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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다운 삶/법정 스님
    좋은글과 시 2013. 5. 22. 18:46

     

     

     

     

     

     

     

     

    ▒ 삶다운 삶/ 법정 스님

     

    『샘터』에 내가 처음 글을 쓴 것은

    창간 2주년이 된 1972년 4월호였다.

    도둑맞은 시계를 되찾은 '탁상시게 이야기'.

    다래헌 시절인데, 그때 편집장인 강은교 씨가

    뚝섬 나루를 건너 나를 찾아와 원고를 청탁했다.

    그 시절에는 편집자가 직접 필자를 찾아가

    원고를 청탁하는 일이 예사였다.

    원고가 다 되면 그쪽에서 사람이 와서 찾아가거나

    이쪽에서 인편이나 우편으로 보내주던

    지극히 인간적인 그런 시절이었다.

     

    지금은 그곳이 특별시 강남구로 되어 있지만,

    그때는 경기도 광주군 언주면이었다.

    그 절에는 전기도 전화도 없던 시절이다.

    서울과의 교통수단은 오로지 뚝섬 나루뿐이었다.

     

    그때는 신문과 잡지들이 모두 세로쓰기를 했고,

    특히 『샘터』에는 전혀 광고지가 실리지 않아

    산뜻한 잡지로 평가받았다.

     

    지금 돌이켜 보면, 한 세대인 30년 사이에

    세상은 너무도 급속히 변해가고 있다.

    나는 지금도 글을 쓸 때 예전이나 다름없이

    만년필로 원고지에 한 자 한 자 칸을 메워간다.

    그러나 요즘 글 쓰는 사람 대부분은

    컴퓨터 키를 두들겨 곧 바로 전송하고 있다.

    사각 컴퓨터 스크린 앞에서 생각할 사이도 없이 손가락으로 두들겨

    뜸도 들기 전에 후딱 보내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편이하고 신속한 세상에서 지금 우리는 살고 있다.

    더듬거리면서 어수룩하고 느긋하게

    삶을 즐기면서 살던 그런 시절이 아니다.

    아, 인간적인 그런 시절은 다 어디로 갔는가.

     

    나는 요즘에 이르러 두 세상을 동시에 사는 것 같다.

    안으로는 예전이나 다름없이 전통적인 생활 습관 속에서

    나 자신을 다스리면서 내 식대로 살고 있고,

    한편으로는 인터넷으로 급변하는 세상의 소용돌이를

    이만치서 바라보면서 이방인처럼 권외자로 살고 있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 것인지,

    어떻게 사는 것이 인간다운 삶인지를 거듭 묻는다.

     

    어떤 세상에 살든지

    사람은 그 나름대로의 생활규범이나 규칙이 있어야 한다.

    현재의 우리는 이미 이루어져 굳어진 존재가 아니다.

    끊임없이 새롭게 형성되어 가야 할

    무한한 잠재력을 지닌 유일한 존재다.

    가치 의식에 혼란이 생긴 이때 자신의 생활규범이 없으면

    시류에 휩쓸려 자기 자신다운 삶을 이루기 어렵다.

    자기 인생을 자신의 의지대로 살고자 한다면

    그 나름의 투철한 생활의 질서가 있어야 한다.

     

    하버드 대학의 교수로 있다가

    어떤 계기에 이름을 인도식으로 바꾸고

    명상 수행자가 된 '람 다스'는

    생활 규칙으로 다음과 같이 권유한다.

     

    - 하루에 한 시간은 조용히 앉아 있는 습관을 들이라,

    - 푹신한 침대가 아닌 딱딱한 바닥에서 잠을 자라.

    - 이런 저런 생각 끝에 잠들지 말고,

    조용히 명상 하다가 잠들도록 하라.

    - 간소하게 먹고 간편하게 입으라.

    - 사람들하고는 될 수 있는 한 일찍 헤어지고 자연과 가까이 하라.

    - 텔레비젼과 신문을 무조건 멀리하라.

    - 무슨 일이나 최선을 다하라.

    그러나 그 결과에는 집착하지 말라.

    - 풀과 벌레들 처럼 언젠가 우리도 죽을 것이다.

    삶다운 삶을 살아야 죽음다운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음을 명심하라.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 같이 하루 24시간이다.

    이 24시간을 어떻게 나누어 쓰느냐에 따라

    그 인생은 얼마든지 달라진다.

    아무리 바쁘고 고단한 일상이지만

    하루에 한 시간만이라도 조용히 앉아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습관을 들인다면,

    하루하루의 삶에 탄력이 생길 것이다.

     

    이 몸은 길들이기 마련이다.

    너무 편하고 안락하면 게으름에 빠지기 쉽다.

    잠들 때는 복잡한 생각에서 벗어나

    숙면이 되도록 무심해져야 한다.

    병원마다 환자들로 넘치는 것은 의료보험 때문이 아니라

    활동량에 비해서 너무 기름지게 먹고

    과식하는 그릇된 식생활 탓이다.

    건강과 장수의 비결은

    담백하게 먹고 겹겹이 껴입지 말라는 것이다.

    간소하게 먹고 간편하게 입는다면

    지구환경은 그만큼 오염과 훼손이 줄어들 것이다.

     

    다행히도 내 오두막은

    텔레비젼과 신문이 들어올 수 없는 곳에 위치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들을 가까이 할 일이 없다.

    세상 소식은 가끔 라디오가 들려준다.

    밖에 나갔을 때 어쩌다 마주치게 될 기회가 있지만

    무엇엔가 감염될 것 같아 이내 꺼 버리고 접어 넣는다.

     

    그러나 내가 살아가는 데에는

    조금도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

    저녁 9시만 되면

    텔레비젼 앞에 앉으라고 누가 강요라도 하는가.

    그것은 길들여진 버릇이다.

    마약과 같은 일종의 습관성 질환이라고도 할 수 있다.

     

    자신들의 야망을 채우기 위해 갖은 소란을 피우고 있는

    너절한 정치꾼들을 어째서 안방에까지 불러들이는가.

    우리가 참으로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은

    그런 저질들의 동태가 아니라

    침묵 속에 울려오는 자기 내면의 소리다.

     

    나는 그 시간에 옛 어른들의 말씀을 펼쳐든다.

    오늘을 살아가는 지혜를 그 안에서 배운다.

    우리는 언젠가 저마다 자신의 일몰을 맞이할 때가 온다.

    그 일몰 앞에서 후회 없는 삶을 살아야

    자기 자신다운 일몰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누가 나에게 이 생활의 규칙에 한 가지만 더 추가하라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휴대전화를 갖지 말라고 하겠다.

    시도 때도 없이 아무데서나 울려대는

    저 휴대전화 벨 소리에

    우리들의 귀가 얼마나 곤욕을 치르고 있는가.

     

    개인의 집이 아닌 공공장소에서

    전화기에 대고 큰소리로 떠들어대는 몰상식한 무뢰배들을

    우리가 어찌 정다운 이웃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남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이런 무뢰배들이 설치는 시대가

    과연 우리가 꿈꾸며 바라던 미래사회인가.

    정보화 사회에서는 그 정보를 앞 다투어 쟁취하느라고

    인간의 예절과 감성이 날로 소멸되어간다.

    이런 세상을 살아가는 일이 이제는 사뭇 두렵다.

     

    당신은 어떤 생활의 규칙을 세워 지키고 있는가.

    당신을 만드는 것은

    바로 당신 자신의 생활 습관이다.

     

     

    《홀로사는 즐거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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