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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남산 서출지의 봄여행스케치 2014. 4. 13. 22:04
경주 남산 통일전 주차장 옆에 있는 서출지의 봄 풍경이 그림처럼 아릅답습니다.
고색의 아름다운 누각과 정자가 있는 서출지 풍경
봄의 싱그러운 신록과 더불의 한폭의 아릅다운 그림을 나타내고 있었습니다.
서출지의 아름다운 연못 풍경 아름다운 누각의 반영과 더불어 산뜻한 봄 풍경입니다.
경주 남산 칠불암 가는 길에 통일전 지나 갑자기 나타난 아담하고 아름다운 연못 서출지를 보니 눈이 번쩍 뜨이는 이색적인 풍경입니다.
연못가에 고풍스럽고 고상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아담한 누각이 있어 더 없이 운치 있는 서출지를 보니
기대하지 않은 아름다운 풍경에 가슴이 설래는 풍경입니다.
봄이온 봄 꽃과 싱그러운 신록의 풍경과 더불어
물위에 비친 반영이 아름다운 그 풍경이 가슴 설래게 하는 아름다운 연못입니다.
연꽃이 피면 그 풍경이 더 아름답다고 하는 서출지.배롱나무 꽃이 필 때도 배롱나무 꽃과 더불어 그 아름다움을 더한다는 서출지
연꽃이 피고 배롱나무 꽃이 필 시기에 다시 찾아보겠다고 다짐 해 봅니다.
경주 남산동에 서출지(書出池)란 연못이 있다. 못 속에서 나온 노인의 편지로 인해 왕이 죽음을 면했다는 전설이 깃든 이 연못은 한여름이면 연꽃이 만개한다. 게다가 주변에 해묵은 배롱나무 꽃이라도 피는 날이면 더욱 운치가 있다.
신라 소지왕이 정월 보름에 천천정(天泉亭)으로 행차하였다가 쥐가 사람의 말로 까마귀를 따라가라고 하여 기사(騎士)를 시켜 까마귀를 따르게 하였다. 그런데 기사는 도중에 돼지싸움을 구경하다가 그만 까마귀의 행방을 놓쳐 버린다. 이때 못 가운데에서 한 노인이 나와 글을 쓴 봉투를 주기에 받아 보니 겉봉에 “열어 보면 두 사람이 죽고 안 열어 보면 한 사람이 죽을 것”이라고 씌여 있었다.
기사가 그 봉투를 왕에게 바치니 왕은 한 사람이 죽는 편이 낫다고 하여 개봉하지 않으려 했다. 이에 일관(日官)이 나가 “두 사람은 보통 인간이고 한 사람은 임금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일러 준다. 하는 수 없이 왕이 그 봉투를 개봉하니 “거문고갑〔琴匣〕을 쏘라”고 씌여 있어 문안대로 활로 거문고갑을 쏘니 놀랍게도 그 안에 왕비와 정을 통하던 중이 숨어 있었다.
그중은 왕비와 사통하면서 장차 왕을 해치고자 거문고갑 속에 잠복하던 중이었다. 개봉하면 두 사람이 죽는다는 예언서대로 왕비와 중은 왕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이 일이 있고부터 매년 정월 상해일·상자일·상오일 사흘간은 모든 백성이 근신하는 날로 정했으며, 특히 정월 보름은 오기일(烏忌日)이라 하여 찰밥으로 까마귀에게 공양하는 풍속이 생겨 오늘까지 전하게 되었다.
서출지란 이름도 여기서 유래한 것이지만 이 전설에서는 편지보다는 그 편지를 전해 준 도인에게 초점이 맞춰져야 할 것 같다. 연못에서 나왔다는, 흰 수염을 길게 늘어뜨렸음직한 이 노인은 보통 인간이 아니었을 것이다. 널리 알려진 ‘은도끼·금도끼 전설’에서 보듯 이 노인은 옥황상제의 사자쯤으로 보인다. 사금갑(射琴匣)이란 제목으로 《삼국유사》에 전하는 이 전설은 당시 왕의 신변을 하늘이 돌보아 주고 있다는 사실을 넌지시 내비치고 있다.경상북도 경주시 남산동에 있는 연못.
내용
지정면적 7,021㎡. 사적 제138호. 월성(月城)에서 남천(南川)을 따라 남산동록(南山東麓)으로 접어들면 정강왕릉(定康王陵)을 지나 남산리(南山里)에 이른다.
그 마을 한가운데에 삼층석탑 두기가 있고 동쪽에 아담한 연못이 보이는데, 이곳이 사금갑(射琴匣)의 전설이 간직된 서출지이다.
즉, ≪삼국유사≫ 기이(紀異) 제1 사금갑조에 실려 있는, 신라 21대 소지왕(일명 비처왕)이 즉위 10년(488)에 못 속에서 나온 노인의 편지 때문에 죽을 위기를 넘겼다는 전설을 간직한 곳이다.
≪삼국유사≫에 적힌 내용을 살펴보면 이 연못은 인위적으로 꾸며진 원지(苑池)가 아니라 마을 밖에 자연적으로 생겨난 못으로 보이며 곡지(曲池)의 생김새를 가지고 있다. 옛이름은 양기못[壤避池]이었는데 사금갑의 전설이 생겨난 뒤 서출지로 이름이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자연 그대로의 유수지(溜水池)이기는 하나 주변의 경관이 수려하여 경주 부근에서는 보기 드문 경승지가 되고 있으며 조선조로 접어들어서는 1664년(현종 5)에 임적(任勣)이라는 사람이 물 위로 누마루가 돌출한 팔작지붕의 건물을 지어 글을 읽는 한편 경관을 즐겼다고 한다.
현재 이 건물은 폐가가 되기는 했으나 서출지의 서북쪽 구석진 물가에 소박하면서도 우아한 자태를 유지하고 있어서 연못의 경관을 돋보이게 해주고 있으며, 추녀에는 ‘二樂堂’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건물을 감싸듯이 우거진 여러 그루의 팽나무 고목과 물가의 배롱나무는 이 못에 원지에 못지않는 아름다움을 부여하는 구실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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