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통도사 풍경
    사찰 풍경 2014. 4. 29. 00:00

    석가탄신일이 다가오는 가운데 통도사 경내는 연등이 걸리고

    고색찬란한 통도사의 아름다운 건물과 어울려 한층 더 그 아름다운 광명의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봉발탑

     

    보물 제471호

    봉발탑은 용화전 앞에 서있는 것으로 무슨 용도인지는 알 수 없으나, 석가세존의 옷과 밥그릇을 미륵보살이 이어받을 것을 상징한 조형물인 것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명칭을 탑이라고 한 것은 문제가 있어, 유물의 성격상 ‘석조발우(石造鉢盂)’라고 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본다. 기본형태는 받침부분 위에 뚜껑 있는 큰 밥그릇을 얹은 듯한 희귀한 모습이다. 받침부분의 돌은 아래ㆍ가운데ㆍ윗부분으로 구성되며 장고를 세워 놓은 듯한 모양이다. 받침돌 위에는 뚜껑과 높은 굽 받침이 있는 그릇 모양의 석조물이 있다. 만들어진 연대는 연꽃조각과 받침부분의 기둥양식으로 보아 고려시대로 추정되지만, 받침부분과 그릇 모양의 조각물과는 품격의 차이가 느껴지므로 동시대의 작품인지 의문을 갖게 한다. 전체 높이는 약 230cm이고, 현재 보물 제471호로 지정되어 있다.
    약 2미터 높이의 발우(鉢盂)모양의 석조봉발(石造奉鉢)인데, 이를 봉발탑(보물 제471호)이라고 하며 이는 탑이 아니고 발우이다.

     
    이 석조물은 지대석(地臺石) 위에 하대석(下臺石)을 놓고 그 위에 부등형(不等形) 8각 간석(竿石)을 세우고 간석 위에 상대석(上臺石)을 놓았으며 그 위에 뚜껑을 갖춘 발(鉢)을 올려놓았다. 얼핏 보기에는 석등(石燈)과 같은 형식을 취하고 있으나 석등의 화사석(火舍石) 위치에 발이 놓여 있어 특이하다. 이 석조 봉발은 “석가모니의 발우(鉢盂)를 미래세(未來世)에 출현하실 미륵불에게 드리기 위해 부처님의 상수제자(上首弟子)인 가섭존자(伽葉尊者)가 발우와 함께 가사(袈裟)를 가지고 인도의 계족산(鷄足山)에서 멸진정(滅盡定)에 들어 기다리고 있다”는 불경의 내용에서 유래된 것으로 본다.

     

     

     

     

    대웅전(大雄殿) - 조선(1644년), 국보 제290호

    통도사 대웅전은 상로전의 주건물(主建物)이다. 대웅전의 평면은 정면 3칸, 측면 5칸의 규모로 되어 모두 15칸 건물이며, 특이한 것은 두 개의 건물을 복합시킨 평면형이라 건물내부의 기둥배치가 다른 건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예이다.

     

    현재의 건물은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44년(인조 22)에 중건하였지만 건물의 기단은 신라시대의 것으로 보이며, 내부에 불상을 모시지 않아 통도사 대웅전은 참배의 기능만을 갖고 있는 건물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불상을 모시지 않은 대신 불단 뒤편으로 부처님 진신사리가 봉안된 금강계단이 위치하는 구조를 보여준다.
    불당 내부에는 동서방향으로 길게 불단만이 있고, 그 앞쪽 중앙에 설법상(設法床)이 있어 대덕승려가 설법할 때 사용한다.

    통도사에 있는 조선 중기의 불전건물이다. 현재 국가 지정 국보 제290호로 보호받고 있다. 이 법당은 통도사의 중심건물로서 상로전의 주건물(主建物)이다. 대웅전의 평면은 정면 3칸, 측면 5칸의 규모로 되어 모두 15칸 건물인데 특이한 것은 두 개의 건물을 복합시킨 평면행이라 건물내부의 기둥배치가 다른 건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예이다.

    전면 쪽에는 동향한 3칸 방향 평면의 건물이 있고 뒤쪽에는 남향의 3칸, 2칸 정방형 평면의 건물이 전면 쪽 건물에 붙어 있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은 기둥의 배치에서 곧바로 알 수 있으며 지붕모양을 보고서도 알 수 있다. 현재의 건물은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44년(인조 22)에 중건하였지만 건물의 기단은 신라시대의 것으로 보인다.

     

    기단의 형식을 보면 지대석(地代石), 면석(面石), 갑석(甲石) 등을 조립한 가구식(架構式) 기단이며 석계(石階)의 배치는 원래부터 현존의 건물과 같은 평면형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계단의 위치를 보아도 평면이 합성(合成)형식인 것을 알 수 있다.

    이 불당은 내부에 불상을 모시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이 불당은 배전(拜殿)의 기능만을 갖고 있는 건물임을 알 수 있다. 불상을 모시지 않은 대신 불당 앞에 진신사리를 모셨다. 불당 내부에는 불쪽에 동서방향으로 길게 불단만이 있고 그 앞쪽 중앙에 설법상(設法床)이 있어 대덕승려가 설법할 때 사용한다.
    건물 구조형식을 보면 공포는 다포식으로 외삼출목(外三出目), 내사출목(內四出目)으로 칠포작(七包作)이다. 외부는 모두 쇠서 모양으로 되고 내부는 교두(翹頭)모양으로 되었다. 가구는 일고주(一高柱) 구량가(九樑架) 형식으로 하여 대량, 중종량, 종량이 지붕구조를 받도록 되었다. 천정(天井)은 우물천정인데 층급(層級)을 두어 중심부를 가장 높게 차지하였고 내부바닥은 우물마루를 깔았다.

    지붕은 팔작지붕의 복합형인 정(丁)자 형인데 정면과 양측면에 박공(朴工) 부분이 보이게 하여 특이하며 기와 가운데에는 철제(철제)기와도 올려져 있어 보통 건물이 아니었음을 짐작케 한다. 지붕 정상에는 청동제(靑銅製) 보주(寶珠)가 있는데 직경 약 70㎝에 달하는 이 보주의 윗부분에는 다시 높이 50㎝ 가량의 길다란 철주(鐵柱)를 설치해 놓았다. 이를 가리켜 통칭 찰간대(刹竿臺)라 하며 이는 대찰 또는 부처님의 연궁(蓮宮)을 뜻하는 상징물이다. 즉 불탑에서와 마찬가지로 불천(佛天)의 하강(下降)을 나타내는 조형물(造形物)이다. 그리고 지붕의 막새기와 상부에는 도자기 연봉장식이 있어 불사리 계단의 보궁 장엄에 온갖 정성을 쏟았음을 알 수 있다. 정확한 조성연대는 알수 없으나 대웅전 중건 당시의 유물로 짐작된다.

    이를 가리켜 통칭 찰간대(刹竿臺)라 하며 이는 대찰 또는 부처님의 연궁(蓮宮)을 뜻하는 상징물이다. 즉 불탐에서와 마찬가지로 불천(佛天)의 하강(下降)을 나타내는 조형물(造形物)이라 하겠다. 그리고 지붕의 막새기와 상부에는 자기(磁器) 연봉장식이 있어 불사리 계단의 보궁 장엄에 온갖 정성을 쏟았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이 대웅전에는 건물의 4면에 편액을 걸었는데 동쪽이 대웅전(大雄殿), 서쪽이 대방광전(大方廣殿), 남쪽이 금강계단(金剛戒壇), 북쪽을 적멸보궁(寂滅寶宮)이라고 하며, 조선 중기 불당 건축의 특수형으로 불당연구 및 목조건축의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주목받고 있다.

    대웅전의 내부 천정은 우물천정으로 이룩되었으며 이들은 목단, 국화문 등을 조각한 위에 단청(丹靑)하여 매우 화려하고 장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같은 목조조각은 전면 불단의 초자(草子)에도 매우 화려하게 나타났는데, 이는 곧 조선시대 목조 공예의 진수를 나타내고 있다.

    건물의 크기는 남북이 15.8m, 동서가 10.1m이며 동쪽 대웅전 현판 아래 두 장의 꽃살문 역시 조각이 우아하다. 연화문, 옥단문, 국화문 등을 새겨 문살을 장식하였다. 건물의 네 귀퉁이에는 버팀기둥, 즉 우주를 놓아 추녀의 하중을 지탱하도록 하였으며 외양(外樣) 역시 조화를 잘 이룬 뛰어난 목조물이다.
     
     

    통도사 대웅전에는 다른 사찰과 달리 동서남북 사면에 모두 편액(扁額)이 걸려있고, 또 각각 주련이 달려있는데, 사천왕문을 통해 들어가면 관음전 쪽에 ‘대웅전(大雄殿)’이라는 편액이 걸려있다. 편액이란 널판지나 종이 또는 비단 등에 글씨나 그림을 그린 것으로 대부분 가로로 길쭉하여 횡액(橫額)이라고 하는데, 보통은 현판(懸板)이라고도 부른다. 편(扁)은 서(署)의 뜻으로 문호 위에 제목을 붙인다는 말이며, 액(額)은 이마 또는 형태를 뜻하는 말로, 건물 정면의 문과 처마 사이에 붙여서 건물에 관련된 사항을 알려 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중국 진(秦)나라 때 건물 명칭을 표시한 것을 서서(署書)라고 한 것이 편액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고,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쓰기 시작하여, 조선시대에는 사찰 건물은 물론 도성과 문루, 궁궐 전각, 지방관아와 향교, 서원 등 일반주택에까지 붙여졌다.

    대웅전 편액의 글씨는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1820~1898)의 글씨로 알려져 있다. 통도사에는 유독 흥선대원군 즉 석파(石坡)의 글씨가 많이 있는데, 일주문(一柱門)의 편액인‘靈鷲山 通度寺’의 글씨와 원통방 편액과 ‘금강계단’의 글씨 등이 모두 흥선대원군의 글씨라 한다.

    다음으로 주련(柱聯)을 살펴보면, 우선 글씨는 천보구하(天輔九河)스님의 글씨이다. 통도사의 많은 주련들이 구하스님의 선필(禪筆)로 쓰여져 있다. 주련의 내용을 살펴보자면, 주련의 문장은 모두 다섯 구절로 이루어졌다. 앞의 네 구절은 칠언절구의 한시(漢詩) 형식으로, 중국 송(宋)나라 때의 대문호로서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인 소동파(蘇東坡1036-1101) 거사(居士)의 누이 동생인 소소매(蘇小妹)가 지었다고 알려져 있는데, 불교의식문 중의 하나인 관음예문(觀音禮文)에 실려 있다.

    관음예문은 중국과 우리나라에 전승되어온 의례문(儀禮文)으로 관음신앙을 중심으로 여러 불보살님에 대한 귀의, 예경, 찬탄, 발원의 글이 한데 어우러진 법문집인데, 이중 법신(法身)·보신(報身)·화신(化身)의 삼신불을 찬탄하는 문장 중 화신불을 찬탄하는 구절에 나와 있다.

    그리고 마지막 다섯 번째 구절은 앞의 내용과는 별 관계없이 기둥의 수에 맞추기 위한 것으로 보이는데, 출처는 금강경오가해 선현기청분(善現起請分) 중 종경장(宗鏡章)에 나오는 글이다. ‘마음을 어떻게 항복 받아야 하겠습니까?’하는 수보리의 질문에 부처님께서 답하시는 대목에서 종경스님이 글을 단 것이다.

    주련의 내용은 관음예문에 나와 있는 화신불(化身佛)을 찬탄하는 아름다운 문장이다.

    至心歸命禮 兜率陀天上 象駕日輪 摩竭提國中 龍蟠覺樹 敎談三百餘會 度脫衆生 住世七十九年 利樂郡品 應物隨形化 阿羅縛左那 裟婆一代敎主 千百億化身 釋迦牟尼佛 月磨銀漢轉成圓 素面舒光照大千 連臂山山空捉影 孤輪本不落靑天

    중생에게 천백억 화신 나퉈 보이신 석가모니 거룩한 부처님께
    목숨바쳐 지심으로 절하옵나니 부처님은 도솔천 하늘 위에서
    눈부신 햇빛 속에 코끼리 타고 마야부인 태속에 드시었으며
    룸비니 꽃동산에 태어나실 땐 아홉 용이 맑은 물로 목욕시키고
    마가다국 보리의 나무 아래서 위없고 바른 깨침 이루시었네

    삼백여회 진리를 연설하시사 고통받는 많은 중생 건져 내시고
    칠십구년 이 세간에 머무르시사 중생에 이익주고 기쁨 주시니
    천백억 화신 석가모니 부처님께선 중생의 서로 다른 모습을 따라
    그에 맞는 여러 모습 나타내시네

    은하수에 달이 갈려 둥글어지니 흰 얼굴 빛을 펴서 온누리 비치네
    원숭이들 서로 서로 팔을 이어서 공연히 물 속의 달을 건지려 하지만
    홀로 밝은 저 달은 원래로부터 하늘에서 떨어지지 아니하였네.

        구룡지

    자장스님이 중국 종남산(終南山) 운제사(雲際寺) 문수보살상 앞에서 기도를 드리고 있을 때의 일이다. 문수보살은 승려로 화하여 가사 한벌과 진신사리 1백과, 부처님 정수리뼈, 염주, 경전 등을 주면서 말했다.
    “이것들은 내 스승 석가여래께서 친히 입으셨던 가사이고, 또 이 사리들은 부처님의 진신사리이며, 이 뼈는 부처님의 머리이다. 그대는 말세에 계율을 지키는 스님이 될 것이므로, 내가 이것을 그대에게 주노라. 그대의 나라 남쪽 영축산 기슭에 나쁜 용이 거처하는 연못이 있는데, 거기에 사는 용들이 나쁜 마음을 품어서 비바람을 일으켜 곡식을 상하게 하고 백성들을 괴롭히고 있다

     

    그러니 그대가 그 용이 사는 연못에 금강계단을 쌓고 이 불사리와 가사를 봉안하면, 재앙을 면하게 되어 만대에 이르도록 멸하지 않고 불법이 오랫동안 머물러 있을 것이니라.”

    스님은 귀국하여 선덕여왕과 함께 영축산을 찾아서 나쁜 용들이 산다는 못에는 아홉 마리의 용이 살고 있었다. 스님은 마음을 가다듬고 주문과 경을 읽으며 아홉 마리의 용에게 조용히 이 못을 떠나달라고 청하였으나 용들이 일절 응하지 않자, 법력으로 아홉 마리의 용과 결투를 벌이게 되었다. 이 싸움에서 견디지 못한 용들은 제각기 앞 다투어 달아나기 시작했는데, 세 마리의 용은 달아나다가 커다란 바위에 부딪혀 떨어져 죽었다. 당시 부딪힌 바위에 용의 피가 낭자하게 묻게 되어서 후세사람들이 이 바위를 용혈암(龍血巖)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또한 다섯 마리 용은 통도사의 남서쪽에 있는 영축산 아래의 골짜기에 이르러 떨어져 죽게 되었는데, 그곳을 오룡동(五龍洞)이라 부르고 뒷산 중턱에 있는 검붉은 색의 바위는 이 용들이 흘린 피가 묻어서 그렇게 된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세 마리는 삼동곡(三洞谷)으로 갔으나 마지막 한 마리의 용은 자장율사에게 통도사 터를 수호할 것을 맹세하자 스님은 그 용의 청을 들어 연못 한 귀퉁이를 메우지 않고 남겨 그 용을 머물도록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금강계단 옆에는 자기마한 상징적인 못을 두고 있는데, 그것이 구룡지(九龍池)이다. 불과 작은 크기에 지나지 않으며 깊이 또한 한 길도 채 안 되는 조그마한 타원형의 연못이지만, 아무리 심한 가뭄이 와도 전혀 수량이 줄어들지 않는 영험함이 있다.

     

     

     

     

     

     

     

     

     

     

    극락보전

     

    조선(1801년), 경남 유형문화재 제194호

    극락전의 초창은 고려 공민왕(恭愍王) 18년(1369) 성곡대사(성곡대사)에 의하였고, 현재의 극락전은 건물 해제 수리시에 발견된 상량문에 의해 순조1년(1801)에 중건하였음이 확인되었다. 법당에는 서방정토(西方淨土) 극락세계(極樂世界)의 교주이신 아미타불(阿彌陀佛)과 좌우에 협시보살(脇侍菩薩)로 관음(觀音), 세지(勢至) 보살상을 봉안하였다.

     
    건물은 전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양식이며 외벽(外壁)에는 험한 바다를 건너 극락세계로 향하는 소위 반야용선(般若龍船)을 표현하였다. 배의 모습은 용두(龍頭)와 용미(龍尾)를 나타내었고 그 전후에는 인로왕보살(引路王菩薩)과 지장보살로 보이는 양대(兩大) 보살이 서서 배를 인도하며, 배에는 합장한 사람들이 가득 차 있다. 이 그림은 근세의 제작이나 그 구도나 내용이 보기 드문 우수한 작품으로 주목되고 있다. 극락세계란 이 세계로부터 서쪽으로 10만억 불국토를 지나가면, 이 우주(宇宙)공간에서 가장 즐거운 세계가 있으며 이곳에서는 아무런 고통이 없으며, 편안하고 즐거운 안양국(安養國)또는 극락세계라고 불려지는 세계가 있다고 한다. 그 세계에는 현재 아미타부처님이 설법하시는데 그 세계에서 왕생하는 사람은 연화(蓮花)위에 화생(化生)한다고 말하여 진다. 즉 연화(蓮花)생이다. 모든 것은 생각만 하면 저절로 이룩되고 땅은 유리로 이룩되었으며 . 온갖나무와 꽃과 궁전이 모두 법(法)을 설하여 이곳에 왕생하는 중생은 필경 성불한다고 하였다.

     

     

    영산전

     

    조선(1714년), 경남 유형문화재 제203호

    영산전은 하노전(下爐殿)의 중심 건물이다. 남향한 영산전의 전방 좌우에는 극락전과 약사전이 동서에 놓여 있고, 그 중앙 지점에는 신라 말기의 3층석탑 1기가 있다. 이 탑은 현 위치에서 동북쪽 약 1.5m 지점에 경사진 채 있었으나 최근에 현 장소로 이동하여 복원되었다.

     
    영산전의 초창 연대는 미상이나 현 건물은 숙종 30년(1704) 송곡대사(松谷大師)에 의하여 중건 된 것으로 짐작된다. 현재 통도사성보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는 <영산전천왕문양중창겸단확기(靈山殿天王門兩重創兼丹?記)>에 따르면, 1713년 봄 영산전과 천왕문이 화재로 소실되었고 1714년 청인(淸印), 정안(正眼), 낭일(朗日), 치원(致源) 등 4분의 대선사가 중창하였다고 한다. 건물의 구조는 전면 5칸, 측면 3칸의 다포계 양식의 맞배지붕 양식이며 내외 벽화는 매우 주목되는 작품이다. 외벽의 그림은 풍화(風化)를 받아 많이 훼손되었으나 내벽의 그림은 그런대로 잘 남아있다. 특히 내부 벽화의 다보탑을 비롯하여 양류관음(楊柳觀音), 나한상, 여러 가지 경설(經說)의 내용들이 품격 높은 수작(秀作)으로 국내에서 보기드문 희귀한 작품이다. 서쪽 벽면을 거의 다 차지하였으며 탑신에는 석가여래와 다보여래가 분반좌(分半座)하는 『법화경』의 내용을 상징적으로 묘사하였다. 탑의 주변에는 보살상과 제자상이 시립(侍立)해 있고 탑문(塔門)이 열린 내부로 2여래(二如來)가 병좌(竝坐)한 모습이며 탑 둘레는 온통 영락과 풍경장엄 속에서 하늘에는 오색(五色) 구름이 휘날리고 있다. 그림은 애석하게도 아랫부분이 손상되었지만 상태는 좋은 편이다.
    그외에도 내부 불벽(佛壁)에는 양류관음(楊柳觀音)이라든지 나한상과 함께 산수화풍의 그림들이 가득 채워져 있다. 벽면의 요소 요소에 적당한 구도를 잡아 여러 가지 경설의 내용을 그림으로 나타내고 있다. 건물의 외부 벽면에 남아 있는 노승(老僧) 공양도(供養圖)의 경우 많이 훼손되었으나 그림은 품격이 높은 수작이다.

     

     

     

     

     

     

     

     

     

     

     

     

     

     

     

     

     

     

     

     

     

    '사찰 풍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통도사 산내암자 사명암 풍경  (0) 2014.05.01
    통도사 풍경  (0) 2014.05.01
    통도사 가는길  (0) 2014.04.28
    통도사 가는 길  (0) 2014.04.28
    통도사 가는 길  (0) 2014.04.28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