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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 자장암 가는 길에 본 연꽃 밭 풍경입니다.
싱그러운 연잎과 연꽃 입니다.
따뜻한 눈으로 중생을 보면
모여드는 복이 바다처럼 헤아릴 길이 없다.
(법화경)
/행복/
즐거움을 추구할 것인가
괴로움을 제거할 것인가
"행복하게 살고자 하는 것은 누구나 바라는 마음이다.
...<중략>...
대부분의 사람들은 괴로움을 만나면 그것을 해소하기 위하여 즐거움을 추구한다. 부처님께서는 즐거움을 통해서 행복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괴로움을 제거해 행복으로 가는 길이 올바른 길이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흔히 즐거움이 부족하여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불만족스럽거나 괴로움이 있을 때, 즐거움을 추구해 괴로움을 잊거나 벗어나려고 한다.
그러나 부처님의 생각은 달랐다. 우리가 괴롭다고 느끼는 것은 즐거움의 부족이 아니라 괴로움 때문이라는 것이다.
...<중략>...
부처님께서는 금생에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기술을 익혀야 하고, 다음 생의 행복을 위해서는 보시와 지계를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자기에게 맞는 기술을 익히고, 도덕적으로 건전하고, 봉사하는 삶을 살아야 금생과 내생에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궁극적인 행복은 열반의 성취이다. 스님들은 이러한 궁극적인 행복을 위해서 출가하여 수행을 하며, 재가신자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자신의 가치와 신념 체계로 받아들여 행복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궁극적인 행복을 성취하기 위해, 우리의 일상을 부처님의 가르침인 '법'을 통해 분석하고 자기화하는 실천이 필요하다. 부처님의 가르침인 법을 만나는 순간, 행복한 존재인 내가 보인다. 내가 행복한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고 확인해 가는 것이 수행의 시작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행복한 존재, 불자다."
가섭 스님의 <두 글자로 깨치는 불교> 중에서
-밥 한 그릇-
헛된 집착에서 슬픔이 생기고 두려움이 생긴다
헛된 집착에서 해탈한 사람은 슬픔이 없는데
어찌 두려움이 있겠는가.
전쟁이 일어나 피난을 가는데
가난한 농부는 보리쌀 한 가마니를 지고,
부자는 금화 한 자루를 들고 길을 나섰다.
부자는 농부를 보고
"이 급한 피난길에 왜 몇 푼어치 되지도 않는
그 무거운 보리쌀 가마니를 지고 가느냐" 고 비웃었다.
피난길 동안 농부는 가지고 간 보리쌀로 조금씩 밥을 지어 먹었다.
하지만 부자는 금화 외에는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았으므로 먹을 것이 없었다.
피난길이니 음식을 사먹을 만한 곳도 없었다.
하루를 굶주린 부자는 농부에게 말했다.
"금화 한 닢 줄 테니 보리쌀 가마니를 내게 파시오."
보리쌀 다섯 가마니 값은 되는 금화였다.
부자는 선심이라도 쓰듯 제안했지만 농부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자 부자는 벌컥 화를 냈다.
"아무리 전쟁 중이라지만 다섯 배나 되는 값을 치르겠다는데 싫단 말이오?"
이틀이 지나자 부자는 배가 고파 참을 수가 없었다.
"금화 두 닢을 줄 테니 보리쌀 반 가마니만이라도 파시오."
이번에도 농부는 들은 척도 안 했다.
"아니, 아무리 전쟁 중이라지만 욕심이 너무 과하지 않소.
도대체 얼마나 더 받겠다는 거요?"
또 하루가 지났다.
부자는 도저히 배가 고파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내가 가진 금화 절반을 줄 테니 보리쌀 한 말만 파시오."
하지만 농부는 역시 말이 없었고 부자는 불같이 화를 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부자는 더 이상 걸을 수가 없을 만큼 쇠약해졌다.
굶주림으로 곧 죽을 것 같았다.
그 지경이 되니 신주 모시듯 했던 금화들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거추장스러운 물건일 뿐이었다. 결
국 부자는 길에서 쓰러지며 농부에게 간절히 하소연했다.
"여보시오, 내가 배가 고파 죽을 것 같소.
죽기 전에 물이라도 배불리 먹고 죽게 저기 물 한 사발 떠다줄 수 있겠소?"
그제야 농부는 밥을 지어 굶주린 부자에게 먹였다.
-깨달음 내 눈 뜨기 법륜스님-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받드는 이기 있으면
설사 커다란 불 속에 떨어졌다 할지라도
불이 그 사람을 태우지 못한다.
(법화경)
만약 근기가 총명하고 지혜가 밝으며 많이 듣고
널리 알아서 불도를 구하는 이 있거든
이 같은 사람에게는
경을 설 할지니라.
(법화경)
금세 짜낸 우유가 상하지 않고
재에 덮인 불씨가 그대로 있듯
지은 업은 당장에는 안보이나
그늘에 숨어 있어 그를 따른다.
(법화경)
지금 이 삼계에 있는 것은 모두 나의 것이요,
그 속에 살고 있는 중생들은 모두 나의 자식들이다.
미래세가 다하도록 삼계는 괴로움뿐이니
내가 아니면 누가 그들을 구제하리.
(법화경)
다른 사람의 잘못은 겨를 까부르듯이 흩어버리고
자신의 잘못은 능란한 들새 사냥꾼이 변장하여
자신을 숨기듯 그렇게 숨긴다.
(법구경)
그는 나를 욕하고 때렸다.
그는 나를 이기고 내 것을 빼앗았다.
이런 생각을 품지 않을 때
마침 내 원한은 사라진다.
(법구경)
자기의 얻음을 불평하고
남의 얻음을 부러워하면
마음의 안정을 얻을 수 없다.
(법구경)
/극락세계로 이민을 가다/
"중국에 이러한 말이 있습니다.
"집집마다 관세음이요, 집집마다 미타불이네."
이와 같이 관세음보살은 우리와 특별한 인연이 있어서 이민 수속을 따로 밟을 필요가 없이 우리들이 극락세계에 가서 영주하는 것을 환영하십니다. 오직 필요로 하는 것은 '한 생각 참된 마음'이 있다는 증명만 있으면, 모든 것을 통과할 수 있으며, 절대로 성가실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한 생각 참된 마음'이 있다는 증명이 없으면, 극락세계로 이민을 갈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한 생각 참된 마음'이 있다는 증명을 어떻게 얻어낼까요? 그 방법은 매우 간단하고 쉬워서, 단지 진심으로 성의껏 '나무아미타불' 혹은 '나무관세음보살' 혹은 '나무대세지보살'을 염하면 됩니다.
왜냐하면 아미타 부처님은 극락세계의 교주요,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은 그를 좌우에서 모시는 보살로서 이분들은 곧 서방의 삼성(三聖)이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 어떤 분의 명호를 염하든지 염함이 일심불란이 되어 한 티끌도 물들지 않은 경지에 이르게 되면, 대업왕생(帶業往生: 업을 가진 채로 왕생하는 것)할 수 있으며, 연꽃이 피면 부처님과 보살님을 뵈옵게 될 것입니다.
만약 극락세계로 이민 갈 마음이 없으면 세 분 성인의 명호를 염할 필요가 없겠지만, 극락세계로 이민을 가서 머물 마음이 있으면 반드시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염하여야만 합니다. 그러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삼재칠난을 면하고, 죽어서는 정토에 왕생하므로 일거양득이 될 것이니, 무엇 때문에 즐겁게 염불하지 않겠습니까?"
선화 상인의 <서방 극락이 그대의 집> 중에서
남의 허물을 들추어 항상 불평을 품는 사람은
번뇌의 때가 점점 자라나
마침내는 번뇌에서 벗어날 길이 없어진다.
(법구경)
누구나 좋아할 만한 아름다운 꽃이
빛깔만 곱고 향기는 없는 경우처럼
좋고 아름다운 부처님 말씀도 이와 같아서
실천하지 않으면 어떤 이익도 얻을 수 없다.
(법구경)
마음에 악이 생겨
도리어 제 모양을 부수는 것은
마치 저 쇠에서 녹이 생기나
도리어 그 몸을 파먹는 일과도 같네.
(법구경)
내 고집을 버리면 내 괴로움이 사라진다
버리면,
분별이 사라지고, 번뇌가 사라지고, 정신이 맑아진다.
현재 내 가치관은 내가 살아온 환경의 산물이다.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의 가치관 역시 그 사람이 살아온 환경의 산물이다.
이렇듯 사람들은 저마다 살아온 환경이 다르므로 가치관 또한 저마다 다르다.
내 얼굴과 다른 사람 얼굴이 다르듯이
내 생각과 다른 사람 생각이 다른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나와 남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만 할 수 있어도 번뇌는 훨씬 줄어든다.
옳고 그른 것이 본래 없고 다만 서로의 생각이
다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나의 생각을 고집하지 않게 된다.
그 사람 처지에선 그럴 수도 있겠다고 이해하면 갈등도 싸울 일도 없어진다.
내 생각이 무조건 옳지 않듯이 다른 사람 생각도 무조건 틀리지 않다.
'그 사람 처지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겠다.' 이렇게 한번 생각해 보자.
그러면 비록 눈을 확실히 뜨고 세상을 여실히 보는 것은 아닐지라도,
우선 마음이 그전보다 훨씬 가벼워진다.
남편 고집이 센데 법문을 듣고 마음을 바꿨으면 좋겠다며
남편을 절에 데리고 올 좋은 방법이 없겠느냐며 상담을 신청하신 분이 있었다.
그분의 이런 마음에는 내가 옳고 남편은 틀렸다는 생각이 전제되어 있고,
남편의 고집을 꺾으려는 의지가 담겨 있다.
그런데 생각해 보라.
그렇게 고집이 세다는 남편의 고집을 꺾으려 하는 그 부인의 고집은 어떠한가!
따져보면 고집 센 남편의 고집을 껶으려는 부인의 고집이 더 센 것이다.
내가 남에게 내 생각을 고집하면, 고집하는 내가 괴롭다.
당신 생각이 틀렸으니 고쳐야 된다고 아무리 주장해도
상대가 고쳐주지 않으니 오히려 내가 괴로워지는 것이다.
그래서 그 부인에게 "당신 생각이 옳아요" 하며
"남편이 고집이 세다는 생각을 한번 버려보시면 어떨까요?" 라고 말해 보았다.
본래 옳고 그른 것이 없으니 남편이 틀렸다는 생각을 버리고
'당신 생각이 옳아요' 하면 바로 내 괴로움이 없어지니
내가 제일 좋아지는 게 당연하다.
내 고집을 버리면 내 괴로움이 사라진다.
지금 갖고 있는 내 기준을 버려야 한다.
다 버리지 않으면 눈을 뜰 수 없다.
버리면 분별이 사라지고 번뇌가 사라지고 정신이 맑아진다.
-깨달음 내 눈 뜨기 법륜스님-
마음은 모든 일의 근본이 되어
주인으로 모든 일을 시키나니
마음속에 착한 일을 생각하면
말과 행동 또한 그러하다.
그 덕분에 행복은 그를 따른다.
형체를 따르는 그림자처럼.
(법구경)
과거를 지워 버려라
미래에 끌려가지 마라.
지금 현재에도 집착하지 않는다면
그대는 진정한 평온에 이르리라.
(법구비유경)
해를 섬기는 것은 밝음 때문이요
어버이를 섬기는 것은 은혜 때문이며
의사를 섬기는 것은 목숨 때문이고
스승을 섬기는 것은 법을 듣기 위함이다.
(법구비유경)
마음은 모든 법의 근본이라
주인도 되고 심부름꾼도 되나니
늘 마음으로 선을 생각해 그대로 행하면
복과 즐거움은 저절로 따르리라.
(법구비유경)
그날 이후_나태주/
병원에 다녀온 뒤 몸이 더 작아졌고
직장을 그만둔 뒤 마음이 더 작아졌다
날마다 집에서만 지내다가
가끔은 아내 따라 시장에도 간다
아내가 생선을 사면 그것을 들고 다니고
아내가 잔치국수를 먹자 그러면 잔치국수를 먹는다
잔치국수 값은 2천 5백 원
오늘은 이것으로 배가 부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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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썩, 하고 가슴 한 층이 한 번 꺼져 내리기 전에는 일상이 얼마나 빛나는 보석인지를 잘 알지 못한다.
거창한 것의 뒤꽁무니를 집착해 따라가며 살지만 그것은 꿈이요, 허깨비요, 물거품이요, 얕은 소견이다.
비대한 몸과 허풍 센 마음이 작아지고 더 작아졌을 때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의 광휘를 정면으로 만난다.
평범하고 소박하지만 물 긷고 땔감 나르는 그곳이 제자리요, 내 집이다. 털털해지고 소찬을 스스럼없이 받을 때 행복은 찾아온다.
상인들의 목소리들이 솟아오르는 시장에 가자면 시장에 가고, 비린 생선을 들라면 생선을 들고, 잔치국수를 먹자면 뜨거운 국물과 함께 후루룩 국수를 먹는 것, 그것을 우리는 ’그날 이전’에는 왜 하지 못할까."
문태준 시인의 <가만히 사랑을 바라보다> 중에서
모든 중생에게는 피할 수 없는 일곱 가지가 있다.
태어남.늙음.병듦.죽음.죄.복.인연이 그것이다.
이 일곱 가지 일은 아무리 피하려 해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법구비유경)
사람이 백 년 동안 살면서 천하의 귀신들을 정성껏 섬기고
코끼리와 말 따위로 제사를 지내도
한 번 자비를 행한 것만 못하다.
(법구비유경)
사람이 배운 게 없으면 늙어서도 저 황소처럼
부질없이 살만 쪄 아무 지혜도 없게 된다.
헛되이 나고 죽으면 가고 오며 괴로워하건만
마음은 탐욕스런 몸에 의지하니
괴로움은 끝이 없네.
(법구비유경)
염불 독경 수행방법 / 법상스님
먼저 경전을 독경할 때는
무릎이나 장괘하여 합장을 하시고 경전을 눈높이까지 올려 들으시고
웅성 웅성 웅얼 웅얼 거리며 읽지 마시고 또박 또박 독경하셔야 합니다
또박 또박 독경하시면서
내 독경 소리를 내 귀로 온전히 집중하여 들으시면서
독경 중에 일어나는 온갖 마음들을 잘 관하셔야 합니다
경전이라는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삼보 가운데 하나인 법보입니다
그 자체가 귀의의 대상인 것입니다
우리가 큰 스님 법문을 들으며
환희심을 내고, 잘 들으려고 한 소리도 놓치지 않으려고 하는 것 처럼
그렇게 밝은 마음, 간절한 마음으로 독경을 하셔야 합니다
큰스님을 뵈면 존경스럽고 공경스러운 마음이 들듯,
부처님을 뵈면 한없는 공경심이 들 듯,
그렇게 경전을 대해야 하며
그런 마음으로 독경을 하셔야 합니다
독경을 한다는 것은 내 안의 자성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설법을 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때요 부처님께 설법을 듣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독경을 하지만 자성 부처님께서,
법신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설법을 하고 계신 것이지요
그러니 독경할 때는 부처님 앞에서 설법을 듣고 있다는 마음으로
정성스런 마음, 공경스런 마음, 찬탄하는 마음, 밝은 마음,
간절한 마음으로 독경을 할 일입니다
실제로 그런 간절하고 지극한 마음으로,
부처님께 법문 듣는 마음으로 독경을 하면
시공을 초월하여 부처님께서 법신으로 화하여
우리 앞에 서서 참으로 법문을 설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정말이지 부처님이 내 앞에 계시다면... 하는 상상을 해 보셨겠지만
부처님은 늘 내 앞에, 내 안에 계시면서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을 그대로 지켜보고 계십니다.
하물며 수행하고 정진할 때는
우리의 그 마음을, 간절하고 지극한 마음으로 보고
그 정진심과 하나가 되어 나투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고 부처님의 가피를 받았다고 표현을 하는 것이지요.
그런 마음으로 독경하시면
그냥 밝은 법문에 내 업도 녹고 밝은 인연도 지어지고
온갖 어두운 업장들이 밝아지게 됩니다.
염불수행이란
우리들 중생의 마음(염)과
자성 부처님의 마음(불)이
하나 될 수 있도록 이끄는 실천 수행법입니다.
염불을 통해 우리 마음은 자성부처님의 마음으로 정화되고 맑아지며
온갖 분별심과 번뇌로 물든 마음을 텅 비워 평온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하루 중 어느 한 때를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처음엔 10분, 20분, 30분에서 시작하여 1, 2시간 혹은 그 이상을
온전히 집중하고 관하며 염불하여야 합니다.
일상 생활 속에서도 염불을 놓치지 않으면서
염불수행법대로 수행을 해야 할 것이지만,
될 수 있다면 집중해서 염불수행할 수 있도록
하루 중 일정한 시간을 선택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염불수행을 할 때도 독경 수행과 마찬가지로
다음의 두 가지를 집중하여 관하셔야 합니다.
염불은 입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선은 입에서 나는 소리에 집중합니다.
입으로 염불을 하면서 온전히 내 염불소리를 내 귀로
또렷하게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살아오면 수많은 소리를 듣고 살지만
그건 모두 바깥의 소리들입니다.
내 소리를 귀 기울여 진지하게 집중하여 들어 본 적이 별로 없습니다.
남의 소리만 듣고 살았지 정작 내 소리를 들어 보지 못하였습니다.
모든 수행은 내면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내 소리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염불을 하면서 내 입에서 나오는 염불소리를
내 귀로 또박또박 성성하게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소리를 관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염불을 하다보면 온갖 잡념과 번뇌가 일어납니다.
그럴 때 염불이 안 된다고 답답해 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 닦이려고 올라오는 것이니 말입니다.
잡념과 산란한 마음이 일어날 때
그 올라오는 생각들을 온전히 관찰하셔야 합니다.놓쳐서는 안 됩니다.
놓치면 휘둘리는 것이지만 온전히 관하면 비워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소리와 생각에 집중하여 염불을 계속 하시면 됩니다.
그렇게 정진을 하다가
평온하다거나, 혹은 신비로운 경험을 하게 되거나,
온갖 마장을 만나게 된다고 하더라도
내 마음이 너무 좋다거나 너무 싫고 두렵다거나 할 것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온전히 관하되 휘둘리지 않으면 됩니다.
좋고 싫은 양 극단의 경계에서
어느 한 쪽만 애착을 하여 잡아두려 한다거나
어느 한 쪽만 싫은 마음에 버리려 해서도 안됩니다.
그냥 모든 경계를 다 인정하고 받아들이되 온전히 경계임을 관하시면서
꾸준히 정진만 하시면 결코 휘둘리지 않습니다.될 수 있다면 하루 중 염불수행하는 시간을 정해 두시고,
자신의 근기보다 조금 더 많은 시간을 배정하여
염불수행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10분 정도야 염불하기 쉽지만 그 이상이 어렵다고 한다면어려운 그 때부터 참된 정진이 시작되는 것임을 알고
한 30분 정도 하기 싫은 마음 조복시켜 가면서
좀 더 가행정진을 해야 합니다.
힘들고 하기 싫고 답답할 때가 가장 중요한 때입니다.
그 때 그 마음 관하면서 염불할 수 있어야
수행의 깊이가 익어가는 것입니다.
모쪼록 법우님들의 생활 수행에
깊은 믿음과 확고한 정진심을 가지고서
확철대오하는 그 날까지 밝은 마음으로 실천할 수 있기를
법신 비로자나 부처님, 자성 한마음 부처님 전에 간절히 발원합니다.(6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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