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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개 장터,섬진강
    여행스케치 2014. 10. 11. 00:04

    2014년 10월 9일 찾은 화개 장터에서 섬진강 강변따라 악양 최참판댁까지 걸으면서 여행한 출발점 화개 장터 풍경입니다.

    경상도와 전라도가 만나는 섬진강가의 화개 장터 풍경 초가 지붕의 화개 장터 풍경이 옛정취를 풍깁니다.

    지역특산물이 즐비하고 대장간도 있고 옛모습 그대로의 화개 장터 모습입니다.

     

     

     

     

     

     

     

     

     

     

     

    섬진강은 본래 다사강 혹은 모래내 두치강(豆恥江) 등으로 불렸다. 섬(蟾) 자로 익히 알 수 있듯이 그 지역에 분포하는 두꺼비 전설로 인해 섬진강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고려 말 섬진강 하구에 왜구가 쳐들어왔다. 그러자 전라남도 광양시 진상면 ‘섬거(蟾居)마을’에 살던 수십만 마리 두꺼비가 섬진나루에 몰려와 울부짖어 왜구를 물리쳤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우왕이 1385년(우왕 11)에 섬진강이라는 이름을 내렸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 이름이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또 한 번은 강 동편에서 왜구에 쫓기던 우리 병사들이 꼼짝없이 붙들려 죽게 되었는데, 두꺼비 떼가 강물 위로 떠올라 다리를 놓아 건너편으로 건너게 해 주었다. 뒤쫓아 온 왜구도 두꺼비 등을 타고 강을 건너던 중, 이들이 강 한가운데 이르자 두꺼비 떼가 모두 강물 속으로 들어가 버려 왜구만 빠져 죽었다. 그래서인지 이곳 사람들은 마당에 두꺼비가 나타나면 “고수레”라고 말하며 두꺼비에게 음식물을 던져 준다.

     

    푸른 하늘과 푸른 섬진강이 잘어울립니다.

     

     

     섬진강 두치진 나루터에 마음 착한 아가씨가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는데, 장마가 진 어느 날 부엌으로 뛰어든 두꺼비가 가여워 보살펴 주었다. 겨울이 와 모든 두꺼비가 겨울잠을 자러 가도 이 두꺼비는 부엌 아궁이 옆을 떠나지 않았다. 삼 년 후 두꺼비는 큰 솥뚜껑만큼 커졌다. 어느 날 밤 섬진강 상류에 폭우가 쏟아져 물이 불어나 아가씨가 익사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다행히 아가씨는 두꺼비를 타고 강기슭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하지만 물살과 사투를 벌였던 두꺼비는 강기슭에 도착하자마자 죽어 버렸다. 이 설화는 섬진강변 동산에 두꺼비를 장사지내고 매년 제사지내는 근거로 제시된다. 변이본의 내용은 두꺼비를 매개로 섬진강과 사람들 사이의 삶의 관계를 보여준다.

    맑은 가을 하늘입니다.

    강바닥이 보이도록 맑은 물이 흐르는 섬진강 강물입니다.

     

     

    강변의 버드나무와 섬진강 맑은 물이 그림같이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전라도 땅에서 바라본 화개 장터가 있는 화개와 그뒤로 지리산 능선이 보입니다.

     

    경상도와 전라도를 연결하는 다리 남도 대교

     

     

     

    구불구불 여유롭게 천천히 흐르는 섬진강 풍경을 보면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여유로운 마음이 바쁘게 살아가는 현실에서 천천히 느리게 살아가는 것도 아름답고 여유롭고 평화로울 수 있다는

    느림의 미학 곡선의 아름다움을 느끼기에 충분합니다.

     

    굽이 굽이 돌아가는 섬진강 풍경 보면 볼수록 아름답습니다.

     

     

     

     

     

     

     

     

    지리산은 야생 차를 낮고 섬진강은 어머님 품처럼 차를 잘 자라게 한다는 섬진강변의 녹차밭 풍경입니다.

     

     

     

    택리지』에 “구례 남쪽의 구만촌(九灣村)은 거룻배를 이용하여 생선과 소금 등을 얻을 수가 있어 가장 살만한 곳”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로써 현재의 구례구(求禮口)로 추정되는 구만촌까지 수운(水運)을 이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오곡면 압록에서부터 하천 양쪽에 넓은 모래사장이 펼쳐지고, 지류와의 합류 지점에는 한랭기에 이동된 암괴(巖塊)가 하천침식에 의하여 노출되어 하천 바닥에는 바위가 많다. 이러한 조건이 수운에 큰 장애가 되지만 풍부한 수량을 이용하여 하구에서 40㎞ 거리의 구례구까지는 항행이 가능하나, 현재는 이용되지 않고 있다.

    1928년 동진농업주식회사(동진농장)가 임실군 강진면의 해발고도 200여 m에 운암제(雲巖堤)를 축조한 뒤, 1965년 운암제 아래 섬진강다목적댐(갈담저수지)이 건설되었다. 이 댐은 유역변경식 발전을 하며 계화도(界火島) 간척지의 농업용수로 이용되고 있다. 하구인 광양만에는 광양제철소가 있다. 하류의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에는 840년에 중창된 신라의 고찰인 쌍계사(雙磎寺)와 불일암(佛日庵)·불일폭포가 있다. 명산물로는 은어와 참게를 들 수 있다.

    섬진강 하류에서는 1970년대 후반부터 1998년까지 골재가 채굴되었고 광양·순천·여수· 등지의 토목공사에서 섬진강의 모래를 많이 사용하였다. 이로 인해 하천 생태계가 큰 변화를 겪고 있다. 하동읍 하류 하상이 낮아져서 바닷물이 올라오고 특산물인 재첩은 사라졌다. 염도가 높아져 농업용수로 쓸 수 없게 되었다.

    1990년 대비 2001년 섬진강유역 주변의 토지이용현황을 살펴보면 대지, 공장용지, 공공용지, 기타 등이 증가하고 농경지, 임야 등이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공장면적의 증가율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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