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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도사의 가을 풍경
    여행스케치 2015. 10. 31. 23:16

    2015년10월31일에 찾은 불보사찰 통도사의 가을 풍경입니다.

    화사한 단풍이 아름답게 물든 통도사의 가을 풍경이

    그림처럼 아름답습니다.

     

    창고 안에 갑옷과 무기를 닦아두지 않으면

    적군과 싸울 때 무기가 낡아 부서지는 것처럼

    마음을 닦아두지 않으면

    목숨이 끝날 때에도 또한 그러하다.

    (대장엄론경)

     

    추위와 더위 가리지 않고

    아침 저녁으로 힘써 일하면

    어느 사업이고 안 될 것 없어

    마침내 근심 걱정 없게 되리라.

    (선생자경)

     

     

    세 번째 스승: 웃다까 라마뿟따

     

    |붓다짜리따 12장 84-89|
    고따마 싯닫타는 좀더 높은 가르침을 찾아서 웃다까 라마뿟따 선인을 찾아갔다.

    이 스승도 또한 아뜨만은 영원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교리를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선인은 이런 가르침을 주었다.

    "의식이 있다든지 없다든지 하는 것은 완전치 못한 상태이며 아무것도 없는 것도 초월해야 한다. 의식이 있음도 의식이 없음도 아니고, 모두 아는 것도 아니고 알지 못하는 것도 아닌, 이 둘을 초월한 매우 미묘한 상태이다."

    얼마 동안 웃다까 라마뿟따 선인의 가르침을 수행한 후 고따마 싯닫타는 생각하였다.

    '웃다까 라마뿟따 스승도 역시 아뜨만에 집착돼 있구나. 의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라면 설령 이런 경지에 도달했다 해도 윤회에서 벗어나 해탈을 얻을 수 없다.'

    이렇게 생각이 되어 더 훌륭한 경지를 얻어야겠다는 열망에서 웃다까 라마뿟따 스승을 떠나기로 하였다.
    일아 스님의 <한 권으로 읽는 빠알리 경전> 중에서

     

     

     

    남으로부터 과분한 이익을 받게 되면

    본래 깨끗했던 마음을 허물게 되나니

    스스로 자기 마음을 다스려서

    이익되는 일에 빠지지 마라.

    (증일아함경)

     

     

    탐욕 성냄 어리석음 두려움 있으면 바른법을 이어받지 못하며

    명예가 떨어지는 것이 보름 지난 저 달이 이지러짐 같네.

    (선생자경)

     

     

    완벽함의 진정한 의미!
     "당신이 건전한 자긍심을 가지고 있다면 '내가 너보단 잘났지' 게임을 할 필요가 없다.
    당신을 과시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건전한 자긍심은 완벽함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을 때 생겨난다.

    한 여인이 완벽한 나무를 찾아서 숲 속을 걸었다. 그런데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 구부러진 나무들, 가지가 잘려나간 나무들, 껍질이 벗겨진 나무들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정부에서 관리하는 조림지역으로 향했다. 거기에는 모든 나무들이 줄과 열을 맞춰 완벽하게 정렬돼 있으면서 가지들도 완벽하게 제자리에 다 붙어 있고 곧게 뻗어 있었다.

    그런데 조림지역에 들어서자 마음이 불편했다. 그녀는 곧 자연림의 손상된 나무들이 인공 조림지에 있는 그 '완벽한' 나무들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마음을 고요하게 만들어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런 이유로 그녀는 소위 '온전치 못한' 사람들이 인공적인 사람들보다 훨씬 더 아름답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녀는 옹이투성이의 구부러진 나무들만 있는 자연림에서 느꼈던 편안함만큼 자신에 대해서 편안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녀는 완벽함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았다.

    그녀는 오래도록 '그만하면 됐어'라는 의지로 살았다. 그녀는 숲 속의 나무를 보고 그걸 깨우칠 수 있었다.”
    아잔 브라흐마 스님의 신간 <시끄러운 원숭이 잠재우기> 중에서


     

     

    삼보에 항상 신심을 일으켜서 대승의 오묘한 경전의 모든 선한 공덕을 닦아

    물러서는 마음을 품지 않는다면

    이런 사람은 아주 빨리 깨달음을 성취하게 될 것이다.

    (소실지갈라경)

     

     

    사리불아 마땅히 알라

    내가 이 오탁악세에서 이같이 어려운 고행을 행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고 모든 세간을 위하여

    믿기 어려운 법을 설하였으니

    이는 매우 어려운 일이니라.

    (불설아미타경)

     

     

    착하게 말하는 것이 제일이니

    이는 곧 성인의 말이로다.

    험담하지 않고 사랑으로 말하는 것이 다음이고

    거짓 없이 진실한 말이 세 번째이다.

    (별역잡아함경)

     

     

    부처님의 5계를 받은 이는 곧 복덕이 있는 사람이다.

    도를 닦으면 막강한 호법신이 보호하여

    설사 모든 하늘이나 천룡과 귀신이라하더라도

    다 굴복하여 공경하지 않는 이가 없다.

    (아난분별경)

     

     

    두 번째 스승: 알라라 깔라마

    |붓다짜리따 12장 1-83|
    태양족의 달과 같은 고따마 싯닫타 수행자는 평온함을 즐기고 있는 알라라 깔라마 선인을 찾아갔다. 선인은 말하였다.

    "오! 훌륭하십니다. 그대여. 위풍당당한 코끼리가 묶인 밧줄을 끊듯이, 애정의 얽매임을 끊고 왕위도 버리고 출가하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왕이 늙어서 왕위를 자식에게 물려주고 숲으로 간 것은 놀랄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감각적 쾌락에 빠져들 젊은 나이에 왕궁의 호화로운 삶을 즐기지 않고 떠나온 그대는 참으로 놀랍습니다.

    그대는 이 높은 가르침을 이해하기에 적합한 그릇입니다. 지혜의 배를 타고 고해를 건너십시오. 그대의 깊고 확고한 불굴의 의지 때문에 그대를 시험하지 않겠소."

    그리고는 제자로 받아주었다. 고따마 싯닫타는 알라라 깔라마 선인에게 생로병사의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길을 가르쳐 줄 것을 당부하였다. 선인은 말하였다.

    "윤회의 원인과 그것의 소멸은 이와 같습니다. 무지와 업과 욕망은 윤회의 원인입니다.

    이 원인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한 윤회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착각과 혼동으로 잘못된 분별과 집착 때문에 윤회에 헤맵니다. 생사의 흐름은 원인에 의해 되풀이 되니 원인이 없으면 깨닫는 것과 깨닫지 못하는 것, 드러난 것과 드러나지 않는 것, 이 네 가지를 바르게 구별한다면 윤회에서 벗어나 궁극의 경지를 얻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선인의 가르침을 듣고 고따마 싯닫타는 계속 깨달음을 향한 질문을 하였다.

    "선인이여, 깨달음의 궁극에 이르는 길을 말씀해 주십시오."

    알라라 깔라마 선인은 좀더 확실히 하기 위하여 신성한 경전[베다]에 따라서 간단하게 설명하였다.

    "가족을 떠나 수행자가 되어 모든 행동을 바르게 하며, 어디에서나 어떤 것이나 최상으로 만족하고, 좋고 나쁘고를 분별하지 말고, 신성한 경전에 통달하고, 한적한 곳에서 수행하십시오.

    욕망에서 오는 해악을 깊이 깨닫고 욕망을 떠나면 행복이 옵니다. 감각기관을 절제함에 따라 마음은 고요해집니다.

    그러면 분별력을 일으키는 근본인 나쁜 성향과 욕망에서 벗어나 첫번째 선정에 들어갑니다. 그러나 아직 사유의 작용은 남아있습니다.

    이런 행복을 얻고 그것을 돌아본 후 어리석은 사람은 자신이 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행복감에 도취되어 버립니다. 이러한 만족감에 빠져서 브라흐마 세계에 도달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더욱 열심히 정진하여 사유라는 것도 마음을 들뜨게 하는 원인임을 알아 사유를 끊고, 기쁨과 행복의 성향이 아직 남아 있는 두 번째 선정에 들어갑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더 높은 것을 추구하지 않는 사람은 기쁨에 빠져서 아바스와라 신들 가운데 찬란한 곳에 도달합니다.

    그러나 기쁨과 행복을 초월한 사람은 세 번째 선정에 도달합니다. 기쁨으로 들뜨지는 않으나 행복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여기에서 더 높은 것을 추구하지 않고 행복감에 도취되어 있는 사람은 슈바크리트스나 신과 같은 행복을 얻습니다.

    그러나 이런 행복을 발견하더라도 그 행복에 집착하지 않고 치우치는 마음이 없을 때 행복도 고통도 초월한 네 번째 선정에 들어갑니다.

    어떤 사람은 이 단계에서 행복도 고통도 초월하고 그리고 마음의 작용도 없기 때문에 해탈을 얻었다고 행각합니다. 그러나 최상의 경지를 아는 사람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서 말하기를 이 단계의 결실은 브리하팔라 신과 같은 단계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이는 여기에 머물지 않고 몸으로 인하여 일어나는 허물을 보고, 이것을 소멸하기 위한 더 높은 지혜의 단게에 오릅니다.

    이렇게 4선정을 넘어서서 더 높은 것을 추구하는 지혜로운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겉모양의 집착에서 벗어납니다. 그리고 아뜨만[자아]은 영원함을 발견합니다. 새가 새장에서 벗어나듯이 그의 몸으로부터 벗어 나는 것을 해탈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지혜로운 이가 말하는 궁극적인 해탈입니다. 이것은 바로 불생불멸하는 으뜸가는 완전함입니다."

    한동안 알라라 깔라마 선인의 가르침을 수행한 후 고따마 싯닫타는 이 가르침에서 만족할 수 없었고 의심이 일었다. 알라라 깔라마 선인은 아뜨만은 영원하다고 말했다.

    무지와 업과 욕망을 버리면 윤회에서 벗어나는 길이라 하였는데 아뜨만도 버려야 할 것이 아닌가. 왜냐하면 영원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따마 싯닫타는 알라라 깔라마 선인의 가르침도 한계가 있음을 깨닫고 스승을 하직하고 좀더 훌륭한 가르침을 배우기 위하여 다른 스승을 찾아 길을 떠났다.
    일아 스님의 <한 권으로 읽는 빠알리 경전> 중에서

     

    자기를 내세우고 남을 무시하며

    스스로의 교만 때문에 비굴해진 사람

    그를 천한 사람으로 아시오

    (숫타니파다)

     

     

    살생과 도둑질과 사음과 거짓말을 일삼으며

    도를 믿지 않는 사람은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중본기경)

     

    공감 연습! 

    "가만히 자리에 앉습니다.

    숨을 쉬면서 빙그레 웃음 짓습니다.

    당신을 가장 힘들게 한 사람의 모습을 떠올립니다.

    그 사람의 밉거나 싫은 모습을 생각하고 정말 싫었던 장면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해봅니다.

    이제 그의 일상이 어떨지 상상해봅니다.

    그의 일상생활 속에서 무엇이 그를 행복하게 하고 무엇이 그를 고통스럽게 하는지 자세히 살펴봅니다.

    그가 어떤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지, 어떻게 행동하는지 찬찬히 떠올려봅니다.

    그 사람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그런 행동을 했는가 생각합니다.

    그가 어떤 편견을 가지고 있는지, 증오나 분노에 사로잡혀 있지 않은지 생각해봅니다.

    그렇다고 마음속으로 다시 그를 비난해서는 안 됩니다.

    그저 풍경을 보듯 자신과는 다르다는 사실만 인식하면 됩니다.

    반복해서 그를 생각하고 그의 마음이 어떠한가 이해하려고 노력하다 보면 미움이 엷어지고 마음을 사로잡던 분노도 점차 사라질 것입니다."

    마가 스님의 <알고 보면 괜찮은> 중에서

     

     

    몸을 절제하고 말을 삼가하고 그 마음을 거두고 성냄을 버려라.

    도의 길을 가는데에는 인욕이 가장 으뜸이니라.

    (법구경)

     

     

    일체의 흙과 물은 다 나의 먼저 몸이요.

    일체의 바람과 불은 다 나의 본체이거니

    산 것을 풀어서 살려주라.

    (법망경)

     

     

    마음에는 네 가지 병이 있다.

    첫째는 탐내는 마음과 음욕이고.

    둘째는 성내고 미워하는 것이며

    셋째는 아만심이다.

    그러므로 지헤로써 이 네가지 병을 모두 없애야 한다.

    (현겁경)

     

     

    모든 악행을 짓지 말고 선을 행하라.

    스스로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

    곧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증일아함경)

     

     

    빔비사라왕과의 만남

    |숫따니빠따 3장 1: 405-424 출가 경, 붓따짜리따 10-11장|


    [아난다 존자가 비구들에게 설법하다.]

    통찰력을 갖추신 분 [부처님]이 어떻게 출가를 하셨는지, 왜 출가를 선택하셨는지, 그 분의 출가에 대하여 이야기 하겠습니다.

    '재가의 삶은 답답하고 번잡스럽다. 부정한 것들이 먼지처럼 어디에고 쌓여 있다. 그러나 출가는 드넓은 공간에 사는 것이다.' 라고 생각하고 부처님은 출가하셨습니다.

    출가 후 바람직하지 않은 생각과 말과 행동을 모두 버리고 청정한 삶을 살았습니다.

    훌륭한 분의 특징을 가진 깨달으신 분은 마가다국의 라자가하로 탁발하러 가셨습니다. 빔비사라왕은 궁전에 서서 훌륭한 특징을 갖춘 비구가 걸어가는 것을 보고 신하에게 말하였습니다.

    "저 사람을 보아라, 미남에 체격도 좋고 안색도 아름답다. 품위 있는 걸음걸이로 앞만 보고 걷는다. 눈을 아래로 뜨고 마음을 집중하고 걷는다. 그는 천한 출신이 아닌 것 같다. 여봐라, 저 사람이 어디로 가는지 쫓아가 보아라."

    그래서 왕의 신하들은 그 비구가 어디로 가는지 알기 위해 뒤따랐습니다. 그는 감관을 절제하고 깨어있는 마음으로 마음을 집중하고 탁발을 하여 잠깐 동안에 발우를 채웠습니다. 탁발을 끝낸 후 그는 빤다와 산으로 향하였습니다.

    그가 빤다와 산에 머무는 것을 알고는 한 사람은 왕에게로 보고하러 돌아가서 말하였습니다.

    "대왕님, 그 수행자는 빤다와 산 동편에 있는 동굴에 마치 사자처럼, 호랑이처럼, 황소처럼 앉아 있습니다."

    신하의 이 말을 듣고 빔비사라왕은 장엄한 수레를 타고 서둘러 빤다와 산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수레가 갈 수 있는 곳까지 가서 내려서 그 수행자가 있는 곳까지 걸어갔습니다. 왕은 정중하게 인사를 한 후 자리에 앉아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그대는 젊고 인생의 한창때입니다. 미남이고 체격도 좋습니다. 그대의 훌륭한 태도로 보아 그대는 훌륭한 가문의 왕자인 것 같습니다. 코끼리를 앞세운 군대와 쓰실 재물을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그대의 가문을 말해주겠습니까?"

    "대왕님, 히말라야에서 멀지 않은 곳에 한 나라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부유하고 용감합니다. 그들은 태양족의 후예로서 사꺄라는 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가문에서 나는 쾌락에 대한 욕망을 뒤로하고 출가를 하였습니다.

    나는 비참함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출가에서 평화로움을 보았습니다. 나는 정진하려고 합니다. 내 마음은 기쁩니다.
    일아 스님의 <한 권으로 읽는 빠알리 경전> 중에서

     

    나라를 위해 벼슬에 있더라도 탐욕을 부리지 말아야 하고

    잔인하지 않아야 하며 승진에 매달려서도 안될 것이며

    오욕락에 빠지거나 청탁에 개입해서는 안 되느니라.

    (불반니항경)

     

     

    일체의 모든 중생들에게는

    부처가 될 성품이 본래 갖추어져 있다.

    (열반경)

     

     

    오늘이 마지막은 아닐 거야!
    "2011년 11월. 아내와 나는 운명처럼 만났다. 그것도 ‘책’을 매개로.

    나는 5년간 서울에 있는 서점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일을 하면서 보람된 것들이 여럿 있는데, 그중 하나는 손님에게 절판된 책을 찾아드리는 일이었다.

    시중에 있는 책들이야 언제든 손쉽게 찾아드릴 수 있지만, 절판된 책은 서점원의 노력 없이는 절대 구할 수 없다. 어렵게 책을 찾아드렸을 때 기뻐하는 손님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묘한 쾌감이 일어난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던 11월 어느 날, 한 손님께서 절판된 책을 찾으셨다. 손님께서 부탁하신 일은 아니고, SNS를 하다 우연히 알게 된 것이었다.

    나는 뜻밖의 선물에 감동할 그분을 떠올리며, 몰래 책을 구하고 있었다. 한데 쉽게 찾아지지가 않았다. 몇 주간 출판사를 비롯한 도매상, 전국의 헌책방을 모두 수소문했지만 헛수고였다. 오기가 생겼다. 책을 받고 환하게 웃음 지을 손님의 얼굴이 계속 떠올랐다.

    강한 집념으로 SNS에 사연을 소개하고 책을 찾는다는 글을 올렸다. 몇 시간 후 “멋있어요”, “꼭 찾길 바라요”라는 댓글들이 올라왔다. 그러던 중 마침내 원하는 댓글 하나가 달렸다. “저에게 그 책이 있어요.” 이 댓글을 남긴 것이 바로 지금의 아내다.

    그 댓글을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환호를 질렀다. <중략>

    바로 다음 날, 우리는 책을 주고받을 겸 함께 저녁식사를 했다. 그리고 이야기를 나누는데 아뿔싸, 이 사람 나와 너무나 닮았다. 세상을 보는 시선과 꿈꾸는 미래, 과거의 아픔과 현재의 절망까지도. 심지어 좋아하는 책과 음악, 여행지, 그 외에 사사로운 취미까지도 비슷했다.

    자라온 환경은 전혀 달랐지만 우린 놀랍게 닮은 구석이 많았다. 조금씩 서로의 이야기에 취해갔다. 앉은 자리 앞 수족관에 그 어느 때보다 행복에 겨운 내 얼굴이 비친다. 그 순간 알아버렸다. 내가 평생 기다리던 사람이 이 사람이라는 걸! 그리고 주저 없이 그녀를 안아버렸다."
    살기 위해 '치료'가 아닌 '세계여행'을 떠난 부부!
    아파서 더 소중한 사랑 이야기
    - 정도선.박진희 님의 <오늘이 마지막은 아닐 거야> 중에서

     

    스스로 모른다고 생각하면 이미 지혜를 얻은 것이나

    스스로 안다고 생각하면 어리석음 중의 어리석음이다.

    (법구경)

     

     

    가난한 사람에게 보시 할 때에는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일으키며

    복전에 보시할 때에는 기뻐하고 공경하는 마음을 일으켜야 한다.

    (우바새계경)

     

     

    배는 강물을 건네 주고

    지혜는 생사를 건네 준다.

    그러므로 가르침을 늘 들어서

    마땅히 부처님께서 말씀으로 나타내신

     가르침을 따르도록 해야 한다.

    (불본행경)

     

     

    중생이 온갖 고뇌에 처 할 때

    관세음 보살의 이름을 듣고 이름을 일심으로 부르면

    즉시 소리를 듣고 모두 해탈을 얻게 한다.

    (법화경)

     

    왕자의 출가결심

    |붓다짜리따 5장 - 9장|
    "호화로운 잔치가 끝난 후 밤에 왕자는 여기저기 쓰러져 자는 궁녀들의 추한 모습을 보았다.

    어떤 궁녀는 입을 벌리고 침을 흘리며 어떤 궁녀는 옷을 풀어헤치고 추한 모습으로 자고 있었다. 그렇게 아름답게 보이던 모습은 간 곳이 없고 마치 다른 여인들 같았다.

    여인이 참 모습이 이와 같이 추하고 불완전한데 다만 그들의 옷치장과 장식한 모습에 속아서 남자들은 여인과 즐기기 위하여 욕망에 떨어진다.

    왕자는 그날 밤에 떠나기로 작정하였다. 그래서 마부 찬다까에게 가서 서둘러 말하였다.

    “깐타까를 끌고 오너라. 오늘 밤 나는 출가하리라.”

    왕자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비할 데 없는 왕자의 부귀영화를 뒤로하고 깐타까를 타고 궁성을 빠져 나왔다. 그리고 이렇게 다짐하였다.

    ‘생사를 벗어난 진리의 저 언덕에 다다름이 없이는 이 까삘라성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왕자는 밤새도록 말을 달려 태양이 떠오를 때에 드디어 한 수행처를 보았는데 그것은 박가와 선인의 고행처였다. 왕자는 말에서 내려 마부 찬다까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며 몸에 걸친 모든 보석을 그에게 주면서 왕궁으로 돌아가라고 말하였다. 그리고는 사냥꾼의 옷과 왕자의 옷을 바꿔 입었다. 지금부터 왕자의 신분에서 수행자 고따마 싯닫타가 되었다.

    박가와 선인의 수행의 목표는 고행으로 안락을 얻는 것이며 고행의 결과는 천상에 태어나는 것이라고 하였다. 숲은 고행자들로 분주하고 생동적이었다. 예배소는 중얼거리며 기도하는 소리로 가득하고, 고행자들은 목욕예식을 행하고 희생제를 위하여 불을 붙이고 있었다.

    수행자 고따마 싯닫타는 여러 가지 종류의 고행을 보면서 며칠 밤을 그곳에 머문 후 그곳을 떠났다. 그러나 왕궁에서 바로 나온 왕자로서의 품의와 미모에 이끌려 싯닫타에게 떠나지 말라고 간곡히 부탁하였다. 그러나 고따마 싯닫타는 말하였다.

    “그대들의 친절에 감사합니다. 그대들의 가르침은 하늘에 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나의 열망은 다시 태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를 떠나려합니다.”

    이렇게 말하자 그들은 윈디야 수행처의 알라라 깔라마 선인을 찾아 가라고 말하였다.

    한편 왕궁에서는 왕자가 출가한 것을 알고 모든 사람들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특히 양모인 고따미 왕비는 넋을 잃고 눈물을 흘리면서 더욱 슬퍼하였다.

    “왕궁에서 고귀하게 자란 왕자가 어찌 숲의 추위와 더위와 비바람을 견디겠는가? 부드러운 발로 어찌 숲의 거친 땅을 맨발로 걸을 수 있겠는가? 덕성과 지혜가 넘치는 왕자는 남에게 주는 데는 익숙해 있으나 남에게 달라고 해본 적이 없는데 그런 그가 어찌 탁발을 하겠는가?”

    부왕은 곧 궁중 제관과 대신을 숲으로 보내어 왕자를 설득해 데려오도록 명하였다. 그들은 왕자에게 부왕의 눈물어린 간청과 소원을 전하고 부디 왕궁으로 돌아갈 것을 간청하였다. 그러나 왕자는 단호하게 말하였다.

    “이미 번뇌로 가득한 집에서 나왔는데 어찌 다시 그 번뇌의 집으로 돌아가리오. 태양이 비록 땅에 떨어지고 히말라야 산이 무너진다 해도 진리의 깨달음이 없이는 왕궁으로 돌아가지 않겠소."
    일아 스님의 <한 권으로 읽는 빠알리 경전> 중에서

     

    백천만겁 쌓은 죄업 한 생각에 없어져서

     마른 풀을 태우듯이 남김 없이 사라지네.

    본래 없는 죄업은 마음 따라 일어나니

    이 마음을 비울 때에 죄업 또한 사라지네.

    (천수경)

     

    남을 죽이면 자기를 죽이는 자를 만나고

    남을 이기면 자기를 이기는 자를 만난다.

    (잡아함경)

     

     

    덕행이 근본이다!

     
    "일반적으로 말하기를, "착한 사람이 한 무리라면, 악한 사람도 한 무리. 사람은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찾는다."라고 하는데, 세상은 확실히 그러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각기 비슷한 이들과 무리를 이룹니다. 독서를 즐기는 사람은 독서를 즐기는 사람과 친구를 맺고, 농부는 농부와 친구가 됩니다. 장사하는 사람, 관리, 육체노동자들은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과 친구가 되어 서로 왕래하고 함께 모여 사이좋게 지내며 서로 돕습니다.

    축생도 이와 같아서, 말은 말끼리 같이 있고, 소는 소와 함께 지내고, 양은 양과 함께, 돼지는 돼지와 함께 화목하게 지냅니다.

    우리 인간은 만물의 영장으로서 지혜가 비교적 높고, 축생은 그 지혜가 비교적 낮습니다. 왜 이러한 현상이 있겠습니까? 왜냐하면 축생은 염라왕의 화학공장(윤회)의 도태를 거치면서 그 영성이 나누어져서 작은 부분의, 완정(完整)하지 못한 영성으로 존재하게 되었기 때문에 축생의 지혜는 비교적 낮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묻기를 "어떻게 영성이 나누어집니까?"라고 합니다. 비유해서 설명하자면, 어떤 사람은 업장이 깊고 무거워 축생이 되었다고 합시다. 비록 축생이 되었지만 반드시 축생 중 한 마리가 되는 것이 아니고, 심지어 열 마리, 스무 마리의 축생으로 변하기도 합니다(고등한 축생은 한 마리로 바뀌지만, 저등한 축생은 여러 마리가 됩니다).

    이렇게 여러 마리로 나뉘면서 지혜도 그 수만큼 여러 부분으로 쪼개지는데, 나뉘는 몸이 많을수록 지혜는 더욱 낮아집니다.

    축생은 모두 탐심이 강하고 무명이 매우 무거워 성질이 거칠며 다투기를 좋아합니다. 마치 개나 닭처럼, 같은 무리끼리 모일지라도, 서로 투쟁하는 마음이 강합니다.

    닭 두 마리가 만나면 반드시 서로 싸우고, 개 두 마리가 모이면 반드시 서로 다툽니다.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먹이를 보면 욕심을 내는데, 그 탐심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전생에 사람이었을 때 사리사욕에 가득 찬 이기심의 습기를 제거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축생이 되어서도 이러한 사리사욕의 마음이 여전히 존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불법을 배우는 것은 바로 사리사욕의 생각을 제거하기 위함이며, 그리하여 하는 일마다 자신의 이익을 생각하지 않고, 대중의 이익을 위해서 행해야 합니다. 또한 구하는 바가 없어야 하는데, 이른바 "사람이 구하는 바가 없으면 인품이 저절로 높아진다"라고 하는 것이며, 일을 함에 있어 아무것도 구하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순리를 따라 일 없음(無爲)을 행하게 되며, 다투지 않고, 탐하지 않고, 구하지 않고, 사사롭지 않고 이기적이지 않으며, 거짓말을 하지 않는(만불성성의 6대 종지) 경지에 도달하게 됩니다.

    세계의 인류가 모두 이러한 사상을 가지고 있으면 반드시 평화롭게 지내면서 절대로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때에 이르면 모든 사람들은 도덕을 중시하여 덕을 해치는 일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도덕을 중시하지 않는 사람도 덕행이 있는 일을 행하게 될 것입니다.

    옛말에 이르기를, "덕이 근본이며, 재물은 지엽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마다 반드시 자신의 본분을 지키고 공공의 이익을 위하고 법을 지키며, 열심히 수행하여 자신의 사명을 완성해야 합니다."

    선화 상인이 들려주는 수행이야기 <부처님 말씀 그대로 행하니> 중에서

     

    선지식을 구하면 사견에 떨어지지 않으려니와

    만일 구하는 바에 따로 미움과 사랑을 일으키면

    곧 능히 청정한 깨달음에 들지 못하리라.

    (원각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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