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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물 삼점이 일직선에 나란히 남산제일봉 청량사
    사찰 풍경 2017. 12. 11. 22:05

    해인사의 말사 가야산 앞 남산제일봉 가는 길에 만나게 되는 청량사

    통일신라시대의 보물 불상,석등,석탑 보물 삼점이  일직선상에  나란히 있는  청량사입니다.

    삼점의 보물이 한곳에 일직선으로 나란히 정렬하여 있는 곳 청량사 

    청량사 뒤의 월유봉과 나란히 대웅전의 석불과 대웅전앞 석등 석탑이 일직선에 나란히 모셔져 있는 이색적 풍경의 청량사 풍경입니다.




    청량사 삼층석탑

    보물 제266호. 높이 4.85m. 석탑은 2층 받침돌 위에 3층의 몸돌과 지붕돌을 올린 모습으로, 전형적인 신라 석탑의 양식을 따랐지만 곳곳에 특이한 의장()이 더해져 있다.

    받침 부분인 기단부() 주위에는 길고 큰 돌을 둘러서 널찍한 탑구()를 조성하였는데, 여느 석탑에서 볼 수 없는 모습이다. 아래층 받침돌은 바닥돌과 받침돌의 면석을 하나의 돌로 깎은 4장의 널돌로 조성하였다. 면석의 각 면에는 모서리 기둥과 함께 2개의 가운데 기둥이 조각되었다. 4장의 널돌로 짜여진 덮개돌 윗면은 약간의 경사를 이루다가 네 귀퉁이에서 살짝 반전()하였고, 가운데 부분에는 2단의 굄이 새겨져 있다. 윗층 받침돌의 면석은 모서리 기둥과 1개의 가운데 기둥을 조각한 널돌을 앞면과 뒷면에 세우고, 그 사이에 가운데 기둥 하나만을 새긴 널돌 2장을 끼운 구조이다. 덮개돌에는아래층 받침돌의 그것처럼 윗면에는 약간의 경사와 네 귀퉁이의 반전을 두었고, 처마 밑면에는 쇠시리인 부연()을 새겼다.

    탑신부()는 몸돌과 지붕돌을 각각 하나의 돌로 만들었는데, 2층 몸돌부터 쾌적한 비율로 체감되었다. 몸돌에는 모서리 기둥이 새겨져 있다. 지붕돌은 비교적 얇은 편으로, 수평인 처마의 밑면에는 5단의 받침이 있고, 윗면은 완만한 경사를 이루다가 네 귀퉁이에서 가볍게 반전하여 경쾌한 곡선을 그리고 있다. 상륜부()는 윗부분에 덮개를 새긴 노반()만 남아 있을 뿐이다.

    이 석탑은 받침돌이나 몸돌에 아무런 장식이 없지만 각 부분이 아름다운 균형을 이루고 있다. 석재의 가공도 가지런하여 경쾌하고 우아한 기품을 지니고 있다. 1958년에 보수공사를 하였을 때, 2층 지붕돌의 윗면과 아래면에서 사리장치()를 봉안하였던 둥근 구멍이 확인되었다. 윗면의 구멍은 지름과 깊이가 각각 10㎝이고, 아래면의 구멍은 지름과 깊이가 각각 15.1㎝이다. 지붕돌의 윗면에 사리장치를 둔 것은 다른 석탑에서 찾을 수 없는 특이한 방식으로 알려져 있다.



    청량사 석등

    보물 제253호. 높이 3.4m. 대웅전 앞의 축대 위에 자리하고 있으며, 바로 뒤쪽에는 합천 청량사 삼층석탑(보물 제266호)이 서 있다.

    석등은 단면 8각의 전형적인 신라 석등의 모습이지만, 가운데받침돌이 장구를 세워 놓은 듯한 고동형()이어서 특이하다. 네모난 바닥돌 위에는 제법 넓은 아래받침돌이 놓여 있는데, 아래받침돌은 윗단과 아랫단으로 나뉘어 조성되었다. 아랫단의 각 면에는 안상()이 오목새김되었고, 안상 안에는 사자와 함께 구름 속에 있는 누각인 운상누각()이 8면에 교대로 조각되어 있다. 윗단은 2장의 꽃잎이 아래로 향한 복련()의 연꽃 무늬가 각 모서리마다 1개씩 모두 8개가 크게 새겨져 있는데, 모서리에 조각된 꽃잎의 끝부분은 꽃잎을 말아 올린 작은 귀꽃으로 장식되었다. 이 복련석 위에는 가운데받침돌의 받침이 놓여 있는데, 밑면은 안쪽으로 둥글게 깎였고, 윗면에는 복련 모양의 연꽃 무늬 24개가 돋을새김되어 있다.

    간주(竿) 모양의 가운데받침돌은 가로띠와 꽃 무늬가 장식된 복발() 모양의 굵은 마디를 중심으로, 그 위아래에는 복련의 연꽃 무늬와 함께 꽃잎이 위로 솟은 앙련()의 연꽃 무늬가 장식되었다. 그런 다음 다시 위아래로 윗받침돌의 밑면과 아래받침돌의 받침까지는 비스듬히 비탈지게 깎였고, 겉면에는 꽃 무늬가 조각되었다. 윗받침돌은 윗부분에 받침을 두었고, 밑면에는 8각의 각 모서리마다 하나의 꽃잎을 가진 연꽃 무늬가 앙련의 모습으로 1개씩 돋을새김되었다.

    불을 켜 놓은 부분인 8각의 화사석()은 하나의 돌로 조성되었다. 화창()은 4면에만 뚫렸으며, 나머지 면에는 사천왕상()이 조각되었다. 지붕돌은 매우 얇은 편으로, 처마 밑은 수평이지만 추녀 위에는 경쾌한 반전이 있다. 밑면에는 여러 단의 굄을 두었으나 꼭대기에는 복련의 연꽃 무늬를 조각하지 않았다. 머리장식인 상륜부()는 대체로 없어졌는데, 그 부재로 보이는 파편은 남아 있다.

    이 석등은 가운데받침돌에 변화가 나타났고, 조각 수법에서 입체성이 줄어든 것으로 보아, 건립 시기는 대체로 9세기 경으로 추정된다.




    석조여래좌상

    불상의 손 모습 가운데 항마촉지인()이 있다. 손바닥을 위로 향하게 한 왼손을 가부좌한 발 위에 가볍게 올려놓고 오른손은 손등이 보이도록 무릎 아래로 슬쩍 늘어뜨린 모습을 말한다. 석가모니가 보리수 아래서 깨달음을 얻는 순간을 상징하고 있으며, 따라서 석가여래의 고유한 자세라는 게 기본적인 설명이다. 발생은 그렇더라도 항마촉지인이 석가를 초월하여 깨달음 그 자체를 표상하게 되어 깨달음을 얻은 부처라면 누구나 취할 수 있는 부처의 보편적 자세가 된다는 해석도 있다.

    우리나라의 불교미술에 이 항마촉지인이 등장하기 시작하는 것은 7세기 후반 무렵이다. 8세기부터는 그게 널리 유행하게 되고 드디어 석불사(석굴암) 본존상에서 절정을 이룬다. 모범은 수많은 아류를 낳게 마련이다. 8세기 후반부터 9세기에 걸쳐 만들어진 많은 통일신라 좌불상 중에는 종교예술이 도달할 수 있는 극치, 정점을 보여주는 세계적 명품인 이 석불사 본존의 형식을 따른 경우가 많다. 항마촉지인 불상이 하나의 계통을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모범의 모방이 그리 성공적이었다고 말하기는 주저스럽다. 이들 통일신라 말기의 항마촉지인 불상에서는 석불사 본존상의 균형잡힌 신체나 조형적인 단순성에서 느껴지는 충만한 정신성과 위엄감이 사라지고 적정한 신체 비례에서 오는 안정감도 줄어든다. 어깨와 무릎의 폭이 좁아져 왜소한 느낌을 주게 되며, 옷주름은 투박해지고 조밀하게 표현되어 불상의 몸매와 유기적인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예를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다.

    청량사 석조여래좌상

    청량사 석조여래좌상균형잡힌 신체와 당당한 조형감으로 9세기 석불을 대표하는 수작이다. 불상이 앉은 대좌는 연화대좌가 아닌 사각대좌이나 지금은 불단에 가려 그 모습을 볼 수 없는 것이 아쉽다.

    이와 같은 흐름을 완전히 벗어났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어지간히 석불사 본존불의 당당한 조형감을 닮고 있는 것이 청량사 석조여래좌상이다. 항마촉지인 불상도 세부를 살핀다면 다양한 변화를 보이지만, 정통 계열에 속하는 것들은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 머리카락은 민무늬의 소발보다는 대개 곱슬곱슬 말린 나발()로 표현된다는 점, 둘째 법의는 양쪽 어깨를 덮는 통견 형식이 아니라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왼쪽 어깨에 걸치는 편단우견() 형식으로 흔히 나타낸다는 점, 셋째 두 다리 위에 걸쳐진 옷자락이 가운데로 모이며 흘러내려 다리 밑 대좌 위에서 부채꼴 모습으로 마무리된다는 점 따위가 그것이다. 청량사 불상은 이런 특징들을 모두 간직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석불사 본존의 충실한 후계자인 셈이다.

    그러나 정수리의 육계가 현저하게 낮아진다든지 어깨에서 가슴으로 흘러내리는 옷자락이나 두 다리 위의 옷주름이 조금 번잡해지는 데서 벌써 석불사 본존상과는 차이를 보이기 시작한다. 그뿐 아니라 이마는 좁고 굳게 다문 입은 작아져 온 얼굴에 충만하던 종교적 이상미는 줄어들고 어떤 강한 의지가 더 크게 드러난다. 더욱 거슬리는 것은 손이다. 땅을 가리키는 오른손은 마치 고무장갑처럼 느껴지는데, 다른 부분을 다듬은 솜씨와 너무 동떨어져 한 장인의 솜씨인지 의아스러울 정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불상을 석불사 본존상과 비교할 수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모르긴 해도 그것은 두 어깨 때문일 듯하다. 부드러우면서도 위엄과 당당함을 그대로 간직한 두 어깨는 그밖의 불상에서 쉽게 찾아보기 어려울 듯싶다. 목에서 시작하여 어깨를 지나 팔과 가슴으로 이어지는 부분은 청량사 불상에서 조형적으로 가장 성공한 곳이 아닐까 한다. 요컨대 여러 가지 결함이 눈에 띄지만 청량사 불상은 석불사 본존상 계통을 잇는 많은 불상 가운데 단연 앞자리를 차지할 만한 당당한 불상이다. 높이 2.1m, 무릎 폭 1.33m이며 보물 제265호이다.

    불상의 뒤를 받치고 있는 광배는 불상의 크기를 생각한다면 작은 편이다. 두광만 보더라도 불상의 머리로 꽉차 여간 옹색한 게 아니다. 꼭대기에 앉은 화불이 또렷하고, 좌우로 둘씩 아로새겨진 비천은 천의자락이 위로 한껏 부풀어올라 하늘에서 날아내리는 모습이 완연하다.

    대좌는 많이 쓰이는 연화좌대가 아닌 사각대좌이다. 2단의 받침이 있는 상대석이나 면마다 보살상이 둘씩 새겨진 중대석, 위로부터 차례로 안상과 연잎과 팔부중상이 새겨진 하대석이 모두 네모꼴을 기본으로 하여 구성되었다. 특히 중대석의 보살상들은 찻잔을 들어 부처님께 공양하는 따위의 공양보살상들로서, 좌대에 놓이는 무늬의 소재로는 흔치 않기도 하려니와 새김이 깊어 입체감이 풍부하고 세부마다 표정이 살아 있어 작지만 완성도 높은 조각이다.

    중대석에 새겨진 보살상

    중대석에 새겨진 보살상중대석의 보살상들은 찻잔을 들어 부처님께 공양하는 모습을 하고 있는데, 새김이 깊어 입체감이 풍부하고 표정 또한 살아 있다.

    알찬 답사, 즐거운 여행을 도와주는 유익한 정보

    청량사를 품고 있는 매화산은 기암괴석과 청아한 소나무숲이 어우러져 있는 매우 아름다운 산이다. 청량사를 찾는다면 반드시 월류봉 너머 매화산 정상(남산 제일봉)까지 오를 일이다. 정상에 서면 해인사 일원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무릉동 입구→매표소→청량사→정상(남산 제일봉)→해인사 관광단지로 내려오는 코스가 가장 대표적인데 7.5㎞로 3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청량사 석조여래 좌상

    보물 제265호.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청량사 대웅전에 모셔져 있는 불상이다. 불상은 광배[ : 붓다의 몸에서 나온 빛의 표현]와 대좌를 모두 갖추고 있다. 전체 높이 2.85m이며, 이 중 불상은 2.1m, 대좌는 70㎝이다. 청량사 석조여래좌상에 관한 어떠한 기록도 남아 있지 않아 구체적인 조성 배경을 알 수 없다.

    내용

    편단우견[ :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옷을 입는 것] 형식으로 법의[ : 불상의 옷]를 착용하고 항마촉지인[ : 마귀를 항복시키고 이를 지신()에게 증명하게 하는 손 자세로, 오른손은 땅을 가리키며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한 채 배 앞에 둠]을 결하고 있는 불좌상이다. 불상은 입체감 있는 조형과 당당한 자세를 갖추고 있다. 불상은 넓고 편평한 육계[ : 정수리 위에 솟아나온 부분]와 큼직큼직한 나발[ : 소라 형태의 머리카락]의 머리카락, 반원을 그리는 눈썹, 살짝 뜬 눈, 그다지 길지 않는 코, 짧은 인중, 다문 입, 큰 귀를 가지고 있다. 양 볼은 팽창되어 있으며, 이중 턱이 생길 정도로 살 찐 상태이다. 불상은 얼굴 측면이 상당히 넓어진 모습을 하고 있다. 목에는 삼도[ : 세 개의 선]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불상은 넓고 당당한 어깨에 약간 살이 찐 모습이다. 즉 어깨와 가슴, 팔, 양손, 오른쪽 발목 등에서는 살이 쪄서 근육이라곤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양쪽 가슴 위에 젖꼭지를 새기는 등 사실적으로 표현하려한 흔적이 역력하다. 법의의 주름은 평행 계단식으로서 간결하면서도 형식화되었고, 양 손 손가락도 형태만 보일 뿐 사실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불상의 크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아 보이는 광배는 연잎 형태로서, 그 속에 두광[ : 머리 주위의 빛의 표현]과 신광[ : 몸 주위의 빛의 표현]을 따로 구획하였다. 두광의 중심에는 연화문에 새겨져 있다. 2개의 돌기로 구획된 두광과 신광 밖에는 역동적이며 사실적으로 표현된 불꽃 문양이 새겨져 있다. 광배의 윗부분에는 지권인[ : 비로자나불의 손 자세로, 보통 가슴 앞에서 왼손 검지를 세우고 오른손으로 감싸 쥔 모습]을 결한 화불[ : 작은 불상]이 새겨져 있으며, 두광의 양옆에는 천의()를 휘날리면서 내려오고 있는 비천상()이 각각 새겨져 있다.

    대좌는 상대()와 중대, 하대를 갖춘 방형() 대좌이다. 상대는 이단()으로 되어 있으며, 문양이 새겨져 있지 않다. 중대는 그다지 높지 않으나, 각 면 모서리에는 기둥 돌이 조각되어 있고, 각 면마다 연화대좌에 앉아 있는 다양한 모습의 보살상이 새겨져 있다. 하대는 윗부분에 각각 안상()이 새겨져 있으며, 그 아래에 복판연화문[ : 두 개의 연꽃잎으로 문양을 만든 것]으로 표현된 복련[ : 연꽃을 엎어 놓은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다시 그 밑에 각 면마다 2구씩 갑옷을 입고 무기를 들고서 천의()를 휘날리며 앉아 있는 팔부신중상()이 새겨져 있다.

    불상은 편단우견 형식으로 법의를 입고 항마촉지인을 결하였다는 점에서 통일신라시대 8세기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지만, 상호의 특징과 간략화된 법의 주름, 광배의 문양, 새로운 형식의 대좌 등을 통하여 통일신라시대 9세기 중엽에 조성되었다고 생각된다.

    특징

    청량사 석조여래좌상의 대좌는 중대에 보살상이, 하대에 팔부중상이 새겨져 있는 유일한 예이다. 이들 도상들은 탑의 기단부에서는 일부 확인되지만, 불상의 대좌를 장엄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의의와 평가

    통일신라시대 8세기에 유행하던 편단우견 형식으로 법의를 입고 항마촉지인을 결한 불좌상의 영향을 받아 9세기 중엽에 조성된 것이다. 석조여래좌상에는 새로운 형식의 대좌가 확인되어 통일신라시대 9세기 불상 대좌 연구에 중요한 기준이 된다고 하겠다.    

    합천 청량사 석조석가여래좌상

    합천 청량사 석조석가여래좌상〈합천 청량사 석조여래좌상〉, 불상 높이 210㎝, 대좌 높이 75㎝, 보물 제265호. 청량사. 상대, 중대, 하대를 갖춘 방형 대좌이다. 2단의 상대는 문양이 새겨져 있지 않지만 중대는 각 면마다 보살상이 조각되었다. 연화좌에 앉아있는 보살상은 풍만하고 아름다운 모습이다. 하대에는 연꽃무늬를 조각하였으며 그 아래 1면에 2구의 팔부신상(八部神像)을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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