕으로 말미암는 것이다. 이처럼 복덕은 불법을 만나는 것에서부터 세속적인 안락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작용을 한다.
부처님께서는 지혜보다 복덕이 수승함에 대해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옛날 대선왕(大船王)은 지혜, 공예, 단정, 정진, 복덕이라는 다섯 왕자를 두었다. 그는 다섯 왕자에게 누가 뛰어난지 증명해 보이도록 하였다. 첫째인 지혜왕자는 본래 친구였던 두 사람이 다투어 원수처럼 지내는 것을 보았다. 지혜왕자는 이쪽 친구에게 저쪽 친구의 심부름을 온 것처럼 하여 화해를 구하였고, 저쪽 친구에게도 심부름 온 것처럼 하여 화해를 구하였다. 두 친구가 만나 보니 지혜왕자의 지혜로 화합하게 한 것이어서 서로 다시 예전처럼 잘 지내기로 하고 지혜왕자에게 답례로 많은 재물을 주었다. 둘째 공예왕자는 뛰어난 기술로 인형을 만들어 마치 사람처럼 움직이게 하여 마침내 궁중에까지 알려져 역시 많은 재물을 얻고 돌아왔다.
그리고 셋째 단정왕자는 이름과 같이 얼굴이 매우 잘 생겨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여인들이 다투어 보물을 바치니 그가 모은 재산은 첫째나 둘째 왕자보다 많았다. 넷째 정진왕자는 강가를 지나가다가 향나무가 떠내려 오는 것을 보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향나무를 건지기 위해 노력하였으나 강의 파도가 워낙 높으므로 마침내 포기하고 말았다. 그러나 정진왕자는 끝까지 온갖 힘을 다하여 그 향나무를 건져내었다. 그 나라에서는 마침 전단향나무를 국가적으로 찾고 있던 중이라, 정진왕자는 매우 높은 가격에 팔고 큰 부자가 되었다.
다섯째 복덕왕자는 더운 여름에 길을 가다가 나무그늘 아래서 낮잠을 자게 되었는데, 지나가던 그 나라의 대신이 그를 발견하고 궁전으로 데리고 갔다. 그 나라의 임금이 후계자가 없어 복덕이 충만한 아이가 있으면 왕위를 물려주려고 하였는데 복덕왕자를 보고는 바로 왕으로 삼게 하였다. 복덕왕자가 왕위에 오른 뒤 형님인 지혜, 공예, 단정, 정진 왕자를 불러 각자 요지에 앉히니 복덕이 제일인 것을 비로소 알았다.
부처님께서 이 설화를 마치시며 그때의 지혜왕자는 오늘의 사리불이고, 공예는 아니룻다, 단정은 아난, 정진은 수보리였고 복덕왕자는 부처님 자신이라고 하셨다. 이 이야기는 인생에 있어 복덕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 부처님의 뜻을 엿볼 수 있다.
이처럼 중요한 복덕은 어떻게 생기는 것일까? 복덕의 증장은 보시와 배려에서 나온다. 복덕은 바로 타인을 위한 구체적인 행위에 의해 생기는 것을 알 수 있다. 대승보살행을 할 때 중요한 실천사항인 육바라밀이나 사섭법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을 보시행으로 꼽는다. 그 까닭은 중생은 자신의 것을 아끼는 습이 가장 강하므로 보시를 실행하는 수행을 첫머리에 둔 것이다.
자신의 것을 아끼는 마음을 간(慳)이라 하고, 분수에 지나친 것을 바라는 것을 탐(貪)이라 한다. 삼독(三毒)은 간탐에서 시작하여 마침내 어리석음에 다다른다. 그러므로 보시야말로 삼학(三學)을 이루는 첫 걸음이 되고 보살행의 근본이며 복덕을 쌓는 첩경이 된다. 부처님의 전생이야기를 담은 본생담에서도 압도적으로 많은 것이 보시에 대한 내용이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지금의 원만한 복덕을 지니신 것은 무수한 세월에 자신의 재물, 몸, 나라와 심지어 처자식까지 아깝게 여기지 않고 보시를 한 까닭이라고 한다.
복덕의 과보는 현재 세상에서 받을 수도 있고 미래의 다른 삶에서 받을 수 있다. 보시를 행하는 일은 자신에게 복덕이 될 뿐만이 아니라 이웃에게도 널리 그 공덕이 미친다. 헐벗고 가난한 사람이나 병자나 노인들이 수용된 복지단체에 보시하는 것은 공공의 덕을 베푸는 일이고, 사원과 스님들에게 보시하는 것은 부처님의 법이 오래 머물고 중생들이 지혜의 가르침을 널리 얻게 하기 위함이다.
운이 좋고 복덕이 충만한 사람을 부러워하기 전에 자신의 인색함을 돌아보아야 하며, 자신의 일이 안 되고 어려움을 당할수록 힘써서 보시해야 한다. 사람됨이 악하지만 일이 잘 풀리는 사람은 전생에 지은 복덕으로 사는 것이니 그 복이 끝나면 악한 과보를 받는다. 반대로 과거에 지은 복덕이 없어 지금은 어렵지만 꾸준히 신심을 가지고 복덕을 지어간다면 마침내 뜻한 바를 이룰 수 있다. 복덕은 반드시 지은 바가 있어야 얻어진다는 것은 인과의 법칙이며 우리 불자들이 명심하고 실천해야 할 과제이다. 『대승장엄경론(大乘莊嚴經論)』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세속의 어리석은 자들은 늘 자신의 즐거움을 추구하고 있으나, 도리어 심한 괴로움을 얻는 결과가 되고 만다. 보살은 그렇지 않아서 언제나 남을 즐겁게 하기 위해 노력하는 바, 나와 남을 이롭게 하는 것[二利]을 성취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다시 최고의 열반의 즐거움마저도 얻는다."
- 도일스님의 신간 <불자로 산다는 것>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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