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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성산 내원사
    사찰 풍경 2019. 6. 30. 20:59

    경남 양산의 천성산 내원사 풍경입니다.


    천성산 내원사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通度寺)의 말사이다. 신라 문무왕 때 원효(元曉)가 창건하였으며, 『송고승전(宋高僧傳)』에 창건설화가 기록되어 있다.

    673년(문무왕 13) 원효가 동래군 장안면 불광산에 있는 척판암(擲板庵)을 창건하여 주석하던 중, 당나라 태화사의 1,000명 대중이 장마로 인한 산사태로 매몰될 것을 알고 ‘효척판구중(曉擲板求衆)’이라고 쓴 큰 판자를 그곳으로 날려보냈다.

    그 곳 대중들이 공중에 떠 있는 현판을 보고 신기하게 여겨 법당에서 뛰쳐나와 보는 순간 절 뒷산이 무너져 큰 절이 매몰되었다. 이 인연으로 1,000명의 중국승려가 신라로 와서 원효의 제자가 되었다. 원효가 그들의 머물 곳을 찾아 내원사 부근에 이르자 산신이 마중나와 현재의 산신각 자리에 이르러 자취를 감추었다.

    이에 원효는 대둔사(大芚寺)를 창건하고 상·중·하내원암(上中下內院庵)을 비롯, 89개 암자를 세워 1,000명을 거주시켰다. 그리고 천성산 상봉에서 『화엄경(華嚴經)』을 강론하여 1,000명의 승려를 오도(悟道)하게 하였다.

    이 때 『화엄경』을 설한 자리에는 화엄벌이라는 이름이 생겼고, 중내원암에는 큰 북을 달아놓고 산내의 모든 암자가 다 듣고 모이게 했으므로 집붕봉이라는 이름이 생겼으며, 1,000명이 모두 성인이 되었다 하여 산이름을 천성산이라 하였다 한다. 조선 중기에 대둔사 및 상·중내원암은 없어지고 하내원암만 남았다.

    그 뒤 1646년(인조 24)에 의천(義天)이 중건하였고, 1845년(헌종 11)에 용운(龍雲)이 중수하였으며, 1876년에는 해령(海嶺)이 중수하였다. 1898년에는 유성(有性)이 수선사(修禪社)를 창설하고 내원사로 개칭한 뒤 선찰(禪刹)로 이름을 떨쳤고, 민족항일기에는 혜월(慧月)이 주석하면서 많은 선승(禪僧)들을 배출하였다.

    그리고 6·25전쟁 때 산속에 숨어 있던 공비들의 방화로 완전히 소실된 뒤 1955년에 수덕사(修德寺)의 비구니 수옥(守玉)이 5년 동안에 걸쳐서 13동의 건물을 재건하였다. 그 뒤 꾸준한 불사를 거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법당인 선나원(禪那院)을 비롯하여 ‘선해일륜(禪海一輪)’의 현판이 걸린 큰 규모의 선원(禪院)·심우당(尋牛堂)·정처헌(靜處軒)·불유각(佛乳閣)·종루·일주문(一柱門)·객실·창고 등이 있으며, 산내암자로는 미타암(彌陀庵)·성불암(成佛庵)·금봉암(金鳳庵)·원효암(元曉庵)·조계암(曹溪庵)·금강암(金剛庵)·내원암(內院庵)·안적암(安寂庵)·익성암(益聖庵)·노적암(露積庵) 등이 있다.


    문화재로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58호로 지정된 금고(金鼓)가 있다. 전국의 대표적인 비구니 수도선원으로 널리 알려져 있을 뿐 아니라, 용연리경부고속도로 위를 지나는 육교를 건너면서부터 시작되어 내원사 입구까지 이어지는 6㎞ 계곡의 아름다움으로도 유명하여 천성산 내원사일원이 경상남도 기념물 제81호로 지정되어 있다.



    박복한 삶

     

    보시의 반대가 인색이고 무아(無我)의 반대가 아집(我執)입니다.

    수행이 아니더라도 살아가면서 재물에 헐떡거리지 않고 이웃에 마음이 넉넉하고 나보다도 공익을 생각하는 분들은 보기도 좋습니다. 박복한 삶이란 인색함, 아집에 물들어 자기 생각만 하고 사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분들이 사바세계를 오염시키는 것입니다.

     

    처사시절 기르던 개를 때려서 불구를 만든 노인을 보고 짐승을 학대하는 것도 과보가 있는데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고 집에서 기르던 가축을 즐겨 잡아먹던 분은 지금은 거지 수준으로 망했다는 풍문도 들립니다.

     

    초심시절 어느 말사에서 기도하며 지내는데 주지스님의 살림살이가 말 그대로 있는 사람에게는 한 없이 자비스럽지만 객승이나 공양주, 절에서 일하는 처사님들께 대하는 것은 모진데 속으로 말년에 고생 좀 할 것이다생각하였는데 세월이 흘러 지금 들리는 풍문에 풍 맞아서 몸이 불편하다고 합니다.

     

    가진 것이 많을수록 박복함에 물들기 쉽습니다. 재물이던 권력이던, 제일 무상(無常)한 것이 권력과 재물이지만 무상한 것을 오래 간직하려고 애쓰다 보면 박복함에 물들고 결국은 더 쉽게 무너지고 흩어지는 것입니다.

     

    승속(僧俗)을 떠나 이름과 가진 것과 상관없이 이기심으로 살면 박복한 삶이며 마지막은 불행으로 끝나며 이타심으로 살면 복혜쌍수의 행복한 삶입니다.

    인과(因果)는 뚜렷하고 모든 중생들에게 공평합니다.

    지은 데로 받는 인과가 뚜렷한데 누구를 탓하겠습니까?

    부처님 공부가 무아(無我)를 사유(思惟)하고 보시와 자비심을 일깨우는 것이지만 현실은 멀게 느껴집니다.

     

    - - 나 나 잘 살피면서 살지요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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